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 가까워질수록 내 마음이 그곳을 향해 성큼성큼 뛰어갔다.”
_잭 케루악, 이만식 역 『길 위에서 on the road』 민음사, 본문 중
‘히피들의 성지’, ‘낭만의 도시’, ‘성소수자의 수도’. 다양한 수식어로 유명한 샌프란시스코는 오래도록 미국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은 도시 1위이며, 최근에는 미국 내 가장 건강한 도시로 선정되었다. 많은 영화의 배경지로 알려진 도시의 가파른 언덕엔 100년이 넘은 케이블카가 골목을 누비고, 실리콘밸리가 인접해있어 소위 ‘핫한’ IT산업의 트렌드를 가까이서 체감할 수 있다. 색색이 서로 다른 색을 입힌 집들은 이 도시를 구성하는 많은 인종들만큼 다양하며 제각기 고유한 정서로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도시의 거리는 잭 케루악으로 대표되는 비트문학, 제임스 딘의 영화인 <이유 없는 반항>으로도 잘 알려진 비트세대의 탄생지이며, 1960년대에는 반전과 평화, 사랑을 노래하던 히피문화의 발상지이다. 성 다양성 운동을 지지하는 무지개 깃발이 가득한 도시는 미국 내 성소수에 대한 차별금지법이 최초로 제정된 곳으로, 카스트로 거리는 여전히 그 상징성을 가진다.
도시를 이루는 작은 골목길, 크고 작은 거리 곳곳에서 우리는 샌프란시스코의 숨어있는 수많은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한 도시에서 기존 주류 문화에 반대한 20세기 대표적인 예술·문화·인권운동의 자취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고, 도시를 여행함에 있어 매력적인 호기심으로 다가온다.
‘STOP!’ 미국에서의 자동차 운전 중 어느 도로,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3초간 정차한 후에 다시 출발해야만 하는 교통 표지판은 비단 운전자뿐만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거리를 걷는 여행자들에게도 때때로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여행의 시간을 늦추고, 걸음을 멈추고. 샌프란시스코를 '길 위에서' 천천히 만나보자.
ㅣ잭 케루악 골목ㅣ ‘비트세대의 아버지’라 불리는 잭 케루악이 즐겨가던 서점과 술집 사이에 위치한 골목이다. 강렬한 색감의 벽화가 인상적이고, 바닥에는 잭 케루악, 존 스타인벡, 마야 엔젤로우. 시티 라이트 서점의 창업자이기도 한 로렌스 펠링 게티 등 유명 작가들이 남긴 명언들을 찾아보는 즐거움이 있다.
ㅣ시티 라이트 서점ㅣ ‘1963년 이래 문학적인 만남의 장이 되어왔던 시티 라이트 서점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서점 곳곳엔 이곳의 역사와 자부심을 나타내는 위트 있는 글귀가 눈에 띈다. 비트세대란, 세계적으로 거대한 히피 운동을 이끌었던 일련의 문학, 예술가 집단으로 잭 케루악을 중심으로 그 모든 운동이 이곳 작은 서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서점은 독립출판물 발행을 겸하며, 현재까지도 잭 케루악의 모든 책이 이곳 시티 라이트 출판사에서 발행된다.
ㅣ시인의 의자 poet’s chairㅣ 서점 2층에 위치한 시의 방(poem’s room)에서는 방대한 양의 시집 컬렉션을 만날 수 있고, 한쪽 창가에 놓인 낡은 시인의 의자에 앉아 그 오래된 사색을 가만히 음미할 수 있다.
ㅣ배수비오 카페 ㅣ 건물 외관의 인상적인 모자이크 벽화가 멀리서도 눈에 띈다. 비트문학을 이끌었던 예술가들의 아지트로, 매일 밤 시 낭송과 열띤 토론이 벌어졌던 곳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카페 겸 레스토랑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당시의 내부가 잘 보전되어 있어, 이전부터 고스란히 쌓인 시간과 정취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ㅣ세상에서 가장 꼬불꼬불한 길ㅣ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에 인상적으로 등장한 길은, 가파른 언덕이 많은 도시에서도 유난히 심한 급경사로 악명 높은 곳이었다. 좀 더 안전하게 만들고자 1922년에 현재의 지그재그 모양의 일방통행 도로로 설계되었다는 길은 이 도시를 방문하는 여행자가 찾는 이색 코스로 자리 잡았다.
ㅣ언덕을 여행하는 현명한 여행자ㅣ 띠링띠링! 경쾌한 종소리가 언덕 너머에서 들려온다면 손을 흔들어 케이블카를 세울 준비를 하자. 유럽 도시에서는 주로 ‘트램’이라고 불리는 샌프란시스코의 케이블카는 100년 전부터 운행되었으나, 현재는 주요 관광코스를 잇는 3개의 노선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왜 케이블카라고 하는지는 일단 직접 ‘매달려’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ㅣ언덕의 속사정ㅣ 반듯하게 세워진 건물, 잔뜩 기울어진 도로. 트릭아트의 한 장면이 연상되는 모습을 언덕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언덕 위 주택들은 멀리 바다가 보이고 전망이 좋아 부촌으로 통하는데, 시내 곳곳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노숙자들을 이곳에선 유독 볼 수가 없다. 그 이유가 재미있는데, 노숙자들도 힘들어서 여기는 안 올라간단다.
