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벤처스 이학종 파트너, 질문에 질문하다 #1
소풍벤처스 이학종 파트너, 질문에 질문하다 #1
소풍벤처스(이하 소풍)에서 투자총괄을 맡고 있는 이학종 파트너와의 만남은 지난 3월, 소풍에서 주최한 임팩트 액셀러레이팅 마스터코스* 3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학종 파트너는 소셜 벤처를 대상으로 임팩트 액셀러레이팅을 진행해온 심사역으로서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특히 소셜 벤처의 CEO를 만나기 전에 꼭 리마인드 한다는 [심사역의 마음가짐]*이라는 리스트가 무척 인상 깊었는데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을 때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고 팀쉽으로 일하는 그의 태도가 고스란히 담겨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팀에 필요한 ‘좋은 질문’을 고민한다는 표현에 깊이 공감했고, 질문에 질문하다 첫 번째 인터뷰이로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소풍이 입주해 있는 성수동의 카우앤독으로 향하는 길에 싱그러운 봄기운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소풍의 임팩트 액셀러레이팅 마스터코스 소개글 (보기)
*[심사역의 마음가짐]을 다룬 소풍 한상엽 대표 파트너 기고문 (보기)
소풍에서는 영어 닉네임을 사용하죠? 어떻게 불리시나요?
‘에코’라는 닉네임을 쓰는데 사람들이 대개 환경의 에코냐고 물어봐요. 환경에도 관심이 있지만 환경의 에코는 아니고 생태계의 에코*인데, ‘에고(EGO)’가 사람을 최정상에 둔다면 ‘에코(ECO)’는 생태계 자체를 얘기하고, ‘에고보다는 에코를 지향하는 사람이 돼야지’라고 의미를 뒀습니다.
*생태철학 관점에서는 환경을 파괴하는 인류 중심적 사고에서 두는 ‘EGO’의 자아 개념을 생태계 중심적인 ‘ECO’로 전환하기를 촉구한다.
어떤 이름을 계속 쓰다 보면 ‘00라고 불릴 때의 나는 이런 정체성’이라고 구분 짓기도 하잖아요. 에코와 이학종이라고 불릴 때 다른 느낌이 있으세요?
스스로 자각할 때가 있어요. 에코라고 불릴 때 좋은 점은 (직급상)상하관계가 없으니까 좋고. 또 하나는 닉네임을 정할 때 뜻을 갖고 만든 사람은 스스로 정한 가치나 지향점에 대해 자각하게 되는 게 있어요. 부캐처럼 지향하는 에코와 현실의 이학종은 같기도 하지만 다르기도 하죠.
지금 하시는 일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서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임팩트 액셀러레이터’라고 하는데, 한 문장으로 정의하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초기창업팀을 발굴 및 투자하고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어요.
직업에 대한 정의는 그렇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가 하는 일은 이런 거’라고 정의 내린다면요?
스스로를 ‘임팩트 활동가’라고 정의하기로 했어요. 제가 시민사회활동 영역에서 먼저 시작했는데, 그 분야에서는 ‘활동가’라고 해요. 정책활동가 아니면 지역활동가를 의미하는데, 큰 틀에서 저는 임팩트 투자 영역에서 일하는 활동가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임팩트 활동가라는 것은 없지만 직업으로 설명하기 어렵고 ‘내가 하는 일이 뭐지? 이 일을 왜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때 주변에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하는 일을 납득하기 위해 정의하는 것은 중요한 것 같아요.
소풍의 임팩트 액셀러레이팅 마스터코스를 들었을 때 정말 많은 자료를 준비해 주셨는데, 저는 기억에 남았던 게 ‘심사역의 마음가짐’이었거든요. 항상 미팅을 하기 전에 그 내용들을 리마인드하고 들어가신다고 하셨고 거기서 가장 눈에 들어왔던 건 ‘좋은 질문’이라는 워딩이었어요. 좋은 질문이 중요하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맥락에 따라서 상대방에게 어떤 내용이 좋은 질문인지가 달라질 수가 있잖아요. 좋은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 가장 유념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질문에 선입견을 안 가지려고 노력해요. 왜냐면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 사람이 풍기는 이미지, 말투, 제스처 때문에 편견이나 선입견 같은 게 나도 모르게 생기는데, 그건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이나 이제까지 해왔던 활동 같은 걸 통해서 외적으로 갖춰진 걸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내가 미리 판단해서 얘기하기 시작하면 다음으로 진척이 잘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우선은 사람을 볼 때 선입견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그 사람 얘기를 들으려고 해요. 최소한 한 시간 이상은 들으려고 하고, 비중 자체를 7:3 정도로 하거든요. 그러니까 7은 듣고 3은 내가 이야기하고. 머릿속으로 그걸 계속 주지해요. 질문을 본격적으로 하는 건 당시에 그 얘기를 다 듣고 거나 듣는 와중에도 선입견을 갖지 않는 질문을 하려고 노력하는 게 첫 번째예요. 두 번째 만날 때는 나도 조금 더 그 사람에 대해서 알고, 조사를 하고 난 다음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편이에요.
창업팀들을 많이 만나고 실제로 액셀러레이팅을 진행하실 텐데, 1년 혹은 1분기에 평균적으로 몇 팀 정도를 만나고 몇 팀을 액셀러레이팅 한다는 기준이 있으세요?
회사 목표치가 정해지면 거기에 맞게 심사역이랑 투자 본부에서 몇 팀을 만날 건지 몇 팀을 선발할 건지 대략적인 논의를 해요. 그때마다 조금씩 조율하고, 목표치도 매년 새롭게 세워요. 예를 들어서 올해는 15팀에서 20팀 투자하는 게 목표인데, 대략적으로 20팀을 만나면 한 팀 정도 투자가 되거든요. 만나는 숫자의 5% 정도 투자된다고 보면 만나야 될 팀의 숫자가 정해지죠. 더 많은 팀을 투자하지 못해 항상 미안해요.
