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IJ 국제협업 <인체이식 의료기기의 비밀>
뉴스타파는 지난 4월부터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 주관으로 인체이식 의료기기 문제 추적 프로젝트-인체이식 의료기기 비밀(Implant Files)를 진행해왔다. 이번 국제협업에는 뉴스타파와 AP, 미국 NBC, BBC, 아사히신문 등 전 세계 36개국 59개 언론사 소속 250여 명의 탐사보도 전문 언론인들이 참여했다.
식약처와 의료기기업체, 병원의 삼각 카르텔 등 의료기기 산업의 제반 문제점을 파헤치기 위해 전 세계가 함께 공조한 국제협업 프로젝트는 개인에겐 꽤 값진 경험이었다. 보안 문제가 있어 제작 전반을 기록하긴 어렵지만, 개인적으로 의미 있었던 부분들을 남겨놓고자 한다.
각국 언론인들은 공개된 기록을 모으는 동시에 자국의 보건당국에 정보공개청구를 하면서 8백만 건 이상의 의료기기 안전성 정보를 수집, 검토했다. 국내에서 입수한 자료는 의료기기와의 인과관계가 의심되는 '이상사례 보고서', '회수 계획서 및 종료보고서' 등이 있었다. 정보는 각기 다른 언어, 양식으로 각국에서 수집됐고 데이터저널리스트들이 정제하고 공유했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보안사항 >_<)
각국에서 모인 데이터는 우리에겐 한국의 의료기기 리콜 등급 문제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됐다. 같은 의료기기가 리콜되더라도 한국에서는 미국보다 기기 위험성을 더 낮게 매겨 알린 사례들이 확인됐다. 이외에도 취재 과정에서 각국의 데이터는 여러 가설을 검증하는데 유용했다. 서로의 이야기를 검증하고 깊이 있게 만들기 위해 데이터를 공유하고 정보를 나눴다. 한 매체에서 단독으로 취재했다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품이 들었거나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넘어갔으리라 생각한다.
각국의 공개된 데이터를 살펴보니 자연스레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정보공개가 얼마나 형편없는 수준인지도 알 수 있었다. 특정 제품, 특정 사례의 정보를 얻고 싶을 때 식약처가 공개한 자료로는 어떤 것도 알 수 없었다. 같은 내용을 FDA의 공개 데이터베이스, 일본 후생성의 PMDA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하면 쉽게 얻을 수 있었다. 리콜이나 부작용 정보를 3개월만 공개하거나, 제조사나 제품명을 누락한 채 제한적으로만 공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식약처에 질의하자 "업체의 꼬리표가 되어선 안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일반 국민이 어느 수준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확인하고자 청구한 정보공개청구 역시 "업체의 영업상 비밀"에 해당한다며 비공개 결정이 통지됐다. 현재로선 대중은 제품 결함이 생겨도 해당 제품이 어느 의료기관에 납품됐는지 알 수 없고, 본인 몸에 이식된 제품에 대한 부작용 기록도 볼 수 없다. 이번 취재를 진행하면서 식약처 담당자와 정보공개를 두고 오송으로 국회로 호텔로 오가며 실랑이를 벌인 기억은 참 오래 기억될 거 같다.
보건당국이 손을 놓고 있는 사실을 알았으니, 기자들은 전 세계 시민과 환자들을 위해 의료기기 리콜과 부작용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기로 했다. 협업의 장점은 취재에만 있지 않다. 협업은 결과물로 이어지고 시민에게까지 흐른다. 각국 언론인들이 수집한 8백만 건 이상의 기록들은 '국제 의료기기 데이터베이스'(IMDD-International Medical Devices Database) 공개로 이어졌다. 현재는 미국, 캐나다, 호주 등 11개국의 의료기기 리콜 및 부작용 관련 정보가 7만 건 이상 축적돼 있다. 이 정보들은 1100곳 이상의 의료기기 업체 정보와 연결되며 제조사, 제품명 등을 검색창에 입력하면 해당 의료기기의 정보를 목록화해 보여준다.
ICIJ는 이번 DB 공개 이후 지속해서 데이터를 업데이트할 계획이다. 한국과 일본 등 현재는 빠져있는 국가의 의료기기 정보도 추가될 예정이다.
보도에 앞서 국정감사에선 의료기기 부작용 보고 건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식약처가 제출한 '의료기기 부작용 현황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의료기기 부작용 건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몇 퍼센트 증가', '몇 건 증가'가 아니었다.
