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 "심땅은 I 맞아"
나(심땅) : "아니 E가 5% 더 많게 나왔다고~ 나 외향형이야"
내향형인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외향형이 더 우월하고, 더 인정받는 것 같았다.
최근 대화 중에 자기소개에 썼던 '말보다 글이 편한 사람이라고 했던 나의 손가락이 부끄럽다'라고 했다. 그땐 글 쓰는 게 어려워서 그랬었는데 이제 확실히 깨달았다. 말보다 글이 차라리 더 편한 사람이 맞고, 수줍음이 많으며, 많은 사람이 모였을 때 그런 내 모습은 더 빛을 발한다는 것을. 결국은 쿨하게까지는 아니지만 인정한다.
"그래 나 내향형이야! 뭐 어때!"
기억을 거슬러 가 보자면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두 번을 빼고 매 해 학급의 임원을 맡았다. 반을 대표해서 무엇인가 책임지는 일을 좋아했으며, 교탁에 서는 일도 잦았다. 방송반 아나운서를 하며 매일 학교 소식을 전달했고, 전교 부회장도 출마했다.
기억을 하실는지? 흡사 정치인들의 지방선거운동 못지않게 학교 곳곳에 벽보를 붙이고, 각 반을 돌아다니면서 연설을 하던 그 시절 아날로그 방식의 선거운동의 중심에는 내가 있었다. 결과는 낙선이었지만 나서는 것 자체가 좋았었다.
소풍이나 학예회 때는 친구들 몇몇이 모여 그때 유행한 가수의 춤을 따라 추곤 했다. 룰라, 영턱스클럽, SES 등등 지금이라면 뉴진스, 아이브 요런 가수들이 되겠다.
나열하고 보니 지나온 시간들이 조각조각 기억이 나는데, 이렇게까지 쓴 걸 보면 '나도 지독히도 외향형이고 싶은가 보다' 스스로를 비판해 본다. 그 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급변해 버린 이유를 찾아본다면 원하는 대학진학에 실패했고, 당시에는 그게 인생의 큰 실패라고 여겼다. 그 실패를 만회하려고 가까스로 발버둥 치며 인생이 뜻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나이가 들어가면서 행동에 대해 조심스러워지고, 다른 사람을 유난히도 의식하게 되면서 변해갔다. 말을 아끼게 되고, 먼저 앞에 나서지 않는다. 대부분 외, 내향형을 구분하는 것은 말을 내뱉는 빈도 혹은 적극성의 유무였다. 그렇다고 내향형인 사람이 모두 나와 같은 이유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꼭 단정 지을 필요도 없다.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핵인싸가 될 수도 있고, 낯선 이들이 모인 곳에서는 굳이 내 에너지를 다 꺼내고 싶지 않을 때도 있으니 말이다. 또 특정 분야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분야에 대해 나눌 때만큼은 본인의 목소리를 키울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방식이든 표현할 수 있는 걸 표현해 낸다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말보다 글이 편한 나라며 수식어를 붙인 이유도 어찌 보면 일말의 긴장감을 가지고 싶어서다. 이렇게라도 내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모아서 글에서 만큼은 그토록 원하는 외향형의 힘 있는 나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슬초 브런치 클럽 모임이 있던 지난 토요일.
각기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이 같은 목표를 가지고 모였을 때 발휘하는 힘이란 어떤 것인지를 느꼈다. 내향형에 가깝다고 밝힌 많은 사람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주신 이은경 선생님! 몇 해 전부터 유튜브로 봐왔던 선생님이신데, 홀로 내적 친밀감을 쌓다가 처음으로 직접 만나 뵀다. 당신도 내향형의 사람이라시던데, 그래서인지 지금까지의 과정에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으셨을지. 때로는 모든 에너지를 밖으로 쏟아내야 했을 때도, 혼자 집어삼켜야 했을 때도 많으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의 영향으로 모인 이들이 각자의 에너지를 응축해서 글로 표현해 낸다면 얼마나 큰 힘을 보여주게 될지 기대된다. 그중에 나도 속한다니 그 또한 영광스럽다.
자, 이제 이렇게 말보다 글이 편하다고 선포를 해놓았으니 어서 긴장을 갖고 쓰기를 -
상황에 따라 선택적 외향형의 삶을 사는 것도 괜찮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