사람을 굉장히 많이 만나는 일이잖아요. 사람을 만난다는 게 자신의 에너지를 어느 정도 소진해야 하는 일인데, 에너지를 발산하고 다시 채울 때는 어떤 방법으로 하세요?
사실 이 일이 사람을 많이 만나다 보니까 스트레스도 많고요. 심사역, 특히나 VC(Venture Capitalist)도 마찬가지일텐데, 액셀러레이터는 그보다 더 힘들긴 하거든요. 육체적으로도 힘드니까. 에너지를 충전하는 각자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에너지의 총량을 조율해요. 내가 어느 정도를 넘어가면 이걸 포기할 것 같다는 번아웃(Burnout) 경험이 있으니까, 그 안에서 에너지가 있을 때 조율하거든요. 왜냐면 액셀러레이터가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하면 안 할 수도 있고 하려면 엄청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어서 내가 번아웃 되는 시점을 스스로 인지하고 그 사이에서 번아웃 마일리지를 조율해요. 스트레스(해소)는 영화도 보고, 바람도 쐬고, 등산도 해서 번아웃 마일리지를 차감하고, 마일리지가 모두 차면 회사를 떠나야 하기 때문에 그걸 넘지 않으려 해요.(웃음)
보통 사람을 만나서 에너지를 얻는지 소비하는지에 따라서 외향형, 내향형이라고 하잖아요. 본인은 어떤 성향이라고 생각하세요? MBTI로도 많이 판단을 하는데요. 맨 앞에 E로 시작하는지 I로 시작하는지요.(웃음)
저는 외향형인데, 소풍에서 일하기 전과 후과 조금 바뀌어요. 소풍에서 일하면서 내향형으로 변하더라고요. 일하기 전에는 외향형에 더 가까웠고 지금도 퍼센테이지가 그렇게 차이나진 않아요. 예전에 창업할 때는 계속 발설을 해야 되고 뭔가를 얘기해야 되는 사람이었다면, 이제 직업 자체가 계속 들어야 되고 받아내야 하는 일을 하다 보니까 내향형으로 MBTI가 변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조금 신기해하고 있어요. 사람마다 그런 양면성이 있고 상황이냐에 따라 변하나 봐요.
액셀러레이팅을 하게 되면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고 만날 텐데, 그러다 보면 공과 사를 구분 짓기 어려울 거 같거든요. 혹시 거기에 대해서도 본인의 기준이 있으세요?
공과 사의 구분이 없어요. 어떻게 보면 창업팀이 고객이잖아요. 그러니까 창업팀의 대표자가 내 고객인데, 고객이 쉬지 않으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도 고객을 따라갈 수 밖에 없고. 삶의 경계선이 공과 사가 모호해요. 이게 스트레스이기도 하지만 업의 특성상 어느 정도는 감내하는 거 같아요. 감내해야 한다는 표현이 혹시 요즘 같은 시기 위험발언일까요?(웃음)
아니에요. 어떤 직업이고 어떤 일을 하시는지 조금 이해해보자면 당연히 예상되는 지점이고.
그래서 저는 주말에는 완전히 사적 영역으로 둬요. 주중에는 크게 스트레스 받지는 않아요. 이것도 어떻게 보면 오히려 어설프게 구분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구획 포인트를 명확하게 주는 게 도움이 돼요. 대표님들한테도 주말은 가족과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회사 그만두고 싶거나 연인과 헤어진 게 아니면 연락하지 말아주세요 하면 안 와요.(웃음) 대표님들은 주말에도 온전히 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안쓰러운 마음이 더 들긴 합니다.
심사역이 하는 일을 살펴봤을 때 인사이트가 있었던 부분은, 저도 약간 편견을 가지고 봤을 때 남을 많이 의심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가 점점 파고들수록 남이 아니라 스스로가 내린 판단을 의심하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근데 사실은 자기의 생각이나 판단을 객관적으로 보는 게 되게 어렵잖아요. 스스로를 뾰족하게 의심하기 위해서 점검할 때 던져보는 질문을 갖고 있으세요?
정확하게 표현하셨는데, 내 스스로의 생각들과 판단들을 계속 의심하게 돼요. 그 팀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근거에 기반해 내린 판단의 기준을 계속 의심하고 리마인드하는데, 던지는 질문이 딱 맞게 있는 것 같진 않아요. 다만 팩트체크 또는 상황과 경험에서 나오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약간 믿지 못하는 포인트가 있으면 그게 뭔지 고민하는데 사람이던, 소셜 임팩트이던, 마켓이던, 비즈니스 모델이던 나를 불안하게 하는 포인트가 뭔지를 찾으려고 하고. 스스로를 불안해하는 포인트를 알고 있으면 그걸 창업팀에게 물어보고 확인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없애려고 하고요.
어려운 일이네요. 뭔가 불안한 감정이 든다는 것을 인식하기까지는 어렵지 않은데, 그 원인을 찾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말 그대로 막연한 불안감도 분명 있고요. 초보 심사역은 막연한 불안감을 팀에게서 해소하려 하는데 팀에게 스트레스만 줄 뿐 그건 심사역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부분도 있어요. 불안감의 원인을 텍스트로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보통 텍스트로 설명하지 못하는 불안감은 스스로 느끼는 막연한 불안감인 경우가 더 많더라고요.
그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으실 텐데요?
못 찾았다기보다는 몰랐던 경험, 그러니까 예상하지 못했던 경우예요. 문제는 항상 터지기 때문에 완벽하게 다 필터링할 수 없고 최소한 심사역으로 나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는 없어야 나중에 후회를 안 하거든요. 팀이 잘 안된 경우라도 ‘그때 하지 말걸 그랬어, 그때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 그때로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결정을 했을 것 같다면 최소한 심사역으로 후회는 안 하는 거죠.
소풍에 처음 오셨을 때, 그리고 그 전의 얘기도 들어보고 싶은데요. 소풍에 오시기 전의 커리어에 대해서는 정확히 어떻게 표현해야 될까요?
