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떠난 이유
계속 하라면 할 수 있고 잘 할 것도 같았는데 왜?
사관학교를 다니면서 수시로 바닥을 쳤다. 군인은 도무지 내 옷이, 내 길이 아닌 것 같았다. 군사훈련 때에는 이를 악물고 완주를 해냈음에도 마지막 훈련 종료보고 시간을 버티지 못해 주저앉았고, 행군 때에는 남들 다 앉아서 쉬는 10분 간의 쉬는 시간 내내 걸어야 대열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유격 훈련 때에는 내 키만 한 벽을 넘지 못했고 IBS 고무보트 훈련 때에는 노를 놓쳤다. 웃는다고 혼났고 운다고 비난받았다. 잘 해낸 경험이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해내지 못한 기억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제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꿈꿨던 생명공학 공부를 해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그래도 군복을 벗는 일은 두려웠다. 아무도 응원하지 않는 길을, 아무도 보장해주지 않는 길을, 심지어 나조차 확신이 없는 길을 나의 오랜 꿈이라는 것 하나 믿고 가기에는, 아주 많이 무서웠다. 개인적으로 대학원을 다니면서 나의 관심사가 어떻게든 군대와 연결될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인사과에서 돌아온 대답은 냉정했다.
"그런 건 너 제대해서나 해."
제대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일 년 남짓. 최대한 편한 보직에서 근무하고 싶었다. '말년 병장' 포스 폴폴 풍기며 내가 하고 싶은 공부나 하면서 마음도 몸도 편하게 지내다가 때 되면 쿨하게 제대하고 싶었다. 군대에서 내가 필요 없다는데, 열심히 근무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받은 보직은 2함대 PCC 작전관이었다. 서해 최전방 바다에서 함정의 작전을 수행하는 직책. 지금까지 들인 노력의 제곱보다도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열과 성이 필요한 자리. 인사명령을 받아 든 날, 나는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군대는 이렇게나 나를 못살게 군다고, 끝까지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고 억울해 했지만 진짜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두려웠다.
과연 내가 함정의 작전을 책임지고 수행할 수 있을까?
백여 명의 대원들의 훈련을 계획하고 집행할 수 있을까?
혹시 있을지도 모를 위기 상황에서 배를, 대원을 지켜낼 수 있을까?
그만큼 작전을 빠삭하게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노력으로 가능한 일일까 그게?
부임을 해서도 나는 늘 불안했다. 내 능력 부족으로 우리 배가, 우리 배의 대원들의 능력까지 폄하될까 봐 걱정되었다. 내가 함장도 아니고 모든 부서의 일을 다 해야 하는 것도 아니면서 나는 배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에 책임감을 느꼈고 내 탓이라 자책했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업무는 점점 손에 익었다. 전장 환경도 익숙해졌고, 매일 날아오는 전보와 비밀 업무 처리도 능숙해졌다. 계속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2함대에서 작전관도 했는데'라는 근자감 덕분이었다.
와중에 천안함 사건이 발생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로 옆에 계류해 있었던 배가 침몰하고 대원들이 죽었다. 실종자 가족을 태우고 바다에 나가 침몰 지점과 잔해를 수색하고 매일 쏟아지는 뉴스와 기사를 보면서 마음은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이로 무너졌다.
그제야 내가 어떤 곳에 있는지 실감이 났다. 내가 달고 있는 직급과 직책의 무게가 느껴졌다. 시나리오대로 훈련 상황을 읊고 가상의 대응훈련을 하면서 이제 웬만한 상황 대응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얼마나 오만하고 멍청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후로 나는 진심이었다. 시나리오대로 훈련에 임하는 대원들에게 화가 났고, 그들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는 나에게 실망했다. 출동 나가면 밤에 잠이 안 온다는 함장님을 이해했고, 갑작스럽고 예상치 못한 훈련 지시를 수긍했다. 언제 어떤 형태로 닥칠지 모르는 위험에서 지켜내고 싶었다. 나를, 대원들을, 함정을, 바다를.
더 잘하고 싶었다. 잘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았다. 정보의 제약과 가상훈련의 한계를 굳이 탓하지 않더라도 끓어오르는 마음만으로는 안 되는 일들이 있었다. 가뜩이나 '시키는 일이나 잘하는' 수준으로는 만족스럽지 않은데, 그마저도 잘 못할 때는 스스로의 무능력함에 몸서리쳤다. 나는 계속 예민해졌고 날카로워졌다. 도무지 만족스럽지 않은, 제 살 깎아먹는 나날이 이어졌다.
함정 작전관으로 근무한 지 열 달 즈음 지났을 때, 전역 희망자 내신 지시가 하달되었다.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군대를 나갈 건지 남을 건지 마음을 정해야 할 때였다. 분명 이 근무를 끝으로 제대할 거라고 마음먹고 왔는데, 막상 전역하겠다고 서류를 내려니 망설여졌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고,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여러 날이 지났다. 하루에도 열두 번 넘게 마음이 바뀌었다. 그렇게 고민하고 결정 내리지 못하는 내가 지겨워서 전역 내신서를 찢기도 여러 번. 어느 날, 같은 배에 근무하던 동료가 같이 갈 곳이 있다며 나를 차에 태웠다. 피곤했던지 잠깐 잠이 들었다가 깨어 보니, 내가 다니던 대학원 앞이었다. 이 배에 근무하기 전까지 진해-서울 통학도 마다하지 않고 다녔던 학교, 작전관으로 근무하게 되어 울면서 휴학계를 제출했던 그 학교 앞에 내가 있었다.
학교 정문을 오가는 학생들, 불 켜진 교실과 도서관.
가슴이 뛰었다. 나도 이곳에서 이들처럼 공부하고 배우고 싶었다. 나는 그 길로 배로 돌아와 전역 신청서를 작성했고 다음날 함장님께 결재 올렸다.
몇 번의 반려 끝에 함장님은 깊은 한숨을 쉬며 결재를 해주셨고, 이듬해 나는 전역을 했다. 정확히 말하면 퇴역이었다. 이제 나는 예비군으로도 다시 군에서 복무할 수 없었다. 마지막 항해를 마치면서 나는 울지 않았다. 홀가분했다. 최선을 다했고, 내가 진짜 원하는 길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제대로 해내지 못한 기억 일색인 군 복무였지만, 작전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내가 '2함대 작전관씩이나' 해냈으니 그것만으로도 앞길에 힘이 되었다. 도통 내 길이 아닌 것 같았던 군대에서 진짜 내가 원하는 길을 찾았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멋지고 충분한 9년이었다.
나는 비로소 자유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