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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mine Oct 23. 2022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굿피플 마케팅팀 이준희, 질문에 질문하다 #7

일곱 번째 순서로 취재하게 된 인터뷰이와의 인연은 무려 5년 전,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저마다의 이유를 안고서 길에 오른 전 세계의 사람들이 같은 목적지를 향해 걷습니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인터뷰이는 길 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동행자가 되었고, 순례길에서 이어진 여정 이후에 NGO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본인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한 걸음씩 정진하는 그 여정에 어떠한 우연들이 겹쳐 필연이 되었을지 들어보고자 인터뷰를 청했습니다.

* 인터뷰어: 도모 자스민(제스) / 인터뷰이: 굿피플 이준희(준희)




제스: 자기소개와 인사 부탁드려요.

준희: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국제 구호개발 NGO 굿피플의 마케팅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고요. 짧게 말하면,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고 싶은 마케터입니다.


제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준희: 뭔가 거창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선한 가치관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확산시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스: 현재 소속되어 있는 굿피플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해 주세요.

준희: 굿피플은 국내 NGO 고요, 1999년에 설립돼서 이제 22년 됐죠. 국제구호개발 단체로서 UN에서 2030년까지 달성하려는 SDGs(지속가능 개발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일하고 있어요. 지구촌 곳곳에서 가난, 질병, 재난 등의 상황을 지원하고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단체입니다.


제스: 구호 개발이라는 개념은 사업이나 프로젝트로 따지면 어떤 일들을 하는 거예요?

준희: 구호는 빈국 보호가 될 수 있고요. 여러 가지 사업들이 있는데, 교육이나 식수위생 사업이 될 수도 있고 굿피플에서 추구하는 가치는 지속 가능한 것이에요. 한번 일시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곁에서 한 사람 또는 한 가정, 한 마을이 자립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환경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긴급한 상황에서는 긴급 구호 사업을 하기도 하고요. (해외에서) 식수 사업, 교육 사업 등 기본적으로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들이 많은데요. 공부할 권리라든지 안전한 곳에서 살 권리 그리고 먹을 권리를 지켜주는 일들을 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비슷해요. 취약계층이나 사각지대에서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분들을 지원해 주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제스: 해외에서는 해외 지부의 형태로 운영되나요?

준희: 맞아요. 지부가 아프리카에도 있고 동남아에도 있고, 17개 나라에 24개 사업장이 있어요. 국내에서는 ‘그룹홈’을 하고 지역아동센터, 아동 보호시설 위주로 협력하고 있고요.


제스: 굿피플에서 마케팅 이전에 다른 부서에도 있었죠?

준희: 네. 국내 사업팀에 신입 직원으로 입사해서 거기서 팀장으로도 일하다가 총무팀에서도 업무를 했었고... 국내 사업팀에서 했던 업무는 복지 사각지대의 소외계층을 찾아서 수혜자를 발굴하는 작업들을 하고,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업들을 기획하고 수행하는 일들을 했었고요.

총무팀에서는, 살림이죠. 전산이라든지 물품 관리, 이런 회사의 살림들을 도맡아 했었고. 지금은 마케팅 부서에서 저희가 기획한 사업들을 기업에 제안하기도 하고, CSR이라든지 주로 기업과 소통하는 일들을 많이 하고 있어요.


제스: 그중에서 가장 재미있거나 적성에 맞다고 생각한 부서는 어디인가요?

준희: 지금 일하는 마케팅 부서가 재밌어요. 일단은 이해관계자들을 만날 일이 굉장히 많아요. 기업의 이해관계자도 만나야 되고 수혜자를 직접 만나기도 하거든요. 대개 기업의 니즈와 수혜자의 니즈가 다른데 중간에서 논의하고 협업하는 과정들도 재밌고,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하고 소통하는 게 제게 잘 맞는 것 같아요.



준희: 기업에서는 사실 저희 단체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사회공헌 활동들이 있는지를 잘 모르거든요. 그래서 우리 단체에서 정말 좋은 일들을 해, 이렇게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할 수 있어, 하면서 설득하고 제안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보람이 느껴져요. 사람들이 몰랐던 걸 알 수 있게 해주는 과정.


제스: 아무래도 CSR이 지속적으로 화두가 되었고 최근에 특히 대기업을 중심으로 ESG 경영에 초점을 맞추고 더 노력하고 있는 만큼 시기적으로도 더 재미있고 많은 경험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준희: 기업에서 먼저 다양한 제안이 오기도 해요. 얼마 전에는 울진에서 산불이 났었잖아요. 그러면 나무 심기 방향으로 역제안이 들어오기도 하고요. 그래서 사회 이슈나 트렌드에 예민해야 되는 부분인 것 같아요.


제스: 마케팅 부서가 아니어도 진행했던 일들 중에서 소개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있을까요?