‘모티브하우스’라는 소셜 벤처를 공동창업해서 운영했었는데 아이들 동기부여랑 자기발견, 자기표현 교육을 하는 회사였어요. 2011년에 서동효 대표님 그리고 몇몇 동료들과 같이 창업했고, 그 전에는 제가 고시원에 한 4년 있었고 대학교를 중퇴하고 나와서 내가 뭘 해야 될지 고민하는 시기가 있었고요. 그게 인생에 첫 번째 터닝포인트였던 거 같아요. 첫 번째 터닝포인트는 내가 뭘 해야 되는지를 모를 때.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하면서 인생 전반의 큰 터닝포인트가 있었고, 두 번째는 소셜 벤처 창업을 하면서. 세 번째는 소풍에서 임팩트 액셀러레이터로 일하면서 삶의 변화가 생겼어요.
창업을 시작할 때의 마음과 심사역을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은 어떤 점이 달랐을까요?
창업 초기에는 밤새도록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재밌었어요. 당시 제 취미생활이 도메인을 사는 거였는데,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도메인을 사요. 도메인을 하나 사면 거기서부터 아이디어를 파생시면서 밤새도록 뭔가를 만드는 상상을 하면 너무 재밌었어요. 아침이 되면 다시 현실을 마주하고 정신이 돌아와요. 창업도 초기가 가장 재밌거든요. 막상 심사역이 되니까 내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하는 걸 서포트하는 게 가끔은 부럽기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게 없어서 답답하기도 하고, 너무 고통스러운 상황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요.
마음가짐이 확실히 다른 건 내가 플레이어가 될 거냐 서포터가 될 거냐에 대해서 서포터가 된다는 결정을 해야 심사역으로 남을 수 있는 거 같아요. 축구장에 운동선수와 코치의 역할이 다르듯이 ‘내가 언젠가는 플레이어가 될 거야’ 라는 생각도 많이들 하는데, 그럼 언젠가는 나가서 창업을 하더라고요. 이 일을 오래하고 싶으면 ‘나는 서포터가 될 거야’ 라는 걸, 당장은 결정하지 않더라도 몇 년은 해보고서 그 결심이 선다면 오래 할 수 있는 거 같아요.
분명 역할이 다르고 훌륭한 코치가 훌륭한 운동선수가 아닌 경우도 많이 있듯이... 심사역이 창업하면 잘할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아요. 심사역의 첫 창업은 투자하지 말아야 한다는...(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로인 것도 있을까요?
정서적 안정감이 없는 게 그대로예요. 창업할 때도 불안감이라는 게 있잖아요. 창업자들은 성공하기 전까지는 경제적 안정감이란 것도 없고 언제든 위기가 올 수 있어 당연히 정서적 안정감도 없거든요. 그래도 심사역은 월급을 받기 때문에 경제적 불안감은 조금 나아요. 근데 사실 정서적 안정감은 없어요. 항상 불안하고, 불안을 직면해야 하는 점은 같아요.
(TMI) 저의 화두가 정신건강이나 마음챙김 이런 건데, 사실 저도 도모를 좋아하고 일도 적성에 맞지만 그래도 멘탈이 흔들릴 때가 있거든요. 그런 걸 챙기는 노하우가 있으세요? 이렇게 불안한 직업을 업으로 어떻게 5년이나…(웃음)
노하우는 없어요. 아직도 그 감정을 계속 겪는데, 불안한 감정이라는 거 자체가 계속 오거든요. 하나 명확한 건 지금 시대가 불안하지 않은 것이 없다. 뭘해도, 뭘하더라도. 오히려 지금 안정을 찾으면 장기적으로는 나를 더 불안한 상황으로 만들 거라는 걸 알고 있어서, 멘탈 승리하는 거죠.
사실 처음에는 불안한 상황이 주는 파장이 훨씬 더 컷어요. 처음 소풍 왔을 때는 3년만 버티자 였거든요. (그전에는) 동기부여 교육이나 그런 걸 하니까 ‘앞으로 10년, 20년을 뭐하고 살지, 30년 뒤에는 내가 뭘하고 있을까?’ 이런 얘기를 되게 많이 했었는데 한편으로는 지치더라고요. 막연하기도 하고. 그래서 이제는 3년 정도씩 계획을 세워요. 내가 이 일을 해보고 3년 뒤에 다시 의사결정하자, 그 뒤의 선택은 정하지 않고 열린 결말로 둬요.
시대가 불안하니까 옛날처럼 평생 직장이라는 게 없고 10년, 20년 계획을 세우는 게 무의미해진 거 같고. 한 3년 정도는 내가 뭘 해야 되겠다는 결심만 서면 일정부분 스트레스와 불안감에 대한 내적 갈등을 극복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선택의 마감시한을 정해 놓는 것이니 3년이 넘었을 때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문제인데...(웃음)
그리고 갈등의 파장이 점점 줄더라고요. 창업해서 모든 수난을 겪고 회사를 성장시킨 대표님들은 뭔가 득도한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어떤 시련이 닥쳐도 크게 동요되지 않는 멘탈을 갖춰나가시는 건데 액셀러레이터도 예측불가능한 외부의 상황으로 요동치는 순간들을 겪으면서 내적으로 정서적 안정감을 갖춰 나가는 것 같아요. 어떤 풍파에도 내적인 평화를 느낄 수 있는 시기가 언젠지는 모르겠어요.
확실한 건 액셀러레이터든 창업자든 정서적 불안감은 연차가 쌓일수록 조금 더 안정적으로 바뀌거든요. 그래서 투자로 시리즈B 이상 단계를 넘은 대표님들은 상대적으로 외적 환경의 변화에 안정적인 편 이에요. 어떤 외적 사건이 발생했을 때 기복이 그렇게 크지가 않아요. 그리고 액셀러레이터도 연차가 어느 정도 쌓이면 내적인 평화를 점점 찾아가게 되는 거 같아요. 노하우는 없어요. 항상 불안감은 존재하지만 상처가 나도 내성이 강해지는 걸 수도 있겠죠.
