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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mine May 31. 2021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는 신념이 있나요?

성수동 독립서점 낫저스트북스 황은솔 대표, 질문에 질문하다 #2

황은솔 대표는 성수동 어귀에 자리한 독립서점 '낫저스트북스'와 제로웨이스트 카페인 후암동 '서스테이너블 해빗'의 서가를 운영합니다. 독립서점은 다양한 개인이 만든 독립출판물을 주로 취급하여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드는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요. 낫저스트북스에서 황은솔 대표와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오며 가며 이웃들이 들러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들에 마음의 온도가 1도쯤 오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날의 다정했던 온기를 전해드릴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의 질문을 시작합니다.




먼저 제가 공통적으로 드리는 질문인데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한 문장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서점을 운영합니다.(웃음)


책방 이름이 ‘낫저스트북스’잖아요, 어떤 의미를 담고 싶으셨나요?

처음에는 서점으로 시작한 게 아니었어요. 성수동에 있던 ‘위드플랜츠’ 안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브랜드를 소개하는 전시를 했었어요. 저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어서 순돌이 데리고 산책 겸 동네를 돌아다녔고 위드플랜츠에서도 강아지를 키우니까 친해졌는데, 당시에 예정돼있던 전시가 갑자기 취소가 된 거죠. 저한테 “은솔 씨가 한번 해볼래요?” 하시더라고요.

마침 그 전월에 메시 커피 옆에 ‘R’이라는 공간에서 ‘스토리지북앤필름’이 한 달 동안 팝업을 열었던 때예요. 그때는 성수동에 책방이 하나도 없었는데 그걸 계기로 조금 다른 결의 사람들도 성수동에 찾아오는 걸 봤었고. 그래서 ‘그럼 내가 책을 좋아하니까 헌책방처럼 전시를 한 번 해 보겠다’ 한 거죠. 책 200권을 깔아 놓고, 모든 책에는 이 책이 나에게 가지는 의미라든지 책 소개글을 포스트잇 한 장으로 적어 놓고 전시를 한 건데, 전시 타이틀이 ‘낫저스트북스’ 였어요.

개인 소장하고 있던 책들 중에서도 정말 큰 의미가 있는 200권을 선별해서 보여주고 판매했기 때문에 ‘그냥 책이 아니고 나라는 사람을 만든, 나에게 엄청난 영향을 준 200권의 책이다’라는 의미로 열게 됐는데요. 그 전시가 쭉 이어지고 서점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서점 이름이 되었네요.

근데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책도 있고, 문구류도 팔고, 커피도 팔고, 모임도 하니까, (낫저스트북스의 뜻이) ‘책만 있는 게 아니다’라고 받아들이시더라고요. 뭐 그것도 틀린 의미는 아니죠.



그러면 이전에는 회사에 다니셨던 거잖아요. 정확히 어떤 일을 하셨나요?

바로 직전에 다닌 회사는 스타트업이었는데요. 제가 서비스 디자인을 공부하고 와서 브랜딩 업무를 하고 싶었는데, 학교 선배가 창업하면서 같이 해보자고 해서 참여하게 됐어요. F&B 사업이었고 밀키트나 레디밀 제품을 개발하고 온라인 유통하는 회사였는데 동시에 여러 가지 사업을 했어요. 쇼핑몰도 만들고, 콘텐츠도 만들고, 브랜드 런칭을 하면서 브랜딩을 도와주기도 했는데요.

사실 작년 9월까지는 아직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상태로 일을 하면서 본의 아니게 투잡으로 서점을 운영했어요. 그리고 새촌 마을로 이사 올 때 회사에서 투자 개념으로 지원해주셔서 여기에 오게 됐고요. 회사에서 하던 디저트 브랜드를 서점에서도 같이 해보자고 해서 가장 최근에 맡은 역할은 카페 운영이었죠.(웃음) 회사에서 정말 다양한 일을 했네요.


그럼 서점만 운영하신지는 6개월 정도 되는 거네요? 회사 일을 병행하면서 서점을 운영하는 게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아요. 처음에 전시회로 시작했다가 본격적으로 사업자등록을 내면서 가게를 차리는 등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거 같은데 어떠셨어요?

프리랜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업자는 이미 갖고 있었고, 스타트업에서 4-5년 정도 일해서 서류나 재고 관리 같은 실무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부담이 없었는데... 이를테면 책임감에서 조금 고민이 많았던 거 같아요.

2018년도 8월 말부터 전시를 시작해서 거의 2-3달 정도 이어지다가 신간을 받기 시작했거든요. 그러면서 조금씩 서점 형태를 띠기 시작했는데, 위드플랜츠 공간이 빠지게 되면서 같이 나와야 하는 상황이 된 거예요. 저는 당연히 접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는 온전히 제가 운영하는 거여서 자본도 없고 회사에서 하던 일과 병행하기가 체력적으로도 무리였고요.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와중에 바로 접지 못한 게, 책임감이라고 표현했는데요.

오랜 시간은 아니었지만 손님들이 그 서점을 되게 좋아해 주셨거든요.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서점이고… 그리고 번화하기 전이라서 가게들이 서로 친해서 같이 마켓도 열고, 성수동의 매력이랄까? 옛날에 말하던 ‘이웃사촌’ 같은 개념이 아직 남아 있는 동네였고. 그래서 이웃들이나 손님들을 생각했을 때... 서점은 상점이긴 하지만 온전히 주인 혼자 꾸려나가는 공간이 아니라서, ‘내 서점’이라고 말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겠다 싶은 거예요.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정말 많은 영향을 받는 공간이거든요. 여기서 ‘나는 경제력도 안 되고 힘드니까 그만해야지’ 하는 게 너무 무책임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대출이든 투자든 할 수 있는 한은 다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처음에 상담을 받으러 갔던 데가 이전 회사의 대표님이었어요.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일을 해오신 분이라서 찾아갔는데 운이 좋게도 바로 투자 제안을 받았죠. 대신 ‘우리가 제안할 수 있는 금액은 이 정돈데, 성수동을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조건이었어요. 참 운이 좋게도 이 공간을 찾았기 때문에 계속하게 된 거예요. 계속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건 딱 그거였어요. ‘내가 여기서 그만하는 건 너무 책임감이 없다’는 생각.


그러면 정확하게는 전 회사의 대표님이 회사의 포트폴리오로서 투자를 해주신 거네요?

