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문제는 '위'에 있다

엔지니어의 사고법. 여섯

by 굿이너프

변비는 장의 문제인 줄 알았습니다. 장의 기능만 개선하면 되겠지 생각했습니다. 식이섬유를 챙깁니다. 물을 더 마십니다. 유산균도 찾습니다. 늘 장만 탓합니다.


그런데 최근 읽은 <해독혁명>에서 인상적인 대목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장에만 있지 않다는 말이었습니다.

우리 몸의 소화는 위에서 시작됩니다. 위가 먼저 음식을 받습니다. 부수고, 섞고, 넘깁니다. 장은 그다음 일을 맡습니다. 흡수하고, 남은 것을 내보냅니다. 그러니 위가 제 일을 못하면 장은 힘들어집니다. 자기 일만 해도 바쁜데 윗단에서 덜 끝낸 일까지 떠안아야 합니다. 말단 부서에 미완성 보고서가 내려오는 셈입니다.


이 설명이 묘하게 익숙했습니다. 회사에서 자주 보던 장면입니다. 비슷한 능력의 직원 A와 B가 있습니다.

A는 늘 허둥댑니다. 상사가 정리 못 한 일까지 받습니다. 기준은 자꾸 바뀝니다. 설명은 늦습니다. 결정은 미뤄집니다. 잠이 부족해집니다. 책상 위에는 일보다 싸놓은 x처리가 더 많습니다. 반면 B는 다릅니다. 맡은 일이 분명합니다. 업무량도 적당합니다. 워라밸도 챙깁니다. 일을 지시했을 때 누가 더 빨리 일할지는 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A를 탓합니다. 속도를 내라고 합니다. 집중하라고 합니다. 효율적으로 일하라고 합니다.
업무를 대하는 태도를 비난합니다. 이미 물에 빠진 사람에게 수영 자세를 지적하는 셈입니다.


저자는 장보다 위를 먼저 보라고 합니다. 식습관부터 고치라고 합니다. 애사비(애플 사이다 식초, 사과식초)도 나오고, 마도 나오고, 바나나와 올리브오일도 나옵니다. 브로콜리, 배추, 컬리플라워 같은 십자화과 채소 이야기도 나옵니다.


제겐 이러한 음식 목록보다 '순서'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장은 아래입니다. 위는 그 위입니다. 아래가 막히면 아래만 다그칠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위가 먼저 제 역할을 해야 장도 자기 일을 합니다. 저도 제 위를 너무 함부로 다뤘습니다. 급하게 먹었습니다. 늦게 먹었습니다. 커피로 밀어붙였습니다. 술도 들이부었습니다. 그러고는 장이 왜 이 모양이냐고 투덜거렸습니다. 조직으로 치면 보임자가 정리를 못 해놓고 실무자에게 속도를 내라고 한 셈입니다.


몸도 회사도 비슷합니다. 문제가 보이는 곳과 문제가 시작된 곳은 다를 수 있습니다. 장이 느려 보인다고 장이 게으르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실무자가 버거워 보인다고 그 사람이 무능하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위에서 엉킨 일이 아래에서 터질 때가 많습니다. 윗단이 어수선하면 말단은 성실해도 늘 바쁩니다.


생각해 보면 저도 누군가에게는 ‘위’입니다. 팀에서는 팀장이고, 집에서는 아버지입니다. 제가 흐리면 여러 사람들이 바빠집니다. 제가 미루면 다른 사람이 급해집니다. 제가 정리하지 않으면 누군가는 뒤처리를 합니다. 문제는 아래에서 먼저 보이지만, 발단은 종종 나라는 '위'에서 시작되기도 합니다.


제가 배운 건 건강 상식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를 보는 순서였습니다. 우리는 막힌 곳을 봅니다. 그리고 거기를 고치려 듭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늘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가장 힘든 곳이 늘 시작점은 아닙니다. 아래가 버거울수록 위를 먼저 돌아봐야 합니다. 문제는 아래에서 보이지만, 발단은 종종 위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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