비유하자면 이런 걸까요? 파도는 똑같은 너울로 치는데 내가 뗏목일 때랑 아니면 엄청 큰 닻을 갖고 있는 안정적인 배일 때랑 파격이 다르잖아요? 내가 단단해지니까 받아들여지는 게 달라지는 건지?
제 느낌은 뗏목인 건 똑같아요.(웃음) 통나무인 건 똑같고, 그게 오래되다 보니까 이제 파도를 탈 줄 알게 되는 거 같아요. 서핑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지만 서핑 탈 때 그런 기분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더 큰 파도를 원하게 되잖아요. 그렇게 될까? 아직 그 정도까진 아닌 거 같아요.
그러면 예전에 소셜 벤처를 운영해보셨으니까 실제로 대표님들을 만날 때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 어떤 부분에서는 과거의 나를 떠올리게 한다거나?
1년차, 2년차 까지만 하더라도 자기반성을 많이 했는데, 아까 플레이어랑 서포터라고 얘기했지만 창업자를 제 3자로서 보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옛날에 내가 못했던 게 뭔지를 알게 되서 좋았던 거 같아요. (특히) 1-2년차 때는 그게 훨씬 더 와닿고. 내가 직업상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거나 뭔가 얘기해야 되는데, 그때 내가 못한 것들이 더 많이 생각나서 ‘내가 그 당시에 이런 것들을 더 했으면 잘됐을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있지만 본인 거를 할 때는 잘 못 찾는 거 같아요. 그래서 역할이 다르구나 라는 걸 느꼈고, 우리의 역할이 다르고 역할에 따라 할 수 있는 것과 볼 수 있는 것도 다르구나 라고 느꼈어요. 그러고 나니까 처음에 창업팀한테 몰입돼 있던 것들이 조금 떨어져서 보게 되더라고요.
소풍의 모토 중에 하나가 파트너쉽을 넘어서 팀쉽을 지향한다 라고 내세우는데, 만나는 팀들과 팀쉽을 만들거나 유지하는 데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팀쉽은 파트너쉽과 달리 이런 것이다! 하는 차이점이라든지.
팀쉽이라는 거 자체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나를 팀으로 받아 들여줘야 뭔가를 할 수 있어요. 우리가 팀쉽이라고 표현하지만, 창업팀 자체가 우리를 팀이라고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움직여요. 하나의 동료나 동반자로. 우리를 단순 투자사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게 잘 안될 때도 많아요. 제가 시간이 없으면 잘 안되고, 팀이 많아지면 조금 더 안되고. 그래도 지향점으로는 그렇게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 어쨌든 나는 팀쉽이라고 얘기하지만 창업팀에서는 감시자라고 느낄 수도 있고 아니면 뭐 태클러라고 부를 수도 있고. 우리를 어떻게 받아들일 거냐에 대한 이슈인데 정서적 교감이 중요한 거 같아요. 똑같은 잔소리를 하더라도 받는 사람에 따라서 조언이 되거나 잔소리가 되니까. 받는 사람이 우리를 팀으로 받아들여줄 수 있게끔 노력하는 거죠.
소풍에 관련된 얘기도 많이 해주셨는데 그럼 역으로 ‘내가 소풍에 와서 이거 하나만큼은 전파시켰다, 내가 영향을 준 것은 이런 거다’라는 게 있으세요? 일 적으로든 아니면 일하는 성향이든?
소풍에서 매니저부터 시작해서 심사역을 거쳐 파트너까지 된 게 제가 첫 사례이긴 해요. 마스터코스의 취지와도 같이 하는데 ‘투자 영역이 아닌 소셜 영역으로 투자 전문성이 없던 사람이 배워서 이렇게 될 수가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것에서 좋은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사회적 활동을 먼저 지향했던 사람이 자본의 논리를 탑재하면서 성장할 수 있구나, 나름대로 자본을 운영하는 인력의 다양성과 밀리지 않는 성과로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소풍이 임팩트 투자사니까 소셜 벤처의 사회적인 가치랑 재무적인 성과 사이에서 고민하고, 어떻게 비중을 두고 비즈니스 모델을 세울 것인지 같이 고민하시잖아요. 직업적인 특성에서 오는 딜레마도 있을 것 같고요?
‘임팩트 투자’ 하면은 사회적 가치랑 경제적 가치랑 놓고 계속 저울질 하면서 왔다 갔다 할 수 밖에 없어요. 처음에 소풍에 와서 좋았던 게 그거였어요. 사회적인 일을 하다 보면 경제적으로 좋지 않고 경제적인 일을 하다 보면 원래 내가 추구했던 가치를 지향하기가 쉽지 않은데, 경제적 가치랑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교집합을 계속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 예전에는 그걸 찾을 생각도 안 했던 거 같아요. ‘이거는 안 되는구나, 원래 이런 거구나, 좋은 일하면서 돈 번다는 얘길 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면 소풍에 와서는 접근법에 있어서 그게 있든 없든, 어떤 방식이든 교집합을 찾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것 그게 가장 좋았어요. 그 교집합을 찾는 데까지 굉장히 많이 노력하거든요.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고민하고 찾으려고 해요. 그럼에도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일단 심사역은 그걸 찾아야 투자가 가능하다는 전제를 갖고 있어요
임팩트 투자 안에서도 비율이 5:5는 없는 거 같아요. 사회적 가치 5, 경제적 가치 5라는 5:5는 없는 것 같고, 어느 순간은 퍼센테이지가 나눠지기 시작하는데 펀드를 하다 보니까 파이넨셜이 조금 더 우선시되는 임팩트 투자를 지향할 수밖에 없고 또한 해야 하는데 사회적 가치에 조금 더 중심을 둔 투자에 대한 한계점은 계속 느끼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사회적 가치를 최우선시 할 수 있는 자본을 더 끌어올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하고요.