맞아요. 대표님께서 앱이나 플랫폼을 개발하는 능력을 토대로 여러 카테고리의 사업 아이템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투자하는 식으로 여러 브랜드를 만드는 사업을 하세요. 저희는 ‘플레이버키친’이라고 하는 회사였고 다행히 F&B였기 때문에 책과 잘 어울렸죠. 커피나 케이크나 책이랑 잘 어울리지 않아요?(웃음)

또 대표님이 디지털 분야에서 일하니까 오프라인 공간에 대한 소구도 있으셨던 것 같아요. <아날로그의 반격>이란 책에 그런 말이 나오잖아요. ‘가상 세계의 궁극에 도달한 사람들은 오히려 동시에 아날로그적인 것들을 갈망한다’는 맥락이 나오는데 그런 시점이 아니었나... 그런 와중에 서점이라고 하면 형태도 너무 매력적이고 성수동과도 잘 어울리고, 여러 부분에서 마음에 드셔서 그렇게 결정 내리신 거 같아요.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에 본인 스스로 ‘내가 이걸 잘할 수 있을까’ 아니면 ‘후회를 하진 않을까’ 하고 자기 점검을 위해서 던지는 질문이 있을까요?

아까 말했던 것처럼 서점을 계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 결정의 순간에는 ‘책임감이 너무 없지 않나’ 하는 거였고. 계속해야겠다고 마음먹고 투자를 받으러 다녔을 때는 너무 선뜻 투자 제안을 해주셔서 오히려 대표님한테 여쭤봤어요. “왜요? 왜 하시려는 건데요?” 진짜 많이 물어봤어요.


‘왜?’라고 물어보신 이유는 어떤 확신이 필요해서 물어보신 거예요?

후암동에 서스테이너블 해빗을 만든 대표님의 경우엔 '르 캐시미어'라는 지속 가능한 패션 브랜드를 만드신 분인데, 저는 사업적 관점으로 봤을 때 여기 투자하는 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서점을 하기 전에는 저도 회사를 다녔고 특히 스타트업은 출자가 정말 중요한데 왜 우리한테 투자하려는 거지? 약간… 함정인가?(웃음) 제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되는 거죠. 제가 회사 운영을 안 해 봐서 그런지, 뭔가 있지 않을까 끊임없이 의심했죠. 오히려 서점은 정말 돈이 안 된다고 설명하면서 공급가라든지 도서 출판 유통계에 대한 숫자들을 다 보여 드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를 하겠다면 내가 요구하는 조건은 이거다 하고, 사실상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 제시했는데도 좋다고 하는 거예요.

결국은 그냥 믿게 됐죠. 제가 강아지들 입양 보낼 때랑 비슷한데요, ‘이 사람이랑 계속해야겠다, 믿고 진행해도 되겠다’라고 느끼는 건 인간적인 신뢰가 생기면 다 괜찮아지는 거 같더라고요.


그러면 서점을 운영하는 비중이 조금씩 커지다가 이제 거의 100%가 된 거잖아요? 그렇게 변화하면서 본인의 삶에서도 달라진 점들이 있을까요? 일상적인 패턴이라든지 스스로의 마인드라든지?

비중이 늘어나서 변했다기보다는 제가 안정을 잡아가면서 서점도 방향성을 가지게 된 거 같아요. 나이가 들면서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조금씩 깨닫게 되는 부분이 있는데요. 예전에는 새로운 일을 하면서 여행 다니고 프로젝트 초기에 파이팅 넘치는 역할을 하는 걸 좋아하고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앉아서 책 읽고 글 쓰고 그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더라고요. 최근에는 유기견 구조해서 입양 보내는 기쁨이 진짜 크거든요? 예전 같았으면 행사하고 워크숍 하고 사람들 만나는데 썼던 에너지를 이제는 서점에서 책에 집중하고, 또 에너지를 강아지들한테 쓰고 싶은 거죠.



제가 자영업을 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사장님들께서 혼자서 사업체를 꾸려 가시는 거잖아요. 아무래도 외로운 면도 있을 거 같은데요. 그래도 책방은 단골손님들도 많고 하니 조금 상쇄될 수 있을까 싶긴 한데 어떠신가요?

결론적으로 전 혼자 일하는 게 맞는 체질인 거 같아요. 저도 마찬가지였지만 많은 분들이 회사를 다니면서 제일 힘든 게 인간관계나 상사와의 트러블 같은 부분일 텐데요. 저는 남들보다도 더 예민하게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타입이었던 거 같아요. 그런 걸 잘 모르고 지내다가 이렇게 일하면서 보니 같이 일했던 분들도 ‘너는 이렇게 일하는 게 맞는 거 같다’고 얘기하시는 거예요. 또 어느 순간에는 내가 혼자서 구멍가게처럼 할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서고 조금 벅차다는 생각이 들어서 직원을 두기도 했었는데, 그걸 다 겪고 나서 보니까 그냥 혼자가 맞는 거 같아요.

서점은 지적 노동인 거 같다는 생각도 해요. 활발하게 공간을 운영하고 유명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오는 사람들이 늘 올 수 있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결국엔 책이잖아요? 내가 책을 많이 읽고 많이 추천하는 서점으로는 한 번도 운영을 안 해본 거 같은 거예요. 계속 워크샵을 한다든지 행사를 한다든지 하면서. ‘진짜 서점만으로 운영해보자, 책이라는 걸로 승부를 보자’ 이런 생각이 들어 가지고 (오프라인 모임을) 다 없앴거든요.


독립서점 자체가 동네책방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자리를 잡아가면서 주민분들이 자주 오셔서 동네 사랑방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잖아요. 여기서 이뤄지는 모임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거나 기억에 남는 거 있으세요?

제 삶의 가치관이 변하고 운영하는 방법도 변화하면서 달라진 점인데요. 예전에는 매주 금요일마다 금요수다회도 하고 요가 수업도 하고, 워크샵에 굉장히 공을 들이고 애착이 있었어요. 요즘은 그런 모임보다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커뮤니티에 애착이 많이 생기는 거 같아요. 실제로도 도움을 많이 받고 있고요. 일적으로 사람 만나는 일을 줄이니까 개인적으로 사람 만나는 일에 더 행복함을 느낀다고 해야 하나? 전에는 퇴근하면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혼자 있고 싶었는데 이제는 쉬는 날에도 웬만하면 성수동에 나오거든요. 동네 친구랑 놀러 가거나 좋아하는 단골 카페에 가거나 하면서 보내는 게 진심으로 행복해요.

