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청년, '일'로 연결되다

한국형 지역부흥협력대를 상상하며: 2025 한국지역학회 현장 기록

by 비커넥트랩

왜 우리는 지금

정책을 이야기하는가


지난 토요일, 2025 한국지역학회에서 ‘한국형 지역부흥협력대를 위한 정책 제안’이라는 주제로 비커넥트랩의 세션이 열렸습니다. 이번 세션은 저희에게 더욱 남다른 의미를 지녔는데요. 지난 시간 동안 저희가 지역 현장에서 치열하게 검증하고 가능성을 확인해 온 ‘수도권 청년의 지역 일경험 사례’를 정책으로 확장하기 위한 첫 시도였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비커넥트랩은 ‘아웃바운더’ 프로그램을 통해 강진을 비롯해 다양한 지역과 수도권 청년들을 연결해왔고, 그 과정에서 ‘일’을 매개로 한 연결이 가장 강력한 시너지를 만들어낸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현장의 노력만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발견한 가능성을 실제 변화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보다 긴 체류기간이 필요한데, 이는 제도적 뒷받침 없이는 실현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에 저희는 일본의 '지역부흥협력대' 모델을 분석하며 이를 한국 실정에 맞게 도입할 방안을 고민해왔고, 이번 세션을 통해 현장 사례를 정책화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함께 논의해보는 시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아웃바운더,

제도화가 필요한 이유


2025년 1분기 기준, 2030 청년 중 ‘쉬고 있다’고 응답한 비경제활동 인구는 73.5만 명이라고 합니다. 아웃바운더는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도 인구 과밀로 인해 과도한 경쟁에 시달리는 수도권 청년과, 혁신을 위한 투자는 많지만 정작 이를 현실화할 인재가 부족한 지역을 연결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저희는 이 아웃바운더가 ‘쉬었음 청년의 증가’와 ‘지역 소멸’이라는 두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스크린샷 2025-12-17 165608.png 지난 3년간 비커넥트랩이 진행한 아웃바운더 프로그램의 성과


그러나 제도적 뒷받침 없이는 한계가 너무나 명확합니다. 저희가 현재 강진에서 만들어낸 성과는 민간의 치열한 헌신과 일부 지자체의 유연한 협조라는 '운'에 기대고 있는 측면이 크기 때문입니다. 명확한 제도적 근거와 안정적인 예산 구조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담당자가 바뀌거나 예산의 우선순위가 밀리는 순간 공들여 쌓은 지역과 청년의 연결고리는 쉽게 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현장의 유의미한 실험이
단발성 에피소드로 휘발되지 않고,
전국적인 '인재 순환 시스템'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이제 민간의 영역을 넘어선
국가적 차원의 제도적 설계가 절실합니다.







한여름밤의 꿈 대신,

삶이 이어지는 무대


첫 번째 발표자는 비커넥트랩의 PM이자 강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20대 청년 당사자인 구혜영님이었습니다. 혜영님은 대기업 입사를 목표로 치열하게 경력을 쌓아오던 대학생이었습니다. 그러다 한 플랫폼 기업에서 마케팅 인턴으로 일하던 중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갈증을 느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고민했지만,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자신이 원하는 직무와는 거리가 멀다는 판단에 ‘호주는 한여름밤의 꿈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후 시선을 한국의 다른 지역으로 돌렸습니다. ‘무급이어도 좋으니, 지역에 살면서 일을 해보고 싶다’는 혜영님의 요청에 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 윤봉란 이사장님이 강진을 소개해주셨고, 지난 5월 혜영님은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에 첫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혜영님은 그곳에서 ‘청년들이 재미있게 도전해 볼 수 있는 일거리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고, 아웃바운더라는 프로그램으로 청년과 지역을 연결해 온 비커넥트랩을 만나 청년들을 위한 일경험 프로젝트, ‘로컬턴 in 강진’을 기획하게 됩니다. 8명의 청년들은 강진에서 주민들의 고민을 직접 듣고, 신메뉴 개발, 행사 기획, 온라인 마케팅 등 그동안 주민들이 갈증을 갖고 있던 분야에서 역량을 발휘했습니다. 그 결과 프로그램 종료 후 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의 사무국장님이 자발적으로 환송회를 열어 청년들에게 고마움을 표했고, 참여 청년 8명 중 5명은 계속해서 이러한 활동을 지속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후속 프로그램인 ‘강진 RE:SPEC’을 론칭하자 무려 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는데요.



