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바 Jan 07. 2019

바른 하늘에 날벼락


"학교 다녀왔습니다"


2004년의 어느 낮이다. 자로 잰 듯 일자로 자른 단발머리에 교복 차림 여학생 하나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파란 명찰 위 하얀색 실로 또렷하게 새겨진 모양이 눈에 띈다.

'서바른' 


나다. 이 집의 외동딸, -강아지 샛별이까지 하면 네 식구지만- 엄마, 아빠와 함께 셋이서 오손도손(?) 지내고 있던 중학교 1학년 서바른. 아직 중1이지만 중2병을 앓고 있다. 나중에 발차기하다가 이불 한 트럭 찢어지는 줄도 모르고. 쯧쯧.


어쨌든 중학교 1학년 서바른은 신발을 벗고 안방을 지나쳐 곧장 방으로 가려다 멈칫한다. 아빠다. '아빠 퇴근 시간 아닌데.' 궁금함에 말을 걸려다 자못 심각한 얼굴을 포착한다. '엄마 아빠 싸웠나'.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지만 부부 싸움한 사자들의 코털을 건드려서는 안 돼. 그래서 그냥 '일찍 끝나신 걸로' 생각하기로 하고 스르륵 방으로 들어왔다. 벌써 15년 전이지만 여전히 생생한 그날. 다음 장면은 가방을 내려놓고 옷을 갈아입을 타이밍이다. 

그리고 그때


"바른아 잠깐 나와 봐"


엄마다. '잠깐' 방문 밖으로 나와보니 거실에는 이미 엄마와 아빠가 앉아있다. 눈썹과 눈, 그리고 입이 한마음으로 심각한 표정을 만들어내고 있다. ctrl+c, ctrl+v 한 얼굴. 영문도 모른 채 왠지 그런 표정을 해야 할 것 같아 나도 표정을 흉내 내며 앉았다.  

눈치게임인가. 아무도 1을 외치지는 않았지만 1이 나오면 2는 내 거야! 하듯 팽팽한 정적.


며칠 전 엄마가 몸이 안 좋다 말씀하셨던 게 떠올랐다. 병원에 다녀와야지라고 덧붙이셨던 것도. '그래서 아빠가 회사에서 빨리 오신 건가.', '병원에서 무슨 말을 한 걸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맞은편 엄마의 입술이 들썩거리는 게 보였다. 이미 그때의 난 예감했던 것 같다. 적당히 즐거웠던 14년 서바른 인생에 이제 곧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고.


"바른이 동생이 생겼어."


"..... 어?"


"그러니까.. 엄마가 임신을 했어."


갑자기 번쩍. 마른하늘에 벼락이 떨어져 인천의 모 아파트 8층을 뚫고 단발머리 여중생 머리통에 관통-

한 게 틀림없었다. 집이 떠나갈 정도로 엉엉 울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 내 어깨를 봐 울고 있잖아 노래 불러주는 사람도 없는데 무반주에 어깨를 들썩거리며, 아무 말도 없이.


"서바른 너 왜 울어"


아빠는 당황한 듯 다그치며 말했다. 더 크게 울었다. 한참 동안 숨이 넘어가게 울던 난 훌쩍이며 말했다.


"덩헹 힐타고"


"뭐?"


"덩헹 힐타고!! (동생 싫다고)"


그 다음 장면은 당황하는 엄마와 아빠를 뒤로 하고 방으로 들어와 혼자 엉엉 울었을 것으로 추정.  


그동안 제가 잘못했어요.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잘못했어요. 제가 그동안 바르게 안 살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다 인정. 앞으로 바른생활할게요. 왜 갑자기 나에게 이런 시련을. 자고 일어나면 동생은 다시없던 일로 해주세요. 따위의 간절하게 마음의 소리를 읊조린 건 더 이상 눈물도 나오지 않았을 나중의 일이었다.

 

좋았다. 자기 방이 두 개나 있는 것도, 외동딸이라고 말할 때면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것도,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도, 명절 때 심심한 것만 빼면 다.


 그리고 더 이상 좋을 수 없게 됐다.

 




바른에게 물었다.


바른 그때 왜 그렇게 울었던 거야? 


바른 사실 왜 그렇게까지 울었는진 나도 잘 모르겠어. 지금 나도 잘 이해가 안 되긴 하는데, 그때의 난 충격이었어! 동생이 뭔데?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올 정도로 동생이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었고 너무 갑작스러웠어. 낯선 단어와 형체도 모르는 무언가가 내 세계를 한 번에 깨뜨리는 느낌...? 나는 초대를 안 했는데 우리 집에 놀러 왔다면서 누가 문을 막 두드려. 문을 열었더니 그냥 들어와. 누군지 모르겠는데 "안녕? 난 당신의 동생" 막 이래. 한 번도 동생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는데, 누군가 생기는 상상을 해봤을 리도 없지. 혼자가 익숙했나 봐. 당장 지금부터, 동생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건 열네 살의 서바른에게 어려웠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