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도 루틴이다...ADHD, 무엇을 쓰는가

살기 위해 쓴다

by 비커밍fine

학창 시절의 일기장을 꺼냈다. 기록의 힘일까. 그때의 나는 성실하게, 단정하게 살고 있었다. ‘이렇게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렇게만 지내면 될 텐데. 지금 나는 왜 이러고 있을까.’ 가슴은 돌처럼 무거웠고 한숨은 깊고도 진했다.


노트를 새로 장만했다.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지만 나는 도구에 기대는 사람이었기에, 값비싼 만년필을 전쟁터의 무기로 삼았다. 내게 기록은 ADHD에 맞서는 승부처였다.


전투 일지의 첫 페이지에는 이렇게 적었다.

‘2020년 3-1부터.’

2020년 3월 첫째 주, 다시 쓰기 시작한 일기였다.

그동안 쓴 스케줄러와 일기장들.

일기 쓰기에 규칙은 없었다. 두서없이 적더라도 생각은 예전보다 훨씬 정리됐다. 한 주가 지나면 일기를 되돌아봤다. ‘내가 이런 고민을 했었고, 무사히 잘 견뎌냈구나’라는 깨달음과 대견함이 나를 지탱해 줬다. ADHD 환자라고 스스로를 하찮게 여겼던 나는 점차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일기가 루틴이 되자 한 가지 메모를 더했다. 매일 밤 감사한 일 세 가지를 적었다. 강제로라도 긍정적인 사고를 주입하기 위해서였다. 비관적 인식이 굳어져 ADHD를 떠받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 메모를 쓰고 나니, 나는 퍽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충분히 행복한 사람. 그 행복의 힘으로, ADHD 따위는 물리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용기만으로 모든 게 해결된다면 '인생은 고해’라는 말도 없을 것이다. 독한 ADHD에는 더 많은 무기가 필요했다. 나는 노트 두 권을 더 준비했다. 하나는 스케줄러, 다른 하나는 필사 노트였다. 하루를 여섯 시간씩 네 구간으로 나눠 일정을 정리했다. 고정된 스케줄은 6시간 단위로 기록하고, 그 외의 일은 따로 적어뒀다. 예를 들어 내 경우는 이렇다.


#고정 스케줄

오전 6시~정오= 기상 및 출근 → 30분 독서 → 가장 중요한 업무 → 이메일 처리

정오~저녁 6시=점심·티타임 → 두 번째 중요 업무 → 잡일 → 신문 스터디 → 세 번째 업무

저녁 6시~자정= 퇴근 → 저녁 식사 → 약속(또는 운동) → 집안일(또는 휴식) → 일기


#추가 스케줄

-인터뷰 사전 질의서 전달/목요일까지

-사진촬영 의뢰서 전달/오늘 점심 전까지

-법카 증빙 처리/금요일까지


애정하는 스케줄 템플릿.


이렇게 정리하자 하루 24시간이 선명해졌다. 그동안 얼마나 우선순위 없이 일해왔는지, 자투리 시간을 얼마나 많이 흘려보냈는지가 뚜렷이 드러났다. 문제를 인식했다면 다음은 개선과 실천이다. 진짜 어려움은 거기서부터였다.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는 순간마다 ADHD가 시시때때로 내 발목을 잡았다. ADHD는 자신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줬다.


이때 필사 노트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다음에. 오늘은 여기까지.

작가의 이전글집중 잘해도, 조용해도...당신은 ADH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