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의 사고법. 일곱
세계적인 감독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청년 시절 저예산 영화를 찍었습니다. 예산과 장비도 부족했고, 스태프도 많지 않았습니다. 보통 이쯤에서 기세가 꺾입니다. 부족함은 사람을 그렇게 만듭니다. 하지만 로드리게즈는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을 먼저 보았습니다.
친구의 목장, 사촌의 술집, 친구 사촌의 버스 한 대를 목록에 올립니다. 자신의 개, 친구의 거북이까지 시나리오에 등장시킵니다. 목장이 있으니 악당의 은신처가 생겼고, 술집이 있으니 싸움판이 벌어지고, 버스가 있으니 액션을 삽입했습니다. 개와 거북이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조건에 맞춰 꿈을 줄이지 않고, 조건에 맞게 문법을 바꿨습니다. 그렇게 만든 영화가〈엘 마리아치〉입니다. 이 영화는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고, 메이저 배급사를 통해 개봉된 역대 최저 예산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만화 같은 이야기인데 가슴을 쿵 치고 지나갑니다.
그의 눈빛이 보입니다. 예산이 턱없이 모자라도 눈빛까지 궁하진 않았을 겁니다. 오히려 "좋아요, 그럼 이렇게 하죠"라며 더 반짝였을 것 같습니다. 신이 난 전략가처럼. 아마 그는 한계를 결핍으로만 보지 않았을 겁니다. 하나의 형식으로 봤을 겁니다. 이게 없으면 저걸 쓰고, 저것도 없으면 장면의 모양을 바꾸는 식으로.
얼마 전 저에게도 넉넉함을 바랄 수 없는 때가 왔습니다. 조직개편의 변화를 맞으며 '핵심 조직'에서 '소중한 추억'으로 천천히 진화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자리도 예전처럼 단단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잃은 것부터 눈에 들어왔습니다. 왜 하필 지금일까. 왜 꼭 이만큼일까. 생각은 자꾸 사라진 쪽으로 기웁니다. 그쪽을 본다고 달라지는 건 없을 텐데.
5개월이 지난 지금에야 남은 것이 보입니다. 지금 있는 사람. 지금 할 수 있는 일. 지금 남겨진 자리. 조금씩이지만 이제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이젠 틈새시간도 보입니다. 몇 장 읽고, 잠깐 걷고, 가볍게 몸을 움직입니다. 그렇게라도 삶을 채우려 하고 있습니다. 비워지지 않게.
완벽한 조건, 완벽한 때라는 없는 거 같습니다. 예산은 모자라고, 시간은 빠듯하고, 인력은 늘 부족합니다. 회사도 친절하게 모든 것을 갖춰주지 않습니다. 이럴 때 누군가는 부족한 것에 집중합니다. 푸념은 늘어지고 상황은 그대로입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있는 것을 배열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움직이게 합니다.
한계는 분명 불편합니다. 조급하게 하고, 의욕을 떨어뜨리고, 핑계를 만듭니다. 하지만 한계는 버릴 것을 정하게 하고 남길 것을 정하게도 합니다. 무엇을 버릴지, 무엇에 집중할지를 보게 합니다. 사람을 묶어두지만 않고 끝내 움직이게 만듭니다. 억지로 흉내 낼 필요 없이 없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끝까지 가다 보면 전에는 없던 방식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풍족함은 복제를 낳지만, 부족함은 발명을 낳는다고 합니다. 로드리게즈는 그걸 이렇게 말합니다. “한계는 곧 자유였다. 한계 안에서 완전히 자유였다.” 처음 들으면 역설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가졌을 때보다 꼭 필요한 것만 남았을 때 더 강하게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많은 선택지는 우리를 자주 멈추게 합니다. 메뉴가 많아지면 점심 한 끼도 철학이 되는 거처럼.
없는 것만 들여다보던 5개월 동안 앞으로 가지 못했습니다. 시선을 조금 바꾸니 남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있는 것을 세어보고, 적어보고, 배열해 보니 조금씩 길이 열렸습니다. 이제 한계를 결핍으로만 보지 않으려 합니다. 오히려 일이 되게끔 하는 하나의 형식으로 보려 합니다. “한계는 곧 자유다.” 이 말은 막연한 위로가 아니라 막막한 조건 속에서도 끝내 해법을 만들어내는 아주 현실적인 주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