또 하나 좋았던 게 활동가를 하다 보면 사회적 논리를 배우게 돼요. 법이라는 게 어떻게 만들어지고 정책이라는 게 어떻게 짜여지고… 자본의 논리와 또 다른 논리로 흘러가는 우리 사회를 이루는 두 가지의 큰 축이잖아요. 두 큰 축에 교집합이 예전에는 불가능 하다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교집합이 있고 성장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임팩트 투자를 하는 거죠. 그 다음에는 가치교환의 밸런스를 어떻게 맞출 건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요. 왜냐면 스케일업하는 과정에서 임팩트 워싱이 일어나거나 임팩트가 줄어들거나 하는 과정이 분명히 있을 거고 어떻게 밸런스를 맞추면서 성장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 지는 것은 앞으로도 중요한 이슈인 것 같아요.
제가 마스터코스에서 듣기로는 소풍에서는 주류라든지 유해한 지점이 있는 비즈니스에는 투자를 안 하는 원칙이 있다, 이런 얘기를 하셨는데 파트너 님께서도 개인적인 기준이나 선호하는 투자 분야가 있으세요?
우선 회사의 기준을 좀더 따르는 편인데, 개인적으로는 중점투자라고 해서 전략적으로 이 분야만큼은 조금 더 공부하고 투자해보자 이런 게 있어요. 그리고 회사 입장에서는 사회적 가치를 볼 때 포지티브한 것에 중점을 두면 투자 범위가 한정적이고 틀에 갇히게 되니까 네거티브한 방식을 취하고 있어요.
소풍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도 농식품과 로컬에 관심이 있고, 그전에 저는 사실 교육 쪽에 투자를 많이 했어요. 처음에 소풍 와서는 교육 쪽에서도 유아동 영역에 투자를 많이 했거든요. 유아동이라고 하면 아주 어린 아이들이 대상이기 때문에 제 나이대의 부모들이고, 부모가 변하면 자녀도 따라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거죠. 그래서 처음에는 어린이 교육들에 많이 했었고 이제는 다른 영역 중 흥미롭게 보고 있는게 농식품이예요. 투자할 때 개인이 경험한 것이나 개인의 가치관을 많이 닮는 거 같아요. 어쩌면 사심 투자라고도 하는데, 투자 했던 곳 중에 ‘자란다’, ‘그로잉맘’, ‘소중한글’의 실제 고객이기도 해요. 지금은 아들이 4살이어서 그로잉맘을 제일 많이 써요. 언어발달, 육아방법에 대한 상담도 많이 받고.(웃음) 그래서 좋아요.
본인이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에서 로컬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는데 로컬에 대한 견해라든지 인사이트를 나눠주신다면요?
로컬 분야는 홍지애 심사역 님이랑 한상엽 대표님이 많이 다니고 있는데,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나중에 저도 로컬을 중심으로 투자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저도 고향이 충북 괴산으로 시골 마을이고, 이제 보면 서울, 수도권으로 인구 절반이 모여있는데 기본적으로 부동산 가격폭등 때문에 젊은 층들이 수도권에서 생활하기란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아요. 반면, 지방은 소멸 위기에 있고 불균형이 이뤄지고 있는데, 지역균형발전을 얘기하지만 사실은 가란다고 갈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청년의 주거 안정성과 지역 활성화 측면에서 봤을 때는 로컬이 청년에게 분명히 기회가 있는 거 같아요. 옛날에는 인프라가 없었지만 지금은 IT인프라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업무 보는 공간 자체에 대한 변화도 빠르게 오고 있고, 젊은 층들이 지역으로 내려갔을 때 공간에 대한 구애 없이 일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셋팅될 수 있거나 지역의 물적자산을 청년이 가져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이제 관심 있는 분야가 뭔지 찾아보고 있는데, 잘하는 분야가 뭔지는 알지 못하고 서칭 하는 단계인 거 같아요.
개인이 잘 하는 거랑 좋아하는 것의 교집합을 찾는 것은 되게 중요한 거 같아요. 저는 사실 항상 창업을 한번 더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주도적으로 뭔가를 더 해보고 싶고 근데 스스로 아는 거 같아요. 내가 창업을 했을 때 어느 정도까지 하겠지만, 서포터 역할을 하면 더 큰 회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기회와 성장으로 보면 좋아하는 창업의 영역에서 잘할 수 있는 후자의 선택이 더 현명한 거죠. 그러니까 소풍이라는 조직에서 왜 일하냐고 물어보면 저의 가치 지향성을 지키면서 일할 수 있고 가치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의 교집합에 소풍이 있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시간이 흐르면 바뀌기도 하고 그 교집합을 찾는 건 평생 계속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질문은 좀 어려울 것 같은데… 임팩트 생태계에서의 이학종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평가해본다면요?
임팩트 생태계 자체로 생각해보면 생태계에서도 다양성이 중요하거든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닉네임의 에코도 생태계인데… 제가 여기서 3년 정도 됐을 때 그만 둬야지 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어요. 투자라는 것 자체가 구성원으로 보면 엘리트 산업이기도 해서 내가 여기서 성공하긴 어렵겠다 라는 판단을 했던 것 같아요. 근데 그 시기에 나를 붙잡은 한마디가, 지인에게 ‘이런 고민이 있다. 어쨌든 투자 쪽은 그만두고 다시 창업 쪽으로 넘어가려 한다’고 하니까 ‘중퇴한 너 같은 사람도 거기 있어야 되지 않겠냐’(웃음)라는 얘기를 해줬을 때 와 닿았던 것 같아요.
임팩트 투자 영역에서 사회적 논리를 더 지향하면서 자본의 논리를 배운 사람도 있고 자본의 논리를 지향하면서 사회적 논리를 배워나가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사회적인 지향점에서 시작해서 자본의 논리를 배웠다고 생각하거든요.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중요한 거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저는 그런 위치이고 싶어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임팩트 활동가라는 것 자체가 자본의 논리에 대한 것도 있지만 사회적 논리에서도 밸런스를 잘 맞추는 그런 사람이면 좋겠어요. 또 임팩트 투자 생태계에 다양한 출자자가 들어오고 다양한 운영인력이 들어왔으면 해요. 그랬을 때 성과도 더 좋아질 것이라 봅니다.