준희: 많죠. 일단 롯데칠성음료라는 회사에서, 보행이 불편한 아이들에게 특수 신발을 제작해 주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어요. 그런 아이들은 일반 신발은 사이즈가 맞지 않거든요. 그래서 아이의 발에 맞게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신발’을 만들어주는 사업을 했어요. 또 9월에 ‘히어로 레이스’라는 대표적인 행사가 있어요. 마라톤 대회인데 참가비 전액을 희귀 질환 아이들을 위해서 의료비로 쓰는 사업으로 의미가 있죠.

전에 사업 부서에 있었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돼요. 마케팅 부서에만 있으면 수혜자를 만날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거든요. 사업 부서에서 수혜를 입는 대상자들을 만나고 어떤 점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안 다음에 마케팅으로 오니까 기업에 설명하기도 수월한 것 같아요. 기업에서 원하는 니즈가 있고 그 대상자가 원하는 니즈가 있는데 중간에서 조율하는 과정들이 굉장히 의미 있는 것 같아요.


제스: 원래 이렇게 직무가 순환 보직이 되는 구조예요?

준희: 맞아요. 저도 2년마다 순환을 한다고 듣고 뽑혔어요.



제스: 이제 사회생활을 NGO에서 시작하게 되었는데, 우연한 계기가 아니라 본인이 계속 관심이 있고 희망하는 부분이 있어서 연결된 거라고 예상되는데 어떤 부분이 있었을까요?

준희: 결국에는 누군가를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은 이전부터 있었어요.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누군가를 도와줄 때 제가 느끼는 보람이나 가치가 컸던 것 같은데, 돕는 형태가 다양하잖아요. 대학생 때는 마음을 치료하는 일을 하고 싶다 해서 상담을 전공했고요. 심리 공부를 했었는데, 그만큼 사람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서 여러 가지 대외 활동도 했는데요. 선한 가치관을 확산시키는 일을 하고 싶고 긍정적인 변화를 주도하는 게 뭐가 있을까 하고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목소리를 내는 역할들을 했었고.

대학교 졸업할 때쯤에는 고민이 많았어요. 이제 직업을 가져야 되는데, 당연히 모든 일이 가치 있는 일이지만 조금 더 내 가치관에 부합하는 일이 어떤 게 있을까 하는 고민이었던 것 같아요. 졸업할 때 되니까 굉장히 조급 해지더라고요. 친구들은 다 취업하고, 저는 휴학도 해서 남들보다 늦은 게 아닐까 고민하다가…

세계일주를 하면서 느꼈던 부분들을 주변에 이야기하고 어떤 쪽에서 일하면 좋을까 하니까 누군가 NGO에 대해서 알려줬거든요. 누군가를 돕는다는 점에서 내가 원하는 가치관하고 부합하지 않을까 해서 잘 맞을 것 같았어요.


제스: 저는 마케터로서 (상대의 말을) 잘 듣고 좋은 질문을 해서 숨은 맥락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거든요. 상담을 했던 경험 자체가 잘 들어줘야 되는 일이다 보니, 꼭 마케팅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을 계속 만나는 일에서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준희: 진짜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전공을 살리지는 않았지만 결국에는 다 사람 관계에서 하는 것들이 많고 사람에 대한 이해나 관심이 있어야 시작하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되더라고요. 마케팅도 결국엔 사람에 대해서 얼마나 관심이 있고 이해하는지에 따라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제스: 업무적인 부분을 조금 더 물어보자면, 이제 그런 생각을 가지고 NGO에 왔는데 일을 시작하기 전에 기대했던 점은 무엇이었고 실제로 일을 하면서 새롭게 들었던 생각이라든지? 변화를 한 부분도 있을 수 있고요.

준희: 처음에는 NGO에 대해서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일단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도 정확히 몰랐고 그냥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지, 이런 열정 하나로 쉽게 생각한 부분들도 있었고.


제스: 봉사활동처럼요?

준희: 네, 그렇죠. 그래서 제가 NGO를 가면 뭔가 큰 프로젝트를 해서 엄청난 변화를 이끌어보겠어, 이런 마음으로 들어갔던 것 같은데 막상 입사를 하니까 이상향으로 생각했던 거랑 현실에서 괴리감도 느꼈던 것 같고요.

단순히 NGO가 봉사를 하는 단체가 아니고 행정 업무를 수반하고 또 봉사를 할 수 있도록 기획하고 예산을 집행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일련의 과정들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을 못 했었죠. 하나의 사업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소통이 필요하고 협업도 해야 되고 주도하든지 서포트하는 역할들도 해야 되는데, 여러 과정들에 대해서는 생각을 못 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기본적으로 행정 작업도 알아야 되고 수혜자를 도우려면 거기에 관련된 정책이나 법에 대해서도 공부해야 되고 사람을 설득할 수도 있어야 되고. 그런 과정 하나하나를 다 해야 사업이 이뤄지는구나, 이런 점이 막연하게 생각했던 거랑 다른 것 같아요. 실제로 일해 보니까 정말 많은 손이 들어가는구나…



제스: 내부에서도 다른 부서들이랑 굉장히 긴밀하게 협업하겠네요.

