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백을 사도 공허해

공허함을 채워준 브런치

by 은율





"미니백이 유행이라던데, 카세트 모양의 그 백이 너무 갖고싶다. 그것도 핫한 초록색으로"


드디어 내 손에 들어온 영롱한 자태의 미니미니한 카세트 모양의 백!

마침 반으로 접히는 폰을 사용 중인데 딱 들어가니 이 또한 나를 위한 백이라고 생각했다.


고작 단 하루.


이 가격이면 훨씬 예쁜 에코백을 몇십 개는 사겠는데?

이 기분은 뭐지?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공허'라는 단어가 내 머릿 속에 둥둥 떠다닌다.


누가 누가 더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지 키재기를 하듯 허영심과 허세를 뽐내는 단체모임에, 개인적인 만남에 회의감이 들었다. 알맹이는 죄다 빠진 채 겉모습 치장에만 열심히다. 내 모습, 네 모습, 우리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허무하게 느껴졌다. 바닥이 깨져버린 유리잔에 물을 채워넣고 있었으니 계속 새어나갈뿐이다. 뒤늦게 알아차리고서야 구멍을 막고 무얼로든 채우고 싶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튼튼한 스텐레스 텀블러가 필요하다.






"카톡 읽고 쓰는거 요즘 넘 힘들어 우리 그냥 통화하자"

"애들아 엄마 피곤해 너희가 읽고 자면 안돼?"


커피는 절대 못 끊으면서 독서는 끊은건가 싶을 정도로 난독증이 심해졌다. 예전엔 늘 월급의 몇 프로는 무조건 책을 사고, 읽는 게 무엇보다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일이었는데 말이다. 매해 신상 다이어리가 나오면 꼭 사지만 끝까지 쓰는 법은 없다. 일과 육아로 채워진 시간 속에서 글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모두 놓아버렸다. 언제 사둔지 모를 책장에 꽂힌 책을 곁눈질로 본다. 꽂힌 책은 아무 말도 없는데 나혼자 괜시리 미안해진다. '내가 오늘은 진짜 꺼내서 읽으려고 했는데, 조금만 기다려줘.'


하루하루 머릿 속에서 정리되는 속도보다 쌓이는 속도가 더 빠르다. 알찬 독서로 쌓이는거면 말을 안한다.

90프로는 쓸데없는 생각.

그래서인지 대략 500GB정도의 용량으로 가득찬 나의 머릿 속과 뜨거운 심장을 어딘가에 꺼내보이고 싶었다. 단순히 표현한다고는 표현이 안된다. 토해내고 싶다는게 더 가까울 것 같다.

남들 다 한다는 블로그도 만들어 써보고 인스타에도 사진을 곁들인 글을 써가며 조금씩 토.해.내봤다.

어딘지 모르게 아쉬웠다. 솔직한 것 같으면서도 남들 눈을 의식했다. 그럴려면 혼자 보는 일기장에나 적으면 될 것을 뭐가 그리 고민이 되었을까?


'글 좀 쓰네' 라는 말이 듣고 싶은걸까?

'나도 너랑 비슷해' 공감과 위로를 하고 싶었던 걸까?

사실 두 가지 다 해당되는 것 같다.



돌고 돌아 브런치 스토리를 알게 되었고, 내가 누군지를 꼭 밝히지 않아도 내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맨 땅에 헤딩하듯 홀로 도전했을 때는 실패의 고배를 마신 적도 있었다.

그 때도 머릿 속엔

'다시 도전해야 되는데, 언제하지?'

생각만 하고 곁눈질로 모니터만 쳐다봤다.


은경쌤 덕분에 기회가 되어 다시 찾게 된 브런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고 또 키보드를 뚝딱이기 시작하니 마치 지적인 여성이 된 것 같았다. 당연히 머릿 속에 500GB의 생각이 꽉 들어차있으니 꺼내면 바로 술술 써질 줄도 알았다. 내 착각이었다. 평소 산문, 에세이를 좋아해서 에세이를 쓰겠다고 앉아보니 다큐가 되어버리는 나의 필력이 들통나버린 것이다. 해보니 많은 착각 속에 있었다는 생각에 좌절하기도 했다.


몇번의 퇴고 끝에 드디어 '브런치 작가' 라는 수식어를 갖게 되었고, 현실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이 현실에 함께하는 동기들이 생겼다.

함께 글을 쓰고 있으니 내 깨진 유리잔은 이미 버려졌고, 새로 생긴 텀블러에 물도 채우고, 커피도 채운다. 따뜻함도 유지된다.

모두들 나와는 또 다른 각자의 삶에 스토리가 있고,

그걸 풀어내는 방법들도 다 다르다. 하루종일 동기 작가님들 글만 봐도 하루가 훌쩍 지나갈 정도이다. 깊이가 있다. 얼굴 한번 제대로 본 적 없고, 목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그녀들의 열정과 내공은 오늘도 내게 전해진다.

허세에 찌들어 겉도는 그런 대화 말고, 오늘 무슨 책을 읽었고, 이 부분이 와닿아서 추천하는,

공통분모를 이루고 있는 이 사람들을 애정한다.

(p.s. 당연히 빵지순례도 좋고, 똥꼬 이야기는 더 좋다.

그녀들 is 뭔들!

한가지 더. 명품 저도 좋아합니다~ 지금 그렇게 느끼는 개인적인 생각일 뿐!)






지난 주말, 2년만에 만난 친구가 내게 말했다.


"오늘 보니 많이 안정되고 편안해보여."

이걸로 충분하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