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맘 헤아림 Jun 04. 2024

비록에 무덤에 있는 아빠여도

아빠에게로 가는 그 길

5월의 푸르름이 지나고 6월이 왔다.

5월 중순이 되면 하늘이 봄 보다는 높아지고

기온이 올라가면서 구름이 많아진다.

바람은 산들살랑 거리고

다양한 색의 초록들이 흔들리는 계절이 된다.


나는 이 5월이 갖는 계절감이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면서 동시에 가장 슬프다고 느끼는 혼란스러움이 있다. 아름다움을 만끽하면서도 나의 명치끝에 있는 슬픔도 만끽하게 되는 격한 기복을 느낀다.


이런 널뛰는 나를 만나면 이제는 알아차린다.

아. 아빠가 보고싶구나.

2020년 5월 20일.

아빠가 샘물 호스피스병원으로 입원하던 날.

그 날의 날씨와 풍경이 내 온 몸에 새겨진 탓이겠지.


남편이 아빠의 입원 절차를 밟는 동안 나는 둘째 딸과 자연에 위치한 호스피스 병원의 풍경을 누리고 있었다. 그 날 선명히 기억나는 것은 아빠의 뒷모습과 야속하게도 좋은 날씨의 대비.


나는 트라우마가 몸에 새겨진다는 말을 믿을 수 밖에 없다. 내가 보이는 반응들이 그걸 증명한다.



오늘 문득 이 옷을 사던 날이 떠올랐다. 아빠의 장례를 준비하던 날들.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간다는 건 살 날이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게 선고되었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이날 이후로 나는 아빠의 장례를 준비하기 시작했었다는걸 오늘 깨달았다. 그리고 그 슬픔이 버거웠으나 표현하지 못했고, 아니 슬픔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어린 딸 둘과 복닥이던 코로나 시기엔 이런 슬픔이 사치였던거 같다.


아빠를 모실 장지를 알아보러 다니던 그 날의 감정이 떠올라 복받치고, 아빠 묘지에 쓸 비석을 주문하며 느꼈던 감정이 스치고, 저 검은 장례의복을 구매하면서 느꼈던 나의 이중성에 화들짝 놀랬다.  아빠의 장례식에 입으려고 사는 옷을 고르면서 그에 맞지 않았던 나의 생각과 태도들이 떠올라 비참했다.


아빠를 만나러 가고 싶다. 아빠가 보고싶다. 무덤에 가봐야 진짜 아빠는 없지만, 그냥 가는 그 길에 느끼는 마음이 좋다. 여전히 아빠가 거기에 존재할거란 아이같은 마음이 있으니까 그런가보다.


남은자들을 위한 장례의식들에 지혜가 있다는 생각을 또 다시 하게된다. 잠깐이나마 “아빠를 보러간다”는 말로 아빠를 만나고 온다는 설렘을 잠시나마 경험하며 위로를 얻는다.








작가의 이전글 이곳에 쓰는 글이 좋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