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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mine Nov 06. 2023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자스민의 중고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룻밤 사이에도 여러 차례 꿈을 꾼다. 꿈 속에서 나는 전쟁 한복판에서 쏟아지는 포탄을 피해 웅크려 있기도, 끝이 보이지 않는 미로 사이에서 내 몸집보다도 큰 새에게 쫓기기도 한다. 물론 주변 사람들이 등장하는 일상적인 풍경이 펼쳐지는 경우도 있다. 회사를 배경으로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시달리면서 마주친 동료들에게 대책 없는 하소연을 하다가 꿈에서 깨는 날도 있다. 현실과 맞닿아있는 꿈은 오히려 비현실적인 감각을 안겨준다. 떠지지 않는 눈을 꿈뻑이면서 아직 꿈 속에 몸을 뉘인 건 아닌지, 시간의 흐름을 가늠해본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현실적인 꿈이 안겨주는 비현실적인 감각처럼 낯설다. 문학적인 용어로는 ‘불친절’하다. 범상치 않은 제목을 강조한 포스터 한 장과 파편적인 장면들의 예고편만 보더라도 작품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는 관객들에게 지브리에 거는 기대를 거두게 하는 게 의도라면 의도랄까. 오히려 영화 속의 상징적인 요소들과 숨은 의도를 해석하려는 시도들이 눈에 띄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


그래서 더욱 스토리라든지 의미에 대해서 자의적인 해석을 보태거나 작화나 만듦새에 대한 평가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객석의 한 자리를 차지한 나와는 닮은 구석이라곤 없는 것 같으면서도 묘한 동질감을 안겨준 영화 속 주인공, ‘마히토’라는 소년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보도스틸 | 제공: 메가박스중앙㈜


마히토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표면적인 주인공이다. ‘표면적’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관객들이 으레 짐작하고 기대하는, 그것도 지브리의 주인공이라기에는 썩 어울리지 않는 애티튜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마히토의 눈빛에는 소년 특유의 호기심이 일지도 않고, 매사에 의중을 알 수 없는 일관된 태도를 유지한다. 마치 감정이 거세된 인형 같기도 하고 인생의 풍파를 겪은 노인 같기도 한 눈빛으로 세상을 관망할 뿐이다. 천진난만함을 잃은 소년의 겉모습은 어딘지 쓸쓸해 보인다.


짐작하건데, 그 내면은 모순으로 가득한 세상을 떠안고 있는 게 아닐까. 아직 어른이 아닌 것 같으면서도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듯한 생경함. 아이의 시선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훗날에서야 이해하게 되는 진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악의를 자각하고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는 순간들. 우주를 떠도는 먼지가 된 기분이 들거나 까닭 없이 울컥하고 고이는 눈물을 가까스로 참아내는 날들.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기도 하다는 걸 받아들이는 마음가짐.


이를테면 세상의 중심이 나라고 여기던 유아적인 발상이 꺾이면서 비로소 성숙한 자아가 한 겹씩 쌓여 겉으로 단단해 보이는 어른이 되어갈 테지. -한동안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심리상담사는 여기서 다시 내가 있는 지점으로부터 축을 만들어갈 때 또 한차례 성장을 이루리라 일러주었지만, 머리로는 이해하는 사실을 몸소 체득하기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보도스틸 | 제공: 메가박스중앙㈜


각설하고 그래서 이 영화를 온전히 이해했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꿈에 덜 깬채로 눈을 비비면서 굳이 꿈 해몽을 찾아볼 필요가 있을까? 영화를 소재로 삼는 글이지만 리뷰를 하고 싶지 않아서, 모티브가 되었다는 원작 소설을 찾아 읽었다. (아직 다 읽지는 못했다.) 원작이라기엔 제목만이 닮아 있는 이야기이지만,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려낸 새로운 세상에의 초대권을 다시 손에 쥔 기분이 들었다. 초대장의 비밀 문구로 삼으면 제법 어울릴 듯한 책 속의 구절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인생에서 중요한 건 어느 때나 네가 느낀 진심, 네 마음을 움직이는 생각이란다. 그런 감정에서 비로소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거란다. 네가 무언가를 절실히 느꼈거나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이 있다면 그런 느낌이나 생각을 절대로 속여서는 안 돼. 어떤 일에서 또는 어떤 문제에서 네가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늘 기억해 두렴. 언제, 어느 곳에서 어떤 감동을 받았다는, 인생에서 되풀이되지 않는 오직 단 한 번뿐인 경험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거야. 그것들이 모여 언젠가는 너만의 사상을 이루겠지.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네가 체험한 데서 출발해 솔직하게 생각하라는 것인데, 코페르! 이건 정말 중요한 일이란다. 여기에 거짓이 있어서는 안 돼. 조금이라도 거짓이 섞여 있다면 네가 아무리 위대한 것을 생각했다고 해도 모두 거짓이 되어 버린단다.
-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요시노 겐자부로




해당 글은 뉴스레터 [디스턴스]에서 발행한 "자스민의 중고영화" 10번째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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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스민의 중고영화 | 교복을 입고서 비디오 가게를 뻔질나게 드나들던 시절에 영화감독의 꿈을 품고 대학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다. 졸업영화를 찍고 방황의 시기를 보내다가 영화 홍보마케터로 수년간 일하며 영화계의 쓴맛 단맛을 고루 섭취하고, 무럭무럭 자라 글 쓰는 마케터가 되었다. <자스민의 중고영화>에서는 스크린에 비친 장면들을 일상의 프레임으로 옮겨 그 간극(distance)을 헤아려볼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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