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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 헤아림 Jun 09. 2024

관심, 애정, 사랑이라는 주제로 불편해지는 순간들

내 안에 울고 있는 아이의 시선을 발견해야 한다.

어떤 모임에서 내가 아닌 다른 한 사람을 특별히 애정하는 것처럼 느낄 때 불편해지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상대들은 그럴 의도가 없는 순수한 순간에도 나도 모르게 편애한다는 느낌으로 확대되어 보인다. 왜곡하여 생각하게 만드는 마음속 렌즈가 작동한 것이다.


사실이 아닌 순간에도 자신의 추측이 맞다는 것을 확인하고 스스로 상처라도 더 낼 요량인지, 자신도 모르게 비슷한 증거들을 수집한다.


증거를 모으는 것으로도 모자라 나에게서는 어떤 매력도 찾지 못하게 만드는 행동들을 무의식적으로 한다. 이로써 증거들은 더 적극적으로 수집되고 추측은 이내 신념으로 굳고 만다.


이런 걸 투사적 동일시라고 한다. 내가 믿고 있는 체계로 상대방을 끌고 들어와 조종하는 것의 일종인데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이라서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다.


이런 순간의 감정들은 아프다. 내가 나를 찌르는 꼴이다. 도망가고 싶지만 잘 되지 않아 괴롭다.




엄마가 되면 아이를 나의 시선, 내 상처, 나의 왜곡된 마음으로 본다.


위의 이야기처럼 소외, 사랑받지 못함의 주제를 가진 엄마라면,


내 아이가 소외되고 사랑받지 못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 순간에 무척 예민해지고, 그런 행동을 자처하는 것 같은 아이를 발견하면 나무라고 싶은 충동이 올라온다.


“너는 왜 그렇게 행동하니. 네가 먼저 가서 말을 걸어야지. 너는 말을 왜 그렇게 답답하게 해. 그렇게 행동이 거칠어서 사람들이 널 좋아하겠어? 어휴 답답해 “


자기 문제로 답답한 건데, 내 아이를 답답하게 본다.


대상관계이론으로 보자면 엄마 마음에는 이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내적작동모델이 있는 거다. 마음의 구조, 마음의 틀. 나는 이것을 지도라고 말하곤 하는데, 내가 가진 지도로 아이를 대하면 아이는 있는 그대로로 자라지 못한다.


아이는 스스로 혼자 있는 것이 괜찮은 기질 일 수도 있고, 아무렇지 않은 자극들인데. 친구와 지인들에게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데도 불구하고 엄마의 지도로 끌려가는 꼴이 된다.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엄마의 말로 심고,

혼자 있는 것은 잘못되고 매력 없기 때문이라는

엄마의 구조를 그대로 옮겨다 놓는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아이는 엄마가 가진 정서를 그대로 대물림받게 되는 것이다.




이런 대물림을 멈추려면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 내 안에 울고 있는 아이가 어떤 주제로 힘들어하는지 알아야 한다.


‘내가 소외받고 사랑받지 못하고 관심을 잃어 슬펐던 순간이 있구나’


이런 주제가 작동했던 많은 순간들에 대한 자각과 애통해하는 시간들이 먼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자기 이해의 한 축이 되는데, 이렇게 자기 이해가 되고 나면 심리적인 자본을 얻는 순간을 얻는 것이다. 게임에서 광물을 얻어 건물을 세울 수 있듯이, 어릴 적 상처와 결핍을 제대로 알아차리고 현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깨닫는 순간들을 차곡차곡 캐내는 것은 마치 광물, 보석을 얻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리고 나면 이전과 달라지는 것은 “멈춤”이다.

아이에게 다그치고 질타하고 잔소리하던 순간에도 스스로에게 “멈춰”를 외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여전히 답답하고 잔소리하고 싶어지고 걱정되고 불안함은 있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이건 내 거지.. 내 마음의 구조지!‘ 하고 알아차리면서 서서히 천천히 멈춤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생각보다 이 과정은 진부하고 더디고 천천히 일어난다. 무의식이 식혜 흔들듯 몇 십 번 흔들어져야 밥알 한 톨 얻는 느낌으로 하나씩 하나씩 해낼 수 있다.


그래서 상담의 짧은 회기로는 극적인 변화가 불가능하고, 잠깐은 괜찮은 것 같더라도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은 자신을 보게 되어 좌절한다.


상담이 효과가 없는 게 아니라, 무의식이 한번 흔들어지기도 힘들뿐더러, 흔들어졌다고 많은 걸 얻을 수 없고, 알았다고 해도 그게 전부가 아닐 테니까 말이다.


살아온 세월이 길 수록 무의식의 수면은 더 깊어서 꺼내 올려야 하는 것이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자기 이해의 현장에 자신을 던져두길 권한다. 책이든 상담이든 뭐든 자기 이해를 위한 긴 시간이 흐르고 나면 심리적인 저본이 꽤나 많이 모인다. 그리고 멈추는 힘이 조금은 길러진 자신을 만난다.


무엇보다 정서적 대물림의 힘이 약해져 이전과는 다른 흐름을 내가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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