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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집 Jun 02. 2024

추위 약체의 반란 Part2

스노보드 도전기②


ㅣ반전의 도전


첫 번째 스노보드 도전 후, 어느새 십여 년이 흘렀다.

스노보드란 존재 자체는 이미 내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

하지만 인생은 반전의 연속 아니던가.

나의 뒤늦은 반전은 내 나이 46세 때 일어났다.


사진활동을 열심히 하던 중, 예전 어렴풋이 알고 지내던 한 동생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Y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누나,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사진은 여전히 열심히 찍고 계신가 봐요.'

내가 대답했다.

'그렇지 뭐... 달리 재미있는 것도 없고... 자넨 여전히 보드 열심히 타고 계신가?'

Y가 말했다.

'그럼요! 겨울 오기만 기다리고 있는걸요.'

'누나는 보드 안 타시죠? 엄청 재미있는데...'

Y는 스노보드에 대해서 내가 알 수 없는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운동도 잘 되고, 스트레스도 풀리고, 겨울이 춥지 않다는 등등...

그의 이야기들 중, 가장 나의 귀를 솔깃하게 했던 것은 우리 나이 때의 사람들도 많이 즐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 나도 한 번 해 볼 수 있을까...?'

기어이 난 내가 뱉어선 안 되는 말을 뱉어버린 것이었다.

아마도 예전의 당했던 설욕을 스스로 마음속 깊이 담고 있었나 보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나의 스노보드 재도전은...




난 도전이란 말 앞에 지나친 심사숙고는 지향하지 않는다.

그러다 시작도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봐 왔기 때문에... 그래서 모든 것을 일사천리 진행시켰다.

Y의 도움을 받아 스노보드 동호회에 가입을 하고, 중고로 초보를 위한 저렴한 장비도 구입을 했다.

물론 주위의 반대는 심했다.

'그거 하다 죽을라 그래?!'

'그 나이에 무슨 스노보드야?!'

'어디 부러지면 이제 붙지도 않아!'

'다치면 어떡할라 그래!'

등등...

날 옹호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기껏해야 제일 좋은 말 들은 거 하나 고르라면...

'46세 시작이면 좀 늦긴 했죠...' 정도였다.

사실 나도 46세는 처음이라 긴가민가 했다.

마음 같아선 예전처럼 잘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은데, 과연 내 몸이 따라 줄 것인가......

아무튼 시작이 반이라고 이번엔 좀 제대로 해 보고 싶은 욕심이 자라났다.





ㅣ스노보드 도전기


드디어 겨울이 왔다!

난생처음으로 스키장 시즌권이라는 것을 구입하고, 살벌한 클릭전쟁을 해야 차지할 수 있다는 스키장 락커 구입에도 성공하였다.

공구를 통해 조금 싸게 구입할 수는 있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난 3달치 수영을 다니는 대신이라 생각하고, 그 돈이 그 돈이라고 위로하고 말았다.


스키장은 Y가 가는 시간에 맞춰서 나도 합류하기로 했다.

누군가는 내게서 초보딱지를 떼어 주어야 했기 때문에 당분간은 내가 Y의 껌딱지가 되기로 했다.

사실 Y는 누굴 가르쳐 본 적이 없다고 다른 사람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지만, 낯을 너무 심하게 가리는 나로서는 '초보'것만 가르쳐 주면 된다고 졸랐다.

그렇다고 사설 강습을 받기엔 비용이 어마무시했고, 동호회 강습은 시간이 여의치 않았다.

결국 Y와 그의 친구인 W(강습경험이 아주 많은)가 가르쳐 주기로 했다.

미안하지만 어쩌겠는가.

누구 덕에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역시 Y와 W는 오랜 스노보드 경력자답게 장비 창착에서부터 리프트를 타고 내리는 것까지 세심하게 가르쳐 주었다.

우린 초보자 코스 상단으로 이동했다.

Y의 지도에 따라 앉아서 부츠와 바인딩을 결합하고 일어났다.

일어서자마자 느껴지는 이 미세한 미끄러움이란...!

'어... 어... 어...! 이게 움직여!!!'

왜 그랬을까. 이게 이렇게 무서울 거란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젠 되돌릴 수도 없다. 너무 멀리까지 와 버렸다.


일어나고 넘어지는 방법을 익힌 나는 본격적으로 '낙엽 타기(펜듈럼, Pendulum)'에 돌입했다.

왼쪽으로 쭉~ 오른쪽으로 쭉~

내가 기다란 판때기(데크, deck) 위에 서 있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심지어 데크를 세울 수도, 이동속도와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게 너무나 신기했다.

다만 허벅지가 터질 듯이 아팠다는 건 안 비밀!


진짜 문제는 턴(turn)부터 시작되었다.

신기할 정도로 느린 속도인데도 불구하고, 몸을 돌릴라 치면 그 무서움이 극에 달하는 것이었다.

경사진 면에서 아래쪽을 등지고 뒤로 넘어지면 그 고통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쿵! 뒤통수가 바닥을 치면서 경사면을 따라 데굴! 데굴! 데굴!

헬멧 안쪽으로 묵직한 충격이 느껴지면서 고글도 날아가 버린다.

