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전문가.
"자네는 저 수릉(壽陵)의 젊은이가 조(趙) 나라의 서울인 한단(邯鄲)에 가서 그곳의 걸음걸이를 배웠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는가? 그는 한단(邯鄲)의 걸음걸이를 제대로 배우기도 전에 본래의 걸음걸이마저 잊어버려 엎드려 기어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걸세. 지금 자네도 장자(莊子)에 이끌려 여기를 떠나지 않고 있다가는 그것을 배우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자네 본래의 지혜(智慧)를 잊어버리고 자네의 본분마저 잃게 될 걸세." 이 말을 듣고 공손룡(公孫龍)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도망(逃亡) 쳤다고 한다.
-장자(莊子) '추수'편(秋水篇) 中에서.
이 고사에서 '邯鄲之步(한단지보)'라는 말이 비롯되었다.
이는 자기 본분을 잊고 함부로 남의 흉내를 내는 지각없는 사람들을 신랄하게 비웃어준 이야기다. 결국, 제 분수를 잊고 무턱대고 남을 흉내 내다가 이것저것 다 잃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당신은 수릉의 젊은이와 다르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대다수 학생들의 자기소개서(초안)를 보고 있으면 '한단지보'라는 말만 떠오른다. 자기소개서인데 자기는 빠져있다. 그리고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들로 글자 수를 채워놨다. 글자 수를 채우면 그나마 양반이다. 최대 500자를 쓰랬더니, 반절도 채 안 되는 200자 정도를 써오는 학생들도 태반이다. 그들은 왜 그럴까. 왜 똑같은 실수를 모두가 동일하게 반복하고 있는 것일까. 자기소개서에는 자기만 소개하면 된다. 합격 자소서라 불리는 다른 사람들 소개를 복사, 붙여 넣기 하고 있는데, 어떻게 자기소개서라 할 수 있을까. 글을 잘 쓰고 못쓰고는 차치하더라도.
나도 한때는 수릉의 젊은이었다.
가끔 보면 놀란다. 내가 10년 전에 썼던 자기소개서 말이다. 글의 구성을 떠나 소재들이 다 내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내가 봐도 이상하다. 그런데 당시엔 그게 멋있어 보였다. 그런 소재들(국토대장정 등 한때 유행했던 소재들이 있다.)을 써야지만 있어 보이고 그럴듯한 자기소개서처럼 느껴졌다. 결국 거기엔 내가 없었다. 그 사실을 7년 뒤에 비로소 깨달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자기소개서로 취업을 한 것은 천운이었다.
그래서일까. 지금 학생들이 써오는 자기소개서를 보면, 왜 그렇게 쓸 수밖에 없는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
그렇다면, 나는 어쩌다 자소서 전문가가 되었을까?
어떤 분야를 연구하거나 그 일에 종사하여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을 전문가라 일컫는다. 그래서 나는 전문가는 아니다. 하지만 전문가의 반대말을 보면 '초보자', '풋내기'라는 말이 나온다. 이에 나 스스로를 '초보자, 풋내기에 반대되는 사람' 정도로 결론짓고자 한다.
'초보자, 풋내기에 반대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요약하면, '3가지 단계'로 말할 수 있다.
첫 번째 단계, 직접 수릉의 젊은이가 된다.
일단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많다는 걸 인정한다. 그래서 그 잘난 사람, 그 분야의 진짜 전문가라고 일컫는 사람들을 만나기 어려우니 책을 읽는다. 관련 도서를 모조리 읽어본다. 그리고 영상도 함께 찾아본다. 실제로 강의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모조리 다 씹고, 뜯고, 맛보면 그것들의 공통점들이 보인다. 그 공통점들을 모두 메모해둔다. 나중엔 더 이상 메모할 것이 없어진다. 왜냐하면 더 이상 새로울 것이 별로 없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단계, 매일 글을 쓴다.
2017년 7월 15일 <질리지 않는 것에 대하여>부터 본격적으로 매일 글쓰기를 시작했다. 칼럼이든 일기든 뭐든 내 이야기, 내 생각을 썼다. 그렇게 2019년 1월 11일 <대통령의 유머>까지 매일 글을 썼다. 물론 그 뒤로도 한두 번씩 쓰다가 2020년 1월 27일 <순대국밥이론>이라는 글로 2020년 4월 13일 현재글 <'자기소개서 전문가'가 되는 방법>까지 매일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사실, 매일 글을 쓴다고 해서 글쓰기 실력이나 글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건 아니다. 다만 내가 매일 글을 썼고, 지금도 쓰는 이유는 딱 하나다. 누군가에게 '말할 자격을 갖추기 위함'이다. 내가 매일 글을 쓰고 있어야 학생들이나 누군가에게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 '남의 이야기를 쓰지 말고, 너의 이야기를 쓰라고' 말이다.
세 번째 단계, 다 날려버린다.
타노스처럼, 인피니티 스톤을 모두 모아 '건틀렛'에 끼워 넣은 후 손가락을 튕겨 당신의 우주 절반을 날려버려라.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맨인블랙에 나왔던 '뉴럴라이저'로 기억을 없애도 된다. 당신의 우주, 기억을 모두 날려버려도 괜찮다. 왜냐하면 당신의 몸이 기억할 것이다. 다 날려버렸으면, 이제 진짜 당신의 이야기를 솔직 담백하게 써보면 된다. 타인을 의식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글의 서론, 본론, 결론 등 구성 따위 신경 안 써도 된다. 당신의 호흡으로 당신의 걸음걸이를 유지한 채 계속 걸어 나가면 된다.
다만, 자기소개서에는 요구하는 항목(질문, 주제 등)이 있으니, 항목에서 질문한 것을 꼭 답변해 줄 것. 그리고 글자 수는 최대한 꽉 채울 것. 그것이 전부다.
정리하면,
최대한 많이 읽고, 보고, 내 몸이 저절로 움직일 때까지 매일 써본다. 그리고 다 날려버린 후 당신의 본래 스타일대로 쓰거나 말하면 된다.
그때쯤, 누군가가 당신에게 도움을 요청할지도 모른다.
처음 막 글을 쓰려고 할 때,
글쓰기를 배우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에게 절대로 글쓰기를 배우거나 남의 글을 따라 쓰려고 하지 말라고 해준 분이 계셨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딱히 글쓰기에 대해서 배워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내가 글을 잘 써서 가 아니다. 그냥 내 방식대로 쓰는 거다. 어차피 나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세상에 널렸으니까.
그런데, 이용만처럼 쓰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성철 스님은 '책 읽지 마라'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아마도 그건, 자신의 존재이유와 본분을 잃지 말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글. 위트코치 이용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