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책을 이기지 못한다

정신과 지식은 인간의 영혼을 성장시킨다 <책의 정신> (강창래, 북바이북

by 달리는 작가

봉준호 감독은 디테일의 장인으로 알려졌다. 시나리오 작업과 시놉시스에서 배우들의 손동작과 표정 소품까지 하나하나 일일이 체크하는 사람이란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감독의 시선과 감각을 따르게 되는데, 특히 <기생충>을 본 후에는 유난히 킁킁 대었던 기억이 있다. 혹여 옆사람에게 내 집 냄새가 풍겼을까? 혹은 주변사람에게서 그런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까? 의심했던 적이 있다. 비슷한 경험은 지인을 만나려 1호선을 탔다 한적한 좌석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던 때를 회상시킨다. 중증비염환자인 나는 겨울 북풍에 대비해 마스크를 쓰는데, 나도 모르게 옆자리에서 풍겨오는 냄새에 순간 표정이 일그러짐을 느꼈다. 한편 마스크로 내 표정을 가릴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찰나, 옆자석의 행인(남성인지 여성인지 모를)의 구겨지고 때가 탄 신발 뒤축이 눈에 들었다. 겨울이라 두꺼운 옷자락에 땀을 흘리고 제대로 건조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체취는 그의 지위와 삶의 반경을 짐작케 했다. 그리고 외피로 가릴 수 있어도 냄새는 절대로 속일 수 없다던 영화 속 한마디가 다시 떠오르기에 이르렀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나는 내가 가진 단어를 통해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어도, 내가 맡은 냄새를 그대로 전할 수는 없다. 그것은 마치 내가 정신 또는 영혼이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면서도 그것의 실체를 보여주거나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AI가 내가 원하는 바를 클립핑해 각종 윤색된 정보로 재편해 주어도 거기서 작성된 글이 내 글이라 할 수 없다. 내 글로 전달되는 내 사유의 깊이나 혹은 고민의 흔적을 한낱 유능한 기계가 알 리가 없을 테니까. 사실 AI는 나보다 이미 더 똑똑한 것으로 보인다.


"AI는 이미 몇몇 특수 분야에서는 인간을 초월했지만, 앞으로는 한 가지 과제만 잘하는 특수 지능을 뛰어넘어 초지능(superintelligence) 수준까지 도달할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하다. 그러나 초지능이 인간보다 빠르고 도구적으로 정보를 취급할 수는 있지만, 인간과 같은 인공일반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AGl)은 획득할 수 없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인간의 일반지능은 정보처리 능력의 집적 이상을 뜻하는 것으로, 그것은 신체와 교육과 사회를 통해 얻어진다. 신체도 사회도 없는 AI는 패턴을 학습할 수 있을 뿐으로, 그것은 인간의 이상적 교육과는 질이 다르다. 둘째, 연구자 중에는 인공일반지능이 마치 AI의 목표인 것처럼 말하기도 하지만, AI는 굳이 일반지능으로 발전할 필요가 없다. 인간처럼 먹고 사랑하고 배설하는 기능을 수행할 필요가 없는 AI는 일반 AI가 되어야 할 필요가 없다."(AI는 자신의 무지를 알 수 있을까. 김진석, 개마고원)


그렇다면 책들을 요약하고 그것에 대한 정서를 전하는 AI의 글, 이제는 서평가들을 위협하지 않을까? 나는 단연코 NO라고 말할터다. 그것은 책에는 그것이 가지는 고유의 향기가 있고 그것을 채취한 사람들의 노스탤지어가 언어로 전해지는 게 바로 서평이기 때문이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열린책들, 2021)를 원작으로 하는 톰 티크베어 감독의 영화는 ‘냄새’와 ‘향기’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작품들은 매체특성상 냄새를 전할 수 없음에도 독서를 하고 영화를 보는 동안 이상스레 코를 킁킁 거리게 된다. 나도 모르게 어떤 냄새를 자각하거나 내 냄새를 짐작하거나 기억속의 어떠한 향기를 소환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인간의 인식 속의 감각을 깨운다는 면에서 충분히 파격적이다.


