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결혼 4년 차 부부의 당찬 결심
그렇다.
말 그대로 우리 부부는 1년에 한 번 씩 각자 여행을 가기로 했다.
혼자서 가든 친구랑 가든 각자가 알아서 하기로.
우리는 그렇게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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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 남편은 2주 동안 혼자 여행을 떠났었다.
생애 첫 나 홀로 여행이라 그런지 별 감흥이 없던(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 경험한 만큼 느낀다)
남편은 이미 몇 차례 '나 홀로 여행' 경험자인 나에게
'괜히 여행 간다고 했나 봐.'라며 볼멘소리를 해댔었다.
이제 갓 첫 출근을 한 터라 정신이 없던 나였지만 감기몸살까지 심하게 걸려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남편의 상태를 고려해보면 충분히 하고도 남았을 후회라고 생각하긴 했었다.
그래도 뭐 어쩌나.
2주 치 비행기표, 숙소 다 끊어놨으니 몸뚱이를 밀어 드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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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혼자 여행 가고 싶다.'는 나를 말리던 남편이었다.
혼자 가면 위험하다는 이유를 내세우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난 그냥 알았다고 했다. 큰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들었다.
'왜 결혼 후에 우리는 나 자신을 타협시켜야만 하는가.'
그리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좋은 타협점이 오겠지. 기회가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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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왔다. 타협점이 제 스스로 우리 부부에게로 찾아왔다.
이것은 결론적으로 남편이 스탠스를 바꾸는 덕분에 생긴 타협점인데,
그 타협점은 혼자 여행에서 맛보는 자유로움에 남편이 푹 빠져서 생긴 결과였다.
챙길 사람은 아무도 없는, 오직 '나'에 의해서는 채워지는 시간.
그 시간의 가치를 남편이 알게 되어버린 것이다.
내 남편은 37도의 푹푹 찌는 더위 속에서,
과거 어느 지점인지도 모를 그 순간을 열심히 곱씹어보기도 하고
현재의 문제의 시발점 그리고 대응책을 그 누구의 압박도 받지 않고 천천히 생각해 보기도 했으며
나의 이상, 꿈, 삶에 대한 지대한 고민도 해보았다.
그 결과 남편은 이런 생각에 다다랐다.
'여행을 (미친 듯이) 다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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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여행 친구 삼아 열심히 놀고 먹던 오빠가 2주 만에 집에 돌아온 날,
우리는 약속했다.
1년에 1번씩, 저금 100만 원은 각자 혼자 여행을 위해 소비하고
1년에 1번씩, 저금 200만 원은 우리 둘 여행을 위해 소비하자고.
그렇게 우리는 1년에 총 400만 원을 여행에 쓰기로 했다.
그까짓 돈, 젊고 팽팽한 우리에게 투자 못할 이유, 그 무엇이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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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아직 애는 없고, 반려동물 3마리가 있으며, 나는 회사 막내 남편은 경력직이다.
(나는)월급은 250(세전)을 채 넘지 못한다.
그래도 우리는 호기롭게 1년에 400만 원을 여행에 쓰기로 결정했다.
대신 다른 자질구레한 것들에는 돈을 줄이겠지만, 이 정말 대단한 결론이 아닌가?
이쯤에서 400만 원이라는 돈을 숫자로 파헤쳐보자.
400만 원을 일 년 12달로 나눠보면
400=12*33.33333....
이라는 계산이 나오는데, 그럼 한 달에 33만 정도를 소비하는 셈이다.
충분히 쓸데없는 데다가 돈 안 쓸만한 액수라는 생각이 드는건 나 뿐일까?
하루 단위로 쪼개보면, 세상에, 하루에 단 돈 만원만 아끼면 일 년에 2번 해외여행이 생기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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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나는, 우리는 결혼 후에도 개인이 없어지지 않는 삶을 구축해 내었다.
큰 그림을 그리고 남편을 혼자 여행 보낸 것은 아니지만,
이거야말로 죽이는 콩고물이 떨어진게 아니면 뭐겠느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