제 생각에는 코로나 19를 계기로 (그전에) 인위적으로 만들었던 인간관계를 만들지 않아도 되고, 비즈니스로써 사람들을 대해야 했던 일을 안 해도 되면서 변한 거 같아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책방에 와서 왜 자꾸 사진만 찍지?’ 이런 데에 화가 가득했거든요? 불만이랄까 화가 났었는데 이제 아무렇지 않아요.

서점에 들어와서 1-2시간씩 개들이랑 놀다 가고, 이렇게 (저에게) 개를 맡기고 하는 게 너무 좋아요. 마인드가 많이 변했어요. 어떤 분들은 책 한 권을 사서 맡겨 놓고 몇 개월 동안 들러서 몇 페이지씩 읽다 가세요. 어제는 월요일에 카페들이 많이 쉬니까 가게 사장님들이 여기 오셔서 같이 떡볶이 먹고.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런 모임들을 안 하기 때문에 그게 더 좋은 게 아닐까 싶네요.


저도 한 2-3년 전에는 독립서점에 모여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음악 추천해서 같이 듣는 모임에 많이 참여했었는데요. 아마 코로나 19가 영향이 있었겠지만 독립서점들이 조금씩 성격이 변하고 있는 거 같긴 하더라고요.

인위적인 모임은 소모적일 수밖에 없어요. 저는 그만두는 타이밍이 이런 거였어요. 저희 요가 워크샵 타이틀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인데 막상 나에게 집중할 수가 없는 거예요. 저로서는 오랫동안 비슷한 수업을 계속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처음 시작했을 때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면 바꿔 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에 그럴 수 없으면 그만 해야지’ 했죠. 워크샵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프로젝트나 다른 일도 이런 취지로 운영했는데 방향이 아닌 것 같다 싶으면 안 하거든요.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타이틀은 직접 지으신 거예요?

워크샵 기획은 다 제가 직접 해요. 요가 워크샵은 저 역시 수강생이었는데, 나에게 집중을 못 하겠다 싶으니까 아무리 워크샵의 퀄리티가 좋다 할지라도 굳이 여기에서 할 이유가 없다 싶었어요.


보통 여기서는 어떤 호칭으로 불리기를 좋아하세요?

좋아하는 호칭은 없는데 다양하게 불려요. 많이들 부르는 건 사장님. 좀 편한 사이면 은솔이, 은솔 씨 이렇게 부르고. 예전에 저희 워크샵 같이 했던 작가님은 거의 모든 사람을 ‘선생님’이라고 불렀거든요? 저한테도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순돌이 엄마'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저한테는 반말이 조금 어려워요. 요즘에 카페를 창업하시는 분들 중에서도 친해지고서 제가 나이가 조금 많다고 ‘말 편하게 하세요’ 하는데, 저는 존댓말이 편한데 자꾸 말 편하게 하라고...(웃음)



해방촌이나 합정 근처에는 독립서점들이 모여 있는데 주로 방문하는 연령대에 비해서 유독 성수동에는 서점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출판업계에서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려면 먼저 서울 서북부 타겟을 잡아야 한다는 말도 있다고 하던데요. 성수동에서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쎄요, 일단 제 생각에는 너무 비싸요.

- 책이?

아니요, 여기 동네가. 지금은 너무 비싸고 그 전에는 아마 서점을 열 생각을 못 하셨을 거예요. 그만큼 시장이 크지 않았고… 저는 그래서 (서점을) 하고 싶다고 내비치시면 완전 웰컴이라고 하거든요. 독립출판물 같은 경우에는 위탁거래를 많이 하니까 사실 마음만 먹으면 공간을 제외하고 재고에 대한 자본금 없이 시작할 수도 있잖아요. 예를 들어서 카페 골목이면 다 같이 잘 되고 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문화예술적으로도 그런 게 많이 모이면 저도 덩달아 잘 될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혹시 서점 창업을 꿈꾸는 분이 있다면 성수동으로 오시면 좋겠어요!


공간이 주는 특별한 의미가 있잖아요. 제가 한 번은 회사에서 힘들었던 날에 여기 왔었는데, 다음날 회사 대표님한테 어제 쉬라고 하셔서 책방에 갔다 왔다고 하니까 ‘자존감이 낮아졌을 때 가는 데구나’ 하시더라고요.(웃음) 미처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그런 면도 있었던 것 같아요. 여기에 오는 분들한테 이 공간이 어떤 의미였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시는 점이 있을까요?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는 부분이 제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인테리어를 꾸몄을 거라고 생각하시는데 사실 그런 건 전혀 없었어요. 여기에 이사 온 지 5일 만에 오픈했고, 뭔가를 하진 않았는데도 원래 갖고 있던 책이나 소품들을 쓰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제가 녹아들었을 거예요. 그래서 저를 잘 아는 사람들은 공간이 저하고 많이 닮았다고도 하는데요. 서점이 멋있다 예쁘다 해주시는 것도 너무 좋지만, 그냥 자주 오고 싶고 오래 있고 싶고... 그랬으면 해요.

책을 사든 안 사든, 서점에 온 목적이 무엇이든 여기에 와서 한 시간, 두 시간 있는다는 게 그 사람한테는 되게 소중한 시간을 쓴다는 건데 고맙더라고요. 그리고 저희 서점이 (일부러) 찾아와야 되는 데에 있잖아요? 굳이 쉬는 날에 지도를 보고 찾아와서 여기서 시간을 쓰는 게 엄청난 일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으면서, 한번 오면은 오래 있게 됐으면 해요. 저희 단골손님들은 그런 얘기도 많이 하시거든요. ‘여기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있게 된다’고. 오래 앉아있게 되고 또다시 오고 싶은 공간이면 좋겠어요. 이렇게 ‘사장님, 강아지 잠깐만 봐주세요’ 하는 것도 너무 좋아요.



조금 다른 얘기를 해보자면, 은솔님이 큐레이션한 서스테이너블 해빗의 서가도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필요한 자료를 구할 겸 가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그 서재를 꾸미고 있는 책들이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지’가 궁금해지는 구성이었어요. 거기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으셨어요?

서스테이너블 해빗은 저에게 딱 한 가지 조건이랄까, 기준을 얘기하셨던 게 ‘지속 가능한 습관들’이라는 의미를 벗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에 대한 해석은 저에게 맡겨 주셨고요.

