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잘해도, 조용해도...당신은 ADHD

고기능 ADHD의 착각

by 비커밍fine

의사에게 털어놨던 증상들을 하나씩 떠올려본다.


착수를 못한다. 좋아하는 일조차도 시작이 버겁다.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지 못할 바엔, 차라리 안 한다.

미루는 동안 불안해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한다.

일상의 기본적인 것조차 미룬다. 예: 집안일, 씻기.

뭐든 시작하려면 상당한 감정 에너지가 필요하다.

하도 미뤄둔 게 많아서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미루다 보니 사소한 시간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한 번 집중하면 고도로 몰입하고 끝내 지쳐버린다.

업무는 잘 해내지만 퇴근 후 녹초가 되고 만다.


ADHD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의 준말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증상들은 과잉행동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도 내가 ADHD라니. 의사는 ‘고기능 ADHD’와 ‘완벽주의’라는 단어를 꺼냈다.


고기능 ADHD(High-functioning ADHD)는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실제로는 ADHD 특성을 내면 깊숙이 숨긴 상태를 말한다. 내게서 나타난 특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① 겉으론 침착하고 성취 지향적이지만 내면은 긴장과 불안으로 가득하다.
② 산만함을 감추기 위해 지나치게 계획적이고 완벽하게 일하려 한다.
③ 흥미 있는 일엔 과도하게 몰입하지만 반복적이거나 사소한 일은 회피한다.


‘누구에게나 이런 경향은 조금쯤 있지 않나’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처럼 치료 시기를 놓칠 때까지 버틴 사람은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져 있다. 선택적 집중은 성과에만 매달릴 뿐 자기 돌봄까지 챙기기엔 에너지가 턱없이 부족하다. 집중의 강도를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면의 피로도는 높다. 시간 약속을 어기는 일이 빈번해지면 나를 둘러싼 신뢰는 서서히 무너진다.


절박했다. 서른이 넘어 이미 행동 패턴이 굳어버린 시기에 ADHD를 고칠 수 있을까. 불안했다. 난 잘 살고 싶었다. 황폐하기 짝이 없던 20대를 뒤로하고 창창한 미래를 꿈꿔왔다. 하지만 성장과 성숙에 거대한 걸림돌이 있고 이 바위를 치우기 어렵다는 사실에 앞날이 막막했다. 내 인생은 평생 황폐한 건가, 노파심이 밀려왔다.


처방받은 약이 부끄러웠다. 그렇다고 약 없이 내 힘으로 버텨낼 자신도 없었다. 대신 ADHD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난 내가 애틋했다. 세상에서 가장 애틋한 존재인 나를 포기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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