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시작했더니 인생이 달아.

by 달리는 작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체력부터 길러야 한다고 말했잖아

그런데 체력은 의지로 기르는 게 아니더라고.

체력은 그냥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알 때까지 지속해야 그때서야 비로소 내가 가진 힘 전체가 길러지는 거야. 그러니 눈뜨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로 운동을 꼽아놓고 그것을 하기 위한 환경을 갖춰 둬. 현관을 넘어설 용기가 잘 생기지 않는 편이라면 운동복을 입고 자는 것도 좋겠어. 그렇게 6개월 해봐. 그럼 내 몸이 안다.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구나, 예전의 나약한 나를 벗어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생긴다니까.


운동을 시작하겠다는 친구가 아침에 같이하면 안 되겠느냐고 카톡으로 질문했다. 전화를 하면 장황하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잔소리가 따라올 것이 두려웠는지 아침 운동을 위한 실천 강령을 묻는다. 5년 전부터 나는 달리기 예찬론자가 되었다. 가정불화를 호소하는 사람과 일이 잘 안 풀려 고민이 된다는 사람, 살을 빼고 싶다는 사람, 심지어 해외이주를 앞두고 불안하다는 사람에게까지 나는 모두 '달리기 하세요'라고 답을 냈다. 십오 년째 나를 봐왔던 동네 친구는 내가 말할 때 입을 뾰족이 내밀더니 모두 다 달리기라는 답만 뽑아내는 자동판매기냐고 놀렸다.


가정불화, 집중력부족으로 인한 효율적 업무제고, 살을 빼고 싶은 마음은 모두 내가 운동을 지속하고 있는 실질적 이유이거나 이룩한 성과이기도 하다. 회사나 친구들 사이에서 상냥하다는 평을 듣는 남편에게 집안일 분담을 애써서 말했더니 '도와줄게'라는 매끈한 대답으로 돌아올 때, 성별이 다른 두 아이들이 겪는 수많은 사건에서 엄마몫의 대응이 전부 인 것처럼 말하며 책임추궁을 당하고 있는 듯 느낄 때, 책은 읽고 싶은데 마음이 불안해 자꾸 생각이 다른 곳으로 쏠릴 때, 나는 갈등과 상처의 언어를 불 붙인 화살처럼 발화하기보다는 운동화를 꿰차고 밖을 향했다. 땀 내고 숨네 쉬고 나면 한 시간 전 일촉즉발의 부부싸움 상황이 문제의 본질을 냉정히 바라볼 수 있도록 식었고, 때로는 잊힌 채 개운한 모습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내 삶의 반경은 내가 달릴 수 있는 거리에 비례해 늘어나기도 했는데, 처음 1,2킬로미터를 뛸 때는 아파트 단지 내에서 한 바퀴를 돌았던 게, 5킬로미터는 한강변이 보이는 근린공원으로 이후 하프나 풀코스 대회를 참가할 때는 서울 시내 곳곳을 뛰며 알게 되었다. 서울의 서쪽에 사는 내가 아버지의 허리협착 수술로 처음 가보게 된 천호역을 직접 뛸 때 내가 집에서 이렇게 멀리 혼자의 힘으로 왔구나 싶어 대견했다. 지하철 타면 1시간 내로 올 거리를 4시간을 걸려 뛰어오느라 애썼지만, 그래도 그렇게 멀리 갈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잠재해 있음이 신기하고 놀라웠다. 첫 마라톤 대회에서 동행해 주었던 페이스메이커 친구가 이틀에 걸쳐 100킬로미터를 달리고 그 외 200K, 300K 대회도 있다고 소개해주었을 때 내 가슴에 그걸 해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씨앗이 하나 자리했다.


운동력은 만사형통을 바라는 로또식의 소원풀이와는 거리가 있었다. 일단 운동력은 자본의 힘을 빌거나 우연을 가장한 횡재와는 다른 결이다. 내 몸이 움직이지 않고서는 절대로 자라나지 않는다. 한번 해서 순식간에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꾸준히 그리고 답이 없어도 묵묵히 계속해야 길러진다. 여기도 타고난 근수저이거나 운동력이 빼어난 사람이 있긴 하지만, 글쓰기처럼 계속해서 하는 사람이 결국 잘하게 된다. 특히 달리기 중 장거리는 지속여부가 성취를 좌우한다. 풀코스 마라톤 대회에 쓱 나가서 3시간 안에 완주했어요는 나 원래 달리기 잘하는 사람이에요라고 (재수 없게) 자랑하는 격이다. 선수 혹은 마라톤 대회에서 전대회보다 1초라도 기록을 앞당기기 위해 혹은 나이가 들어감에도 대회를 완주하는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대회전 서너 달은 너끈히 준비해야 한다. 식단, 생활, 스트레스 관리등 모든 상황을 러닝을 위해 재조정하는 작업이 우선 필요하다.


2022년 11월 처음 풀코스를 완주하고 들어온 뒤 나는 그걸 이룩한 사람으로 등극했다는 오만함에 빠졌다. 당시 기안 84가 TV에서 풀코스 마라톤에 처음 도전한 모습이 방영되었는데, 남자인 데다 나보다 나이 어린 그를 기록면에서 조금 앞선다 하여 우쭐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대회를 마치고 운동을 게을리하니 바로 기록뿐 아니라 체력도 바닥났다. 다음 해 봄 동아마라톤을 그래서 DNF(대회를 나갔으니 마치지 못하고 중도포기함)를 했었다. 오만함. 한번 했으니 다음에도 할 수 있으리라 믿는 안일함이 나를 망쳤다. 꾸준히 운동목표를 세워 그걸 달성하는 사람으로 사는 내가 좋았다고 누누이 말하고 다녔었는데 대회를 마친 성취감에 할만한 목표였다고 쉽게 여기게 되었다.


다음 해 여름, 그리고 그다음 해 겨울 가을과 봄의 마라톤 대회를 앞두지 않고서는 달리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극하는 날씨에 나는 한 달에 누적 200에서 300킬로미터를 뛰며 다시 몸을 조련하는 아픈 과정을 겪었다. 덥고 춥고, 발톱이 빠지고 넘어져서 무릎이 성하지 않더래도 바깥을 뛰는 사람이 되었다. 매일 새벽 해뜨기 전후로 만나던 사람들끼리 통하는 눈인사와 서로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들 그것들이 나를 계속 불렀다. 그렇게 여름겨울을 가리지 않고 한 바가지 땀을 흘리고 나면 삶의 대다수 고민들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내 몸의 고난이 땀으로 배출되어서일까? 고민하던 것들이 조금은 쉽거나 달게 느껴졌다. 인생이 우울함의 연속이 아니라 우울을 넘는 퀘스트처럼 펼쳐졌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달려봐. 인생이 달(아)라져.라고


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