제가 대학원에서 서비스 디자인에 대해서 공부했는데, 다양한 분야 중에서도 공공 관련을 공부했었고 마침 다루었던 주제가 환경이었거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도 관심이 있었고, 또 제가 작년부터 채식을 하고 있어요. 아주 많이 실패했지만 채식을 지향하며 살고 있는데요. 강아지도 키우고 있어서 관심을 갖고 책도 꾸준히 읽는 분야였는데 마침 그런 제안을 해 주시니까 반갑더라고요. ‘다시 한번 공부를 해볼 수 있겠다’ 싶어서.

그래서 학문적으로는 대학원에서 공부한 것들에 기반해서 많이 선택했고. 그다음에 이제 공부하고 있었던 비건 관련, 환경 책들로 꾸미려고 했고요. 사실은 그걸 계기로 더 많이 공부하게 됐어요. 아직 우리나라에 비건이라든지 환경문제, 제로 웨이스트 같은 게 트렌드처럼 이제 막 시작되고 있는 단계라서 한 권의 책만 봐도 레퍼런스가 진짜 많아요. 한 권만 제대로 읽어도 거의 10-20권 정도의 책들이 따라오기 때문에 저도 읽으면서 거기에 추천하는 책들을 또 갖다 놓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채워 놓고 있습니다.



대학원을 가게 된 계기도 있으세요?

너무 옛날 얘기인데...

- 괜찮아요.

제가 건축을 전공했는데 진로에 대한 확신이 없었어요. 그때는 알게 모르게 공부가 적성에 맞는 것 같고 공부를 더 하고 싶었어요. 책 읽고 글 쓰는 게 공부잖아요. 그래서 대학원을 가고 싶었는데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경제적인 이유로 취업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같은 이유로 대기업에만 원서를 넣어서 조선설계, 선박을 건조하는 회사에 들어갔는데요. 지역에 있는 제조업 중공업회사이다 보니까 엄청나게 보수적인 데서 첫 사회생활을 하게 된 거예요. 많은 것들에 대한 회의와 감정의 소용돌이에 시달리다가 2년을 딱 채우고 나왔어요.

나와서 뭘 해야 될까 마음먹은 건 없었는데, 대학교에 다닐 때 감사하게도 부모님이 영국에 1년 동안 어학연수를 보내주셨고 인생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거든요? 한 인간으로서도 그렇고,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영감과 자극을 굉장히 많이 받았었기 때문에 영국에 무비자로 갈 수 있는 3달 정도만 다녀올까 했죠. 가서 읽고 싶은 책을 잔뜩 읽고 보고 싶었던 미술관이나 그리웠던 동네들에 가야지 하고 어학연수 준비를 한 거예요.

그런데 유학원에서 대학원 진학을 권유했어요. 그때 마침 영국 대학원을 가기 위해서 꼭 치러야 하는 시험이 있었는데, 제가 선박회사를 다니면서 영어를 계속 쓰다 보니까… 그 회차가 시험이 쉬웠고요.(웃음) 그래서 합격을 해버린 거예요. 거기서 친구 따라서 유학 박람회를 갔다가 얼떨결에 대학원 원서를 쓰게 됐는데 또 덜컥 합격을 했어요. 어떡하지 고민하다가 부모님한테 얘기했는데 저희 오빠가 너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가족들을 설득해서 가게 된 거예요.

 

대학원을 영국에서 다니신 거예요?

네. 세 군데에 원서를 넣었는데 한 군데는 진짜로 하고 싶었던 공간 예술 쪽으로 설치미술, 또 하나는 전에 일했던 것과 관련해서 요트 디자인, 마지막으로 학교의 네임밸류와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한국에 돌아와서 잘 먹힐 것 같은 분야로 넣었어요. 영국 대학원은 입학은 그렇게 어렵지 않고 졸업이 어려운데 실무 경험을 좀 높게 쳐 주는 것도 있거든요. 세 군데를 다 합격해서 고민이 커졌는데 학비가 다른 데보다 싸고 조금이라도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세 번째 학교를 간 거죠.

여길 꼭 가고 싶었다기보다는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선택한 건데, 그게 제 인생에서 천운이란 생각이 들어요. 다른 학교랑 다르게 인테리어가 아니라 디자인 학과 안에서 자유주제를 정하고 연구해서 논문 졸업하는 시스템이라서 자유로웠고, 담당교수님 덕분에 정말로 하고 싶고 관심 있는 분야를 굉장히 빠른 시간에 찾을 수 있었거든요.

그리고 어떻게 보면 운명이 아닌가 싶은 게- 그 학교가 유명한 이유가 도서관이에요. 영국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장서 규모가 크고, 디자인 관련 서적이 많기로 유명한 학교여서 거의 도서관에서 살았어요. 제 생각에는 이때 독서에 대한 벽이 허물어졌달까? 그 전에는 책을 좋아하지만 주로 문학 작품을 읽었으면 인문, 사회 예술 디자인 예술처럼 제가 연구하는 주제와 그게 아니라도 편견 없이 책을 읽는 버릇이 들여진 거죠. 책을 보는, 읽는 방법도 배우고 글도 진짜 많이 쓰고. 영국에서의 1년 반-2년 동안의 경험이 엄청나게 영향을 미쳤어요.


그 학교가 어딘지 여쭤봐도 돼요?

뉴캐슬에 있는 노섬브리아 대학교인데, 자랑하자면 애플 디자이너인 조나단 아이브가 졸업한 걸로 유명해요. 그래서 디자인 학과가 유명한 학교였죠.


거기서 은솔님이 찾은 것, 정말 관심 있고 하고 싶은 건 뭐였어요?

서비스 디자인이라는 분야를 처음 알게 됐는데 그 당시에 유럽에서 이제 막 유행처럼 번지는 거였죠.

- 서비스 디자인은 UX(User Experience)랑은 다른 분야일까요?

조금 더 큰 범위인 거 같아요. 우리나라에서 말하자면 ‘디자인적인 관점에서 기획을 한다’인 건데, 그 안에 UX 개념도 포함되어 있는 거죠.

