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을 마주하고 날짜를 세봤다.
엄마랑 베트남 여행을 가는 날짜가 정확히 생리 예정일이었다.
역시나. 불안은 언제나 현실이 된다.
남편에게 물어봐야지, 싶었다.
뭘? 다음 생리예정일을.
남편은 내 생리주기를 관리한다.
그래서 난 내 생리주기를 잘 모른다.
-어제저녁-
문득 생각나 남편에게 물었다.
"나 다음번 생리 언제 해?"
"음.. 29일이네? 21일 남았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내일 피임약 좀 사다 줘. 여보 직장 옆에 바로 있다고 했지?"
"어~ 알겠어. 근데 약 이름이 뭐야?"
"그런 건 잘 모르고 그냥 한 달 동안 매일 먹는 거 있어. 약사가 생리 시작일 물으면 말해주면 될걸?"
피임약은 거의 안 사봐서 나도 잘 모른다.
-오늘 아침-
남편이 집을 나서기 전에 묻는다.
"오늘 피임약 사다 달라고?"
경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맞다. 응!!!!!!"
남편이 말했다.
"이거 원 참~ 오늘 남사스러운 일 하게 생겼구먼~ 껄껄껄."
-오늘 오후-
남편에게 카톡이 왔다.
"피임약 사뜜."
"설명도 듣고 다 적어놔뜜"
덜컥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오히..
멋있어..
나는 아무렇지 않게 피임약을 사다 달라고 했고
남편은 아무렇지 않게 알겠다며 피임약을 사다 주었다.
특유의 세심함을 발동해 메모까지 해두었다니.
다른 남편들도 아무렇지 않게 피임약을 살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나 내 남편은 한다.
별 의미 없는 유난을 떨지 않고
그냥 와이프 말이라면 알겠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