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오해였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하려고 했던 말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오해를 받은 것 같아 억울함에 살짝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도 내가 한 말 때문에 시야가 좁아지고 순간 해소되지 않는 마음 때문에 버겁고 힘들었으리라 생각도 든다.
오해였지만, 상대방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준거니까, 마음이 힘들었다면 정말 미안하다 사과하면서도 갈등을 만나면 무조건 미안하다 말하며 상황을 정리하려고 하고, 쉽게 작아져버리는 나의 태도가 나를 또 다시 아프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살펴보게 된다.
이 일이 있던 날 낮에 상담자들과 회의하며 내가 뱉은 말들이 떠오르면서 스스로가 가소롭기 시작했다. 그럴 들한 말들 참 잘하네 싶어서...ㅎ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열심히 피력하고, 관계는 생존이라고 말했던 내가 관계를 쉽게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는게 기가찼다. 이런 내가 관계에 대해서 뭘 말하겠냐 싶고 그냥 관계는 어려운거 맞으니 입다물고 그냥 살자 싶어지기도 한다. 이렇게나 쪼그라들어 버릴 일인가. 나 원 참.
상처가 난 부분은 예민하다. 그런 부분엔 아주 순한 물만 부어도 아프다.
우리 마음도 같은 구조라는 걸 깨닫는다.
아무런 의도가 없었더라도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누군가의 말을 담아낼 때는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
상처에 감염이 있을 수 있다고 상대의 동의 없이 내 마음대로 물을 부으면 그 마저도 너무 아플 수 있다.
물의 온도를 체온에 맞추고, 아주 살살, 그리고 상처난 이의 동의를 구하며 천천히...
그런데 이렇게만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닌데
나의 상처만 운운하면서도 살 수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있는 상처 다 말하고 다닐수도 없고, 또 깊이를 상대가 때마다 헤아릴 수도 없는거니까.
우리는 오해 받을 수 있다는 여지를 두고 살아야 하는 것 같다.
오해를 받았을 때는 무조건 참으면 억울해지니까, 오해였다고 말할 수도 있으면 좋겠다. 여기엔 태도가 가장 중요할텐데 나를 공격했다고 해석하는 순간 싸움으로 번진다.
나를 지키려면 무조건 참는 것이 아니라 오해였다고 말하기도 하고, 상대방의 상처를 나도 모르게 건드렸던 나의 행동에 대한 사과도 진심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상대방이 나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매우 달라질 이야기겠지만 서도...)
관계에는 늘 여백이 필요한 것 같다.
잠깐 일어났던 에피소드로 지나 갈 수 있었던 이유는 상대방과의 나의 관계적 거리 때문인 것 같다.
관계가 가까울 수록 작은 오해에도 서로가 더 아파진다.
때로는 참아서 아프게 만들고, 때로는 너무 공격태세로 접근해서 아프게 만드니까 말이다.
오해받은 마음을 넘어 갈 수 있는 힘은 관계의 거리를 조절하는 능력에서 나오고,
물러섰다 가까워졌다는 할 수 있는 유연함이 심리적 회복 속도를 결정짓는 것 아닐까.
공동체.
혼자였다면 느끼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았을 이런 아픈 유익들이 있구나 하며
결국은 감사를 선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