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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율 Nov 03. 2023

심심풀이 땅콩



남편이 나를 부른다  "심땅~~"



 마트에서도, 병원에서도, 시댁에서도-

남편이 그렇게 부르니 다들 처음에는 내 성이 심씨인줄 알았다고 했다.

심지어  말문이 트인지 얼마 안되었던 둘째아이에게 아빠, 엄마 이름을 물으면 "아빠는 오빠, 엄마는 심땅" 이라고 할 정도로 익숙해진 나의 또 다른 이름.


 우리는 7년 연애 후 결혼했다. 초반엔 다들 그렇듯 열 손가락에 열 발가락까지 오그라드는 애칭으로 불리우던 시절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울애기, 까꿍이' 같은 말이.

키보드로 저 글자를 두드리는 순간에도 오톨도톨 팔뚝에 올라온 닭살을 감출수가 없다

지금은 내 말만 잘 안들리는 세 남자를 상대하느라  목소리가 커져가 혹시 성대결절이(오진 않았지만) 오지나 않을까 내심 걱정하는 엄마므로

'나도 잠시 잊었던 저런 시절이 있었지' 


  박보영이 이상형인 남편은 아기자기 귀염상의 톡톡 튀는 상큼한 매력의 여성을 좋아한다 그랬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교회오빠아니고 성당오빠인 남편.

처음 만나서  지인들과 함께 식사 후 간 노래방에서 나는 하필 매직카펫라이드를 부르며 하면 안되는 매력 발산을 했더랬다. 나의 선택적 자아에 속은 남편은 어쩌다보니 여러 개의 자아를 가진 '심땅'에게 서서히 스며 들어갔다.  

서로에 대한 설렘보다는 익숙함이 더 많은 공간을 채워갈 쯤 되면 고오급 레스토랑은 그다지 필요없어지고, [분위기]를 뺀 그 어 곳이어도 찮아지는 때가 온다.

사실 괜찮으면 안되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그래서인지 어느 날부턴가 구 남친이자 현 남편은 갑자기 나를 "심땅"이라고 불렀다.


"그게 무슨뜻이야?"

"심심풀이 땅콩 !!  귀엽지?"

"뭐라고? 내가 그렇게  하찮은 존재가 됐단 말이야?"

"아니 그만큼 심심  때도 함께 하는 땅콩인거지~"

"어쨌든 땅콩은 땅콩인거네. 161센치 땅콩"

(괜히 땅콩에게 미안해진다.)



 이젠 들으면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놀리는 것 같다고 느끼는 건 기분 탓인건가?

아마도 60세가 되어도 어딜가든 군중 속에서 '심땅' 이라고 외칠 그다.

나보다도 지인들이 더 성화다. 아무리 그래도 심심풀이는 너무한거 아니냐고 더 예쁜 말 없냐고ㅡ 그래도 내성이 생겼는지 흔치 않은 우리만의 애칭이 좋다.



심심풀이말고

심사숙고하는

심술난

심각한

심지어


나는 '심 땅'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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