5킬로미터만 쉼 없이 뛸 수 있다면 나는 세상으로 나갈 준비가 된 것이다
'일신상의 이유로 퇴사를 신청합니다. '
딸아이가 5살, 작은 애가 3살일 때, 나는 10년 다니던 직장을 퇴사했다. 결혼과 출산, 육아에 대한 전반을 친정엄마와의 상의 후 진행해 왔는데 내 일신상의 변화는 엄마와 나누지 못했다. 자식일이라면 몇 날며칠을 고민해서라도 최선의 방법을 고민해 줄 분인데 사표를 내고 집에 들어온 지 3개월이 지나서야 조심히 전화로 알려 드렸다. 엄마는 단호하게 내 자식을 내손으로 잘 키워보겠다는 딸에게 별 대꾸를 하지 않았다.
"네가 정말 원하는 거야?" 그렇게 묻기만 했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뭐였을까? 지금도 잘 알기 어렵지만, 그 당시의 나는 (가족) 모두가 화목한 게 우선이라는 가르침을 엄마와 비슷하게나마 실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다닌 회사는 600명 남짓의 작은 조직이었지만, 부처 예산 출연 공공기관은 안정된 곳이었다. 회사 명예를 실추하는 행동만 하지 않는다면 퇴사 때까지 만년 과장으로 적지 않은 급여를 보장받고 처우도 받을 수 있던 곳이었다. 큰애가 5살, 둘째가 3살에 들어서니 저녁 퇴근 후 두 아이에게 나누는 것만으로는 내가 생각했던 모성의 실현이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당시 내게 붙은 별명은 '유여사-유달리 민폐를 끼치는 여자사원"이었는데, 아침에는 지각을 저녁에는 칼퇴를 반복하는 모습을 빗대어 불렸다. 또 그 당시 남편은 나와 비슷한 시기 입사한 회사에서 승진을 앞두고 있었고 이는 저녁 11시까지 야근 혹은 회식이 반복되어 주말이 되어야 자기 시간이 생긴다는 의미였다.
나의 퇴사 이유는 엄마노릇 제대로 하기에 방점이 두었다. 엄마가 되려고 직장을 그만두는 이유가 내가 바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래야만 하는 것이니 가장 크게 받아 안았을 뿐이다. 큰아이 백일 무렵부터 돌봐주신 보모이모님은 더없이 다정한 분이었지만 두 아이 육아비로 한 사람의 급여이상이 들어가는 데다, 앞으로 아이의 교육비도 들어야 하니 경제적으로 바보짓이라는 계산이 컸다. 또 당시로는 '아무래도 엄마가 직접 양육'하는 게 아이 정서에도 더 좋으리라는 판단이 내 결정적 근거이자 오류였다. 결혼부터 두 아이의 출산에 이르기까지 하다못해 큰아이가 딸이나 둘째는 아들을 그것도 2살이라는 터울이 더 길어지지 않게 낳아 길러야 한다는 당위로 삼십 대를 맞았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엄마노릇인지는 몰랐지만 엄마가 된 이상 나만 보면 세상이 환해지게 웃는 두 어린 생명들이 세상에 잘 태어났다 여기도록 만들어 주고 싶었다.
조력자 없이 두 아이들을 혼자 보는 시간은 심적인 충만과 정신적 고립, 육체적 한계로 채워졌었다. 유아차에 작은 아이를, 세발 달린 자전거에 큰 아이를 태우고 놀이터를 순회하다 보면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고 아이들 밥 먹이고 씻기고 재우느라 하루는 금세 지나버렸다. 출산휴가기간에도 그랬지만, 육아전념기에도 나를 위한 시간은 남편의 늦은 귀가 후 500ml 캔 맥주 하나를 마시는 시간정도에 불과했다. 짬짬이 외국어 공부도 하고 자기 계발도 하겠다는 퇴사 전의 내 결심은 30분간 설거지하며 넘어가는 맥주거품처럼 쉽게 꺼졌다. 아이들과의 시간은 소중했지만 내 욕구를 빨리 내려놓아야 더 밀도가 깊어지는 듯했고 가족의 행복이 내 행복이라고 세뇌하듯 읊조리며 보냈다. 퇴사 후 3년, 결혼 후 8년이 되어야 두 아이가 모두 유치원에 등원하게 되니 비로소 5시간의 마자유시간이 겨우 주어졌다.
원하는 걸 추구하는 삶이 무언지 잊었던 나는 아이들이 없어서 행복하지만 텅 빈자리에서 내 삶도 잃어버렸다. 취미생활이나 운동, 나아가 자기 공부를 하게 될 때까지는 반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백화점 문화센터나 지역자치센터의 취미반을 쫓기에는 시간도 체력도 부족했다. 그즈음 내게 구원처럼 시작된 할 일이 '운동'이었다. 30분 정도의 맥주 마시며 키웠던 해방감은 3시간이 소요되는 수영이나 요가, 헬스로 확장되었다. 내가 얼마나 내 몸을 내버려 두었는지 구석구석 근육통이 생겨서야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20대까지 했던 운동력이 30대 출산과 육아시기에 나를 버텨주었구나를 체감하는 시간이었다. 운동하며 쓰는 몸동작이 유연해질수록 안되던 요가의 동작들에 조금씩 도전하는 게 가능해질수록 나 자신이 보다 객관적으로 보였다.
나는 살아있음을 내 움직임이 반경이 클 때 잘 느끼는구나. 아이들의 엄마로 잘 자리하고 싶은 마음보다 내가 내 몸을 보다 노련하게 잘 쓸 때를 보람 있다 생각하는구나를 알았다.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다시 갖는 게 소중했다. 아이들 친구 엄마들로 이뤄진 동네 친구들 외에 운동하며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나 자신의 변화나 상태를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선물 같았다. 이후 나는 인정욕구를 채우는 사람에서 나를 현현하는 사람으로 공부하며 살고 있다. 십 대부터 '무다리'에 '하체비만'이라며 미워하던 내 몸뚱이에서 운동시간이 아로새겨진 단단한 다리근육을 만지며 흡족해한다. 날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하기 위해서 운동한다. 나를 이기는 게 아니라 나를 사랑하기 위해 움직인다.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집에 들어왔던 나는 틈만 나면 집밖으로 나설 궁리만 한다. 엄마로 사는 시간이 괴롭기만 하거나 후회스럽지는 않지만, 나로 다시 살기 위한 기회를 호시탐탐 노린다. 가족들의 편의를 위해 일사천리로 내가 해버렸던 각종 집안일을 미운 잔소리를 보태어 가족들에게 애써 분배하고, 다시 내 시간을 갖기 위해 기 쓴다. 처음 집에서 5킬로미터를 떨어진 곳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집을 나섰던 엄마에서 돌아올 때는 나였음을 느꼈다. 같은 사람이되 내가 흘린 땀에는 내 삶의 노곤한 지침이 스며있었고 내뱉은 숨에는 돌아올 에너지를 불러들일 공간이 생겨있었다. 5킬로미터만 집밖으로 나설 힘이 있다면, 그다음 더 멀리 나갈 힘이 생긴다. 오늘도 힘을 채우기 위해 나는 밖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