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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율 Dec 26. 2023

오래된 것을 지키는 힘

동유럽 여행기



"프라하의 야경을 보고 싶어"     


 오래전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의 여파였을까? 체코‘프라하’를 신혼여행지 후보에 올려둔 사람들을 종종 보았다. 드라마를 열심히 안 봤던 터라 그 당시에는 프라하에 대해 잘 모르기도 했고, 언젠가 유럽에 가게 된다면 0순위는 이탈리아, 1순위는 프랑스였다. 이 전 글 [시어머니의 독박육아]에서 썼듯 친정엄마의 파랑풍선 패키지 상품을 계약한 후에 일사천리로 진행된 일이고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할 뿐인지라 이번 여행의 목적지에 선택권은 없었다.

동유럽의 체코, 헝가리, 오스트리아 3개국을 9일 동안 프라하, 체스키크룸로프, 부다페스트, 빈, 잘츠부르크, 할슈타트, 잘츠감머구트, 카를로비바리를 돌아보는 일정이었다. 프라하와 부다페스트 야경이 유명하다는 건 들어봤고, 빈은 음악의 도시, 할슈타트는 워낙에 풍경사진이 유명해서 많이 봤었다. 이 일정을 모두 기록한다면 조금은 길고 지루해질 나열이 될 수도 있어 주로 기억에 남았던 일들만 기록하려 한다.          


 공항버스를 타고 아침 9시 거의 다 되어 인천공항 2 터미널에 도착했다. 가족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나니 이제 실감이 난다.

“여러분 다 모이셨나요? 안녕하세요~ 파랑풍선 000 팀장입니다.”

굉장히 호탕하고 유쾌한 아저씨 한 분의 외침으로 이번 여행에 함께 할 몇 가족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신기하게도 너튜브에서 겨울철 유럽여행 가방 싸는 방법을 찾을 때 봤던 영상 속 가이드님이 이번 여행에 우연찮게 우리와 동행하는 가이드님이라는 게 이번 여행을 또 기대하게 했다.

출국수속을 하고 드디어 비행기에 탑승했다.

가기 일주일 전부터는 독감이 기승을 부리는 시기였던 터라 미리 몸을 사렸더니 다행히 컨디션은 좋았다. 갓 8세에 진입한 아이와의 여행이라서 12시간가량의 긴 비행시간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고민이 무색할 만큼 자리 뒤척이는 나보다도 오히려 은우는 책도 보고 게임도 하고 영화도 보면서 시간을 알차게 잘 보내줬다.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8세 아이랑 온 게 맞나?   






[오래된 도시의 매력 - 부다페스트]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왔다. 넓은 들판을 한참 지나니 상상만 했던 오래된 유럽의 건물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우와우와~~” ('우와'를 잘 쓰는 편) 감탄사 연발하던 내게 은우가 말했다.

“엄마 건물이 너무 낡았어요”

“아 은우가 보기엔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네” 하며 실소가 나왔다.     

아이의 시선에는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 있겠구나. 이해도 되면서 이 오래된 건물들이 현존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부다페스트의 유명관광지인 영웅광장, 어부의 요새, 부다페스트 왕궁 등을 둘러보았다. 특히 어부의 요새에서 바라본 부다와 다뉴브강 건너편의 페스트 지역이 구름 낀 날씨 덕에 은은한 수채화처럼 보였다. 어릴 때 피아노 소곡집에서 자주 쳐서 낯익은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의 도나우강이 바로 이 다뉴브강이라는데 갑자기 그 선율이 떠올랐다. 저녁에는 그 다뉴브강에 유람선을 타고 국회의사당과 부다와 페스트를 잇는 여러 다리들을 지나며 야경을 감상했다. 불타오르는 듯 황홀한 야경을 눈에 다 담으려니 지나가는 시간이 아쉽게 느껴졌다.