제가 대학에 다닐 땐 건축이라고 하면, 개념설계부터 시작해서 시공까지 다해서 발표를 해야 되거든요. 근데 저는 항상 초반에 3주까지는 탑을 달리는 학생이었다가 마지막 12주 차에는 반도 못 간 학생이 되는 거예요. 그런 게 단점으로 꼽혔는데 대학원을 가니까 ‘그래? 너는 3주 차까지 탑인 학생이니까 그럼 그거만 잘하면 돼. 넌 정말 훌륭한 학생이야’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논문 주제를 찾을 때도 한국에서 배웠던 것처럼 ‘저는 교회를 지어 볼게요’, ‘저는 상점 설계를 해 볼게요’ 이렇게 결과부터 접근하는 경향이었다면, 거기선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그랜드 이슈부터 생각해 봐’ 하는 거예요. 이를테면 환경, 보건, 기아, 그런 문제들 있잖아요. ‘정말로 우리가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는 큰 이슈부터 생각을 해 봐’ 그러더라고요.

그때까진 관심사가 없어서 고민하던 중에 우연하게 한국에서 유행하던 <비정상회담>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본 거예요. 샘 오취리가 나와서 부유한 나라에서 가난한 나라에 쓰레기를 수출하고 현지의 어린아이들이 쓰레기 더미에서 돈이 될만한 구리 같은 것들을 위험한 방식으로 찾아내서 생계를 이어나간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걸 보고 충격을 받은 거예요. 내가 너무 좁은 세상에 살았구나... 그때 마침 내가 영국에 있었고, 그 주제에 관해서 깊이 탐구해볼 수 있는 자료가 가득한 곳에서 시간이 주어진 상태였고. 공부를 해보니까 심각한 인재들이 제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었어요. 그 전에는 환경이나 생명, 인권 이런 주제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다기보다 그런 주제가 존재하는 것조차도 몰랐을 거예요.

그래서 처음 연구주제는 이걸 이슈화시켜서 나 같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알릴까에 대해서 캠페인 같은 걸 했고. 졸업 논문을 써야 했을 때는 좀 더 실용적인 방안을 내야 했어요. 그래서 공공서비스 디자인에 관련해서 공부를 많이 했고요. 전자 폐기물이나 이걸 효율적으로 수거해서 가치 있게 업사이클링하고 사람들한테 교육하고, 이런 것들을 했었는데 우연히 접하게 된 콘텐츠들이 연결되면서 제가 그런 분야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꼈죠. 영국에서는 해결 방안으로 ‘이런 거 어때?’하고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잘했다고 해주니까 더 재밌더라고요. 그 관심을 지금까지도 갖게 된 거 같아요.



(TMI) 저는 영화 연출 전공인데, 다른 사람들이 저한테 영화 추천해 달라는 얘길 많이 해요. 그럼 먼저 어떤 영화를 좋아하냐고 물어보고 비슷한 걸 추천해 주거든요?

그런데 사실 책 추천은 그거보다 훨씬 어려운 게, 책을 추천하거나 선물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선물했을 때 그게 좋아하는 주제인지도 알기 어렵고 혹은 이미 읽었을 수도 있고. 은솔님은 평소에 책 큐레이션도 많이 하시고 블라인드북도 만드시잖아요. 책을 선정하시면서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나요?

예전에는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어떤 책 좋아하세요? 어떤 거 찾으세요?’ 물었는데, 요새는 아무 정보도 없이 그냥 추천받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는 잘 나가는 책을 추천해요. 그게 아니라 정말로 주제에 맞는 추천을 받고 싶은 거라면 제가 좋아하는 책을 추천해요. 결국은 내가 이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깊이 알지 않는 한 정확한 추천은 불가능하더라고요. 영화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래서 그냥 내가 좋아하는 책을 추천하자, 그러면 자랑이라도 실컷 할 수 있으니까.(웃음) 여기 들어와 있는 책도 대부분 내가 좋아하는 책, 작가,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쓴 책에서 추천한 책 이런 식이거든요.

 


강아지 얘기를 해볼까요? 순돌이랑 처음에 어떻게 만났는지?

순돌이는 제가 유학 가기 전에 알바로 일했던 스타트업이 있었는데, 거기 디자이너 분이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온 거예요. 저한테 강아지 키우지 않냐고... 아니라고 하니까 “강아지 안 키울래?” 하고 사진을 한 장 보내왔어요. 알고 봤더니 이 분이 주말마다 서핑을 하러 양양에 가는 서퍼였는데 거기에 갑자기 개가 한 마리 나타났대요. 너무 귀엽고 순해서 ‘순돌이’라고 부르면서 동네 사람들이 물도 주고 밥도 주고 하면서 키웠는데 얘가 안 보여서 걱정하던 중에 풀숲에 죽어가고 있던 걸 누군가 발견한 거예요. 그래서 구조했는데 입양할 사람이 없으니까 주말마다 오는 서퍼들을 통해서 연락을 돌린 거죠. 그래서 순돌이 사진을 봤는데 한눈에 뿅 간 거예요. 그래서 “어? 나 키울래!” 했어요. 한 번도 안 키워봤는데 너무 키우고 싶어 가지고...

근데 이제 얘를 회사에 데리고 다니고 다녀야 될 것 같은 거죠. 야외 배변을 해서 무조건 하루에 세 번은 산책을 꼭 시켜줘야 한다고 해서. 그래서 대표님한테 가서 “대표님이 안된다고 하면 얘 못 데리고 온다” 했는데, 어떤 사람이 안된다고 해요.(웃음) 그래서 한 열흘 뒤에 저한테 소개해준 친구가 순돌이를 데리고 왔어요. 그렇게 만났는데 첫날밤부터 저를 졸졸 쫓아다니는 거예요. 강아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서 물어보니까 “원래 유기견들은 자기 주인을 알아본대.”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매일매일 같이 다니게 됐죠.


순돌이랑 같이 산지는 얼마나 된 거예요?    

올해 8월이 만으로 4년째예요. 제가 입양한 날, 8월 6일을 순돌이 생일로 삼았어요. 순돌이 생일파티를 하면서 수익금을 기부하고 있어요.


책방을 처음 열었을 때부터 같이 있었던 건가요?

왜냐하면 순돌이 때문에 재택근무를 시작하게 됐고,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금전적인 보충이 필요하여(웃음) 책방을 연장하게 된 거거든요. 하다 보니 나한테도 잘 맞고 순돌이랑 같이 더 있을 수 있어서 계속하는 거라, 거의 순돌이 때문에 책방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잠깐 말씀하신 것처럼 유기견을 보호해서 구조하고 임시보호하거나, 아니면 후원을 많이 하시잖아요. 요즘 집중해서 하고 있는 활동은 무엇인가요?

