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짐은 불가피한 기회라는 것

[파과] 서평

by beennotdeep

제가 이번에 교내 서평 대회에서 1등을 했거덩여..

파과로..ㅋㅋㅋㅋ

자랑은 아니고요,,이렇게 된 김에 쓴 서평 살짝 수정한 버전으로 올려서 업로드한 글 수나 올리려는 저의 그릇된 마음입니다.



- 파과와의 첫 만남

뮤지컬과 영화로도 제작된 『파과』. 그 원작도서를 읽게 된 것은 약 한 달 전이었다. 중고 도서 매장을 서성이던 중, 형광빛의 핫핑크 책등에 적힌 묵직하면서도 날카로운 글씨체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길로 구매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을 구매할 당시 나는 여러 이유로 무기력함과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파과』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깨진 과일’이라는 것이 꼭 나를 비유한 것 같았다. 책을 읽기 전에는 못 쓰게 된, 그래서 버려야 하는, 그런 의미쯤으로 생각했다. 제목이 주는 익숙함으로 구매한 책은 단숨에 완독했을 정도로 흡입력이 강했다. 『파과』는 『위저드 베이커리』로 등단한 구병모 작가의 작품이다. 구병모 작가의 글은 담담하며 절제된 문체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나는 그런 그의 표현 방식을 좋아한다.



- 파과의 아이러니

『파과』는 40여년간 살인 청부업자로 살아온 냉철하고 이성적인 베테랑 여성 킬러를 주인공으로 한다. 주인공(이후 조각으로 표기)은 그녀의 깔끔함과 냉철함으로 킬러 세계에서 인정받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 책의 시작부터 조각은 이미 흠이 나고 깨져가고 있다. ‘지켜야 할 것은 만들지 않는다’며 이성적으로 굴던 그녀에게 감정이라는 것이 스며들어오고, 지키고 싶은 것들이 생겨난다. 몸도 기억도 점점 삐걱거리기 시작하는 조각에게 은퇴 권유와 더불어 자리를 위협하는 젊은 실력자 투우는 너무나도 귀찮고 거슬리기만 한다. 조각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처럼 꼭 닮아있기도 한 투우였다. 그런 비교가 싫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증오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 지도 모른다. 그는 일부러 약 올리듯 그녀를 따라다니며 훼방을 놓는가 하면, 그녀의 과거를 조사하고 조각이 지키고 싶어하는 것들을 망가트리려 무던히 노력한다. 감정이라는 것이 그들의 업에 가장 방해가 되는 단점이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감정이 생기고, 흠집이 깊어질수록 오히려 인간스러움을 가지게 되는 것처럼 보인다. 킬러로서의 완벽함은 실수 없이, 감정 없이 빠르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머뭇거리고 연민을 느낄수록, 차가운 기계 같은 ‘킬러’에서 멀어져 진정한 ‘인간’으로 진화하는 듯했다. 작가는 ‘파과’를 단순히 깨진 과일, 흠집이 난 과일이 아닌 완성, 완숙함으로 표현한 것 같았다.



몇 주 전 전공 수업에서 과일의 숙성과정에 대해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덜 익은 과일에 흠집을 내면 상처 부위가 산화되며 에틸렌 가스를 방출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흠집이 숙성을 앞당긴다는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문단에 이런 문장이 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생각해보면 과일이 알맞게 익어 최고로 맛있을 때는 찰나에 불과하다. 그 시기를 잘 맞추지 못 하면 떫은 과일을 먹게 되거나 이미 상해버려 먹을 수 없게 된다. 케이크 역시 상하기 직전이 가장 맛있다고들 한다. 환상을 안겨주는 순간과 배탈을 안겨주는 순간이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결국은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유달리 맛있는 순간을 한 번쯤 갖게 된다는 말은 구병모 작가의 시니컬한 문체로 안겨주는 인생의 위로이자 조언이 아닌가 싶다. 끝이 있다는 것, 인생의 흠집이 깊어진다는 것이 삶을 더욱 의미있게 만든다고 전해주는 듯 하다.



- 파과가 건네는 위로

조각이 흠집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유한함을 인정하게 되는 순간, 나는 무기력에서 벗어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상하고 뒤틀린, 한쪽 손에만 남은 손톱 위에 올려진 네일아트를 보며 ‘짧은 시간 빛나다 사라질 것이기에 마음에 든다’고 표현하는 문장이 나온다. 완벽하지 않고 오히려 흠이 있기에 살아 있는 존재로서 빛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미를 전달해주는 것 같다. 그렇다면 흠집이 생긴 나의 삶에도 유한하게 빛날 장식을 만들어 얹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야말로 치열하게 싸우며 조각하고 장식해가는 인생의 과정일 것이다. 완벽히 익은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가는, 혹은 깨짐을 맞이할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