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까지 그런 기분이었다.’
뭐라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누구나 다 알고 있을 법한 그 은밀한 속 얘기를 지금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Photo by Birmingham Museums Trust on Unsplash
찰리 채플린은 말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그런데 찰리 채플린의 원근법은 틀렸다. 인생은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귀로 들어보고, 그 내면까지 투과해서 볼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내가 오감과 사유를 통해 바라본 인생은 정반대다.
인생은 겉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속에서 보면 희극이다.
-위트코치 이용만-
[이것은 위로인가 희열인가]
“야 괜찮아ㅋㅋ. 인구의 반이 여자인데 뭘ㅋㅋ. 넌 훨씬 더 좋은 여자 만날 거야ㅋㅋ. 한잔해~!ㅋㅋ”
2009년, 나는 당시 그 흔한(?) 여자 친구도 없던 찌질한 솔로 시절. 여자 친구한테 차이고 울먹거리는 친구의 이별 소식은, 내게 대학 합격 소식보다 더 큰 도파민의 증가를 가져왔다. 누가봐도 비극적인 상황인데, 왜 내 속은 희극인 것인가. 겉으로 소주잔을 기울이며 위로랍시고 말해주고 있는데, 속으로는 사악한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기분과 상관없이 갑자기 웃는 병을 가진 조커처럼.
“맞아. 로또에 1등 당첨된 사람들 금방 탕진하고, 범죄도 저지르고, 폭망 하잖아ㅋㅋ. 그래서 차라리 로또에 당첨이 안된 게, 정말 다행이야~! ㅋㅋ”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사소한 잡담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녀들은 마치 우리쪽 테이블에서 들어달라고 외치는 듯 보였다. 그녀들의 쉴세없이 움직이는 입모양은 마치 소리없는 아우성과 닮아있었다. 아무튼 로또 1등 당첨자들의 자살과 살인 등 인생 폭망으로 가는 비참한 최후에 대한 내용이었다. 누가봐도 비극적인 상황인데, 왜 그녀들은 단전 깊은 곳에서 용솟음 치는 희열을 공유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일확천금을 노리고 로또를 샀으면서, 그 일확천금이 날라갔는데 왜 불행이 아니라 다행이란 말인가.
“글쎄 그 정규직 A가, 정규직 B의 비서랑 바람이 났데. 근데 그 장면이 적나라하게 CCTV에 다 찍혔다는 거 아냐. 그래서 그게 들통 나서 난리가 난거지. 둘 다 ‘유부남’, ‘유부녀’였데.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 정규직 A의 와이프도 딴 사람이랑 바람을 피고 있었다는 거야. 그 집안은 쌍방이야. 진짜 대박이다 ㅋㅋ”
예전 TV에서만 보던 ‘사랑과 전쟁’ 실사판이 내 눈앞에서 4D 입체 서라운드로 펼쳐지고 있었다. 화장실에 가고 싶었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발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인간의 본능인 생리현상을 불륜 이야기의 궁금증이 비웃듯 가뿐히 이겨내고 있었다. 그녀들은 닥터피시가 발뒤꿈치 각질에 달려들어 뜯어먹듯 불륜남녀를 물어뜯고 있었다. 이야기가 절정에 다다를 무렵, 그녀들은 피라냐가 되어있었다.
한편으로 ‘비정규직’이 ‘정규직’을 바라보는 시각을 잠시 엿볼 수 있었다. 항상 불합리한 대우를 받으며 억울하고, 보이지 않는 벽으로 둘러싸여 억압받는 차별 속에서 유일하게 그녀들의 화기애애한 웃음을 볼 수 있었다. 굴러가는 낙엽에도 꺄르르 웃는 여고생들처럼. 한 가정의 파탄난 이야기가 그녀들로 하여금 수줍은 소녀로 만들고 있었다. 이는 어쩌면 비정규직, 정규직을 떠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봄직한 마음이 아닐까.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억세고 거친 대한민국 아줌마를, 가녀리고 여린 소녀로 만든 것일까.
[샤덴프로이데]
남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면서 느끼는 기쁨을 독일어로, '샤덴프로이데'라고 한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상반되는 뜻을 담은 두 독일어 단어 'Schaden' (손실, 고통)과 'Freude' (환희, 기쁨)의 합성어다.
쉽게 말하자면, 남이 잘못되는 꼴을 바라보는 희열 혹은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전문용어로 ‘쌤통’이라 할만하다. 다만, 이 사악한 즐거움은 나와 관련된 정도에 비례한다. 즉, 아주 밀접한 관계의 인물일수록 그 기쁨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와 전혀 무관한 사람에 대한 성공과 실패보다 내 동료, 내 친구 등 나와의 관계가 클수록 더 크게 동요한다는 사실이다.
누군가 빙판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미끄러져서 뒤로 홀라당 자빠지는 것을 보고 웃는 것.
평소 비호감인데, 잘 나가던 연예인이 하루아침에 범죄자가 되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것.
경쟁 팀의 에이스 선수가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잘됐다’라고 느끼는 것.
날 무시하던 잘생기고, 돈도 많고, 초고속 승진하던 친구의 파혼 소식을 듣고 ‘쌤통’이라고 생각하는 것.
정규직의 불륜과 가정 파탄에 기쁨과 희열을 느끼는 비정규직들의 심술궂은 마음들 까지.
‘샤덴프로이데’다.
