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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졔 Dec 11. 2021

꾸밈도, 단순화도 없이 충실히 지구 반대편을 전달해내는

허성용 미니 총서, <있는 그대로 탄자니아>

최근 한-아프리카 재단이 주최한 <한-아프리카 청년 정책 아이디어톤 대회>에 참석할 일이 있었다. 한국인, 아프리카 국가의 청년들이 함께 섞여 한 조를 이루고 어떻게 기후 변화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연대하는 정책을 수립할 것인지, 혹은 어떻게 한-아프리카 간 인지 제고를 이룰 것인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논하고 이를 주어진 시간 내에 최대한 구체적으로 계획해보는 대회였다. 그리고 동아프리카의 르완다, 에티오피아, 부룬디, 서아프리카의 가나,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대륙 출신의 많은 참여자들은 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한국인들은 우리에 대해서 모른다.


실로 그렇다. 편의에 따라, 그래도 된다는 생각으로, '잘 모르니까' 우리는 53개 국가가 모인 대륙을 싸잡아 아프리카라고 부른다. 그리고 사바나 초원에서 뛰노는 야생 동물이 그 대륙의 전부인양 생각하곤 한다. 프랑스의 수도를 모르면 무식한 것이지만 아프리카의 국가 이름 정도는 무시해도 되기 때문에. 어린 시절 전집으로 읽었던 우리 사회가 개별적인 존재로 아프리카를 가시화한 적이 얼마 없기 때문에, 몰라도 그것이 무식한 것으로 취급받지 않는 구조를 띄고 있기 때문에 그냥 늘 그래 온 것이다.


한국 어린이들의 서가를 휩쓸었던 <Why? 시리즈>에는 국가별 세계사를 테마로 총 14권의 도서가 있다. 미국, 일본,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중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 캐나다, 영국, 스페인, 이집트, 그리스. 이 14개 국가 중 아프리카 국가는 단 한 곳도 없다. 중동이나 동남아시아 국가도 없다. 이 구도 속에서 악숨 문명을 기반으로 고유한 문자인 암하라나 문화를 번성시켜온 에티오피아나, 400여 개 이상의 사원을 짓고 번성한 아유타야 왕국의 태국이나, 앙코르와트 등 인류의 위대한 유산을 남긴 앙코르 왕조의 존재는 지워진다. 편집자가 의도하지 않았어도, 이 사회를 살아가는 한 개인인 편집자가 '누군가에 대해 알아야 한다'라고 생각한 결과가 지금 세계의 권력 구조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그랬다. 권력을 가졌다는 것은 집단의 스테레오 타입을 대변하거나 덩어리 져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개별적인 존재로 인지되는 것이라고. '유럽인'이 아니라 '프랑스인', '영국인' 더 나아가 파리 사람, 마르세유 사람, 혹은 런던 사람, 웨일스 사람으로 인지될 수 있다면 그것은 권력이라고. 동양 여성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졔졔'라는 존재로 기억될 수 있게 되는 것이 권력이라고. 


그런 점에서 초록비책공방의 <나의 첫 다문화 수업 시리즈>는 시도 자체로 반갑다. 이미 지난 8월 <있는 그대로 르완다>, 9월 <있는 그대로 가나>가 발간되었고, 이번에 내가 만난 책은 해당 시리즈의 세 번째 출간물인 <있는 그대로 탄자니아>였다.


알라딘에 들어가 탄자니아를 다양한 국가의 이름과 함께 검색해본다.

"중국" 총 300,566개

"일본" 총 188,770개

"프랑스" 총 142,319개

"미국" 총 42,378개

"영국" 총 25,693개

"독일" 총 23,640개

"인도네시아" 총 5,857개

"페루" 총 569개

"미얀마" 총 166개

"탄자니아" 총 41개


우리에게 영향을 더 많이 미칠 수밖에 없거나 교류가 잦은 이웃 국가인 중국과 일본에 대한 책은 다각도에서 넘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영역에서 다양한 콘텐츠가 쏟아져 나온다. 압도적인 숫자가 이를 증명한다. 유럽권이나 미국으로 가면 어떨까? 프랑스, 미국, 영국, 독일은 몇십만 ~ 만 개의 결과가 나오는데 이 숫자에는 함정이 있다. '개별적으로 기억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이 국가들은 각 도시 이름으로 검색했을 때에도 어마어마한 콘텐츠가 쏟아져 나온다. 당장 '뉴욕'을 검색하면 14,591개의 결과가, '런던'을 검색하면 109,935개의 결과를 만나볼 수 있다. 그에 반해 패권에서 거리가 조금 있다고 여겨지는 국가들은 그 수가 확 줄어든다. 그중에서도 역시나 탄자니아는 41건의 결과만 찾아볼 수 있다.