준희: 맞아요. 주로 마케팅 부서하고 사업 부서하고 많이 하고요. 또 홍보를 하려면 디지털 미디어나 커뮤니케이션 팀도 있고. 부서가 굉장히 다양해서 사업 부서도 해외 사업이 있고 국내 사업, 후원자분들하고 소통하는 회원 사업 부서가 있는데요. 저희는 NGO이고 비영리 단체니까 100% 후원금으로 운영되거든요. 그래서 후원자분들과 소통을 하는 부서가 있어요.


제스: 저도 NGO랑 협업해 본 경험이 있는데, 후원금으로 운영하다 보니까 예산 집행하는 데 있어서도 내부 규정이 까다로운 것 같더라고요. 예민한 문제이기도 하고.

준희: 후원자분들은 정말 필요한 곳에 쓰일 거라고 신뢰하고서 저희한테 주시는 거예요. 그러니 조금이라도 신뢰가 무너지면 굉장히 큰 타격이고 NGO의 의미가 없어지겠죠. 그만큼 상황을 까다롭게 봐야 되고 그런 부분에서 예민하게 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제스: 그 부분이 어렵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하고 근간이 되는 부분인 것 같아요. 그러면 굿피플에서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경험을 꼽아볼 수 있을까요?

준희: 사업 부서에서 좀 오래 있었거든요. 사업 부서는 최전선이라고 해요. 이제 수혜 대상자를 직접 만나서 소통하는데 그때의 기억이나 경험이 굉장히 인상 깊게 남았어요.

예전에 국내 사업팀에서 서울시 공모 사업에 선정됐는데 시각장애인 분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는 거였어요. 시각장애인분들하고 일반인 분들이 같이 사진 교육을 받고, 출사를 한 다음에 사진전을 개최하는 프로젝트성 사업이었는데요.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맡아서 진행한 첫 사업이다 보니까 기억에 많이 남고.

그때 ‘그냥 보기에 좋아 보이는 사업이 아니고 수혜자 입장에서 여러 번 고민하고 사업을 잘 기획해야겠구나’라는 걸 많이 느꼈어요.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여러 실수를 하기도 하고, 제가 좋아하는 부분도 느끼면서 진짜 신중하게 해야겠다, 많이 생각하고.

그리고 아까 말했던 특수 신발 지원사업 같은 경우는 사업 결과를 모니터링하고 신발을 만들 때 직접 가서 보기도 해요. 영상 제작도 하고 수혜자 부모님들을 만나기도 하고. 이제 모니터링 겸 보러 갔는데 제작 과정에서 아이의 보호자분이죠, 어머니랑 아버지께서 눈물을 흘리면서 아이한테 신발 하나를 제대로 해주는 게 어려웠는데 너무 고맙다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여러 번 받았거든요.

그럴 때마다 내가 하는 일이 진짜 의미 있구나, 가치 있는 일이구나 하고. 평상시에는 거의 사무실에서 문서 작업들을 하는데 그 작업들이 헛되이 보내는 시간이 아니구나 많이 느끼게 돼요.


제스: 일을 하다가 감동을 받아서 운 적도 있나요?

준희: 있죠. 지원 사업을 하면 감사 편지를 받아요. (수혜) 아동이 직접 써주기도 하고 아니면 보호자분께서 써주기도 하고요. 아니면 저희가 지원을 다 해줄 수는 없으니까 (대상자를) 선정하려고 사연을 읽어보면 정말 도움이 필요한 곳이 너무 많은데 다 못 도와주는 게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그때 마음이 좀 그렇죠. 그래서 이런 사업들을 더 잘 알려야겠다.


제스: 본인 성향이랑 잘 맞는 일인 것 같아요. 일하면서 동기부여가 되는 부분들도 그런 점일까요?

준희: 일에 대한 의미. 일단 제가 일을 할 때 그게 동기부여죠. 그래서 동기부여가 잘 안 되면 이걸 왜 해야 되지? 그런 질문을 스스로 계속하고. 지금 이 일을 왜 하는 건지, 뭘 위해서 하는 건지, 그래서 앞으로 어떤 걸 할 건지, 이런 질문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답이 나올 때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거든요.

저는 인정에 대한 욕구가 큰 사람이어서 일을 할 때 다른 사람들한테 인정을 받는 것에서 힘이 났었는데, 지금은 가치관하고 (실제로) 하는 일이 같은 방향성으로 가는 것 같아요. 내 삶의 방향성하고 일이 통합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일하다가 번아웃이 된다든지 해도 좀 덜 지치는 것 같아요.


제스: 이 질문은 뒤에서도 자세하게 다룰 건데 혹시 앞에 경험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지 않을까 해서 여쭤봤습니다. 간략하게 얘기해 주시긴 했는데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만나잖아요. 그러면 그분들이 주로 어떤 사이트에 있는 사람들인지, 독자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조금 더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준희: 사업 부서에 있을 때는 지역아동센터에 있는 선생님들하고 소통을 하고요. 거기 아이들을 위한 그룹홈의 선생님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병원마다 사회사업실이 있거든요. 그런 담당자를 통해서 소통할 때가 많아서, 수혜기관 담당자들. 지금은 기업 CSR 부서에 사회공헌 활동을 제안하기도 하고, 기업의 마케팅 부서랑 소통하는 경우도 있고요. 지금은 거의 기업 분들하고 소통을 많이 하고 있어요.



