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별로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불편하기도 하고.
하지만 평소 잘해 주시던 예비 시어머니의 초대이고
결혼식 날짜까지 잡아놓은 상황이라
이번 추석은 꼭 방문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파트 단지 안을 들어서는데, 양쪽으로 현수막이 요란스레 걸려있었다.
“너네 아파트 재건축하는 거야?”
예비신랑에게 퉁명스럽게 물으며 둘러봤다.
재건축하기에는 꽤 높아 보이고 멀쩡해 보였다.
그런데 분당이 재건축을 한다고? 그럼 막 이주도 가고 그래?
“모르겠어. 관심이 별로 없어서. 나도 우리 단지가 재건축하기에는
좀 높은 편이 아닌가 그랬는데, 주변 상가랑 공원까지 포함하면
용적률이 꽤 낮은 편이라고 하더라. 그리고 시범단지라서 상징성이 있는 걸까.
분당에서 가장 오래되어서 그런 걸까. 주민들도 열심히 추진한다고 하고,
빨리 될 것 같다더라. 그런데 나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살았던 곳이고 추억도 많아서 그런지 그냥 이대로 있어도 좋은데…
엄마 아빠도 재건축하는 동안 어디로 이사 가야 할지 걱정하시더라.
아직 좀 남은 이야기지만 말이야.”
현관에 들어서기 전에, 다시 한번 예랑의 가계도를 머릿속으로 복기해 보았다.
지난번에도 뒤죽박죽 제대로 입력되지 않은 정보 때문에 실수를 연발했었기에.
아직 도착하지 않으신 분들도 있었고, 할머님은 주무시고 계셨다.
나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호칭 때문에, 어머님, 아버님이라는 말이 입 밖으로 좀처럼
튀어나오질 않고 입안에서만 맴돌곤 했다.
부엌에서는 우리가 오기 전에 이미 한 차례 점심식사와
설거지까지 마치고 다과를 내려던 참이셨나 보다.
나이스 타이밍!
지난번에 잔치국수를 해 먹자고 하시는 어머님 앞에서,
소면을 물에 정성껏 박박 닦는 내 모습을 보신 이후,
예비 시어머님은 좀처럼 나에게 무엇을 맡기시려 하질 않았다.
오히려 예비 시어머님보다 더 시어머님 같은 존재가 둘째 작은어머님(?)이었다.
“어머, 조카 왔어?, 여기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사과 좀 예쁘게 깎아서 어른들 드리고 그래 봐바”
내가 사과를 어떻게 깎았더라. 음… 동생이랑 한 번에 안 끊기고
깎기 시합도 하고 그랬는데…. 갑자기 거실에 있던 모든 어른들의 시선이
내 사과와 칼자루에 꽂히기 시작했다.
나름 열심히 깎는다고 했는데, 사과껍질이 좀 울퉁불퉁 두껍게… 깎인 것 같았다.
“어머, 사과 엄청 비싼데… 아까워라…”
둘째 작은어머님은 갑자기 사과껍질은 본인의 손등에 벅벅 마사지하듯
문지르는 만행을 저지르는 것이 아닌가.
다음번에는 내가 꼭 토끼모양 사과 깎기를 연마해 오리라 다짐하는데…
“그래서, 식장이랑 날짜는 정했다고 했고, 신혼집은 구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