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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율 Dec 05. 2023

시어머니의 독박육아

애 맡기고 유럽여행 간 며느리





"엄마(시어머니)가 연우봐줄께. 걱정말고 다녀와"


갈팡질팡 마음이 요동친다.

'그래도 되는걸까 너무 죄송한데, 안가면 후회할 것 같고, 나 이기적인거지?'






 아빠의 환갑이 있던 해.

어느 날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동유럽여행 패키지 예약했는데, 혹시 갈 수 있겠어?"

"엄마~~ 제가 어떻게 가요. 애들 아빠가 장기간 휴가 쓸 수 있을지 모르고 연우도 넘 어리기도 하고..."

"그건 그렇지. 애들(동생들)하고는 얘기해서 예약하긴 했는데, 상황 어려운 거 엄마도 알지. 넷이서만 가서 미안해"

"잘 다녀오세요~ 전 어차피 못가요"


  나에게는 7살 차이의 여동생, 9살 차이의 남동생이 있다.

지금은 다들 성인이 되고 각자의 몫을 다하고 살지만 어렸을 땐 나이차이가 많이 난터라 사실 동생들이 어떻게 자랐나싶을 정도로 나도 자라기에 바빴다. 눈 떠보니 애들이 대학가고 취업하고 이미 그 사이에 난 결혼해서 애가 둘이 된 언니, 큰 누나가 되어 있었다.

아이 둘 키우는 동안 부모님과의 해외여행에 동행할 기회들이 있긴 했었다. 그때마다 임신중이어서 취소했던 나는 우리 가족의 해외여행을 마음 속으로 꿈꿔왔다.


 서로 시간 맞추는게 힘들다보니 부모님은 대학생인 동생들과는 방학 때에 맞춰 여행을 자주 다니셨다.

그럴 때 육아 중인 내게 오히려 미안해하시며, 되려 내 상황이 될 때로 미루려 고민하시는 부모님께 그러지 않으셨음 좋겠다고 했다. 그 시간은 온전히 부모님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제서야 세명을 길러 낸 부모님의 나긴 육아에도 끝이 보여서 여행다니기도 자유로워지셨는데  동행할 수 없는 상황이 아쉽기만 했다.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도 당연히 엄마의 전화를 받았을 때만 해도 고민 할 것도 없이 'NO'였었다.

전화를 끊고 생각해보니 갑자기 가슴이 벌렁벌렁거리면서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내가 꿈꿔왔던 기회가 온건가?'

'연우가 너무 어려서 데려가는건 무리인데?'

'내가 우리 엄마 아빠랑 또 얘네들(동생들)이랑 언제 또 가보겠어?'

'남편은 바빠서 휴가 길게도 못쓴댔는데...?'


가야 될 이유와 가지 못하는 이유를 번갈아가며 곱씹어보았다.

'현실적으로 가긴 어려울 꺼 같은데, 가면 안될 것 같은데 가고 싶다. 가고싶다. 가고싶다고....!!'



우선 남편에게 이 상황을 전했다.

"엄마,아빠 애들이랑 동유럽여행가신다는데 "

"그래? 이런 기회 흔치않아. 자리 차기 전에 어머님하고 얘기해서 얼른 예약해"

"솔직히 연우는 데리고가기에 넘 무리잖아"

"뭐가 걱정이야. 울엄니한테 부탁드리면 되지"

"아 어떻게 그래~~~ 몰라"


복잡한 마음에 괜히 남편에게 툴툴거렸다. 그나저나 전국효자대회나가면 1등아님 서러울 남편이 저런 말을 하다니 놀라웠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결혼 후 착한 며느리 병 걸렸을 땐 무조건 '네네'만 하는게 맞는 줄 알았다. 많이 먹으라며 고봉밥을 퍼주셔도 많단 소리도 못했다. 나한텐 아주 큰 일이 아니고서야 내가 납득하기 힘든 어떤 부탁을 드리는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지금이야 어머님이 운동안하고 집에만 계시면 산책이라도 하셔야된다며 잔소리도하고 할말 하지만 말이다.

 그날 밤. 퇴근한 남편과 대화를 하다가 어떤 후회가 더 크게 남을지 생각했다. 그리곤 결단을 내렸다.

