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라이프 : 불필요한 물건이나 일 등을 줄이고,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적은 물건으로 살아가는 '단순한 생활방식'을 이르는 말이다.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지만, 맥시멀라이프는 지양한다.
But.
맥시멀리스트인걸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혼자 살던 자취방을 정리하던 날. 쓰던 냉장고를 중고에 사겠다던 사람이 직접 찾아올 시간이 안된다며 대신 소형이사 봉고차를 불러줬다. 기사분께 며칠 뒤 이사해야 한다고 예약 가능여부를 묻고 소액을 지불하고 예약을 했다.
이삿날. 더 나올 게 없어 보이는 그 작은 방 안에서 상자가 끊임없이 나왔다. 짐을 싼 건 나였음에도 거듭 놀라웠다. 여자 혼자 사는데 짐이 많아봤자겠거니 가벼운 마음으로 왔던 아저씨의 황당한 표정을 잊지 못한다. 광활해 보이던 봉고차 안은 어느새 가득가득 차더니 투룸인 신혼집 방 한편을 빼곡히 채우며 옮겨졌다. 3층인 자취방을 나와 3층인 신혼집까지 오르락내리락 몇 번을 왔다 갔다 하셨는지, 지불한 돈이 민망해질 정도였다.
결혼을 하고, 세간살이를 더 들이고, 식구 한 명이 늘어갈수록 1인분의 양이 아니라 제곱 그 이상으로 짐이 늘어갔다.
이미지출처 : 픽사베이
지금의 집에 정착하기까지 세 번의 이사를 했다.
이삿짐센터에 견적 문의를 드릴 때만 해도 큼직한 가구(소파, 장롱 등)가 없었던 터라 눈짐작으로 예산을 잡았다. 정작 당일이 되면 구석구석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짐을 감당하지 못해 추가로 트럭 한 대를 더 불렀다.
잔짐이 많으시네요
세 번의 이사를 하는 동안 정확히 세 번 들은 말이다. 민망함은 남편 몫이다. 전해 들은 민망함을 알지만 쉽게 바뀌지 않는 맥시멀리스트의 삶. '다들 이 정도의 짐은 가지고 사는 거 아닌가?' 라며 나를 되돌아보기보다는 그저 물음표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비워내겠다고 마음잡고 정리를 시작한 어떤 날은 흐트러진 물건의 위치만 정돈될 뿐 양은 그대로이다. 간혹 갑작스럽게 큰 봉지 두어 개에 왕창 쏟아버릴 때도 있긴 하다.그건 결국 후회로 돌아온다. '아 그때 버렸다' '왜 버렸지?'버린 후에 필요성을 느낀 적이 많다 보니 비워낸다는 일이 좀처럼 쉽지않다.
지극히 사적인 맥시멀리스트의 쟁여둔 짐이란 이렇다.
캔 맥주에 딸린 컵을 사기 위해 맥주를 샀다. 그것도 요즘 한 개만 들어 있으니 짝수로 맞추려고 두 개!
여행 가면 스타벅스는 필수코스. 여행지에서의 스벅컵놓칠 수 없다.
신혼 때 엄마가 사주신 잠옷, 초등학교 때 쓴 일기장, 학교생활, 회사생활의 기록물 + n연차 다이어리,
이미 작아져버린 형제의 단풍잎 반팔 티셔츠(엄마가 캐나다 여행에서 사다 주신), 아이들이 꼼지락꼼지락 만든 결과물들,특히 살 빠지면 입겠다고 아직도 버리지 못한 미니스커트와 블라우스들등등
식료품, 생필품은 많이 쟁여두는 것을 원치 않으니 그런 부분은 그럭저럭 빠르게 비움과 채움이 이루어진다. 문득, 이 많은 짐들에 깔아뭉개지는 건 아닌지, 대형 청소기가 있다면 싹 빨아들이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대체적으로 그럴 땐 어떤 것도 눈앞에 두고보고 싶지 않은 굉장히 싫증이 난 상태일 때다. 숨을 가다듬고 잠시 일탈을 했던 마음을 다잡는다. '잘 쓰고 있잖아', '다음에 쓸 일이 있을 거야'라며...
의미가 있는 물건은 실제 그것의 쓰임보다도 의미가 있기에 붙잡아 두고 싶다. 그래서 더욱이 비우지 못한다. 때론 무언가를 비우면 기억 속에서 차지하고 있던 추억의 조각이 사라 질 것만 같은 두려움이 차오르기도 한다.
But.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한다.
미니멀라이프의 정의처럼 불필요한 물건, 일들을 덜어내고 단순하게 살아가는 게 내가 지나온 흔적을 지우는 일이 아님을 받아들인다. 물건에 치이며 사는 방법 말고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