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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율 Nov 23. 2023

잔짐이 많으시네요



미니멀라이프 : 불필요한 물건이나 일 등을 줄이고,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적은 물건으로 살아가는 '단순한 생활방식'을 이르는 말이다.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지만, 맥시멀라이프는 지양한다.


But.

 맥시멀리스트인걸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혼자 살던 자취방을 정리하던 날. 쓰던 냉장고를 중고에 사겠다던 사람이 직접 찾아올 시간이 안된다며 대신 소형이사 봉고차를 불러줬다. 기사분께 며칠 뒤 이사해야 한다고 예약 가능여부를 묻고 소액을 지불하고 예약을 했다.

이삿날. 더 나올 게 없어 보이는 그 작은 방 안에서 상자가 끊임없이 나왔다. 짐을 싼 건 나였음에도 거듭 놀라웠다. 여자 혼자 사는데 짐이 많아봤자겠거니 가벼운 마음으로 왔던 아저씨의 황당한 표정을 잊지 못한다. 광활해 보이던 봉고차 안은 어느새 가득가득 차더니 투룸인 신혼집 방 한편을 빼곡히 채우며 옮겨졌다. 3층인 자취방을 나와 3층인 신혼집까지 오르락내리락 몇 번을 왔다 갔다 하셨는지, 지불한 돈이 민망해질 정도였다.

결혼을 하고, 세간살이를 더 들이고, 식구 한 명이 늘어갈수록 1인분의 양이 아니라 제곱 그 이상으로 짐이 늘어갔다.  





이미지출처 : 픽사베이




 지금의 집에 정착하기까지 세 번의 이사를 했다.

이삿짐센터에 견적 문의를 드릴 때만 해도 큼직한 가구(소파, 장롱 등)가 없었던 터라 눈짐작으로 예산을 잡았다. 정작 당일이 되면 구석구석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짐을 감당하지 못해 추가로 트럭 한 대를 더 불렀다.


잔짐이 많으시네요



 세 번의 이사를 하는 동안 정확히 세 번 들은 말이다. 민망함은 남편 몫이다. 전해 들은 민망함을 알지만 쉽게 바뀌지 않는 맥시멀리스트의 삶. '다들 이 정도의 짐은 가지고 사는 거 아닌가?' 라며 나를 되돌아보기보다는 그저 물음표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비워내겠다고 마음잡고 정리를 시작한 어떤 날은 흐트러진 물건의 위치만 정돈될 뿐 양은 그대로이다. 간혹 갑작스럽게 큰 봉지 두어 개에 왕창 쏟아버릴 때도 있긴 하다. 그건 결국 후회로 돌아온다. '아 그때 버렸다' '왜 버렸지?' 버린 후에 필요성 느낀 적이 많다 보니 비워낸다는 일이 좀처럼 쉽지 않다.

 

 지극히 사적인 맥시멀리스트의 쟁여둔 짐이란 이렇다.

캔 맥주에 딸린 컵을 사기 위해 맥주를 샀다. 그것도 요즘 한 개만 들어 있으니 짝수로 맞추려고 두 개!

여행 가면 스타벅스는 필수코스. 여행지에서의 스벅  놓칠 수 없다.

신혼 때 엄마가 사주신 잠옷, 초등학교 때 쓴 일기장, 학교생활, 회사생활의 기록물 + n연차 다이어리,

이미 작아져버린 형제의 단풍잎 반팔 티셔츠(엄마가 캐나다 여행에서 사다 주신), 아이들이 꼼지락꼼지락 만든 결과물들, 특히 살 빠지면 입겠다고 아직도 버리지 못한 미니스커트와 블라우스들 등등






 식료품, 생필품은 많이 쟁여두는 것을 원치 않으니 그런 부분은 그럭저럭 빠르게 비움과 채움이 이루어진다. 문득, 이 많은 짐들에 깔아뭉개지는 건 아닌지, 대형 청소기가 있다면 싹 빨아들이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대체적으로 그럴 땐 어떤 것도 눈앞에 두고 보고 싶지 않은 굉장히 싫증이 난 상태일 때다. 숨을 가다듬고 잠시 일탈을 했던 마음을 다잡는다. '잘 쓰고 있잖아', '다음에 쓸 일이 있을 거야'라며...  

 의미가 있는 물건은 실제 그것의 쓰임보다도 의미가 있기에 붙잡아 두고 싶다. 그래서 더욱이 비우지 못한다. 때론 무언가를 비우면 기억 속에서 차지하고 있던 추억의 조각이 사라 질 것만 같은 두려움이 차오르기도 한다.




But.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한다.

미니멀라이프의 정의처럼 불필요한 물건, 일들을 덜어내고 단순하게 살아가는 게 내가 지나온 흔적을 지우는 일이 아님을 받아들인다. 물건에 치이며 사는 방법 말고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려고 한다.







비워야 할 것은 겹겹이 자리 잡은 불안함과 두려움이고,

채워야 할 것은 눈앞의 물건이 아니라 나를 지켜내는 단단한 평정심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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