강창래의 『책의 정신』(북바이북, 2022)은 책에 대한 향기와 향수를 내뿜는다. 저자는 이를 ‘책의 정신’이라고 표현했다. 저자는 지금의 세상을 미시적인 관점으로 보면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지만 거시적인 관점으로 보자면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p.5 저자 서문)고 정의한다. 독자에게 자신만의 편견으로 책을 보고 읽고 쓰며 또 다른 수많은 편견을 접하라고 유혹한다. 독자들을 자신의 기억 속의 흔적과 자극을 다시 소환하게 하는 중요한 가이드북이다.



책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다. 인간은 자신의 지식과 감상을 문자로 남기고, 후대의 인간은 그것을 통해 정보와 자신만의 생각을 일으킨다. 책과 독서의 중요성이야 어느 시대건 강조되어 왔으나, 유튜브로 정보를 검색하는 게 더 빠르고 SNS와 게임의 유혹에서 구시대의 책이 살아 남을 수 있을까? 그 대답을 저자는 ‘메타북’에서 찾는다. 그는 자신의 책도 역시 메타북의 일종이며, “즐겁게 독서”하는 사람들을 위한 달콤한 유혹의 손짓이길 바란다.


이를 위해 저자는 몇 가지 질문과 거기에서 연계되는 생각을 정리하며 독자들과 답을 찾아간다. 1. ‘좋은 책이란 어떤 것인가?’ 2. 혁명적 생각은 “아무도 읽지 않은 책”에서 비롯된다. 3. ‘고전은 정말 위대한가? 4. “객관성의 칼날에 상처 입은 인간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생물학과 문화 인류학, 심리학 분야를 거쳐 현대에 이르는 과학을 살핀다. 5. 책의 운명에 관한 고찰로 “책의 학살, 그 전통의 폭발”이라는 담론을 다시 재해석해준다.


다시 향수로 돌아가 보자. 저자의 책은 켜켜이 다른 향기를 품었다. 향수는 탑노트, 미들노트, 베이스노트로 향수의 첫인상과 중간에서 연상시키는 향, 그리고 무거운 분자들로 구성되어 나머지 잔향으로 구분된다. 저자의 책 각 부분의 소제목들은 강력하고 시크한 첫인상을 남겨 독자들에게 책을 어서 빨리 넘기라 유혹한다. “포르노소설에 프랑스 대혁명을 일으켰다고?”와 “지성의 깔때기, 아이작 뉴턴,” “너무나 ‘정치적인 본성과 양육’의 과학”이라는 제목에서 독자들은 현대감성적인 단어와 그로 인해 연상되는 이미지에 감탄하게 된다.


거기에 저자의 현학에 대한 자기 해석과 유쾌한 통찰은 독자들을 향수의 잔향을 남겨 자신들의 사고를 진작시키는데 일조한다. 저자의 이런 서술 방식은 저자가 책을 읽어가고 기록하며 자신이 추구하는 독서운동을 위해 사용되는 일종의 툴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저자가 제시된 책을 읽지 않았음을 괴로워할 필요도 또 도전의식으로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책들이 지닌 향기를 기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책은 새로운 미디어, 영화를 받아들여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이루었다. 미래에 다가올 매체들은 독자들에게 실체감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지점이 있다. 우리는 이미 고유한 자신만의 체취를 품고 있고, 그것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향의 호, 불호에 대한 기호가 이미 세워져 있다. 그리고 앞으로 들어올 자극도 자신의 기호에 따라 분류한다. 기억에 대한 행위가 이를 가능하게 한다.


자극이 넘쳐나는 세상에, 너무나 무자극 해서 위험해 보이는 책의 미래를 걱정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에게는 이미 충분한 경험과 기억이 있고, 그를 통해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분류한다. 저자만큼의 독서 이력을 가지지는 못하더라도 즐겁게 책을 읽고, 다른 책에서 얻은 지식을 어떻게 분류할지 충분히 경험하고 있다. 메타북의 향기를 우리는 나에게 흥미로운 지식세계를 만나게 해주는 즐거운 향으로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향을 지녔다. 그리고 AI 따위는 절대로 못할 일을 우리는 하고 있다.

화, 목 연재
이전 03화너는 가고 내 사랑은 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