임팩트 분야가 실제 우리 삶에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내가 왜 계속 임팩트를 추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하시겠죠?
저는 여기서 배운 게, 자본의 속성이란 게 되게 중요하구나 라는 걸 배웠거든요. 자본을 대는 사람이 자본의 속성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굉장히 많은 것들이 변할 수 있구나… 사실은 정치를 해서 정책을 바꾸는 게 사회적 임팩트로 보면 가장 클 수도 있어요. 근데 경제적인 것도 사람의 삶에 굉장히 영향을 많이 미치고, IT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편리해 지는 반면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계층은 더 늘어나고 있고요. 임팩트 투자가 어떤 영향을 미치냐고 하면 사회적 논리와 자본의 논리에서 한쪽으로 치중되지 않도록 밸런스를 맞추고, 사회를 조금 더 균형 있게 구성하는 데 있어서 임팩트 투자의 가치가 있는 것 같아요. 때로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도 있지만, 서로 대립이 있었던 영역을 사회적인 논리로만 얘기하지도 않고 무조건 경제적 논리로만 얘기하지도 않게 되는 것. 그렇게 했을 때 훨씬 더 포용적인 경제 속에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그래서 MZ세대들의 환경과 사회구조의 인식이 높아지는 건 되게 긍정적인 거 같아요. 소비자들이 변하면 기업들이 움직이고 기업들이 움직이면 사회 전반적인 경제도 변하니까요.
파트너 님께서 생각할 때 ‘나는 일에서 이거 하나만큼은 놓칠 수 없어’ 이런 거 있으세요? 예를 들어서 내가 일에서 추구하는 가치 중에서 마지막 하나를 뭘 남길지?
저는 발언권이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을 때, 말을 할 수 있는 권리는 내가 일하는 회사에서 중요한 거 같아요. 얘기하자면, 조직에서 발언권은 온전히 그 사람 책임은 아니거든요. 만약에 ‘너가 얘기했으니까 너가 책임져’ 라고 하면 사실 발언권이 없는 거죠. 사실 가장 많은 발언권을 갖는 건 창업이예요. 창업자는 발언권을 많이 갖고 있는 대신 책임도 많이 져야 하죠.
본인의 삶에서 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라고 볼 수 있을까요? 물리적인 시간뿐만이 아니라 심적으로 거기에 두는 중요성이나 내가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에 따라 다를 거 같아요.
약간 미안한 얘긴데 솔직하게 얘기하면은 일과 삶의 분리가 어려워서 70-80% 되는 거 같아요.
미안하다고 하셨는데, 워라밸 측면에서 볼 때 이상적인 비중은 얼마라고 생각하시나요?
워라밸의 비율이 5:5라면 사실은 뭐 5:5를 완벽하게 지키는 사람은 없잖아요. 일이 더 중요한 순간이 있고 삶이 더 중요한 시기가 있으면 그걸 조율하면서 살게 될텐데, 지금 저는 일이 더 중요한 시기인 것 같아요. 이제 파트너가 되니까 팀원들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어서 고민은 되요. 저에게 70-80%라는 게 지금은 성과를 내는 측면에서 보면 그 정도 노력해야지 내가 뭔가를 이룰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해서 저는 그렇게 하는데 개별적으로 상대적인 것이고 이게 옳거나 압박처럼 느끼면 안되는 거니까요.
워라밸이나 5:5, 이런 개념이 각광받는 시기도 분명 있었는데 요즘에는 오히려 ‘일을 내 삶에서 떼어 놓을 수 없어, 일이 곧 내 삶이야’라고 당당하게 얘기하는 게 또 하나의 트렌드인 거 같아요.
이게 보면 사이클이 있대요. 워라밸이 중요한 사이클이 돌아오고 또 어느 순간 워킹하드한 사이클이 다시 돌아오고. 근데 뭐가 옳고 그름은 없는 거 같아요. 지치지 않게 하는 게 최대 고민이에요. 각자 자기 페이스에 맞은 일을 하고 지치지 않게 조율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번아웃 되는 포인트를 스스로 깨닫기가 되게 어렵더라고요.
심사역의 일은 감정・육체적으로도 쉽지 않아서 각자가 번아웃 되지 않아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번아웃 되지 않게 도울 수 있을지 그게 고민입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일이나 분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언젠가 뭔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는데, 외적인 환경 때문에 안 하게 되는 경우들이 훨씬 더 많거든요? 그게 환경적인 거든 재정적인 거든 아니면 부모님의 영향이든, 안 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아요. 스스로 판단했을 때 내가 나중에 시간이 흘러 돌아와 이것을 다시 하고 싶어질 거 같으면 하는 편이에요. 이게 나중에 다시 돌아오더라고요, 부메랑처럼. 내가 놓았던 것들이 어느 순간 겹겹이 쌓여서 만약에 40대 중후반쯤에 그게 돌아오면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더 괴롭겠죠. 책임져야 될 것들이 더 많이 생기고, 체력이나 에너지는 더 떨어질텐데 그래서 내가 나중에 다시 돌아와서 똑같은 걸 할 것 같으면 지금 하는 거 같아요.
그럴 때 ‘내가 지금 이걸 하면 후회할까? 안 하면 후회할까?’ 이렇게 질문해보는 건가요?
후회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요. 대신에 ‘내가 나중에 다시 돌아와도 또 하고 싶어져서 시간을 허비할까? 나중에 이거를 다시 하고 싶어질까?’ 라는 생각이 들면 사실은 해야 되는 거거든요. 언젠가는 다시 오더라고요. 그게 마흔이 넘어서 올 때도 있고 누구는 직장 4년차에 올 수도 있고 누구는 더 나이가 들어가지고 올 수도 있고. ‘내가 옛날에는 이걸 해보고 싶었는데 그때 못해서 지금 이걸 해보고 싶어’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아요.