매끄러운 전달을 위해 말보다 글이 편한 나는 장문의 카톡을 고치고 또 고치며 시부모님께 먼저 문자를 보드린 다음 바로 전화를 드릴 생각이었다. 카톡을 보냈더니 내가 하기도 전에 시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은율아 그게 무슨 고민이라고,  문자를 길게도 보냈네.

엄마(시어머니)가 연우 봐줄께. 여기 걱정말고 다녀와. 알았지?"

"어머니 진짜요?ㅠㅠ~~~~~ 감사해요"


 사실 간곡히 부탁드리는 며느리의 호소문을 외면하는게 쉽지는 않으셨을거다. 호소문에 반박을 하실 법도 하지만 전혀 언짢은 기색 하나 안내비치셨다. 특별히 시어머의 시집살이가 심하다거나, 무서운 분이신건 아닌데,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일지도 모를 일이 내게는 결혼 8년만에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했던 일이었다.

그렇게 초등 입학을 앞둔 은우와의 여행준비가 시작되었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떠나기로 한 날이 설 연휴시작하기 전이었다.

명절도 같이 안보내. 그것도 애 맡겨놓고 친정식구들이랑 남편 빼고 여행이라니- 홀로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기분은 말도 못한다. 이 와중에 시부모님은 용돈까지 주시면서 부모님 맛있는거 사드리고 즐겁게 보내고 오라고 하셨다. '어머님 천사세요?' 준비하는동안 매일을 감사한 마음에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열흘간 아이 데리고 가서 지낼 짐도 싸야하는데 그보다도 우리 집에 계시는 동안 다섯 살 꼬맹이와 씨름하신다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그렇지만 어떻게 온 기회인데, 여행을 같이가는 가족들에게도, 남아있는 가족들에게도 최선을 다하겠어.'


 냉장고에는 미리 끓여놓은 육수 세 병에 고기, 채소 그리고 밑반찬 몇 개를 채워 넣어뒀다. 시부모님의 쾌적한 잠자리를 위해 이불 빨래에 화장실 청소까지 독박육아를 위한 모든 정비를 끝내놓았다.

전라도에 살고 계신 시부모님은 다음 날 7시면 공항버스를 타러 가야 할 우리를 위해 전날 올라오셨다. 옆 단지 어린이집을 다니던 연우의 등하원 길, 태권도 학원 가야하는 시간, 아파트 현관 비밀번호 등등을 화이트 보드에 써놓고, 또 부족하면 사진을 찍어 카톡에 보내드렸다.

그제서야 은우와 내 짐가방에 빠진게 없는지 확인 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새벽, 시아버지께서 공항버스를 타는 곳까지 태워다주셨다.

복잡미묘한 감정이 들었지만 이제 이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는 친정식구들과의 시간에 집중하고, 시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절대 잊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이윽고 시부모님의 열흘간의 손주육아가 시작되었다. 아버님은 사흘 뒤 내려가시고 어머님 홀로 남으셨다. 남편은 아침 일찍 나가 칼퇴를 해서 와도 7시. 매일을 아들과 손주의 따뜻한 밥상을 차려내시는 어머님은 어떤 마음이셨을까? 시차가 있어 원활하진 않아도 사진으로 그 사랑과 정성이 느껴졌다. 멀리 떨어져 살아서 일년에 얼굴 마주할 일이 열번 정도밖에 안된다. 이런 시간을 갖는게 어머님도 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기를 바라며 나는 이륙길에 올랐다.








 8년 전, 둘째 임신 중에 지금의 연우가 사내라는걸 확신한 날 어머님께 알려드리니 많이 아쉬워하셨다 이유인즉.

당신도 아들 둘 키워서 딸 못 키워봤는데, 우리 며느리도 당신이랑 같은 처지라고 짠하시단다.

아들 둘을 키우신 어머님을 보고, 아들 둘 키우는 나는 늘 생각한다.

나중에 내 며느리에게 어머의 반에 반의 반만큼이나 사랑을 줄 수 있을까?


어머님 요즘 제 전화가 좀 뜸했죠? 성하겠습니다!









-동유럽여행기가 궁금하시다면?

https://brunch.co.kr/@becomingj/27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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