이를 통해 ‘일’을 매개로
지역과 청년을 연결하는 방식이
청년들에게 얼마나 큰 효능감을 주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P1220744.jpg
P1220747.jpg
발표를 하고 있는 구혜영님




청년의 성장이 곧

지역의 성장으로


청년의 관점에서 가능성을 확인했다면, 이제는 ‘지역’의 목소리를 들어볼 차례였습니다. 강진군 도시재생지원센터의 박소은 팀장님은 지역 현장에서 체감한 변화들을 생생하게 공유해주셨습니다. 박 팀장님은 2020년부터 서울시의 ‘넥스트 로컬’과 자체 사업인 ‘사도삼촌 병영스테이’를 운영해오며 외지 청년과 강진을 연결하는 역할을 꾸준히 수행해왔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올해는 비커넥트랩과 함께 로컬턴을 진행했는데, 이전의 프로그램들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그 핵심은 바로 ‘상호 호혜성’이었습니다.



박 팀장님은 “지역문제를 해결하려는
청년들의 진심이 주민들의 피부로 와닿은 것 같다”며
로컬턴을 ‘청년과 지역의
동반 성장 프로젝트’라고 칭했습니다.



실제로 로컬턴 기간 동안 청년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 지역 주민들은 “청년들의 활동이 실제로 큰 도움이 되었다”며 높은 만족감을 보였다고 합니다. 박 팀장님은 사전 워크숍을 통해 청년들이 지역에 필요한 맞춤형 역량을 확보하고, 지역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지닌 상태로 강진에 올 수 있었던 점이 낯선 지역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이었던 것 같다고 평가했습니다. 또한 이러한 로컬턴 활동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지원이 필요하며, 지역 내의 ‘키 맨’을 발굴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는 제안도 덧붙였습니다. ‘주민의 문제가 해결되면 지역의 활력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라는 팀장님의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P1220793.jpg
P1220794.jpg
발표를 하고 있는 박소은 팀장님




건물보다 사람,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이어 비커넥트랩의 정홍래 대표님이 발표를 이어갔습니다. 정 대표님은 일본의 ‘지역부흥협력대’ 사례를 한국형 모델로 도입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적 장치들을 제안했습니다. 가장 먼저 강조한 것은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의 지역 정책은 주로 건물이나 공간을 짓는 하드웨어 중심이었으나, 이제 ‘사람’에게 투자하는 정책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지역과 함께 활력을 만들어갈
‘장기적 동반자’로서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이 정책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정 대표님은 이 정책의 성패가 ‘정교한 매칭’에 달려 있다고 보았습니다. 일본 사례를 살펴보면, 협력대원들의 중도 이탈 원인 중 가장 큰 이유는 청년의 기대와 지역의 니즈가 엇갈리는 ‘미스매치’였기 때문입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필요한 역할을 사전에 명확히 정의하고, 이에 부합하는 인재를 연결하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특히 선발 이전 단계에서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청년의 기대와 지역의 현실을 충분히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성과 측정 방식에 대한 제안도 이어졌습니다. 행정의 관점에서는 ‘정착률’이라는 양적 지표에 집중하기 쉽지만, 이는 오히려 정책의 본질을 흐릴 수 있습니다. 정 대표님은 청년의 행복도와 만족도, 지역 주민과의 네트워크 형성 정도 등을 포함한 ‘혼합 지표’의 도입을 제안했습니다. 단순히 몇 명이 남았는지를 넘어, 청년의 활동이 지역에 어떤 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냈는지를 측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표 설계가 선행될 때 비로소 정책에 대한 오해를 줄이고 진정한 성과를 확인 수 있다는 인사이트를 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 대표님은 지자체, 대원, 중간지원조직이 함께하는 협력적 거버넌스의 중요성을 언급했습니다. 정책이 시행되는 과정에서는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기에, 이를 학습하고 개선해 나가는 ‘유연한 설계’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활동을 마친 이들의 노하우가 사장되지 않도록 조직화하여, 신규 프로젝트의 멘토나 파트너로 참여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 대표님은 “이번 세션을 일회성 논의로 끝내지 않고,
실제 정책이 현장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실증적인 노력을 이어가겠다”며 발표를 마무리했습니다.