현재 국내 '이상사례 보고 건수'는 미국, 유럽, 일본 등과 비교해 의료기기 시장규모와 사용규모로 봤을 때 예측되는 '이상사례 발생 건수'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여전히 실제 발생한 이상사례 대다수는 보고가 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현 상황에선 보고가 많이 이뤄진 제품은 '착실히 보고된 제품'으로 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실제로 의료기기가 현장에서 쓰이면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이 더 많이 공유돼야 하고, 더 안전한 의료기기를 만들 수 있도록 피드백이 이뤄져야 하는데 '몇 퍼센트 증가'했다는 보도는 인용은 될지언정 본질적 문제를 흐릴 위험이 있었다. 중요한 건 이상사례가 잘 보고돼 데이터를 잘 쌓아서 분석해내고 제품의 개선으로 이어지는 것, 일어날 문제를 예방하는 것.
이번 프로젝트는 데이터를 입수해 단순히 증가 폭, 건수를 계산하는 건 과감히 건너 뛰었다. 의료기기 산업 전반에 근본적으로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 그간 쌓아왔다는 데이터들은 믿을 수 있는 건지부터 확인했다. 식약처가 업체로부터 제출받은 '이상사례 보고서' 원본을 입수했을 땐 각 건의 담당의를 찾고 해당 내용의 진위부터 물었다. 왜 식약처가 기기 결함이나 리콜 정보를 감추는지 취재하다 의료기기 업체와 병원의 유착, 삼각 카르텔을 파헤치게 됐다. 혼자 입수하거나 혼자 발제했더라면 아마 부끄럽게도 '몇 퍼센트 증가'했다는 내용의 웹기사가 세상에 나왔을지 모른다. 수개월을 여러 기자가 머리를 맞대고 기초부터 부딪히니 총 10개의 부끄럽지 않은 리포트가 완성됐다.
이번 협업은 네덜란드의 한 기자가 귤 그물망을 자신이 제조한 '질 이식용 메쉬'라고 제출한 것을 인허가 당국이 인체이식 의료기기로 허가하면서 시작됐다. 전 세계 의료기기 산업은 메드트로닉과 보스턴사이언티픽, 애보트, 존슨앤존슨 등 글로벌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어 특정 제품의 부작용 피해 사례들도 글로벌 차원에서 동시에 발생한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의료기기 분야는 개별 국가 특정 언론사 단위의 취재만으로는 그 속살을 제대로 파헤치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36개국 59개 언론사, 250여 명의 탐사보도 기자들은 7개월간 국제협업 취재를 벌였다.
임상시험 없이 의료기기 출시를 허가해온 미국 식품의약국(FDA)는 42년 만에 의료기기 승인 절차인 '510(k)승인 프로그램' 손질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뉴스타파를 비롯한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 (ICIJ) 국제협업 프로젝트 보도 후 하루 만에 나온 결정이다. 1976년 첫 도입 후, FDA는 새로운 임상 시험을 거치지 않은 제품이라도 기존 제품과 비슷한 안전성 기능을 갖추고 있으면 신제품 출시를 허가해 왔다. 현재 시장에 유통되는 의료기기 중 95%는 새로운 임상 시험 없이 이 방식을 통해 승인을 받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뉴스타파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글로벌 의료기기 기업이 같은 제품으로 피해를 입은 외국인들에게는 우리 돈 2억 원 이상의 보상을 실시했으면서도 국내 피해자들에게는 수십에서 수백만 원 정도만 지급하고 있는 행태를 보도한 바 있다. 식약처는 해당보도 후,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와 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 등 의료기기 제조 및 수입업체에 피해보상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식약처가 발신한 협조 요청 공문에는 "의료기기로 인한 환자 및 사용자의 피해 발생 시 배상과 보상이 진행될 수 있도록 제조 및 수입업체의 배상책임 보험 가입을 권장"하고 "제조 및 수입업체 등 회원사에 책임보험 가입 등 피해보상 대책 마련 촉구"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인체이식 의료기기는 사람의 생명과 언전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수천수만 분의 일의 문제이기도 하다. 때문에 주목받기 쉽지 않고, 긴 시간 들여 취재하더라도 후속보도까지 동력을 얻기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주제에 주목하는 국제협업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서로의 북돋움으로 일궈내는 작은 변화가 더 많아졌으면 한다. 59개 매체가 한 번의 보도로 그치지만 않는다면 작은 변화들이 계속 이어질 수 있으리라 믿기에.
협업과 별개로 적어둘 포인트는 이런 것들
긴 기간동안 한 아이템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
기초를 놓치면 껍데기뿐인 기사가 나온다
기사를 채워 넣기 위해 취재하지 않았다
백번을 다시 확인해도 지나치지 않다
내 것으로 만드는 건 내 역할이다
얼마 만에 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