10년 후의 나에게 던지는 질문을 여쭤보려고 했었는데, 그보다는 10년 전의 나에게 뭐라고 얘기하고 싶으세요? 그때에 막연히 생각했던 5년, 10년 후의 내 모습과 지금의 나를 비교하면 어때요?
만약에 10년 전의 나를 만난다면 너무 불안해하지 말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어떤 것들을 경험했을 때 자기 기준을 찾는 과정은 되게 중요한 거 같거든요, 누가 정해주지 않더라도. 그때는 내 스스로 자신감이 너무 없었던 거 같아요. 10년 전이면 딱 집을 나왔을 때인데, 그 당시에는 모든 게 다 불안하고 뭔가 동아줄을 잡아야 된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동아줄은 없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동아줄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경험을 좀 더 얘기하면, 당시 썩은 동아줄인 줄 알면서도 쥐고 있었던 적이 있었거든요. 잘못된 걸 알면서도 놓지 못하고 그냥 쥐고 있었는데, 그걸 놓는 순간 생각이 자유로워 지더라고요. 그걸 놨을 때 생각보다 내가 완전히 바닥으로 꺼지지도 않고요. 스물여섯에 학교를 자퇴해서 나이는 나이대로 차 있고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내가 급하니까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한다거나 기대서 뭔가를 잡아내려고 한다거나 하면서 스스로를 의존적으로 만들었던 거 같아요. 그 순간순간에 욕망이 컷고 누군가가 나에게 밧줄을 내어 줄 것 같아서 제대로 된 판단을 못했던 때도 있었던 것 같고요.
그래서 지금 돌아보면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건 우선 다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동아줄에 대한 생각이 시행착오를 못 하게 하는 거 같아요. 내가 이 방법도 써보고 저 방법도 써보고 나만의 탈출구를 찾을 수 있게 테스트해봐야 하는데, 뭔가 동아줄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 방법을 찾고 싶어 하지 않고 누군가 밧줄만 내려주길 기다리는 것처럼요.
개인적으로 모험이나 도전을 즐기는 편이세요?
전혀 아니었어요. 제가 보면 성향은 안정적인인데 기질은 변화를 추구하고 싶어하는 사람 같아요. 도전을 즐긴다기보다는 뭔가를 하고 그에 따른 성취감을 얻고 싶어하는 것 같고요. 또 하나는 소풍에 와서 새롭게 찾은 건데 보람을 느끼는 것에 있어서도 굉장히 만족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성취감이랑 보람은 비슷한 결인 것 같기는 한데요?
이게 조금 다른 거 같아요. 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에 있어서. 성취감이라고 하면 스스로 내적 동기에 의해서 얻는 일이 훨씬 많은 것 같고, 보람은 타인을 통해 이뤄지는 외적 동기에 의해서 느낄 때가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성취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소풍 와서 어느 순간 보람으로도 움직이는 사람이고 이게 잘 맞는구나 라는 걸 느꼈던 것 같아요. 삶에서 성취감을 더 느끼고 싶다면 창업을 권하고 싶고, 보람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서포터의 일도 해보면 좋겠다 싶어요.
그럼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일을 하시면서 본인에 대해서도 좀 더 잘 알게 된 부분이겠네요?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잖아요. ‘내가 이 일이 맞을까? 내가 이걸 하고 있는 게 맞을까?’ 누구도 확신을 가지고 뭔가를 하지는 않고, 그게 없다고 얘기하면 거짓말인 거 같아요. 그런데 그냥 나라는 사람을 움직이고, 힘들게 하고, 괴롭게 하는 것들, 그리고 나라는 사람을 보람차거나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것들, 이런 키워드를 하나하나 찾아내면서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라고 느끼는 거 같아요.
혹시 사전 질문을 받고서 아니면 오늘 대화하면서 아직 얘기를 못했다 하는 부분이 있으세요? 아니면 이건 꼭 얘기하고 싶다! 이 기회를 빌어서.
제가 심사역 분들한테도 똑같이 얘기하는데, 누구나 불안한 건 마찬가지인 거 같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어딜가나 똑같은 거 같아요. 근데 이걸 자기가 극복할 수 있는 거냐 극복할 수 없는 거냐, 스스로 판단하는 게 중요하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제 막 시작한 심사역들이 힘들어하는 게 눈에 보이고 먼저 경험자로 나는 무슨 얘기를 해줄까 라는 고민을 요즘에 많이 하고 있었거든요.
인터뷰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지금 느끼는 불안감이 뭔지 각자의 방식대로 좀 찾아보는 것이 중요하겠다 싶어요. 각자 불안감을 느끼는 포인트는 다 다른 거 같고. 그 불안함이 뭔지를 캐치하고,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는지 각자의 방식을 조금 더 도와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퇴사를 하기 전에...(웃음)
너무 어려운데요. 내적인 불안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저도 매일매일 불안하고 뭔가를 느끼는데, 옛날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긴 해요. 몸과 마음에 생채기가 날 각오가 되어있으면 따로 떨어져서 볼 수 있는 거 같아요. 저도 순간적으로 감정들이 왔다갔다 하고 힘들기도 한데, 자기 스스로 계속 돌아보고 내 스스로가 불안감을 극복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 하는 것 같아요. 때론 심사역에게 본인에게 맞는 종교를 권하기도 합니다(웃음)
마지막으로 ‘질문에 질문하다’로 만나게 될 독자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실까요?
일에서 가치를 추구한다는 게 반드시 옳다 그르다의 문제는 아닌 거 같아요. 하지만 일이든 삶이든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는 있다면 좋겠어요.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어떤 선택을 해야될 때, 자기가 기준점을 가지고 선택하는 것과 기준점 없이 선택하는 건 되게 다른 거 같거든요. 가치관의 선택을 일에서 느끼든 개인적인 삶이나 취미생활에서 느끼든 기준점 자체는 있으면 좋겠고, 그걸 찾아가는 과정이 쓸데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까 말씀하신 시행착오일까요?