어부의 요새에서 바라본 부다와 다뉴브 강 건너편 페스트  /  페스트에 있는 국회의사당
어부의 요새에 있는 마챠시성당    /   부다페스트 시내

 




[졸음을 이겨내지 못한 음악회 - 빈]

 

 겨울의 동유럽은 회색빛에 스산한 느낌은 들지만 그게 또 어울리는 멋이 느껴진다. 오스트리아-빈을 돌아보는 일정이다. 빈은 부다페스트보다는 조금 더 깔끔하고 단정한 느낌의 도시였다. 이 날은 궁전 두 곳을 둘러보는 일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벨베데레 궁전은 그 유명한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실레의 작품을 전시해 둔 미술관으로 쓰이고 있는 곳이었고, 쉔부른 궁전은 유럽에서 가장 대표적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었다.

특히 어릴 적 [베르사유의 장미]라는 만화영화를 본 세대라면 마리앙투와네트를 더욱더 기억하기 쉬울 것이다. 바로 그 마리앙투와네트가 합스부르크왕가에서 유일한 여왕이었던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이라는 사실을 듣고는 다시 서양사를 들여다보고픈 호기심이 생겼다. 우리는 쉔부른 궁전에 공개된 몇 개의 방을 둘러보았고 그곳은 정말 화려함과 웅장함의 극치였다. 1700년대의 유럽왕족들의 생활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보고 나니 우리나라로 치면 영조, 정조 시절이 떠오른다. 동시대임에도 동양과 서양이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살아왔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까지 하다. 그날 하루 내내 서양사에 푹 빠져있었고, 또 마침 저녁엔 음악회를 볼 예정이라서 그런지 오스트리아의 매력에 푹 빠졌던 터라 발바닥이 아파도 크게 피곤한 줄도 몰랐다. 몸은 내 의지를 꺽지 못했던 걸까? 저녁 먹은 후 시작된 음악회. 잔잔한 음악을 듣고 있으니 살짝 노곤노곤해지더니 자꾸 감았던 눈을 뜨는 나를 발견했고, 은우는 고개를 떨구며 졸았다는 슬픈 이야기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졸지만 않았어도 더 즐길 수 있었을 음악회  /  슈테판 대성당
빈의 거리 풍경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한 잘츠부르크]

 

 오래되었지만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의 도시인 잘츠부르크. 바로크양식 건축물로 유명하고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400년도 전에 지어진 잘츠부르크 대성당 안을 둘러보는데 너무나도 정교한 건축기법에 놀랍기만 했다. (참고로 은율은 건축전공자)

 모차르트가 태어난 곳이라고 하고, 사운드오브 뮤직에서 배경지가 된 곳을 직접 둘러볼 생각에 설렜다. 특히 몇백 년 전인 1700년대 모차르트가 커피를 마시며 작업을 하던 카페를 직접 가보니 이렇게 오래된 곳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잘츠부르크의 필수 여행코스 중 하나인 미라벨정원도 사운드오브뮤직에서 나온 곳인데, 영화 속처럼 초록초록함과 화려한 꽃을 볼 수 없는 겨울이지만 그러지 않더라도 구획되어 있는 정원을 보니 봄날의 잘츠부르크 풍경은 어떨까 상상해 보았다. 또 간판거리인 게트라이데거리 역시 1700년대부터 거리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들이 보였다. 이렇게 해놓으니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도시, 나아가 나라에서 이렇게 힘쓰는데  여기 사는 이들에게는 어쩌면 너무 당연한 모습일 텐데 나만 이렇게 놀라운 걸까?

     모차르트가 찾던 카페 '토마셀리'  /  잘츠부르크 대성당  /  마카르트 다리
카페 토마셀리 앞 레지덴츠 광장  /  논베르크수녀원이 보이는 잘츠부르크 풍경




[시간이 멈춘 듯한 동화 속 할슈타트]


 할슈타트라는 이곳 풍경을 사진으로 많이 봤었다. 차로 구불구불한 길을 꽤 지나니 거울에 비춘 듯한 호수마을이 나왔다. 은우는 멀미로 고생을 해서 그런지 표정이 썩 좋지 않다. 속을 달래고나서야 내 눈에도 풍경이 들어온다. 마치 동화 속에 온 듯한 그러면서 잔잔하고 고요한 호수마을에 눈까지 쌓인 풍경 역시 아름다웠다.

특히 미세먼지에 비염을 갖고 살며, 날로 시력이 떨어진 것 같은 착각을 안고 사는 나로선 맑은 공기와 시야가 확 트이는 것만으로도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도시를 둘러보는 것보다 자연경관에서 더 큰 감명을 받는 남편이 함께 왔다면 정말 좋아했을 것 같다.