일단은 저희가 매달 정산의 일부를 포천에 갈월리 쉼터라고 하는 사설 유기 보호센터에 보내요. 단체도 아니고 개인이 운영하시는 거예요. 부부가 거의 백 마리 정도를 보호하고 계신데, 거기에 소액이라도 저희가 할 수 있는 만큼 기부하고.

그다음에 우연한 계기로 ‘마요’라는 아이를 임시 보호했는데 그때 제가 개인적으로 기쁨이 컸어요. 너무 거창하지만 저의 철학이라고 해야 할까요? 다수를 아주 조금씩 도와주는 것이 중요할까, 아니면 한 아이를 집중적으로 도와주는 게 중요할까,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한 명의 아이를 집중적으로 도와주는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왜냐면 그 아이가 자라서 미치게 될 영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같은 맥락에서 내가 많은 아이들에게 후원금을 보낸다던지 봉사활동을 할 수 있지만 그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써서 한 아이가 밝아지고 좋은 가족에게 입양을 가서 퍼뜨리게 될 선한 영향력에 대해서 뿌듯함을 느끼는 사람이더라고요.(웃음)

순돌이를 키우면서 알게 된 유기견, 펫 샵, 이런 동물 문제들을 접하면서 또 예전과 비슷하게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된 거죠. ‘정말 내가 아무것도 몰랐구나.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많은 문제가 있었구나’ 알게 되면서… 저는 알고서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나는 24시간 개들과 같이 있을 수 있고, 부자도 아니고, 굉장히 장사가 잘되는 것도 아니지만 먹여 살려야 할 식구가 없고 얘네 정도는 케어할 수 있는 경제력이 있으니 애들 임시 보호는 계속해봐도 좋겠다. 그러던 와중에 마침 마음이 맞는 동네 친구들이랑 좋은 취지로 ‘러브 쌤쌤’이라는 브랜드도 만들게 되었고요. 이렇게 널리 널리 알려서 사람들이 유기견 입양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유기견들이 구조가 돼서 보호소에 가면 10일 안에 입양을 가지 못 하면 안락사 처리가 된다고 하던데 대부분 그런 거죠?      

맞아요. 안락사 없는 보호소도 있는데 그건 거의 사설보호소예요. 카라, 케어, 행동하는 동물사랑 등 규모가 커진 비영리 단체들은 후원금을 모아서 안락사 없는 보호소를 만들기도 하는데 대부분의 시 보호소들은 예산을 배정받아서 운영하는데 시골 지역에서 거의 외부나 다름없는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 애들도 많고. 강아지들을 구조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제 라이프스타일과 맞기도 하지만, 구조된 아이들이 오래 살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저는 그게 싫더라고요.


낫저스트북스에서 책을 구매하면서 일부 금액을 후원하거나 하는 방법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도 설명해주신다면요?

후원금 통을 운영하고 있고, 포인트 후원은 제가 반강제로 바꾼 거예요. 책 구매하면 5%를 적립해 드리는데 포인트를 기부하시면 저희가 그걸 현금으로 기부하겠다고 했는데 많은 분들이 부끄러워서 그런지 안 하시는 거예요. 저는 부끄러워서라고 믿고 있어요.(웃음) 그래서 매달 100포인트씩 자동 기부하는 걸로 바꿨어요. 그러니까 '500 포인트가 쌓였으면, 5개월 지나면 그 포인트는 다 기부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다들 좋아하시고 그런 걸 한다고 하니까 포인트 기부를 많이 하시고. 그리고 특정 품목들이 있어요. 순돌이 엽서라든지 앞으로 출시될 러브 쌤쌤 제품들이나... 사실 기부금이 그렇게 많진 않아요. 한 달에 십만 원 정돈데 더 많이 하고 싶죠. 오셔서 엽서 한 장씩 다 사갔으면 좋겠어요.(웃음)


‘러브 쌤쌤’에 대해서도 한번 소개해 주세요.

동네에서 강아지를 키우는 분들이랑 친하게 지내다 보니까 관련 이슈가 뉴스에 나오면 자연스럽게 얘길 하게 되는데, 최근에 진도견 차별 이슈가 반려인들 사이에서 화제였어요. 어떤 애견 호텔에서 서비스를 이용할 때 덩치가 훨씬 큰 시베리안 허스키나 골든 리트리버는 되는데 진도견은 안 된다는 제한이 있었던 거죠. 이건 완벽한 종차별이다 하는 일이 있었는데요.

저희 동네에서 ‘어텀’이라고 하는 진돗개 친구랑 ‘우짜’라고 하는 시바견 친구가 순돌이랑 삼총사처럼 지내요. 그러니까 너무 속상하고 내가 사람으로서 미안한 거예요. 사람들이 무지하고 못돼서 이렇게 한다는 게 내가 미안해서... 순돌이가 가진 좋은 영향력을 이용해서 종에 상관없이 애들이 예쁘고, 어떤 가족을 만나느냐에 따라 착하게 자라날 수 있다는 걸 퍼트리고 싶었어요. 제가 마침 그런 얘기를 꺼냈더니 “너무 좋다, 우리 한번 재능을 모아보자” 한 거죠. 비비비 커피를 운영하는 진돗개 어텀이 엄마가 기획자 출신이고 우짜 엄마가 운동 관련해서 인플루언서예요. 우짜의 아빠는 사진가고요. 브랜드를 런칭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 다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희 대표님한테 가서 “우리는 돈만 있으면 된다. 할래?” 했는데 “콜!” 이렇게 된 거예요.(웃음) 그리고 캐릭터화는 어텀이가 어렸을 때부터 돌봐줬던 어텀이 엄마의 친구가 순수미술을 했던 분인데 좋은 취지에 공감해서 재능기부처럼 참여해주셨어요.

좋은 사례로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가 캠페인이 되었듯이 러브 쌤쌤은 ‘차별 없이 사랑해요’를 캠페인으로 만들고 싶은 거고요. 언젠가 사람들이 유기견 입양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일 때 그게 대형견이든 진돗개든 믹스견이든 구분 없이 받아들여 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는 거고, 우리가 먼저 실천해야 되니까 쌤 1호, 2호, 3호 이렇게 계속 임보를 하자고 해서 공동 육아처럼 하고 있어요.(웃음)


본격적으로 런칭 시기를 정해놓으셨나요?