제스: 보통 사회생활 3년 차마다 고비가 온다고들 하잖아요. 요즘에는 이게 더 짧아졌대요. 3개월, 6개월, 9개월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그게 정말인가요? (웃음)

준희: 그런 것 같아요. (웃음) 주변 친구들 이야기나 기사 같은 걸 봐도 1년이 넘으면 퇴사율이 굉장히 높고... 저는 여기가 첫 면접, 첫 사회생활이라 완전 처음이거든요. 다른 비교 대상이 없어서 더 궁금한 부분도 있어요.

2018년 10월에 입사했으니까 벌써 어느덧 4년 차예요. 아까 말했던 것처럼 입사할 때만 해도 ‘국제 구호개발단체에서 뭔가 대단한 일을 할 거야’ 하는 자신감이 넘쳤어요. 여행도 다녀왔었고, 엄청난 프로젝트를 해서 세상을 바꿀 만한 일을 할 거야, 이런 열정도 넘치고. 처음에 별명도 열정맨이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야근도 하고, 심리적인 탈진이라고 하나 무기력이 오기도 하고 굴곡이 있던 것 같아요. 그런 시기가 왔을 때 내가 왜 일을 하고 있는지, 내가 하는 일의 진정한 의미가 뭔지, 그런 질문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일이 너무 힘들면 스스로에게 어떤 게 동기부여가 되는지도 잘 모르잖아요. 저한테는 동기부여로써 그 의미가 중요하다 보니까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를 끊임없이 돌아보고. 일기를 쓰거든요. 그래서 입사했을 때 기록들을 쭉 봤어요.

찾아보니까 사원증을 받은 것만으로도 너무 감격스러웠고… 일에 있어서 회사에서 의미 부여를 해주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결국에는 나의 삶과 나의 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를 내가 고민하고 만들어 가야겠다는 생각을 계속했던 것 같아요.

의미 부여는 사람마다 다 다르겠죠. 누구에게는 지켜야 되는 신념이 있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지켜야 되는 가정이 있을 수도 있고. 근데 제가 직장 생활을 견뎌내고 굴곡을 겪으면서 일에서 진정으로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가치가 있는지 보면, 수혜자분들을 만나는 일들이 제가 원했던 삶의 방향성하고 동일하거든요. 저는 그런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싶었고, 그게 일치하니까 그 방향을 믿고서 묵묵하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 마냥 아무것도 모르고 열정만 가지고 했던 때랑은 많이 달라진 것 같고.


제스: 일에서 겪었던 고비나 굴곡이 NGO에서 일한다는 것에서 오는 고민이었던 점도 있어요? NGO의 특수성에서 오는 고민이라든지?

준희: 두 가지 고민이 다 있었던 것 같아요. 현실적으로는 급여 부분도 있죠. 장기적으로 봤을 때 먹고살 수 있는 직업인지. 그런 점에서 NGO는 아무래도 약하니까요. 방향성이나 가치만으로 직업을 (선택)하는 게 맞을까 고민도 했던 것 같고.

그리고 직장이다 보니까 NGO에서도 내가 가진 강점만 가지고 일할 수는 없거든요. 약점도 보완해야 되고 문서 작업도 잘해야 되고 하는데, 팀장이 되면서 저의 부족한 부분들이 확 보이는 거예요.

앞으로 커리어를 생각했을 때 어떻게 전문성을 쌓아야 되지? 명함에서 회사명이 빠졌을 때 나의 전문성에는 어떤 게 있을까? 그런 고민들을 3년 차 될 때쯤에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결국에는 NGO에서 나의 어떤 강점을 살려서 미래를 그려야 될지 스스로한테 계속 질문했던 것 같아요.


제스: 저도 산티아고 순례길에 갔다 왔던 즈음에는 조금 의식적으로 앞으로의 계획들을 세우기도 했던 것 같아요. 언제까지는 계속 이 일을 해봐야지 하고, 다음에는 이 안에서 내가 안 해본 일을 해봐야지, 이런 고민들을 했었던 것 같은데… 혹시 앞으로 예상하는 타임라인 같은 게 있어요? 예를 들어 앞으로 3년, 5년, 10년은 NGO에서 더 일을 해봐야지, 이런 계획.

준희: NGO에서 평생 해야죠. (웃음) 사실 고민이 되긴 해요. 어딜 가도 저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곳에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어요. 지금 제가 있는 굿피플에서는 제 가치를 인정해 주고 강점을 잘 살릴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지금까지 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스: 그러면 이제 일을 하는 사회인의 관점에서 얘기해볼 건데, 일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한 가지 꼽아 볼게요. 이건 앞으로의 스텝을 결정할 때에도 크게 영향을 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만약에 ‘나는 돈이 제일 중요해’ 하면 NGO에서 일하는 것과는 다른 가치인 거겠죠. 일에서 절대 놓칠 수 없는 한 가지가 뭘까요?

