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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양정 May 09. 2017

태풍 차바 상륙작전

 태풍 차바를 이겨낸 용감한 고양이 차바를 아시나요?


우리는 결혼 5년 차 부부이다. 여전히 신혼이라고 조심스레 말해본다. 우리에겐 아직 아이가 없다. 때가 아닌 것인지, 아님 우리의 노력이 부족해서인가? (응? 어떤 노력?). 주변엔 덜컥, 덜컥 아기천사들이 잘 찾아오는 것을 보면 우리 부부에겐 아직 인연이 닿지 않았서겠지. 마냥 마냥 둘이서만 살아도 좋을 것만 같던 어느 날, 한반도를 강타한 역대급 태풍 '차바'와 함께, 그야말로 덜컥! 우리 부부에게 상상하지도 못했던 엄청난 위력의 그것이 상륙했다.



태풍 '차바'가 상륙했다


지난가을, 남동생의 결혼식을 제주도 서쪽 마을 한 펜션에서 치르게 되었다. 나흘 전, 무시무시한 태풍이 지나간 섬엔 엿가락처럼 늘어진 신호등과 털썩부러진 나무들로 당시의 참혹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밤새 소용돌이에 휘말려 운명을 달리한 길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의 사체가 곳곳에서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보기도 했다. 결혼이라는 큰 행사를 앞둔 우리에게도 달갑지 않았던 야속한 날씨에, 결국 준비한 야외 결혼식은 취소되고 실내에서 치를 수밖에 없었다. 먼저 도착한 가족들은 모두 실망할 수밖에 없었는데, 부슬부슬 가랑비와 뿌연 안개가 덮여 더욱 쓸쓸한 펜션 마당 한 귀퉁이에 노란 털 뭉치 같은 것이 살금살금, 구를 듯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것을 먼저 알아챈 조카들이 신나서 소리를 질렀다. 그것은 고양이, 아주 작은 새끼 고양이었다. 고양이는 니야옹, 아는 체를 한번 하고선 열린 숙소 문을 기어 넘어 마치 우리의 일행인 냥 소파 한 귀퉁이에 엉덩이를 내려놓더니 금세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어, 거기서 네가 왜 나와>  웨딩드레스 아래에서, 연못가 한 귀퉁이 털뭉치로, 기념 사진 곳곳에 스스로 출몰하며 살금살금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2016, JEJU)


역대급 태풍도 결코 인륜지대사는 막지 못했다. 결혼식은 많은 축복 속에 잘 치러졌다. 한 부부가,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모두가 감사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이제는 펜션을 나서야 하는데, 이틀 내내 함께 있던 고양이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지난밤에도 내 발밑을, 베개를 집요히 파고들며 같이 자던 고양이가 사라진 것이다. 털이 벗겨져 붉게 드러나있던 꼬리와 거묵거묵하게 코에 났던 상처들이 마음에 걸렸다. 고양이와의 인연은 여기까지 일려나. 가족은 모두 육지로 돌아가고, 우리 부부는 다음 날 못내 걱정되는 마음에 다시 펜션을 찾았다. 빈 마당에서 한참을 야옹야옹 부르며 애타게 고양이를 찾았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는가 했다. 그렇게 30분이 지났을까, 이제는 가야지 하고 채비를 하는데, 검은 돌담 사이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린다. "니야옹." 돌 틈 사이로 노란 털 뭉치가 쏘옥, 하고 그제야 제 몸을 드러냈다.



태풍 차바를 이겨낸 용감한 고양이를 아시나요?


 


#집사로간택 #냥줍 #치즈테비 #햐얀양말신은고양이 #식빵굽기자세 #캣초딩. 생소하고 재미있는 말들이 고양이와 연관된 단어로 찾아졌다. 곧장 찾은 병원에서 피부에 퍼진 곰팡이와 상처는 한 달간 약을 잘 발라주면 나을 거라는 결과와 약 40일 정도 된 수컷 고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랐을, 고양이는 그렇게 우리와 비행기를 타고 머나먼 육지로 상륙하게 되었다. 이틀간 사정없이 휘몰아치던 태풍 속에 어미도 잃고, 혼자가 되어버린 고양이는 어떤 힘으로 그 무섭고 고독한 밤들을 이겨내었을까. 이렇게 뜨겁고 보드라우며 따뜻하고 말캉거리는 아련하고 작은 생명을 안고 있자니, 이 작은 생명에게 경외감마저 들었다. '나비'라고 먼저 이름을 지었다는 조카에게는 미안했지만, 나는 이 고양이가 좀 더 강인하고, 멋진 이름으로 불리기를 바랐다. 우리는 고양이의 성을 '태풍차바를이겨낸용감한고양이' 그 이름은 '차바', 풀네임으로 '태풍차바를이겨낸용감한고양이차바'로 지었다. 차바는 자신의 긴 이름만큼 그 길고 고독한 여정을 이겨내고, 그렇게 우리에게 오게 된 것이다(아니, 우리를 간택한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가족이 되었다


<반인반묘> 필요한 것을 기꺼이 내어주고, 위안이 되어주며. 서로에게 익숙한 풍경과 편안한 일상이 되어간다. 우리는 가족이 되었다.( 2017, 우리집)


고양이. 새끼 고양이. 아직까지도 여전히 우리에겐 낯선 존재이다. 고양이 집사로서의 소양이 한참 부족한 부부는 관련 책을 사서 보고, 동물협동조합원으로 가입을 하며 외출 가방에는 언제 만날지 모를 길냥이들을 위한 간식을 챙기는 습관도 생겼다. 그리고 조카들과의 영상통화가 잦아졌다. 물론 이모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 차바가 보고 싶은 것이지만. 내심 조카들의 전화가 반갑다. 남동생은 새로운 가족과 인근에서 이웃하며 살고 있다. 동생 결혼식에서 만나게 된 소중한 인연이니, 우리는 모두 용감한 차바를 좋아한다. 둘이서만 '마냥 마냥', 살 것 같던 우리 부부에게 정말 '냥냥'이 덜컥, 찾아온 것이다. 이제 셋이서 함께하는 '꽁냥꽁냥'을 기대하시라.






태풍차바를이겨낸용감한고양이차바를 더 보고 싶다면, www.instagram.com/laolao_jalanja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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