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민족이 다양하게 살아가는 방법
해외 도시를 여행할 때, 그 나라의 역사와 종교 문화를 얕게라도 알고 다니면 우리와 다른 부분, 문화적인 요소들이 조금 더 이해되는 일들이 있다.
처음 지도를 펼쳤을 때, 말레이시아는 나라 지형도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나라는 1개인데, 반도가 2개. 반도와 반도 사이 또한 가깝지도 않다. 말레이반도의 쿠알라룸푸르에서 북보르네오의 코타키나발루까지 비행시간 2.5시간. 이런 지형은 다양한 역사의 사건이 있었겠지만, 결론적으로는 말레이시아가 한 때 영국의 식민지였고 그 때 식민지였던 지역이 합쳐저 지금의 말레이시아가 되었다.
말레이시아는 기본적으로 이슬람 문화지만, 중국계말레이시안, 인도계말레이시안 그리고 기타 다양한 문화권의 민족들이 오랜세월 동안 이주해 왔고, 2차세계대전 이후 말레이시아가 독립국가로 지정되면서 해당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말리에시아인이 되었다.
한 그랩 택시 운전사는 20대였는데, 본인의 할아버지는 홍콩인이고 할아버지 세대에서 현재의 코타니카발루로 이주해왔다가 아버지 세대 때 말레이시아 국적을 받게 되었다고 했다.
이러다보니 히잡을 쓰며 주기적으로 기도를 하는 이슬람 종교인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자유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종교 뿐만 아니라 음식에서도 할랄음식, 인도와 중국에서 유래된 말레이시아 전통음식들도 많았다. 코타키나발루는 워낙 관광지라 동네간의 문화차이가 없어보였지만, 수도인 쿠알라룸푸르를 가면 동네마다 확연히 다른 문화를 접할 수 있다고 한다.
영국의 식민지, 이슬람문화, 인도와 중국계의 이주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공존이 바로 언어였다. 말레이시안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말레이어, 영어, 중국어 3개의 언어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인구의 60%정도는 3개의 언어를 다 구사할 수 있다는거다.
이런 코타키나발루에는 한국인 관광객이 많다. 코로나 전에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왔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줄었다고, 마사지샵을 운영하는 말레이시아 사장님이 얘기해주었다. 실제로 주요 여행지나 투어를 가면 한국인이 정말 많다. 체감상으로는 전체 관광객의 50%는 한국인, 30%는 중국인으로 느껴졌다. 다민족 국가, 다양한 문화가 자연스러운 나라여서 그럴까. 아니면 관광도시여서 생업을 위한 수단일까. 이곳 상인들 대부분은 모객과 상거래를 위해 한국어 패치가 자연스럽게 되어 있다. 그렇게 15일을 코타키나발루에 있다보니, 가끔 한국어가 안통하는 가게나 서비스를 경험하면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여행 첫날, 필리피노 마켓을 지나다 가장 먼저 들었던 한국어. "연진아, 망고 먹고가".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뒤를 돌아보게 만든 그 한마디. 그렇게 한국어 간판 행복망고집에서, 가게 청년들과 한국어로 얘기하다가 망고 3개를 사서 돌아왔다. 한국어를 하는 말레이시안이 재밌으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한국인이 코타키나발루에 와서 많이 하는건 시장구경, 맛집탐방, 마사지, 골프라고 현지 가이드는 말한다. (여담이지만, 일본인들은 셈포르나, 산다칸 등 자연을 보러 많이 간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한국인 사업가들이 코타키나발루에 왔고, 그들을 통해 현지인들도 호객, 모객을 위한 한국어를 많이 배웠다고 한다. 잠시 담소를 나눴던 현지 마사지샵 사장님도 한국인이 운영하는 마사지샵에서 10년 정도 마사지사로 일하고 본인이 샵을 차린거라고 했다. 가이드 얘기도 들어보고, 검색도 해보면 생각보다 많은 식당, 카페, 마사지샵의 운영자가 한국인이다.
"00샵은 한국인이 운영하는게 아니라서 서비스가 기대만큼 되지 않을 수 있어요"
한 투어 여행사가 현지 마사지샵을 추천하면서 달았던 유의사항 중에 하나였다. 사실 해외를 나가서 서비스를 받아보면 '알잘딱깔센' 을 기대하는건 쉽지 않다. 언어나 문화의 이해차이에 대한 문제로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만, 한국인만큼 똑부러지게 장사를 하는 사람이 많은 나라도 많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한국인의 서비스에 익숙한 한국 관광객들은, 한국인이 하는 (한국보다) 저렴한데 편안하고 알찬 서비스를 선호한다. 한국이 아닌, 코타키나발루에 와서도 말이다. 오랜시간 한국인의 특성을 파악한 코타키나발루 상인들, 여행 가이드들은 이제 한국어가 생존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
여행을 하는 이유는 어디를 가느냐, 무엇 때문에 가느냐에 따라 매번 달라진다. 정말 휴양을 위해서 떠나는 거라면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자연경관과 경험을 할 수 있는 도시에서 좋은 리조트에 머물면서 언어의 장벽없이 하고 싶은거 하고 즐기고 싶은거 즐기는게 기대하는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는 코타키나발루는 정말 최적의 도시다. 나시르막, 바쿠테, 락사, 떼따릭 등 한국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현지음식도 먹고, 세계3대 노을과 반딧불 투어, 30분 이내 거리의 다양한 섬들에서 하는 휴식과 스노우쿨링, 배낚시 등 볼거리, 놀거리도 많다.
그런데 불편하다고 느꼈던 건, 코타키나발루를 한국인들을 통해서 느끼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이건 어떤 현상의 불편함이라기 보다 나 스스로 여행자로써의 불편함이었다. '뜨리마까시' '사마사마' '사뚜(1), 두아(2), 띠가(3)' 이정도의 언어로 여행을 하겠다고 왔고, 한국어가 안되는게 맞는 나라인데 한국어나 영어가 안되면 불편함을 느끼는 내 모습의 불편함이었다.
역사, 종교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나라의 언어를 이해하고 여행하는 것도 여행의 큰 즐거움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한국어가 잘 통하는 코타키나발루에서 들었다는 것도 아이러니했다. 올해 상하이를 여행했을 때 중국어를 못하니 여행이 많이 불편했고 대화가 어려웠는데 지나고 보면 그러면서 배웠던 중국어들, 중국의 문화들이 있어 여행이 의미있었다. 지금도 그때도 여행을 갈 때는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가면 여행이 몇 배로 더 재밌을 거라 생각하는데 막상 여행을 준비할 떄 언어를 준비하는게 참 어렵다.
어느 나라를 가든 영어가 아니면 현지어를 해야만 했는데, 영어가 아닌 한국어가 영어만큼의 사용성이 생긴다는건 우리나라와 문화가 그만큼 세계적으로 위상이 생겼다는게 아닐까. 로제와 브루노마스의 노래 '아파트' 가사는 거의 다 영어지만 '아파트' 라는 이 세음절의 단어만큼 한국을 대표하는 단어가 있을까 싶은데, 많은 현지인들이 '아파트'를 말하고 노래하는게 흥미롭고 즐거웠다.
보다 많은 나라에서 한국어가 더 많이 병기되고 좀 더 쉽게 사용될 수 있기를. 다만, 한국의 문화가 아닌 그 나라의 문화와 방식을 유지하고 즐길 수 있는 선에서 말이다. 여행 전에 최소한의 그 나라 언어를 알고 가야겠다는 나의 작은 숙제가 생겼던 편하고 또 불편했던 여행, 코타키나발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