준희: 저는 다른 사람한테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초점이 큰 것 같아요. 내가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하지는 못할 것 같거든요.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행복감을 주고, 조금 더 잘 살 수 있게 도와주는 일. 그런 일들을 계속하고 싶어요. 최소한의 갖춰야 될 권리들을 가지고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주는 일이라고 해야 되나?

단순히 먹을 걸 주고 이런 게 아니고… 아이들 같은 경우는 최소한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고,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거든요. 사회적 약자라든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분들한테 마음이 조금 더 가는 것 같고. 그런 사람들을 도와주고 입장을 대변해서 이야기하는 거에 관심이 많아요.


제스: 그러면 본인의 역할이랄까,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길 원하는지?

준희: 직장을 떠나서 사람(관계)에서도 그렇고 일에서도 그렇고, 세상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혁신적인 변화가 아니어도 어제보다 조금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게 저의 비전이에요. 조금이라도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준희: 그게 제 일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직장 내에서나 친구들 관계에서 무심결에 던지는 말 한마디가 될 수도 있고. 무의식 중에 나오는 저의 행동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제가 하고 있는 사업들이 될 수도 있고... 그런 게 다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일기를 쓰고서 내가 혹시 실수를 하진 않았을까? 다시 회고하는 것 같아요.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었는데 지금 하는 마케팅 업무를 통해서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싶고요.


제스: 굿피플의 비전*과 연관돼서 계속 인지하고 되새기는 부분도 있을까요?

*굿피플의 비전: 굿피플은 지속가능 개발목표(SDGs) 중 빈곤과 기아 종식, 건강한 삶과 양질의 교육 보장에 가장 앞장서는 NGO가 된다.

준희: 맞아요. 제가 입사했을 때도 동기들하고 얘기할 때 내 삶의 가치관이랑 비전이 굿피플이랑 똑같다고 얘기했었거든요. 농담이긴 했지만 진짜로 그런 면에서 행복감이 컸어요. 굿피플에서 하는 일이 소외된 이웃이 없이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거고. 저는 다른 사람을 돕고 그 사람들이 행복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니까요.



제스: 본인의 일상이나 삶에서 일이 차지하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준희: 우리가 처음에 사람을 만나면 이름을 물어보거나 ‘무슨 일하세요?’ 하고 묻잖아요. 그게 그 사람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방식 중에 하나이지 않을까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내가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건 싫어하건 상관없이 정말 중요하구나, 앞으로의 선택이나 미래에 있어서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요즘에 워라밸을 많이 이야기하잖아요. 일을 많이 하게 되면 삶이 줄어든다는 식으로, 일하고 삶을 분리하고 물리적으로 떼어져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이거든요. 예전에는 일이 끝난 후에 나의 삶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따로 떼서 생각하기보다는 삶의 한 부분 중에 중요하게 차지하는 게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삶의 방향성하고 일의 방향이 같으면 (일과 삶이) 통합될 수 있겠다, 저에게 일의 의미는 제 가치관하고 부합하는 거고. 스스로도 질문을 해봐요. 지금 하는 일이 내가 추구하는 가치나 이루고자 하는 것에 얼마나 부합하고 있나, 같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나 아니면 중간에 샛길로 빠졌나, 이런 것들을 계속 질문하려고 해요. 자기 이름 보다도 여기서 하는 일을 통해서 나의 정체성이나 삶, 가치관이 이야기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스: 그러면 일로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어요? 외적인 부분일 수도 있고 내적인 목표일 수도 있고. 예를 들어서 나는 이 일을 하면서 어떤 전문성을 가지는 사람이고 싶다든지 혹은 가시적으로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 이런 걸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겠죠.

준희: 지금은 마케팅 부서에 있으면서 이루고자 하는 게 될 수 있겠네요. 저희는 어쨌거나 기부나 후원을 받는 입장이니까 이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를 사람들한테 잘 알려주는 게 저의 목표예요.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런 울림이 오래 가게…

요즘에 기부하는 추세가 점점 떨어지고 있거든요. 기부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지고 관심도 많이 없어지다 보니까. 그런 걸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기부가 왜 필요한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게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를 알리고 싶어요. 마케팅적으로 전문가가 돼서 그런 걸 하고 싶어요.

일단 그러기 위해서는 사업에 대해서도 전문가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NGO에서 국제 구호개발 사업이라든지 사람들을 돕는 일들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알아야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에는 사업하고 마케팅, 둘 다 가지고 가야 되지 않나 생각해요.


제스: 그러면 이렇게 소속된 집단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예를 들어서 지금은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고 있는데 나중에 학교를 짓고 싶다는 분도 있었어요. 인생을 알려주는 학교, 이런 식으로 진짜 자기의 꿈같은 거죠. 그런 게 있을까요?

준희: 학교! 방금 제가 생각한 걸 읽힌 줄 알았어요. (웃음)

 


제스: 학교라 하면 어떤 것에 주안점을 둔 곳일까요?