그런 건 아니고 첫 제품은 작은 마스킹 테이프, 엽서, 스티커로 시작해서 반응을 살펴보고 그다음에 홍보겸 해서 펀딩 사이트를 통해서 더 큰 제품들을 하고 싶어요. 우리가 동물을 사랑하는 브랜드니까 환경에 관련해서도 하고 싶은데… 일처럼 하지 말자고 늘 얘기해요. 하기 싫으면 좀 미루기도 하고... 하고 싶은 열정이 불타서 하는 거지, 이런 캠페인은 장기적으로 가는 게 진짜 중요하니까요.



처음에 종차별이라고 얘기하셨을 땐 낯선 개념이었는데 ‘차별 없이 사랑하자’는 슬로건은 너무 공감이 돼요. 평소에 한국에 뭐 심한 차별이 있나? 싶다가도 생각해보면 너무나 많은 차별이 있는 거예요.

몰라서 그런 거겠죠? 알고 보면 ‘내가 정말 좁은 세상에 살았구나’ 싶어서 섬뜩한 거죠. 나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차별을 했겠구나 하고요.


말씀하시니까 전에 나눈 얘기도 생각났는데, 이제 자영업을 운영하시기 전엔 스스로도 자영업자를 대하는 데 있어서 미숙하거나 모르고서 실수했던 부분이 있다고 얘기하셨잖아요. 지금도 운영하면서 ‘이런 건 개선되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건요?

예를 들어, 눈에 안 보이는 바텐더가 유능하다고 하잖아요. 그런 데에서 술 한 잔 놓고 진지한 얘기나 밖으로 나가면 안 되는 얘기를 했을 때, 자기가 맡은 서빙은 임무를 다하지만 말을 퍼뜨리지 않고 믿을 수 있는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들. 그런 공간에서는 그들이 인비저블(Invisible)이 돼야 하는데, 사실 모든 상점이 그렇지는 않단 말이죠. 특히 자영업은 공간이 주인인 경우가 많은데 손님들은 주인이 없는 것처럼 취급하고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많은 케이스로 드러나는 게 매장에서 사진을 찍는 것도 마찬가지고 서로 욕설을 하는 사람도 되게 많아요. 습관처럼 욕을 섞어서 하는데 과연 나라는 사람이 저 대화에 껴있다고 생각한다면 저렇게 욕을 하면서 얘기할까? 기본적으로 인사부터 해서 호칭 문제? 언니라고 부르는 사람이 진짜 많고, 반말도 많고. 아마 나도 은연중에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그래 왔을 거예요. 그래서 반성도 하면서... 이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 같아요. 예전에는 그런 거에 상처를 많이 받고 신경도 많이 쓰고, 한 분 한 분한테 화가 많이 났는데 이제는 4년 차가 돼서 그런가? 그냥 자연스럽게 넘기고 흘러가요.



주변에 꼭 자영업 하시는 분들 아니어도 문화, 예술 분야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랑 친하게 지내시는 것 같아요.

저 혼자서는 절대로 가게를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돼요. 전구도 잘 못 갈고, 뭘 고치질 못해서 버리고 새로 사서 쓰는 타입인데 많이들 도와주세요. 손님, 이웃, 전 직장 동료들이 다 해주신 거지 제가 한 건 하나도 없어요. -서점에 들른 분을 가리켜- 저분도 금속공예하시는 분인데 여기 책장이랑 옆집에 그림도 그리시고... 사실 의뢰하기 미안할 정도로 적은 금액으로 작업을 의뢰하는데 동네 서점을 많이 아껴주시고 순돌이를 다 좋아해 주셔서 선뜻해주세요. 조명공사도 비비비 사장님이 와서 해주시고, 저 진짜 똥손이거든요.


저도 독립서점을 좋아하니까 친분이 있는 사장님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보통 “2년이 고비다”라는 얘기를 하는데…

3년 아닌가요?(웃음)

- 요즘엔 2년이라고도 하더라고요.(웃음) 3년을 넘기면 그 이후에는 조금은 걱정을 덜고 하시는 거 같긴 한데…

전에 저희 직원이 맨날 “사장님, 3년 차 버티셔야 된다” 그러는데 “우리 벌써 3년 차야?” 그랬거든요. 많이들 힘들어하는 2년 차, 3년 차가 코로나 19였잖아요. 정신없이 보낸 것 같아요. 어떤 매너리즘에 빠진다던지 직업적으로 이게 맞나 고민할 새가 없이 생존의 문제였으니까. 정말 어려운 보릿고개를 보냈거든요.(웃음) 저뿐만 아니라 성수동에 모든 자영업 하시는 분들이... 그래서 다들 십시일반 해서 도와가며 일어났는데, 저희 단골손님들은 10만 원, 20만 원씩 결제하시고 “다음에 책살 때 여기서 차감해주세요.” 그러고 가셨어요. 그러면서 일단 당장에 다음 달 월세나 먹고 살 걸 걱정하다 보니까 그냥 쓱 지나갔어요. 그러면서 상황에 적응하고 이겨내면서 어느새 4년 차가 됐네요?


혹시 언제까지 서점을 계속할지도 생각해보시나요?

언제까지 할까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언제든 팔 생각은 있어요. 한 2억쯤 주면...(웃음) 누구든 2억을 준다면 여기 팔고 딴 데 가서 다른 서점을 할 거야, 그런 마음은 갖고 있어요. 서점은 계속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했던 일 중에 가장 오래 하고 있거든요.



서점을 운영하는 게 본인에게 균형을 잡는 데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되시는 거예요?

균형은 잡히지 않는 것 같아요. 서점을 하면서 뭔가 안정되고 삶의 균형을 찾는다기보다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계속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이를테면 나는 책을 사는 걸 좋아해, 근데 그게 직업이야. 그럼 너무 좋은 거 아니에요?


덕업 일치인가요?

그런 거죠. 서점은 계속 책을 사야 되잖아요. 새로운 책을 찾아서 사놔야 되는데, 신간뿐만 아니라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고전이나 구권도 찾아야 되고. 그걸 너무 좋아하는데 직장 다닐 때는 돈이 없으니까 한 달에 다섯 권, 열 권만 사야지 했는데 이제는 한 달에 백 권을 사도 되는 거예요. 서가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도 마찬가진데, 나한텐 서가를 채우는 일이 어렵지 않은데 누구한테는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마치 나한텐 전구 가는 게 진짜 어려운 일인데 누구한텐 정말 쉬운 일인 것처럼.

