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백분의 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바 Sep 03. 2018

5시 19분


 핸드폰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일요일. 스무 켤레의 양말, 스무 장의 편지를 차곡히 쇼핑백에 겹쳐 나왔다.

  역시나 새로운 골목이다. 일요일 낮 골목은 허전할 정도로 한산하다. 밤의 골목이 어두워서 무서웠다면, 낮의 골목은 무서울 정도로 고요하다. 

 지나칠 정도로 평화롭다. 누군가 살기는 할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리고 난 그 적막함 사이에서 부스럭거리며 골목 군데군데 양말을 붙였다.

 

 양말은 금세 동났다. 덥다. 홀가분한 채로 더위를 식히러 카페에 왔다.

 

 갑자기

 핸드폰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인스타그램이 물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DM이 왔는데 볼 거냐고. 예, 뭐 그 비슷한 걸 눌렀다. 뒤이어 메시지가 보였다.




 헐!!! 

 그때, 카페 진동벨이 위잉-하고 울렸다. 진동벨만큼 나도 괜히 뛰었다. 메시지는 몇 장의 사진과 함께 도착했다. 





 양말이다! 정확히는 '내가 좀 전에 붙이고 온' 양말이다. 혹시 누가 볼까 후다닥 붙이고 온 양말이 누군가에게 들키다니(?)!  양말을 붙이고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혹시 마주친 사람이 있었나? 떠올려본다. 잘 생각나지 않는다.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 답을 했다. 안녕하세요! 너무너무 감사해요! 그리고... 덧붙였다.



다음에 또 오실 때 연락 주시면
예쁜 양말 한 켤레 들구 나갈게요!


 골목을 걷는 것, 우연히 발견한 양말에 눈길을 주는 것, 편지를 읽어보고 해시태그를 발견했다는 것, 그 해시태그로 검색을 해서 나를 찾은 것, DM을 보낸 것. 너무 귀찮고 번거로웠을 과정을 기꺼이 하는 마음과 용기. 누굴까. 멋지다. 따뜻하고.


덕분에 너무너무 행복해요.
전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요?



 뒤이어 답이 왔다.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요, 라는 문장은 묘했다. 사실 양말을 하면서 한 번도 양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어서, 재밌을 거 같아서 시작한 일이 얼굴도 모르는 이를 행복하게 했다니..!  나도 어쩔 수 없나 봐... 바라지 않음이 전제가 된 프로젝트인데 피드백이 오니까 너무나 기뻐...

  

 정말로 나는 이 메시지를 받고 뭐라 설명하기 힘든 마음이었다. 하루가 양말만큼 좋았다. 너무 신나서 방방 뛰면서도 왠지 모르게 짠해져 또 글썽이다가 다시 신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


 대문 앞 누군가의 시선이 양말과 그 너머의 나에게 닿았다. 한 번도 특별한 적 없던 5시 19분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금 달라지면 어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