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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다 Oct 14. 2022

싸움의 기술 (1)

복싱이 알려준 실생활 갈등 대처법 - 1장: 흥분하지 말 것 (1)

1장 : 흥분하지 말 것(1)


#긴장하면 두 배로 힘들어요 

     

기영 씨와의 스파링은 힘들다. 기영 씨와 링에 오를 땐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단단히 준비한다. 지금도 어렵지만 초보시절 유난히 버거웠던 기억이 있다. 가볍게 2라운드 매도우 스파링을 하고 나서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나에게 기영 씨가 말했다.


“긴장하면 두 배로 힘들어요.”  


프로선수만큼 뛰어난 실력과 냉철함을 갖춘 기영 씨는 내가 적당히 견딜 만큼 때려주었고 내가 타격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내 펀치를 일부러 맞아주기도 했다. 그런데도 초보였던 나는 긴장감에 짓눌려 몸을 가볍게 움직이지 못했다. 기영 씨 말은 맞았다. 복싱을 시작하기 전에 나는 마라톤을 했기 때문에 체력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42km도 뛰었는데 자그마한 링에서 그깟 3분 정도야...’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링은 작지 않았고 3분 2라운드를 뛰는 동안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고 무엇보다 숨이 턱 막힐 것 같았다. 몸에 필요 이상의 힘이 들어갔던 것이다. 



나는 링에 올라가면 긴장되고 무섭다. 때론 자존심 상하고 짜증이 나기도 한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짜릿하고 자신 있다. 복싱을 하면서 이렇게 많은 감정을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 감정이 생생하게 몸으로 느껴지고 몸으로 표현되어 나온다. 어떤 감정이 올라오더라도 몸이 감정에 휘둘리지 않도록 다스리는 것이 스파링 연습의 핵심이다. 감정이 실리면 몸에 과도한 힘이 들어가게 되고 그만큼 동작이 느려진다. 최대한 팔에 힘을 빼고 가볍게 움직여야 3분 내내 지치지 않으면서 빠르게 공격을 이어나갈 수 있다. 힘을 주지 않고 가볍게 움직이면서 상대에게 큰 충격이 가는 펀치를 날릴 수 있는 것은 팔에 몸무게를 실어서 때리기 때문이다. '에너지= 속도 x 무게'라는 기초적인 물리학 지식을 떠올리면 금방 이해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몸이 느려지고 그만큼 상대에게 더 맞거나 나의 공격에 지장이 생긴다. 그래서 실제 복싱 경기를 보면 엄청난 타격전이 벌어지지만 정작 흥분하는 것은 선수들이 아니라 관중들이다. 




나는 어려서 겁쟁이였다. 지금도 여전히 겁이 많은 편이다. 맞서야 하는 상황은 가급적 만들지 않으며 살아왔다. 꼭 맞서야 하는 경우에 피하지는 않았지만 엄청난 에너지 손실을 가져와야 했다. 두려움과 공포는 나를 무력하게 만들기 일쑤였다. 상담자가 되어 상담을 진행하면서는 내 안의 두려움이 내담자에게 읽히는 것 같아 내가 부끄럽고 못 마땅할 때가 많았다. 사람들은 상담을 하는데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겠느냐 묻는다. 일반인들은 상담과 함께 따듯한 공감과 치유를 떠올리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만 상담의 일부분이다. 내담자의 슬픔뿐만 아니라 분노와 공격성을 받아내야 할 때도 있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어떤 감정이라 할지라도 흔들림 없이 그 자리에서 함께 고통을 견디는 내공이 필요하다.  

복싱이 나에게 준 선물은 긴장과 두려움을 내 몸으로 조금 더 세밀하게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긴장되고 두려울 때 몸에 힘을 빼는 연습을 계속하고 있다. 긴장이 몰려올 때 근육이 이완되어 있는지를 의식적으로 살피는 연습이다. 지금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흥분한 감정이 내 몸을 집어삼키지 않도록 조절하는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복싱으로 배우는 싸움의 기술 중 가장 중요하게 첫 번째로 꼽은 것은 그래서 ‘흥분하지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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