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동안 제발 존엄하기를

<존엄하게 산다는 것>게럴드 휘터

by 달리는 작가

인간다운 삶을 제시하는 키워드, 존엄


“당신에게 아주 큰 이익을 얻을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기회가 당신의 존엄성을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과연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누구도 쉽사리 대답하기 힘든 이 질문은 저자 게랄드 휘터가 베를린의 토론에서 실제로 옆자리의 CEO에게 던진 것이다. 그 당시 질문을 받은 이는 딜레마에 빠졌다. 한 기업의 수장으로서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는 것과 기업의 이익을 달성하는 것, 둘 중 어느 쪽도 쉽게 결정하지 못해 침묵한다. 잠시 동안 청중은 그 침묵에 압도된다.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는 CEO를 바라보며 청중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게럴드 휘터의 《존엄하게 산다는 것》은 ‘인간다운 삶, 품격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저자는 불안과 우울, 잠재력과 동기 부여 등에 관한 뛰어난 뇌과학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삶에 대한 통찰을 대중에게 친숙한 언어로 전하는 독일의 신경생물학자이자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인이다. 1951년 동독에서 태어나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으며, 예나대학교에서 동물학을 연구했다 1970년대 말 서독으로 건너가 막스플랑크 실험의학연구소에서 뇌 발달 장애를 연구했으며,1995년 괴팅겐대학교에 신경생물학 기초 연구실험소를 설립, 2016년까지 신경생물학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는 비영리단체 ‘잠재적 개발 아카데미’를 설립하여, 각종 포럼과 멘토링,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대안적 삶을 실천하고 있다.


저자는 신경생물학 전공자로서 “인간의 존엄함과 그 생물학적 기초사이의 관계”에 주목한다. 그는 이 책에서 신경생물학과 발달심리학의 관점에서 과학기술이 지배하고 탐욕과 모멸에 둘러싸인 이 시대를 헤쳐 나가기 위한 방법으로 ‘존엄’을 제시하고 있다. 220여 페이지의 총 9개장의 짧은 책이지만 저자의 사유는 역사와 과학, 철학을 넘나든다. 급변하는 21세기, 혼란의 시대에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인간의 축복받은 본능, 존엄성을 일깨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책은 출간 후 독일 아마존 신경생물학 분야 1위에 올라 무려 26주 연속으로 베스트셀러 10위권을 지킬 정도로 독일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국내에서는 철학자 이진우 교수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권하는 책”이라 추천하여 화제가 되었다.


저자는 「2장 존엄은 어떻게 탄생하였는가」에서 독일의 철학자 임마뉴엘 칸트와 그의 철학을 ‘인간 존엄의 근거’로 삼는데 상당부분을 할애한다. 칸트는 “인간은, 모든 지성적인 존재는 수단이 아니라 스스로 목적으로 존재한다.”(p.73)라고 했으며, 또 자신의 철학을 ‘정언명령’ 즉, “그대가 하고자 꾀하고 있는 것이 동시에 누구에게나 통용될 수 있도록 행”(p.74)하는 공식으로 만들었다. 칸트의 철학은 근대 법체계의 근본이 되었는데, 인간의 존엄은 침해될 수 없으며,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인간 고유의 개성이기에,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시켜서는 안 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게럴드 휘터에 따르면, “인간의 두뇌는 사회적 관계에서 학습되는데, 지금의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는 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혼란에 빠져 있다”고 한다. 이런 혼란을 잠재우려면 일관된 방향을 제시하는 “내면의 나침반”이 필요한데, 뇌 속에 뿌리깊이 형성된 감각인 ‘존엄성’이 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신경생물학적 관점에서 존엄이란 인간의 태도와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신념체계다. 인간의 뇌는 에너지 소비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행동을 조정한다.(p.122) 우리가 ‘사고방식’. ‘태도’라 일컫는 것들인데,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는 많은 일들 중 중요한 경험은 ‘타인과의 공존’이다. 공존에서 오는 고통을 최소화하려면 바로 ‘존엄’이라는 내적 표상으로 관계가 맺어져야 한다.


‘존엄’이라는 인간의 자세에서 오는 형태가 없는 고유한 특성을 과학의 실증적 기법으로 논증하려는 측면이 흥미롭다. 인간의 타인에 대한 자세, 습성에서 스스로에 대한 존엄과 타인에 대한 존중을 갖추는 것은 뇌가 활용하는 에너지를 최소화하고 최적화 한다고 말하는데, 과학적 실증에 따른 저자의 입장은 공식처럼 ‘인간의 존엄’을 이야기한 칸트보다 명료하다. 과학과 인문학의 멋진 콜라보가 펼쳐진다. 바쁜 일상에서 도구화되어 존엄한 존재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현대인들은 체계적 증명에 감탄하게 되리라. 그리고 “어쩌면 스스로의 삶과 타인의 관계를 지금보다 조금 더 존엄하게 만들어 나가겠다.”는 다짐을 세웠을 수도 있다. 저자가 감사의 말에서 예측한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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