준희: 우리나라에서는 좀 덜할 수 있지만,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굉장히 많이 있거든요. 제가 세계 일주하다가 느낀 부분이랑 연관이 있는데…

NGO 쪽으로 딱 마음을 먹게 된 게 모로코에서였어요. 사하라 사막에서 원래 계획보다 좀 오래 있어서 한 2-3주간 유목민들이 생활하는 데에 있었는데요. 아이들이 사막 가운데서 한 줄로 쭉 무릎을 꿇고서 구걸을 하는 거예요. 그게 하루 일과였어요. 관광객 오는 시간에 나가서 구걸하고 먹을 거나 돈을 받아 오는. 저는 하루 이틀이 아니라 매일 그걸 보고 안타까운 거예요.

‘왜 하루 종일 저기에서 구걸을 하고 있나, 학교에 갈 수도 없나 보다’ 생각했는데 얘기해 보니까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나라에서 교육비 지원도 나오는데 학교를 가게 되면 돈을 벌 사람이 없고 먹을 것을 구할 수가 없대요. 그래서 당장 내일 먹을 게 걱정이기 때문에 부모님이 학교를 보낼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이 안 되다 보니까 교육까지 생각을 못 하고… 교육 정책 같은 것도 탁상공론에서 나오는 게 아니고 현장에 답이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때 청년들이랑 꿈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는데, 역시 먹고사는 문제가 힘들고 아랍권에서는 여러 가지 제약이 많다 보니까 빨리 돈을 많이 벌어서 다른 나라로 떠나는 게 꿈인 거예요. 그런 게 아이들한테도 당연히 대물림될 거고.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얼마 후에 거기에서 바로 뉴욕을 갔는데, 너무 극명하게 빈부 격차가 대비되는 순간이었어요. 그때 매일 먹을 게 없어서 구걸하고 교육을 받지 못했던 아이들이 생각나면서…

그 아이들한테는 선택권이 없었거든요. 그냥 태어났는데 주어진 환경이었던 거고, 그건 너무 불공평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국내가 되었든 해외가 되었든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너무나도 많이 있는데 최소한의 사람으로서 먹고살 수 있고, 꿈이라든지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는 환경은 조성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제스: 일을 시작하게 된 게 본인의 가치관에서 비롯되었다고 했을 때 그럼 이제 어떻게 형성되었고 또 어떤 계기들이 있었는지 궁금했어요. 세계여행을 가게 된 계기도 있었나요?

준희: 대학교를 졸업하고서 세계 여행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이유는 로망 같은 게 있었어요. 다른 나라에서는 나와 똑같은 나이대에 어떤 행복감을 느끼는지 또 어떤 고민을 하면서 살아가는지가 궁금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학교 졸업할 때가 되면 바로 취업을 해야 되고 취업하면 결혼을 해야 되고 집 사야 되고… 뭔가 공식처럼 정해진 게 있었는데 막연하게 그대로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아직 잘 모르는데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조금이라도 더 스스로를 알아보는 시간일 거고. 세상이 넓다고들 하는데 한번 나가서 구경도 해보고 싶었고. 그래서 졸업하고서 건설 현장에서 숙식하면서 비용을 마련해서 적은 비용이지만 세계여행을 시작했어요.



준희: 결국에 여행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어떤 것에서 행복함을 느끼고 고민을 하는지, 사람 사는 게 다 똑같구나 느낄 때도 있었고, 매일 눈 뜰 때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또 내가 계획했던 게 다음 날이면 쓸모가 없어지는 경우에 순간순간 대처할 일들도 많이 생기고... 제가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도 아니라 어려운 것들이 많이 있었죠. 도움도 굉장히 많이 받았고.

그리고 여행하면서 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많이 알았어요. 평상시에는 다른 사람에게 맞췄다면 온전히 나한테 집중할 수 있는 시간들도 있었고 내가 이런 걸 진짜 못하는구나, 아니면 이런 걸 진짜 싫어하는구나,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는 시간이 의미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나름 한국에서는 여러 가지 활동들을 하면서 경험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좁은 곳에서 편한 사람들만 만나면서 좁은 시야로 살고 있었구나 하고 편협한 생각이 조금 녹기 시작한 것 같아요. 정말 다양한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너무 멋진 사람들도 많고, 각자의 다양한 삶이 존재하는구나. 그런 걸 느끼면서 굉장히 좋았어요.

내가 지금까지 확신하고 있는 게 언제든 틀릴 수도 있다, 이런 생각들도 그때 많이 느끼게 됐고. 그걸 인정하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배운 게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부분들도 너무나도 많다, 그런 걸 느꼈던 것 같습니다.


제스: 실질적으로 여행한 기간이?                    

준희: 8개월 정도. 원래 계획보다는 좀 짧아졌어요. 계획을 너무 대충 세워서 그런지 다 가지는 못했었고...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만난 사람들에게) 고마웠고 또 가고 싶어요.     


제스: 아까 여행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들도 얘기해 줬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어떤 게 있었어요?

