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개월, 두 살 터울의 형제를 키우며 지난 시간 전업주부의 삶이었다. 3세 이전까지는 기관에 보내지 않았던 첫째 은우와 시간을 보냈고, 그다음 해는 둘째 연우를 출산. 연우가 2년 하고 반년을 더 채울 때까진 오롯이 함께 시간을 보냈다. 타고난 모성애로 어떻게든 온갖 정성을 들여 애지중지했던 엄마였을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어린 시절 아이들이 자라는 기간을 엄마 눈에 담고, 엄마 손으로 키워보자고 한 건 우리 부부의 선택이었다.
5년의 시간이 지나서야 두 아이를 모두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보낸 후 홀가분함과 죄책감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시작되었다. 조금이라도 비어 있는 시간이라도 생길라치면 불안했고, 은우 출산 이후부터 잊을만하면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는, 아이를 옆에 두고 일을 하는 등등의 꿈에 시달렸다.
그렇다고 출퇴근이 확실한 어딘가에 소속되는 건 허락되지 않았다. 어린이집에 가게 된 연우는 한 달 중 소아과의 약 봉투를 받지 않은 날이 손꼽을 정도로 다양한 감기에 걸려가며 '이것이 가정보육인지 어린이집보육인지' 헷갈릴 정도로 듬성듬성 출석이었다. 이 와중에 멀티플레이 해보겠다고 자격증을 위한 책을 펼쳤다 덮었다를 수없이 하고, 애들이 잠들고 나서 책을 펴볼라치면 같이 잠이 드는 날이 일쑤였다.
다양한 감기에 내성이 생길 때 쯤되니 다른 지역으로의 이사로 인한 환경에 변화가 생겼다. 지금은 아이들이 줄어서 병설유치원조차도 홍보를 할 정도가 되었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여긴 아이들이 굉장히 많은 곳이었다. 어린이집이며 유치원이며 대기, 대기, 대기... 보낼 곳이 없어서 한동안 가정보육을 했다. 또 다음 해 연우의 수술일정에 한 달 이상을 가정보육. 그때 같이 터진 코로나로 은우는 졸업식도, 입학식도 못한 채 학교생활조차도 또 듬성듬성하며 함께 부대끼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형제들의 전담선생님이 되면서 나는 메인은 미술선생님이요. 국어, 수학, 영어에 요리선생님까지 온갖 집에서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시도했다. 뜻밖의 적성을 찾기도 하고, 안 하길 잘했다는 깨달음을 얻는 기회라고
좋. 게. 생각하기로 했다.
코로나 시작 후 동선이 겹쳐서 격리, 코로나 확진으로 격리 이 순서대로 다 겪을 때쯤 연우가 입학을 했다. 빠르면 1시, 아니면 2시 하교이지만 제법 내게도 여유가 생겼다.
이미지출처 : 픽사베이
아이들이 등교하면 청소기와 세탁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한다. 계절이 바뀌면 옷장을 정리하기도 하고, 아이들 간식거리를 준비하고, 장을 본다. 안 하던 운동도 해야겠고, 가끔 지인들도 만나고 또 돌아오면 아이들 식사와 공부를 봐주고 같이 피곤해서 잠들기를 반복했다. 공원 길로 하교하는 둘째 연우를 마중 나가면 강아지처럼 뛰어와 안기는 모습을 놓칠세라 동영상으로 남겨두기도 하고, 하교시간이 다른 형제의 시간표에 외동놀이의 시간을 껴넣기도한다. '형한텐 비밀이야~'
분명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닌데, 하루를 꽉 채워 보낸 것 같은데 나만을 위한, 나에 대한 성취감이 들지 않는 것이 견디기 어려웠다. 육아로 빼곡히 채운 나의 지난 시간들, 아이들과 함께해 온 소중한 기록들이 다 남아있는데도 다이어리에 조금이라도 공백이 느껴질 때면 부단히도 성취록을 작성하고야 마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적어도 은율이라는 자아에는 말이다. 계속 시간만 흘려보내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망설이기 전에 우선 해보자고, 하나, 둘, 셋 세고 재고 하기 전에 발을 먼저 딛겠다고 용기를 내보았더니 조금씩 어떤 일이 벌어졌다. 새벽에 일어나기 시작했고, 앉아서 책을 읽고 기록을 한다. 아이들 학교 갈 준비하는 동안에 할 수 있는 집안일을 우선 해놓고, 등교함과 동시에 운동가방을 든다.
때론 배움을 위해 가방을 챙기고, 내가 가치 있다고 느끼는 일에 아낌없는 에너지를 쏟으면서 성취감을 되받는다.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아진 모습을 보며 성취감을 채워간다. 엄마의 삶과 은율의 삶이 조화롭게 되기를. 시작은 미미해도 어떤 그림으로 완성될지 궁금해진다.
종종 하던 친구와의 통화를 못한 지 좀 되었다.
누구보다 친구인 내가 '은율의 삶'에 집중하길 바라는 친구인데 이제는 이 전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