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바운더X태백탄탄마을] 로컬 그래피티 아티스트 신명근님을 만나다.
서울로부터 멀어져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어서 오십시오, 여기부터 OOO입니다'라는 큼직한 글자와 함께 지역의 캐릭터가 언제나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넨다. 그렇게 1초 남짓 지나친 수많은 지역의 캐릭터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26개의 지자체 중 200곳이 넘는 곳에는 저마다의 캐릭터가 있다고 한다.
이 지자체 캐릭터들은 지역의 특산물을 담아내거나, 지역을 대표하는 유적이나 인물 또는 설화 등을 담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점, 모두 닮았다. 동글동글 부드러운 모양에 하나같이 밝게 웃거나 신난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주도에는 좀 다른 캐릭터가 하나 있다. 펑키캐롯(FUNKY X CARROT) 신명근 님이 그려낸 그래피티 캐릭터들이다. 비슷한 캐릭터들 사이에서 한 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펑키캐롯의 캐릭터들을 만들어낸 주인공, 신명근님을 만나본다.
신명근 님에게 무엇을 그려내는 것이란 언제나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보다는 캐릭터를 그리며 노는 게 더 재미있었던 꼬마는 자라서 지루한 자율학습에서 빠지려고 미술학원을 등록했다. 대학교 전공인 디자인을 떠나 잠시 방황도 해봤지만, 결국 다시 무언가를 그려내는 스스로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붓으로만 그려내던 그림들을 디지털로 전환하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캐릭터로 표현하며 지금의 그래피티 화풍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신명근님.
제주도에서 나고 자랐고,
벽화 작업을 하기도 했어요.
제 내면의 재료와 경험이 어우러지니
굵은 선과 화려한 컬러의
펑키캐롯이 탄생했습니다.
정체성인 제주도는 그의 작품 곳곳에서 등장한다. '안녕하세요! 힙한 제주를 그리는 브랜드 펑키캐롯입니다!'라는 힘찬 구호 같은 인사부터 제주도 구좌에서 당근농사를 짓는 농부를 표현한 캐릭터 '라코'까지. 아직은 시작한 지 1년이 채 안 됐지만, 훗날에는 제주 전역을 펑키캐롯의 작업물로 가득 채우는 것이 꿈이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제주도 용담 1동 부러리 마을에서 선보였던 그래피티. 용담 1동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과 협약을 맺고 가로 12미터 세로 5미터 크기의 팝업스토어를 알리는 커다란 벽면을 책임지는 일이었다.
큰 벽면을 가득 채운
제 작업물을 본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힙한 제주를 알린다는
제 활동의 의미가
현실이 된 순간이니까요.
이날을 계기로 용담에서 라이브드로잉을 하거나, 제주도의 방언과 역사를 담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작품 패러디 그래피티, 당근 농사를 짓는 라코와 놀러 온 조카들 같은 캐릭터들을 창작하는 등 활동을 이어갔다.
'색이 강한 신비로운 곳!' 신명근 님은 태백의 첫인상을 이렇게 묘사했다. 평소 제주를 잘 벗어나지도 않고, 일이 있어 가봐야 서울뿐이었던 그에게 온통 산뿐인 강원도 태백의 인상은 색다른 푸릇함 그 자체였단다.
저에게 로컬이란 제주뿐이었는데,
태백에 가서 '로컬이란 뭘까'라는
질문을 발견했습니다.
이런 푸릇함은 평소 잊고 살았던 '여유로움'이라는 감정의 창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활짝 열린 창을 따라 그동안은 느끼지 못했던 다양한 감정들이 마음에 피어올랐다. 특히 '부러리' 이후로 제주의 마을을 담은 그래피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스스로에게 '나는 정말 그 마을을 이해하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걸까?'라는 화두를 던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번 페어를 통해
마을을 담아내는 그림을 그리자던
제 결심을 돌아보고 난 후엔
마을분들과 대화를 훨씬 더 깊이 나눠요.
헤아림이 깊을수록
제 그림의 의미도 깊어지겠지요.
방문객에게 전시와 작품을 설명하거나, 다양한 로컬에서 모여든 디자이너와 작가들과 교류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다른 지역을 더 다니며 제주도와 펑키캐롯을 더 알리고 싶다는 의욕이 샘솟았을 뿐만 아니라, 펑키캐롯이 제주에서 외부의 사람들을 맞이하게 된다면 이런 값진 경험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결심도 생겼다.
언젠가 산책을 하며 생각에 잠긴 적이 있다는 신명근 님. '아 요즘 고민도 없고 너무 좋다. 이렇게만 살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다가 정신이 번쩍 났단다. 이 자리에 만족해서 머물러 있으려다가 더 이상의 발전은 없는 것이 아닐까 싶었단다.
매 순간 발전만 추구하고 살 순 없겠죠.
스트레스가 심할 테니까요.
하지만 목적지에 앞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건 계속 한 걸음씩 옮긴다는 것 같아요.
비록 몸은 제주의 작은 작업실에 머무르지만, 그의 손과 발은 상상의 세계 속에서 바삐 돌아다닌다. SNS로 작업물을 올리며 화면 너머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넘어 하나의 공간 안에 펑키캐롯만의 매력이 가득한 전시회를 열겠다는 목표가 더욱 확고해졌기 때문이다.
디지털 작업으로만은
전할 수 없는 느낌이 있단 생각에
다시 붓을 잡았어요.
2025년에는 붓으로 그려낸 작품들까지
전시회를 열어보려 합니다.
기존에 있어왔던 많은 지역의 캐릭터들을 닮아가려 했다면, 아웃바운더라는 이름이 꼬옥 맞는 펑키캐롯 신명근 님을 태백의 로컬디자인페어에서 만날 수 있었을까? 제주의 곳곳에서, 더 나아가 전국의 곳곳에서 펑키캐롯의 유쾌한 흔적을 발견할 날이 가깝게만 느껴진다. 주어진 환경과 익숙함을 넘어서 새로운 인상을 세상에 남기는 건, 펑키캐롯이 가장 잘하는 것이니까.
주어진 환경(인바운드)을 넘어,
더 나은 삶의 가능성과 기회를 찾아
과감히 살고 있는 환경 밖으로
용기 있게 나아가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아웃바운더’라고 부릅니다.
비커넥트랩 홈페이지 | 비커넥트랩과 로컬의 다양한 문제 같이 논의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