준희: 페루인가 칠레에서였는데, 아침에 타야 하는 버스를 예약해놨었어요. 근데 아침에 일어나니까 시간이 지난 거죠. 버스를 놓쳐서 돈만 날리고 기분도 별로였어요. 그래서 다음 버스를 타고서 갔는데, 굉장히 오래 버스를 타고 쭉 내려오는 길이었거든요. 그렇게 도착하고서 숙소에서 외국인들이랑 이야기하다 알게 된 게… 제가 타려고 했던 버스가 절벽에서 떨어졌다는 거예요. 추락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고…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엄청 충격이었죠. 지금도 목이 메는데…

내가 계획한 대로 되지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고, 진짜 언제 죽을지도 모르겠구나 이런 생각을 확 느꼈던 것 같아요. 조금 지나고서 생각했던 건 ‘좀 더 표현하자’. 주변 사람들한테 오늘 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 더 표현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더 하려고 노력하고. 그런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준희: 그리고 산티아고(순례길)도 있었고. 산티아고는 제가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가야겠다 해서 일정에서 무리해서라도 꼭 가고 싶었던 곳이고. 걷기 전에는 (순례길에 관련된) 영상 같은 걸 보고서, 엄청난 깨달음이라든지 삶의 고민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막연하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같이 걷다 보니까, 혼자 걷지를 않았거든요. 같이 걷다가 떨어져 걷기도 하면서… 한 40일 걸었나요? 걸으면서 만나는 사람들, 또 자연 풍경들도 너무 좋았고 소소한 것에서 굉장히 행복감을 느끼기도 했었고,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기분이 상하기도 했었고.

굉장한 의미를 찾거나 깨달음을 얻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제 감정을 온전히 그대로 느낄 수 있었어요. 그래서 산티아고는 살면서 여러 번 또 가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세 번은 가고 싶은데. (웃음)


제스: 이다음에 언제 다시 가야겠다는 계획이 있어요?

준희: 결혼할 때 신혼여행으로. 큰 계획입니다. (웃음) 여행하면서 어느 지역이라기보다 사람에 대한 기억들이 굉장히 많이 남았어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도 그렇고 항상 도움을 받으면서 다녀가지고…

제가 길치거든요. 그래서 길도 많이 물어보고, 기차역을 몰라서 길을 물어봤을 뿐인데 차 타고 가던 사람이 시간 없다고 차를 돌려가지고 기차역까지 태워주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

어디서는 인종차별을 당했었어요. 아마 모로코였던 것 같아요. 근데 다른 사람이 저 대신에 화를 내주는 거예요. 화내면서 하지 말라고 해주고 자기가 미안해하고. 저 사람들이 인종 차별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고 그런 것에 대해서 아직 잘 몰라서 그런 거다, 이런 얘기도 해주고. 그 사람이 저를 집으로 초대했어요. 저녁을 대접받기도 했었고.

여행하면서도 날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한테 정말 많은 도움을 받은 게 고맙고 모든 게 내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구나, 또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서 한다는 건 살아가면서 불가능하겠구나 이런 생각들이 많이 들었거든요. 너무 많은 사랑을 받은 거죠.

그래서 포르투갈에 넘어갔을 때, 내가 조금이라도 돌려주고 베풀어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나랑 아무 관련 없는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썼어요. 그리고 빵이랑 포장을 해서 노숙자분들에게 나눠주면서 간단히 이야기를 나눴는데 가장 잊지 못하는 크리스마스 중에 하나예요. 굉장한 게 아니어도 누군가에게 베풀면서 사는 것에 대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직업적으로도 뭔가 베풀 수 있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면은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얻는 행복감보다 더 크고 가치 있는 일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제스: 여행을 하면서 NGO에 대해서 알게 됐다고 했잖아요. 그 얘기도 조금 듣고 싶어요.

준희: 여행을 하다가 NGO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어요. 그 사람들이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거예요. 그때는 와 진짜 멋있다 하고 그냥 넘어갔었죠. 한국에 와서 그때 생각이 나기도 하고 내가 NGO에서 가치 있는 일을 통해서 돈을 벌고 그런 걸 알리는 일을 하면, 나도 행복하고 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도 행복감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일로써) 남들의 행복과 동시에 나의 행복도 추구할 수 있겠구나.



제스: 그러면 일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이나 삶에서 추구하려고 하는 가치도 있을까요? 일을 통해서는 내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 추구하는 지점이라면.

준희: 굉장히 흔하고 진부한 대답인데 사랑이라는 단어로 잘 표현되더라고요. 용기인가, 행복감인가, 여러 가지를 생각해 봤는데 결국에 함축해서 표현할 수 있는 건, 사랑이라는 단어 안에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자로 ‘사랑 애’ 여기에 아낀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세계 여행을 하면서 느낀 세상을 사랑하는 것, 아니면 내가 살아가는 지구의 환경을 사랑하는 것. 이런 것들을 아낀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데 내가 세상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행동들이 나올 수 있고.