네. 온전히 자기 인생을 사는 경험을 하기가 사실 어렵거든요. 저도 이제 결혼을 하고 애기를 키우다 보니까 온전히 나의 삶이란 건 없는 거 같기도 한데, 내가 어디까지 용인하고 감내할 수 있느냐는 본인이 정할 수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만약 주변에서 무의미하다고 해도 본인이 맞다고 생각하는 기준이 있다면 꼭 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동기부여 교육을 하며 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나는 꿈을 찾았어!’ 하고 찾는 게 아니고 단지 찾아나가는 과정만 있을 뿐인 거 같아요. 내 꿈이 뭐라고 얘기할 수는 있는데 그게 직업이라면 그것도 하나의 과정 뿐인 거 같고. 그걸 찾았다고 하더라도 과정을 밟을 거냐 밟지 않을 거냐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거 같아요. 주변 환경을 거스를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고요.
만약에 누군가 심사역님께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하실까요? ‘꿈이란 없는 거 같다?’ (웃음)
아니요. 가치관을 얘기하지 않을까 싶은데. 사실 요새는 대답을 안 해요. ‘나는 그냥 3년만 살아’ 이렇게. ‘3년 동안 내가 뭘하고 살지를 그냥 결정해’ 라고해 요. 그게 어떻게 보면 제 꿈이기도 하거든요. 내가 3년 동안 어떻게 살지를 결정하고, 그게 틀리든 아니든 어떤 부분을 감내하기도 하지만 삶의 지향점은 좀 더 명확하게 해요.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다. 그래서 꿈은 가치관이라고 생각해요. 가치관을 찾아나가는 것. 찾아낸 가치관을 설정해놓는 것. 그리고 선택의 기준점을 잡아두는 것, 어느 순간은 조율하는 것, 그게 모여서 나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것 같아요.
지금 생각에 꿈은 방향성이라고 보는데요. 저희도 창업팀들 만나면 방향성 합의라는 걸 해요. 어떤 방향으로 갈지를 합의해놓는 것. 그 안에 마일스톤을 놓고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달성할지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꿈도 마찬가지로 방향성만 있지 어떤 선택을 해서 갈지는 개인의 몫이고, 그걸 정하는 과정에서도 언제든지 선택은 다시 할 수 있고 방향과 기준이 있다면 그 안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거죠.
저희가 이다음에 어떤 분을 인터뷰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두 번째 인터뷰이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면요?
아마 찾으시는 분들이 자기의 가치관을 찾고 있거나 그렇게 살아보려 하는 분들일 거 같기는 해요. 그 사람의 삶과 일에 선택의 기준이 뭔지도 알고 싶고, 그리고 스스로를 움직이게 하는 셀프 모티베이션이 뭔지 궁금해요.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게 뭔지.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건 뭔지. 자기를 움직이게 하는 트리거가 있다면 스스로 방아쇠를 당기는 무언가를 찾았을 텐데 그게 뭔지 궁금해요.
파트너 님은 여기에 어떻게 대답하실까요?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
제가 이 일을 지속하게 하는 부분에 대해서 얘기하면, 나를 움직이게 한다기보다 나를 왜 포기하지 않게 하는가를 놓고 생각하게 되네요. 처음에는 창업자에게 제가 더 많은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이었다면, 어느 순간 이 대표에게 내가 배워야 되는 사람이구나 라고 느낄 때가 있거든요. ‘이 사람에게 뭔가를 알려주기보다 내가 배워야 되겠구나’라는 시기가 오면, 아이러니하게 되게 보람을 느껴요. ‘이 사람의 그릇이 나보다 커졌구나’ 라고 느끼는 순간 만족감을 느껴요.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 사람은 이렇게 성장하는데 나는 왜 여기에 머물러있지... 라고 느낄 수도 있거든요. 근데 그게 아니라 ‘저 사람이 나보다 더 큰 사람이 됐구나’ 라는 걸 보면서 보람이 느껴져서, 내가 이 일을 계속 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그 감정을 아직도 좋아해요. 그에 따른 회사의 성장과 투자금의 큰 회수는 하늘이 결정하는 거겠죠.(웃음)
아까 말씀하신 보람인 거죠?
네, 보람이요. 그러면 서포터로도 오래 할 수 있겠다 싶어요. 근데 만약에 그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은 저렇게 발전하는데 나는 이거 밖에 없네' 라고 느낀다면 사실 스스로 플레이어를 하는 게 훨씬 더 좋을 것 같아요.
오늘 인터뷰 어떠셨어요? 예상한 대로 흘러가셨나요?
예상한대로 흐르진 않았던 거 같아요. 회사를 오래다니다 보면 자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많지가 않아요. 그래도 저는 많이 하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느 순간 계속 안 하게 되더라고요. 아까 얘기했다시피 최근 심사역 분들이 힘들어하는 게 눈에 계속 보이니까, 뭐가 감정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든지 누구보다도 잘 알겠고 어떤 식으로 얘기해줘야 될까가 고민이었는데 인터뷰를 하면서 내가 겪어봐서 아는 게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각자의 기준에 맞게 조율점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 싶었고, 인터뷰하면서 나라는 사람의 일과 삶의 기준에 대해 스스로 돌아보는 게 좋았던 거 같아요.
이학종 파트너는 대화 내내 완곡한 어법을 구사하며 다소 모소한 지점에 관해서는 친절한 설명을 곁들여주곤 했습니다. 그것이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려 깊음에서 비롯된 습관이라는 걸 알아챌 수 있었는데요. 임팩트 투자에 대한 전문적인 인사이트뿐만 아니라 직업적으로 찾아오는 불안을 다스리는 방법과 개인의 일과 삶에 있어서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속깊은 이야기들을 나눠주신 덕에 인터뷰가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이제, 질문에 질문하다를 통해 만나게 된 여러분께 질문을 던져봅니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인터뷰이 이학종 @eco
인터뷰어 자스민 @domo
사진 김규형 @keembalance
기획 도모 임팩트 콘텐츠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