건물 하나하나 동화같은 할슈타트  /  제일 유명한 포토스팟에서 찍은 한 컷




[아기자기 낭만 가득한 체스키크룸로프]


 다른 나라로 넘어왔다. 체코의 체스키크룸로프라는 곳. 이름이 조금은 긴 데다가 낯설지만 빨간 지붕이 모여있는 유럽의 마을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여기도 또 다른 동화마을 같다. 이곳 역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제되었다고 한다. 마을 곳곳을 걸어 다니니 작은 서점, 아기자기한 창문, 개성 있지만 또 모아놓으니 하나의 그림 같은 외관의 건물들, 제일 궁금했던 유럽의 돌바닥. 이 모든 곳 구석구석을 다 눈에 담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시간은 한정돼있고, 여행자로서 들를 때는 늘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체스키크롬로프 곳곳의 풍경




[까를교에서 프라하의 야경을 보고 싶어]


 드디어! 프라하에서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긴 시간이 허락된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이틀이란 시간을 오롯이 프라하에서 보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여느 관광객과 다를 바 없이 유명 관광지를 돌아보는 일정이라 프라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너무 인상 깊었던 성 비투스 대성당과 프라하 성을 둘러보고 천문시계가 있는 구시가지 광장, 까를교를 오고 가며 그 주변을 많이도 걸어 다녔다. 이렇게 걸으면서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게 여행의 묘미지만 하루하루가 갈수록 숙소에 도착하면 이 다리가 내 다리인지, 발가락 감각이 무뎌진지는 오래다. 급한 불만 끄고 또 걷는다. 도시의 아기자기함은 말할 것도 없고, 낮과 밤의 프라하는 또 다 다르기까지 해서 왜 다들 '프라하' 그러는지 알 것 같았다. 유명하다는 굴뚝빵도 맛보고, 천문시계 앞에는 매 시간 정시에 시계가 울릴 때가 되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은우가 꽤 인상 깊게 보았던 모습이기도하다. 거기서 사온 천문시계 자석도 똑같이 시곗바늘이 돌아가는데 은우는 아직까지도 그걸 보며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한다.

성 비투스 대성당 내부 스테인드 글라스 /  온통 빨간 지붕으로 덮인 프라하 전경
프라하 유명한 간식 '굴뚝빵'  /  블타바강을 끼고 있는 프라하 풍경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까를교와 시내 풍경  / 구시가지 광장의 천문시계






 이 곳에서 보낸 시간동안 가는 곳 마다 반복적으로 놀수 밖에 없던 점은 오래된 것을 지켜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었다. 그것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에 앞선 변화의 두려움이 이유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디지털보다 아날로그에 더 큰 감동을 하는 나로서는 이런 유럽 감성의 자극이 오래간다. 오래된 것을 지키는 힘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오는지 궁금해졌다. 아직도 대단하다고 밖에 표현이 안된다.

 여행은 늘 그렇듯  조금 익숙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쯤 다시 떠나와야 한다. 언제 다시 와볼는지 기약은 없지만, 때로는 한번 다녀온 여행의 기억이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특히 '어떻게 해서 온 여행인데'라는 마음 때문인지 여행 내내 힘들다는 표현조차 하지 않은 내 모습이, 이곳에서 할 수 있는 한 많은 것들을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빈에서 한 번은 꺾이긴 했지만)

 친정식구들과는 긴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고, 은우에게는 많이 걸어서 힘든 유럽여행으로 기억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천문시계처럼 스스로 기억해 내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는 점이고, 또 사진을 보면 그 속의 자기 모습을 보며 떠올랐을 장면들이 있다는 점이다. 스치는 것이더라 분명히 영감을 주는 몇 가지 찰나는 남아있을 것이라는 소회를 남기며 시어머니의 독박육아를 끝내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




프라하에서 이고 지고 온 스타벅스 컵


 프라하에서 이고 지고 온 스타벅스 머그컵에는 천문시계탑도 있고, 성 비투스 대성당도 있다.

남편이 집에서 손 안대는 컵 중 하나. 이거 깨면 큰일 나는 줄 알기 때문이다. (컵 사러 프라하 간다고 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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