P1220807.jpg
P1220810.jpg
지역부흥협력대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정홍래 대표님






수직적 고용이 아닌

수평적 파트너십으로


마지막 토론 세션에서는 더욱 현실적인 조언들이 쏟아졌습니다. 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 윤봉란 이사장님과 임팩트확산네트워크의 정진영 이사장님은 제도 도입 시 '거버넌스'와 '관계 설정'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먼저, 비커넥트랩과 강진을 연결해 준 윤 이사장님은 “지역에 대해 충분히 잘 모르는 사람을 연결했다가 혹시 피해를 주지는 않을지 늘 두려움이 있는데, 비커넥트랩이 지역 문제 해결에 대해 오랜 시간 깊이 고민해왔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는 소감을 전했습니다. 이러한 사례가 확산·지속되기 위해서는 제도화가 필요하며, 이때 가장 중요한 요소로 좋은 거버넌스의 구성을 꼽았습니다.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일수록 청년이 단기 인력으로 인식되기 쉬운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애정 있는 시선으로 함께 보살펴줄 중간지원조직의 존재’가 중요하며, 스스로를 지속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거버넌스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정 이사장님 역시 중간자의 역할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그는 “쉬었음 청년 중 73.6%는 직장 경험이 있었던 청년”이라며, “이전 직장에서 상처받거나 비상식적 노동환경에 놓인 경험으로 인해 쉼을 선택하는 청년들이 많은데, 이들이 다시 동일한 상처를 받지 않도록 세심하게 관리해주는 중간지원조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정책을 구상할 때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현장에는 지역 출신 청년 코디네이터가 꼭 붙어야 한다’와 같은 시스템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잘 짜여진 기획과 세심한 연결이 동반된다면, 청년들은 지역에서의 활동을 통해 자기 효능감을 느낄 수 있고, 이러한 긍정적 경험이 자연스럽게 정착으로도 이어질 수 있을 거라 본다"며



한국형 지역부흥협력대가
쉬었음 청년 문제와 지역 소멸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긍정적인 전망을 덧붙였습니다.



P1220828.jpg
P1220832.jpg
P1230007.jpg
발언하고 있는 윤봉란 이사장님(좌)과 정진영 이사장님(우)




현장에서 정책으로,

정책에서 다시 현장으로


이번 세션은 현장의 작은 실험이 어떻게 정책이라는 커다란 그릇에 담길 수 있을지 치열하게 탐색한 시간이었습니다. 좌장으로서 세션을 이끌며 제가 느낀 것은 명확합니다. 지역 소멸과 쉬었음 청년 문제는 분리된 과제가 아닙니다. 지역은 역량 있는 청년을 필요로 하고, 청년은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을 필요로 합니다. 이 둘의 결핍이 만나는 지점에 ‘한국형 지역부흥협력대’라는 해결책이 있습니다.


비커넥트랩은 이번 학회에서의 논의를 시작으로, 현장의 목소리가 실제 정책으로 이어지는 바텀업 여정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이 공허한 구호에 그치지 않도록, 계속해서 가설을 세우고, 현장에서 검증하며, 그 결과를 토대로 목소리를 내겠습니다. 지역이라는 무대에서 청년들이 마음껏 자신의 역량을 펼치고, 그 에너지가 다시 지역을 숨 쉬게 하는 미래. 비커넥트랩이 꿈꾸는 ‘연결의 힘’이 지역 활성화의 새로운 표준이 되기를 희망하며, 저희는 오늘도 부지런히 현장을 누비겠습니다. 지역활성화의 새로운 길을 만드는 비커넥트랩의 여정에 여러분도 꾸준한 관심과 응원으로 함께해 주시길 바랍니다.

P1230109.jpg 비커넥트랩 팀원들과 발표자, 토론자, 따뜻한 응원의 눈빛을 보내주신 대덕넷 이석봉대표님, 행정안전부 김혜정 사무관님





ㄴ 함께 읽으면 좋은 기사

“콘크리트 붓는 대신 ‘사람’을 심어라”…지방소멸 막을 ‘한국형 지역부흥협력대’ 제언

청년과 사회문제, 연결하는 시스템의 필요성···연쇄창업가 정홍래 대표의 도전




비커넥트랩은
로컬 페이스 메이킹으로
지속가능한 로컬
임팩트를 만들어갑니다.



지역마다 고유한 결과 속도가 있는데, 왜 여전히 다른 지역의 방식을 그대로 가져와야 할까?

비커넥트랩은 이 질문에서 출발해 지역을 이해하고 현장에서 함께 부딪히며, 지역만의 자원과 가능성을 기반으로 지속가능한 변화를 만들어가는 페이스메이커입니다. 정답을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과 함께 실험·검증·축적하며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돕습니다.


“우리 지역만의 방식으로 지속가능한 변화를 만들고 싶다”면, 비커넥트랩과 이야기해 보세요.


Frame 33.png


비커넥트랩 홈페이지 | 비커넥트랩과 로컬의 다양한 문제 같이 논의해 보기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실험실을 넘어, 정책의 광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