봄이면 찾아오는 황사와 초미세먼지도 부족해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 19)까지 친절하게 무료로 제공해주는 중국. 그 곳에서 코로나 19로 사망자가 최소 3만명이 될 것으로 보인다는 소식에 “안타깝다, 안됐다.”라는 말 대신, 속으로 ‘중국이라는 나라가 이참에 깡그리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잠시나마 생각이 들었다면,
"코로나 바이러스는 동성애에 대한 신의 벌이다."라고 말한
이스라엘의 보건복지부 장관과 그의 아내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렸다.
이 소식에 '쌤통'이라고 생각이 들었다면,
당신도!
괴팍하기로 유명한,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인간이 지닌 가장 악한 감정이 샤덴프로이데라고 했다. 그렇다면 어쩌다가 이렇게 악한 감정이 생겼을까.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기주의’와 ‘무한경쟁’이다.
1. 이기주의 [나만 아니면 돼!]
길가다가 어처구니없게 넘어진 사람을 보고 웃다가 자신도 자빠진다면 어떨까?
나도 실연을 당해 슬픈데, 다른 친구의 실연이 환희가 될 수 있을까? 물론 잠시나마 동질감과 위로는 느낄 수 있겠지만. 상대와 같은 고통과 불행에 해당되어 있다면 쌤통의 감정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누군가가 그것을 잃거나 빼앗기길 바라는 심보에서 비롯된다. 결국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고, 타인 혹은 다수의 이익은 염두에 두지 않으려는 이기주의가 샤덴프로이테를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누가 그랬듯, '누군가의 실패를 위로하는 것보다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고 말이다.
2. 무한경쟁 [불행의 시작, 비교!]
학교라는 집단에 소속되는 순간부터 대놓고 비교가 시작된다.
어쩌면 태어나면서부터 남들과의 비교대상이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동창, 입사동기, 선후배, 일면식도 없는 엄마친구의 아들, 딸들까지 늘 경쟁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는 인공지능 로봇과도 싸워야 할 판이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남을 밟고 올라야만 한다. 그러한 무한경쟁사회에서 진심으로 친구나 동료를 위하는 마음이 생기길 바라는 자체가 모순이다. 그 와중에 경쟁자가 알아서 꼬꾸라져주는데, 이 얼마나 기쁘고 축배를 들 만한 일인가 말이다. 이건 하이패스를 넘어 프리패스다.
그런데, 내가 볼 땐 이 샤덴프로이데가 꼭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잘만 활용하면 오히려 순기능도 있다. 크게 '자기 위로의 기능'과 '오락적 기능'이 있다. 남의 불행은 유감이지만, 말 그대로 최소한 나에게만큼은 기쁨과 희열, 위로와 재미를 주지 않던가.
Photo by Matthew Henry on Unsplash
1. 다이나믹 듀오가 부릅니다. [‘거기서거기 (Without You)’]
자기 위로의 기능이 있다. 이 시련은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잘 나가던 사람들도 어차피 하루아침에 망하기도 하니까. 모든 걸 다 가진 것처럼 보이던 엄친아, 돈과 명예를 모두 갖춘 유명인들이나 정치인들도 한방에 추락하거나 잊히는 것을 보면 희열과 인생무상(?)을 새삼 깨닫기도 한다. 나아가 평범한 나보다 나을게 없고 때론 빚더미에 오른 연예인들을 보며 심심한 위로를 받기 때문이다.
2. MINO가 부릅니다. [‘불구경(Feat. YDG)’]
재미를 주는 오락적 기능이 있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구경은 강 건너 불구경과 싸움구경이라 하지 않았던가. 덕분에 정치권 뉴스가 가장 재밌다. 남의 장점을 은밀하고 위대하게 칭찬해주면서 기쁨과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아마 없다고 본다. 잘 나거나 나와 늘 비교 선상에 있는 사람들의 부도덕하고 추한 민낯이 그대로 노출되었을 때보다 재밌는 것이 또 있을까. 우리 집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만큼 충분한 거리를 두고 남의 집이 활활 타고, 어느 잉꼬부부가 알고 보니 불륜이었고, 그래서 서로 물고 뜯으며 부부싸움을 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겉으로 걱정하는 척하지만, 속으로 이만한 재미도 없을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아주머니들이 막장드라마를 욕하면서도 끝까지 리모컨을 사수하는 이유도 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Photo by Zan on Unsplash그렇다고 ‘샤덴프로이데’를 무조건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샤덴프로이데’가 표출되었을 때 야기될 수 있는 문제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본인 스스로만 희열을 느끼고 말면 그만이지만 그게 어디 쉽겠는가. 그렇게 기쁘고 재밌는데. 2~3명 이상 모이면 자신들이 알고 있는 ‘샤덴프로이데’가 폭발하게 된다. 그래서 코로나 19보다 더 빠르게, 불특정 다수에게 퍼지는 무시무시한 전파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익명을 보장받는 온라인에서는 더 잔인하게 드러난다. 마땅히 욕을 먹어야 할 사람뿐만 아니라 선량한 이들에게도 그 총구가 향할 수 있다. 그래서 도덕적으로 잘 활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월터 윈첼은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대중을 지루하게 하는 것보다 더 큰 죄악은 없다.”
당신의 글이, 대화가, 스피치가 지루하다는 것은 작가로서, 화자로서, 스피커로서 큰 죄악일 수 있다.
사람들과 대화를 어떻게 해야 할까?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초반에 초 집중시키는 오프닝을 어떻게 해야 할까?
청중이 ‘듣고 싶은 이야기로 시작하라.’는데 뭘 듣고 싶어 할까?
고민하는 그대여,
‘샤덴프로이데’를 자극하라.
샤덴프로이데가 우아하진 않지만, 공감엔 그만한 게 없다.
-위트코치 이용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