웃기는 건 그 와중에도 너무 창피해서 재빠르게 툭툭 털고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나의 선생님들은 그저 쿨했다.

나의 아픔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그게 원래 제일 아파요.'

'넘어지면서 배워야 빨리 늘어요.'

'빠른 것 같지만 엄청 느려요.'

'어깨를 쓰세요, 어깨!'

'시선은 멀리!'

'더 앉아야 해요!'

'리듬을 타라고요!'

등등...


턴이 어느 정도 완성이 되자, 예쁘고 다양한 크기의 에스(S) 자를 그리며 타는 연습을 했다.

시선, 어깨, 앉기, 일어나기, 균형, 방향, 데크, 속도, 심지어 주변 사람들까지 신경 쓸 것이 너무도 많았다.

이런 것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면서 몸에 배어야 자연스럽게 탈 수 있을 텐데...

과연 그런 날이 오기는 하는 건지 매우 의심스러웠다.

무슨 용어들은 그렇게나 많은지 이해도 안 되고, 기억도 나지 않는다.

데크의 면이 아니라 날(엣지, edge)로 타라고 할 땐, 그건 정말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과도 같았다.

이 모든 것은 그저 스노보드의 꽃이라는 카빙(carving)을 하기 위한 몸풀기 같은 것이었다.


구겨진 자존심에 선생님들이 없는 날에도 혼자 연습을 하곤 했다.

유투브와 인터넷을 뒤지며 공부도 하고, 고민도 많이 해 보았다.

그래봤자 넘어지면 넘어질수록 겁은 더 많아졌고, 회복력은 예전과 같지 않았다.

짜증이 나고 아파서 고글뒤에 숨어서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했다.

심하게 넘어져서 패트롤(안전요원)이 끄는 마대자루에 실려 가 보기도 하고,

(그 와중에 나를 영상촬영하던 Y가 생각난다. 뭐 지나고 나서 보니 그것도 기념이 되더라는...)

어떤 덩치와 부딪혀서 수미터를 날아가 보기도 했다.

물론 병원에 가는 횟수도 늘어날 수밖에...


점점 스노보드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아니, 늙고 낡아서 마음과는 다르게 움직이는 이 몸뚱이가 원망스러웠다.




ㅣ현재 진행형


현재 나는 햇수로 6년 차나 되는 보더가 되어 있다.

보더라고 하면 거창해 보이겠지만, 눈 밥만 많이 먹은 여전한 초보자이다.

그래도 이젠 슬로프 어디에 갖다 놔도 잘 내려오긴 한다.

넘어지는 것도 요령이 생겨서 전보단 덜 아픈 건 덤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카빙을 못한다!'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체력이 저질이라 긴 시간, 연속성 있는 연습이 부족할뿐더러, 다칠까 봐 몸을 사리는 겁쟁이가 됐기 때문이다.

사실 난 많이 다친 것도 아니었다.

주변에 보면 자잘한 부상에서부터, 인대 파열, 뼈 골절등, 움직이는 게 신기할 정도인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 중에선 여기저기 깁스를 하고도, 금 간 갈비뼈를 부여잡고도, 스노보드를 계속 타는 이들도 있었다.

나도 나였지만, 그들의 열정을 열정이라 부를 수 있는 건지 가늠이 잘 안 갔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것일까.


사실 난 나만의 대답을 찾은 지 오래다.

추운 겨울, 나 같은 추위 약체가, 무거운 장비를 다 차고, 세찬 바람이 몰아치는, 눈이 한가득 쌓여 있는, 슬로프의 정상에 선다니... 이게 말이 된단 말인가!

얼마나 말이 되는지는 6년째, 매년, 여전히, 시즌권을 구입하고, 매주, 스키장을 찾는 나의 행보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난 스노보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눈 내리는 슬로프의 아름다움은 좋다!

나만의 신나는 속도로 슬로프를 내달리는 것도 좋다!

음악을 들으며 아무런 잡념 없이 세상 혼자된 느낌도 좋다!

그 추위에서도 땀이 날 수 있다는 게 좋다!

푹신한 눈에 온몸이 던져져 파묻히는 기분은 정말 끝내준다!(물론 얼은 눈은 빼고)

스노보드가 아니었다면, 이 나이에, 그렇게 눈에 파묻히고, 뒹굴러 볼 일이 있었겠는가 말이다.

거기에 데자와(밀크티) 한 잔과 츄러스는 떨어진 당을 환상적으로 메꿔준다.


그래서 난 스노보드가 좋진 않지만 좋다.(이렇게 밖엔 표현할 길이 없는 것 같다.)

스노보드를 더 이상은 배우지 않겠다고 선언한 지도 오래다.

카빙 따위 못하면 어때!

이제는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열정으로 스노보드를 즐기려 한다.(일명, 관광보드)

그만큼 해봤으면 된 거 아닌가 말이다.

혹시 알아? 이렇게라도 꾸준히 타다 보면 내 나이 70 됐을 땐 묘기(트릭)까지 하고 있을지도...

이젠 실패가 아니라 선택이 된 것이다.


기다려라, 스노보드야. 올 겨울에도 내가 간다!


무늬만 프로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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