그건 너무 좋은데 다만 어려운 점은 다른 직장인들과 똑같아요. 보통 직장 내 인간관계를 힘들어한다면 저는 손님과의 관계가 힘든 거고. 혼자서 가게를 운영하니까 청소도 해야 되고, 정산도 해야 되고, 재고 관리도 해야 되고, 택배도 싸야 되고… 그런 어려움인 거지, 서점을 하기 때문에 어렵다? 그런 건 없어서 지금까지 했던 일 중에 (저에게) 가장 어렵지 않아요. 그래서 ‘나 서점 진짜 잘하네? 잘 선택했네’(웃음) 그런 생각을 하게 됐고, 언제까지 할지는 생각이 없어요. 근데 오히려 그게 오래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 직장에선 올해만 버틴다, 내년까지만 버틴다 맨날 그랬는데 (서점은) 그런 게 없거든요.


저희가 인터뷰이 분들께 다음 분한테 던지는 질문을 하나씩 받아보고 있어요. 그래서 은솔 님에게 던질 질문은 “본인이 일에 있어서 어떤 선택을 할 때 한 가지 기준을 세운다면 그게 어떤 건지?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예를 들어서 지금 이 공간을 운영하시는 것만 해도 전시회에서 책방으로 확장이 된 거고 이거 말고도 러브 쌤쌤과 같은 캠페인을 기획하기도 하시잖아요?

최근에 깊이 고민해야 했던 건 후암동의 서스테이너블 해빗이었던 것 같은데요. 저는 그럴 때 주변에 많이 물어봐요. 그게 사람들한테 상황을 설명하면서 스스로 정리를 한다던지, 아니면 조심해야 하는 부분에 대한 팁을 얻는 정도인 거 같아요. 이미 결정은 내려졌는데 그렇지 않은 양 행동하는 거예요. 왜냐면 두려움이랄까요? 정말 아무도 모르는 미래에 대한 결정을 해야 되니까... 근데 결국은 그 최종 결정을 내리는 요인은 제가 책을 취향으로 고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냥 저인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아니면 안 하고. 논리적으로 뭔가를 결정하기보다 “내가 하고 싶은가?”, “내가 좋은가?”가 진짜 중요해요.

어떻게 보면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의 삶은 곧 경제적 안정이라는 등가 관계에 있는 건데, 지금으로써 그 대신에 얻는 게 있다면 삶의 자유라고나 할까요?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고. 그게 무책임한 수준에서가 아니라, 내 철학에 반하는 건 하지 않겠다.


그러면 앞에서 얘기한 ‘내가 좋은가?’라는 거는 ‘지금의 내가 좋은가?’

그렇죠! 지금의 내가 좋은가?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으고 이걸 10년을 해야 10년, 20년 후에 내 상황이 좋아질 거라고들 생각하는데…

10년, 20년이 뭐야, 저는 이제 10분, 20분 뒤에도 내가 없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이다음에 인터뷰하실 분에게는 어떤 질문을 던져보면 좋을까요?

그분들도 다 스스로 선택한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할 거잖아요? 일단 힘내라고 하고 싶고, 멋있는 질문을 하고 싶은데...(웃음) 제가 예전에 F&B 사업할 때 레디밀을 이용하는 1인 가구 대상으로 인터뷰 콘텐츠를 했어요. ‘시티보이 프로젝트’라고 혼자 사는 젊은 도시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주는 거였는데, 마지막 질문이 그거였어요. 거창하게 말하자면 ‘신념이 있는지?’ 그러니까 ‘내가 삶, 직업에 있어서 마지막까지 죽어도 포기하지 못하겠다 하는 신념이 있나?’ 예를 들어서 자존심일 수도 있고 일과 삶의 균형일 수도 있고, 저녁이 있는 삶일 수 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그게 궁금해요.


은솔님은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게 뭐가 있으세요?

아까 주신 선택에 대한 질문에 연관해서도 생각해봤는데 저는 ‘하기 싫으면 하지 말자’ 더라고요. 프리랜서도 그렇고 자영업도 그렇고 다들 오해하시는 게 “넌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잖아.”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사실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게 아니라, 하기 싫은 일을 안 하면서 사는 게 아닐까? ‘나는 지옥철 타고 출퇴근하는 게 너무 싫어’ 그러면 안 하는 일을 할 수 있게끔 내 역량을 키워야 되는 거잖아요. 재택을 해도 나를 써줄 회사를 찾는다던지, 자영업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던지. 마찬가지로 러브 쌤쌤이나 책방 운영을 하면서도 나에게 반하거나 자신을 속이는 건 싫더라고요.


그렇게 살고 있나요?

저는 (그렇지 않으면) 표가 많이 나는 스타일이에요. 그게 회사생활에서는 트러블이 됐는데, 가게에서는 손님이 욕하고 나갈지언정 그 사람을 다시는 안 봐도 되는 거잖아요. 저는 평가 댓글 같은 거 하나도 안 보거든요. 싫어하는 사람들이 수고스럽게 댓글을 달지, 좋아하는 사람들은 안 달더라고요.

대신에 너무 좋은 건 4년 차가 되니까 그런 사람들은 걸러지더라고요. 나랑 좀 더 결이 맞고, 우리 서점이 어떤 가치나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데인 것 같아서 좋고. 한 명 한 명과의 인간관계도 더 깊게 쌓을 수 있는 것 같아요. ‘하기 싫은 건 하지 말고 살자’가 제 신조인가 봐요. 저희 사업자 이름이 ‘위해브노플랜’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진창에 빠지는 경우는 많으나, 행복하면 됐죠.





황은솔 대표를 닮은 공간인 낫저스트북스에는 공식 마스코트인 순돌이뿐만 아니라 임시 보호를 하고 있는 짜장이, 동네 주민이 맡기고 간 강아지가 나른하게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낫저스트북스가 어떤 공간이 되길 바라는지에 대해 '오고 싶어 지고 오면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이라고 답한 그의 곁에는 내내 강아지들이 함께였습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 ‘기쁨’, ‘행복’이란 표현을 반복하면서, 품으로 파고드는 강아지들을 다정하게 쓰다듬는 손길에서 그의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장소에서 그를 닮은 서가를 만나게 될지 더욱 기대가 되는 만남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닮은 공간을 갖고 계신가요? 이 글을 읽으면서 언제라도 찾아가 오래 머물 수 있는 안식처 같은 공간을 하나쯤 떠올리셨기를 바라며 오늘의 질문을 남깁니다.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는
나만의 신념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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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 황은솔 @notjust_books

인터뷰어 자스민 @domo

사진 김규형 @keembalance

기획 도모 임팩트 콘텐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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