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가 살던 곳
호박소는 영남알프스의 가지산 용수골과 백운산 주래골이 합쳐지는 골짜기 삼양교 아래에 있다. 백옥 같은 화강암이 수억만 년 세월을 거치면서 물에 씻겨 커다란 소(沼)를 이루었는데 그 모양이 마치 절구(臼)의 호박같이 생겼다 해 호박소(琥珀沼) 또는 구연소(臼淵沼)라고 부른다. 폭포의 높이는 10여m, 둘레는 100여 척(약 30.3m)이나 되며, 깊이는 측정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깊었다고 한다. 옛날 이 지방 사람들이 물의 깊이를 알아보기 위해 돌을 매단 명주실 한 타래를 다 풀어보았지만, 끝이 닿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깊다 한다.
동국여지승람 기록에 의하면 밀양 시례 사람들은 이 지역에 오래 가뭄이 계속될 때 기우제를 지내는 기우소(祈雨所)였기도 했다. 또한 호박소는 신불산의 파래소 폭포, 주암계곡의 철구소와 함께 영남알프스 3大 소(沼)로 불리며, 밀양 8경 중의 하나로 손꼽으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 옥황상제 명 어기고 비 내려 준 이무기
옛날 이 골짜기에 역학을 공부하는 이목이라는 사람이 스승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는 어찌나 영특한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 정도였다. 하루는 제자가 저녁에 “오줌 누러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하자 스승은 허락하고 먼저 잠자리에 들었는데, 도중에 깨어 일어나 보니 제자는 돌아와 있지 않았다. 이런 일이 며칠 계속되자 스승은 이상하게 생각하고 제자의 뒤를 밟아보기로 했다. 밖으로 나가는 제자의 뒤를 밟아보니 마을에 있는 연못(沼)으로 가더니 곧 물에 들어가 헤엄을 치며 노는 것이었다. 유심히 살펴보니 그 제자는 사람이 아니고 이무기였고, 한참을 물속에서 놀다가 나와 다시 사람으로 둔갑하자, 스승은 급히 돌아와 자는 척했다. 잠시 후 제자가 돌아와 슬그머니 옆에 누워 자는데, 몸이 매우 싸늘했다. 마침 마을은 몇 달이고 비가 내리지 않아 심한 가뭄이 지속됐다. 농작물은 말할 것도 없으며, 산천초목들조차 타 들어갔고, 하물며 먹을 물조차 구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스승은 옛말에 '이무기가 용이 되면 가문다'란 말을 생각해냈고, 이무기가 용이 되느라고 날이 가물어진다고 생각했다. 아침저녁으로 마을 사람들이 스승을 찾아와 애걸복걸하며 제발 “비가 오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고 간청하자 선생은 제자를 염두에 두고, 제자에게 말하기를 “백성들이 가뭄에 시달리고, 산천초목도 며칠을 견디기 어려운데 비를 좀 내리게 할 수 없느냐"고 물었고, 제자는 “그런 재주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스승이 자꾸 부탁을 하자 어쩔 수 없이 재주를 부리게 됐다. 제자는 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붓글씨를 쓰다가 손에 먹을 찍어서 하늘을 향해 퉁겼다. 그러자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사실 하늘에서 비를 내리는 것은 오로지 옥황상제만이 할 수 있는 일인데 제자는 옥황상제의 명을 어긴 것이었다. 이 제자는 옥황상제가 5년간 근신(謹愼)하라는 명을 내린 이무기였는데, 비를 내리게 하자 옥황상제는 저승사자를 내려보냈다.
스승의 앞에 나타난 저승사자는 “이무기라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고, 스승은 “뒷산에 이무기라는 나무가 있다"고 대답하자 갑자기 그 나무에 벼락이 치더니 날씨가 다시 맑아지는 것이었다. 그 후 아무도 제자를 보지 못했는데 승천을 못해서 시례호박소로 들어간 것이라고 하고, 가끔 스승이 소(沼)를 찾아가면 이무기가 눈물을 흘리더란 이야기가 전설이 돼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또한 동국여지승람 구연기우소(臼淵祈雨所)에 따르면 “세상에 전하기를 호박소에 옥황상제에게 벌을 받아 용(龍)이 돼 하늘로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가 살고 있었으며, 깊이를 헤아릴 수 없고 가뭄에 범의 머리를 넣으면 물이 뿜어져 나와서 곧 비가 되는데 연못 속에 더러운 것을 씻어 내기 위해 조화를 부리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호박소 위 삼양교 다리 아래는 이목굴이 있었는데, 이곳은 이목도사가 역학 공부를 하던 곳으로 지금으로부터 40여년전 울산에서 밀양으로 넘어가는 울밀선이 뚫리면서 지금은 그 형상만 있을 뿐이다. 또한 그의 누나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으며 동생이 앞으로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오르지 학문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스승과 동생의 뒷바라지를 위해 베틀바위(가지산 중턱에 있는 바위)에서 열심히 베를 짜고 있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이곳 마을 사람들에 의해 구전돼 내려오고 있다.
# 주지스님 방해로 강철이가 된 상좌승
옛날 운문산 석골사에 상좌승과 스승인 주지 스님이 있었다. 주지 스님은 마을 사람들이 제자인 상좌승이 자신보다 학덕과 인망이 뛰어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대해 항상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옥황상제도 상좌승을 먼저 하늘로 올라오게 했기 때문에 항상 상좌승을 죄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을 생각만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주지 스님이 상좌승과 나란히 길을 걸어가다 상좌승이 길가 보리밭에서 한창 익어가는 보리 이삭을 손으로 슬쩍 만져본다는 것이 그만 이삭을 훑어 버리고 말았다. 그것을 본 주지 스님은 기회를 놓칠세라 지팡이로 머리를 툭툭 치며 영원히 강철이(지나가기만 하면 초목이 다 말라붙는다는 전설상의 독룡)가 돼라고 주문을 외웠다. 상좌승은 주문을 풀어 달라 애원을 했으나, 주지 스님은 주문을 그치질 않았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진 상좌승은 원망에 찬 눈초리로 강철이가 돼 호박소 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옥황상제는 주지 스님의 술법으로 상좌승이 강철이가 된 줄은 깜박 잊고 주지 스님을 먼저 승천시켰다. 물속에 갇힌 강철이는 억울함을 누르고 승천하기 위해 부처님의 공덕을 열심히 닦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년 후 보리가 익어갈 무렵, 강철이는 옥황상제에게 승천시켜 줄 것을 간청했지만, 옥황상제는 죗값을 더 치러야 한다며 강철이를 외면해버렸다. 화가 난 강철이가 몸부림을 치며 떠다니는 곳에는 번개가 치고, 우박이 쏟아져 농작물을 수확할 수 없게 됐다. 자꾸 이런 이들이 되풀이돼 결국 강철이는 승천할 수 없는 신세가 됐다. 승천할 수 없는 강철이의 억울함 몸부림으로 해마다 보리가 익을 무렵이면 몸부림이 시작됐고, 강철이가 날아다니는 곳에는 우박이 쏟아져 농작물의 피해가 많아진 것이다. 강철이가 살던 이곳이 호박같이 생겼다고 해서 호박소 또는 구연이라 부른다. 이곳에는 조선시대 때 가뭄이 들 때마다 밀양부사가 몸소 와서 기우제를 지내며 단비가 내리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 참고문헌
- 밀양읍지
- 동국여지승람 구연기우소(臼淵祈雨所)
- 이글은 필자가 30여년전 밀양시 산내면 남명리 시례에사는 한 노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성한 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