그마저도 탄자니아 키워드로 발견되는 책들은 현지에서의 생활을 담은 애정이 잔뜩 느껴지는 에세이와, 탄자니아의 여러 유명 관광지를 어떻게 하면 잘 여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여행 가이드북 두 종류로 나뉘었다. 그런 점을 살폈을 때 <있는 그대로 탄자니아>는 다르다. 나는 늘 브런치에 타인의 글을 읽고 글을 작성할 때면 부제에 작가의 이름과 책의 제목, 그리고 장르를 함께 명시하는데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분류가 조금 고민이 되기도 했다. 고민 끝에 '미니 총서'라 이름 붙인 이 책을 알라딘은 '청소년 인문/사회'로 분류했는데, 나는 이 분류가 이 책을 담기엔 이 책이 어른들에게도 충분히 많은 지식과 생각할 지점을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정말이지 광활하고 역사가 깊은 땅 탄자니아를, 200 페이지 남짓의 미니한 페이지 안에서 총체적으로 고루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 국가에 대한 미니 총서를 쓴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함부로 아는 척하기에는 너무 넓고 큰 주제인 한 국가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특히 해당 국가의 사람이 아니고서는 더욱 어렵고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없기에 가장 핵심이 되는 이야기들을 발굴하고 담아내야 할터인데 그 역시 조심스러운 작업 이리라. 이 책엔 그 부담을 흔쾌히 껴안고 지면의 한계 속에서 최대한 탄자니아를 다각도로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묻어있다. 지리와 언어 등 기본 정보, 탄자니아 사람들의 생활 이모저모, 탄자니아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탄자니아의 관광 자원까지 총망라하기 위한 시도를 하면서도 동시에 자기가 아는 것을 과시하는 듯한 느낌 없이 독자가 탄자니아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기에 충분히 '적당한' 수준의 정보만 담고 있다. 개인이 경험한 것을 과장하여 이야기하거나 낭만화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하여 지나친 축약으로 맥락을 살피기 어렵게 한다던가 지나치게 수정/삭제를 가해 단순화해서 보여주지도 않는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저자의 저력이 대단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저자의 약력으로 짐작하건대 중심을 잡아 있는 그대로의 탄자니아를 전달하는 일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으리란 짐작이 들었다. 책날개에 적힌 저자의 약력을 살피면 저자가 아프리카 땅에 대한 얼마나 많은 애정을 가지고 다양한 활동을 해왔는지, 탄자니아에 대해 경험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약력만 보면 그가 하고 싶은 말들이나 보여주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훨씬 많지는 않았을까, 탄자니아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담고 싶었던 말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싶다. 이 책의 미덕은 그런 저자가 자신의 애정 필터를 최대한 덜어내고 말 그대로 '있는 그대로' 탄자니아를 담기 위해 쏟아부은 역력한 노력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자는 자신의 애정을 최대한 숨기되, 자신이 사랑할 수 박에 없었던 탄자니아의 다양한 면모들을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래서 건조한 문체로 사실만을 전달하는 것 같았던 저자가 가끔씩 마치 행복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꿈 꾸는 듯한 말투로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낼 때 함께 묻어나는 깊은 애정이 독자에게 부담 없이 담백하게 다가온다.


