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우언(寓言)'편 中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해서 그 이후의 서양고대 사상가들이 '논리적'인 것에 기초해서 서술했다면 공자, 노자, 맹자, 장자는 논리적인 것을 넘어 감성적인 서술방식까지 동원했다. 그 결과 '가슴과 가슴(heart-to-heart)'으로 이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의 길을 열어 놓았다. 이 점이 동아시아의 고전들이 2천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도 우리들에게 생생하게 다가올 수 있는 중요한 이유다.
그런데 장자의 서술방식은 이 중에서도 압권이다. 그래서 장자서는 중국 최고 철학서 중의 하나로서 문학서의 관점에서도 최고봉에 이르렀다는 평가까지 받는다.
김정탁, <장자의 우언, 중언, 치언의 은유법> 中에서.
장자의 '우언(寓言) 편', 첫대목은 이렇게 시작한다.
寓言十九(우언십구): 우언이 열에 아홉이고,
重言十七(중언십칠): 중언이 열에 일곱이다.
巵言日出(치언일출): 치언은 순간순간 매일매일 새롭게 나타나는데,
和以天倪(화이천예): 그것이 우주의 진실에 조화를 이룬다.
요약하면,
장자라는 책은 우언이 90%, 그 우언 가운데 중언이 70%, 그 나머지 순간순간 나타나는 치언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치언은 우주에 가깝고, 우주의 진실에 조화를 이룬다는 말이다.
쉽게 말하자면,
장자라는 책은 '우언이 90%, 중언이 70%, 치언은 시도 때도 없이 나온다. 그리고 치언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언', '중언', '치언'은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우언은 '비유', 중언은 '인용', 치언은 '애드리브'다.
[우언은 비유다.]
우언은 재미있는 우화 형식이다. 밖의 사물에 비유하여 표현한다. 주야장천 자기 얘기로만 말하면 설득이 안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사물이나 동물에 빗대어 비유법으로 도를 설명한다. <장자>라는 책은 90%가 이 비유법으로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서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책들이 장자 우화집 같은 어린이 동화책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장자를 그저 동화작가로 치부해선 절대 안 된다. 약 2300년 전, 가장 뛰어난 스토리텔러였기 때문이다.
[중언은 인용이다.]
중언은 옛날 사람 또는 유명한 사람의 말을 그대로 가져와서 하는 말이다. 자주 언급되는 사람으로는 공자,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있다. '위트코치 이용만'도 여기에 끼는 것이 소원이다. 아무튼 옛날 사람이나 유명한 사람들의 권위에 기대서 하는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중언은 이미 있는 말을 의미한다. 참고로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을 하는 옛날 사람, 즉 나이에만 의존하는 꼰대는 참된 연장자가 될 수 없다고 장자는 딱 잘라 말한다.
[치언은 애드리브다.]
치언의 치(巵)는 술잔 치(巵) 자다. 잔에 술이 가득하면, 조심히 들고 마셔야 한다. 반대로 술이 줄어들면 잔을 기울여 마시 듯, 상황에 맞게 하는 임기응변의 말이다. 또는 술잔이 네모나면 술이 네모 모양으로 담기고, 술잔이 둥글면 동그란 모양으로 술이 담긴다. 여기서 술잔을 세계의 모습이나 상황으로, 술을 자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구사하는 언어, 문장, 대화, 화법을 치언이라 한다. 불교에서 말하면 '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아이가 약을 안 먹으려 할 때, 아이에게 '이건 딸기맛 주스다'라고 하면서 먹이려는 것이다. 이런 말들을 치언이라고 한다. 치언은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새롭게 나타는 말로써, 이미 존재하는 말인 중언과 다르다.
정리하면
장자의 말은 비유가 90%, 인용이 70%이며, 매일 쓰는 임기응변의 말로써 도리에 맞게 조화시킨다.
치언으로서 늘어 놓고
중언으로서 믿게 하고
우언으로서 그 의미를 넓힌다.
<장자> '천하' 中에서.
치언으로 상황에 맞게 재치 있는 말로 상대방을 유혹하고,
중언으로 팩트를 증명하며,
우언으로 알기 쉽게 빗대어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