ㅣ미국 최대 차이나타운의 위력ㅣ 샌프란시스코의 대표 상징인 금문교 건설로 수많은 인력이 필요했던 도시는 당시 대규모의 중국인 이민자를 받아들였다. 실제로 금문교는 중국인들의 피땀으로 만들어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당시 많은 중국인들이 참여했다고 한다. 현재도 그들의 후손은 샌프란시스코 전체 인구 중 20%를 차지하며, 다양한 민족 중에서도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차이나타운은 여전히 확장 중이다.
ㅣ영원한 따거(大哥)ㅣ 차이나타운 거리의 끝 무렵, 잭 케루아 골목과 만나는 지점에서 느닷없이 익숙한 얼굴을 만날 수 있다. 중국을 넘어 세계적인 액션 스타인 브루스 리, 우리들의 따거 이소룡은 영원히 늙지 않는다.
ㅣ무지개 거리ㅣ 미국 최초의 커밍아웃 정치인이자, 샌프란시스코의 시장이었던 하비 밀크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성소수자의 상징인 무지개 깃발이 거리를 다채로운 모습으로 물들이며, 여전히 자유와 평등,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ㅣ함께 건너요! 무지개 횡단보도ㅣ ‘ If you’re going to San Francisco, Be sure to wear some flowers in your hair(만약에 샌프란시스코에 가게 된다면 머리에 꽃을 꽂는 걸 잊지 마세요)’라는 올드팝 가사 속의 히피들처럼, 머리에 꽃을 꽂고 무기와 미움을 버리고 평화와 사랑을 노래하며 무지개 횡단보도를 건너보는 것은 어떨까. 여기는 샌프란시스코니깐!
ㅣ스완 오이스터 디포ㅣ 1912년 개업한 이래,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을 한 자리를 지켜온 거리의 터줏대감. 매일 공수해오는 제철 해산물을 맛볼 수 있으며, 가게 입구 진열창을 통해 그날 들어온 생물을 확인할 수 있다. 미식가들에게 최고의 찬사를 받고 있는 식당은 협소한 공간, 예약이 불가한 관계로 늘 긴 줄을 피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곳에 진짜 매력은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즐겨 찾는 현지인들의 맛 집이라는 점. 생생한 현지인들의 일상이 궁금하다면 더욱 가볼 만한 곳이다.
ㅣ구마모토 오이스터ㅣ 캘리포니아 연안에 위치한 샌프란시스코는 던지니스 크랩, 조갯살을 넣은 클램 차우더, 생굴 등 각종 해산물 요리가 유명하다. 특히, 그동안 ‘굴은 역시 통영이지!’라고 했던 ‘굴알못’들에게 강력히 굴 시식을 추천한다. 이곳 캘리포니아 바다에서 양식하는 다양한 품종의 생굴을 맛볼 수 있는 기회, 굴이라면 다 ‘그 맛이 굴 맛’이라고 생각해왔다면 깜짝 놀라는 체험을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고급 품종 중 하나인 구마모토 오이스터를 꼭 기억해두자.
ㅣ히피들의 정원ㅣ 반전과 평화, 사랑을 노래하던 히피문화가 시작된 길로 지금은 빈티지 제품을 파는 가게와 자유로운 분위기의 레스토랑들이 주로 자리하고 있다. 길 모퉁이에서 우연히 발견한 작은 정원에 각각의 종교를 대표하는 조각상들이 사이좋게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서로 공존하며 어우러진 모습이 어쩐지 이 거리와 꼭 닮아있다.
ㅣ히피들의 자취를 따라ㅣ 히피들의 주 무대였던 거리에서 애석하게도 이제는 히피들을 만나기는 어렵다. 대신 거리는 도움이 필요한 노숙자들이 자주 찾는 장소가 되었다. 히피들의 그 정신만은 그대로 이어져 거리 곳곳에서 각종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을 위한 단체 및 무료 진료를 안내하는 표지판을 볼 수 있다.
ㅣ모두의 축제ㅣ아일랜드에 처음 가톨릭을 전파한 성인 패트릭을 기념하는 축제가 매년 3월 17일 세계 곳곳에서 열린다. 아일랜드계 이주민들이 많은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다양한 인종이 함께하는 대규모의 거리행진을 볼 수 있다. 인종·국적불문, 남녀노소. 다양한 직업과 각종 이색적인 동호회 사람들이 거리 행진을 즐겁게 채우고, 이를 구경하는 시민들 또한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초록색 장식들로 화답하며 거리는 온통 축제로 물든다.
ㅣ부에나 비스타 카페ㅣ 본고장 아일랜드에서보다 더 맛있는 아이리쉬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카페. 평소에도 북적이는 카페는 아일랜드 축제를 맞아, 페스티벌을 끝내고 모인 사람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뜨거운 커피에 아일랜드 위스키를 진하게 넣어 부드러운 휘핑크림을 얹는 아이리쉬 커피는,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안개의 도시 샌프란시스코에서 몸을 녹여주기에 제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