만약 12월에 탄자니아를 방문하면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뜨거운 크리스마스를 즐기게 될 것이다. (p.32, 탄자니아의 기후를 설명하며)
처음에는 맵다고 느낄 수 있지만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입맛에는 맞아 나는 밥을 먹을 때 항상 같이 먹었다. (p.167, 탄자니아 식문화 중 필리필리를 설명하며)
왼쪽 아래를 내려다보면 구름이 아프리카 대륙을 덮고 있고 오른쪽 아래에는 화산 폭발의 분화구와 느닷없이 홀로 우뚝 솟아있는 빙벽이 있다. 이 광경과 함께 우후루 피크로 발걸음을 옮기는 그 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p.204, 킬리만자로 산에 대해 이야기하며)


나는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과 잔지바르를 가 본 적이 있는데,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때는 직접 가서 경험하고 봤음에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 이 책을 통해 그 맥락을 이해하게 되면서 보이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고 탄자니아를 갔다면 좀 더 탄자니아에 대한 이해를 갖출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나 개인에게는 아쉬운 일이지만 내가 아쉬운 만큼 이후에 탄자니아에 방문할 이들에게는 이 책의 존재가 기쁨과 행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봉사 활동, 선교 활동, 국제개발협력이나 KOICA 활동 등을 이유로 탄자니아를 방문하고자 하거나, 탄자니아에서 온 친구가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을 누리는 기쁨이 있길 바란다. 탄자니아가 아닌 아프리카의 다른 지역에서 살고 있거나 다른 지역을 경험한 이들에게도 이 책을 통해 나라별 차이를 간접 경험하는 재미가 있길 바란다. 또, 국경을 넘나들며 여행하는 것이 어려운 요즘, 진짜 그 나라를 방문할 때를 기대하며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탄자니아를 여행하고자 하는 모두에게 이 책을 먼저 읽고 현지를 방문하는 행운이 있길 바란다.


그만큼 내내 '그전에 이 책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탄자니아 방문 전 탄자니아와 국경을 접한 부룬디를 방문한 적이 있던 나는 탄자니아에 발을 내딛기 전 두 국가가 지레짐작 비슷한 문화를 가졌으리라 생각했었다. 탄자니아 방문 전에도 아프리카나 동남아, 중동, 남미로 평평하게 이해되는 대륙들의 각 국가가 특징이 다르다고 이야기했고 대륙으로 묶어서 스테레오 타입을 만드는 것에 반대했지만 개별적인 존재를 알지 못하면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실제로 그렇게까지 다를지 모르기 때문에 관념 속에서만 다르려니 생각했다. 그러다 두 국가의 전혀 다른 문화에 깜짝 놀랐던 부끄러운 경험이 있다. 지금도 나는 지구 상의 어떤 곳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평평한 시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개별적으로 각 국가를 다 방문해볼 수 있다면 그런 차이를 발견하고 입체적으로 각 국가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나 혹은 당신이 모든 국가를 다 직접 방문할 수 없기에 <있는 그대로 탄자니아> 같은 책은 개별 국가를 방문하지 않아도, 혹은 편향된 콘텐츠들로 인해 우리가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바라보던 세상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리라 믿는다. 


그렇기에 이 책이 꼭 탄자니아와 관련된 어떤 '계기'가 있어서만 읽히는 책이 아니길 바란다. 어떤 이유 없이, 교양과 지식을 위해, 순전한 호기심으로 '먼 나라 이웃 나라'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프랑스와 스페인과 독일과 영국과 일본과 중국에 대한 책을 읽으며 자랐던 것처럼, 이 책도 그렇게 읽히길 바란다. 비단 탄자니아에 대해서만 아니라 초록비책공방을 통해 이전에 출간되거나 향후 출간될 같은 시리즈를 통해, 르완다, 가나, 남아프리카공화국, 알제리, 오스트레일리아, 터키를 읽게 되길 바란다. 그리고 지금껏 세계이나 세계로 취급 받지 못했던, 세계의 변방에만 놓였던 국가와 문화를 알게 되길 바란다.


또 아는가? 힙합이나 재즈댄스, 캉캉댄스가 맞지 않아 춤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당신이 아프로댄스를 통해 춤을 사랑하게 될지. 빈센트 반 고흐나 앤디 워홀을 보며 미술 작품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던 당신이 '팅가팅가'를 통해 집에 걸어 놓고 싶은 작품을 구매하는 미술 콜렉터가 될지.


지금껏 발견되지 않았던 한국이 재발견되며 전세계 많은 사람들의 삶이 풍성해지고 있듯, 우리도 좀 더 다양한 세계와 문화를 발견하며 우리의 삶이 더욱 풍요로와지길 바란다. 그리고 그 시작으로 <있는 그대로 탄자니아>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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