저는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는데… 어떻게 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사랑하는 건 쉬울 수 있겠다, 이런 생각도 들었고. 한편으로는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것들을 테레사 수녀님처럼 모두 사랑할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들을 사랑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가치를 가지고 내가 살아갔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만약 하기 싫더라도 방관하기보다는 용기 있게 하는 것도 사랑 중에 하나일 수도 있고, 어떤 걸 지키기 위해서 비판해야 될 때에 행동하는 것도 하나일 수도 있고. 사랑 안에서 모든 걸 최대한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제스: 얘기한 것처럼 사랑이라는 게 꼭 어떤 인물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것일 수도 있는데, 그런 지점에서 가장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이슈도 있어요?

준희: 최근에 가장 관심이 가는 건 환경이고요. 지속적으로 관심이 있었던 건 사람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요. 우리나라의 갈등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시대는 발전하는데 고독사 문제라든지 소외되는 이웃들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근에는 장애인 교통권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아무래도 약자들은 본인의 목소리를 대변하는데 더 많은 힘이 들어가고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관련 정책에도 관심이 많이 생기는 것 같고요. 그런 문제를 예방하려면 뭘 해야 할까, 그런 것에 관심이 많이 가요.

제가 있는 분야인 NGO에서 옹호하는 부분이기도 하니까 결국엔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듣는 일에 관심이 많이 가는 것 같아요.


제스: 그리고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에 대해서도 종종 생각해 본다고 했는데,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준희: 생각할 때마다 바뀌기는 하는데 결국엔 ‘좋은 사람’이거든요. ‘굿피플’인 건데…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요. 나이만 어른이 되는 게 아니고 제가 살아오면서 겪은 다양한 경험들을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한테 얘기해 줄 수 있고, 인간미 있는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예를 들어서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 사람, 고민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기쁜 일이 있을 때, 아니면 (슬플 때) 같이 울어줄 수 있는 존재가 됐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다른 것들을 많이 인정하고 이해해야 하는데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제 경우엔 가족들을 이해하는 것도 굉장히 어려웠는데 이해까지는 못 하더라도 다른 것을 인정하고 최대한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바다를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바다 가서 멍 때리는 것도 좋아하고 물에서 노는 것도 엄청 좋아해서, 답답할 땐 그냥 바다에 가기도 하고… 바다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크게 포용하고 수용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있어요.


제스: 본인이 생각하는 좋은 어른이 그런 모습인 거죠?

준희: 맞아요.



제스: 이전에 인터뷰를 하신 분께서 남긴 질문이 있어요. 정확한 워딩은 ‘환경에 무해한 방식으로 본인의 일을 풀어갈 수 있을까요?’인데… 질문대로 환경에 무해한 걸 수도 있고 조금 더 관점을 넓혀서 “사회나 타인에게 무해한 방식으로 본인의 일을 풀어갈 수 있을까요?” (by 나투라프로젝트 신지혜)

준희: 예전에는 무심코 하는 행동들이 굉장히 많았거든요. 환경적인 부분에서는 책이나 매스컴을 통해서 조금씩 알아가면서 일회용품을 쓰는 거라든지 (행동을) 조심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그런 불편을 감수하면 조금이나마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알맹 상점이라는 곳에서 샴푸를 리필해 본다든지, 조금씩 해보고 있어요. 회사 차원에서는 콩기름으로 인쇄를 하거나 이면지를 활용하는 것들.

예전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쓰는데 나 하나가 덜 쓴다고 뭐가 달라지겠어하는 생각이 컸어요. 그런데 책을 읽고 또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서 느끼는 게, 내가 조금 더 건강한 소비를 할 필요가 있겠구나. 소비할 때도 불편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결국에 이것도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곳을 사랑하기 때문에 제가 누리고 있는 것들을 다음 세대도 더 잘 누렸으면 좋겠고, 그러기 위해서는 환경이 보전되고 지속 가능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제가 하는 일은 후원금을 가지고 수혜 대상자들을 돕는 일을 하잖아요. 근데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지고 한다고 해서 100% 의도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굉장히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의도가 좋더라도 효율성을 잘 따져보고 하지 않으면 원금이 잘 사용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무해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려면 감정적으로 하는 것보다 조금 더 냉철하게 하는 부분이 필요하겠구나.

제가 하는 일에서는 그런 부분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후원금을 조금 더 건전하게 쓰는 것. 이걸 통해서 대상자가 어떤 식으로 더 좋은 삶으로 변할지를 생각하는 거죠.


제스: 어떻게 보면 NGO라는 단체의 특성상 설립되는 취지나 운영되는 방향성이나, 기존의 기업들이 이윤 창출이 중요한 목표라면 NGO는 조금 더 무해한 방식으로 운영되는 단체라는 생각은 들어요.

준희: 맞아요.




흔히 마케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라고도 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을 돕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삶의 가치관에 따라 일에서의 성장을 도모하는 이준희 마케터와의 대화를 마치고, 저 역시 한 사람의 직업인으로서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길을 가늠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이준희 마케터가 스스로를 향해 던져본다는 질문으로 ‘질문에 질문하다’를 마무리합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인터뷰이 이준희 @hey_jjunhee​

인터뷰어 자스민 @domo​

사진 김규형 @keembal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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