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트라피스트 맥주 기행, 생리현상이 준 선물, 로슈포르 수도원을 가다
나무르(Namur)라는 표지판을 따라 버스는 고속도로를 벗어났다. 창밖으로 언덕이 가까워지며 엔진은 조금씩 낮고 무거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버스는 얕은 산기슭을 꾸준히 오르는 중이었다. 산세가 험한 우리와 달리 이곳은 얕은 구릉이 넉넉하게 펼쳐져 있었다. 어디에도 우뚝 솟은 봉우리는 보이지 않았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시야가 넓어지면서 초록색 풍경이 펼쳐졌지만 그 속에 사람의 흔적은 찾기 힘들었다.
지금 향하는 곳은 이번 여행의 세 번째 트라피스트 수도원, 노트르 담 드 생 레미 수도원(Abbey of Notre-Dame de Saint-Rémy)이다. 벨기에 왈로니아 지방 나무르 주의 동쪽, 로슈포르(Rochefort)에 있어 로슈포르 수도원(Trappist Abbey of Rochefort)으로 더 알려져 있다.
로슈포르는 약 10여 년 전부터 한국에서 만날 수 있는 트라피스트 맥주로 마니아 층이 두텁다. 반면 수도원은 다섯 곳의 벨기에 트라피스트 수도원 중 가장 알려지지 않았다. 교통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직영 레스토랑도 없어 여행으로 방문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트라피스트 수도원이 직영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음식과 맥주를 판매하지만 로슈포르는 그렇지 않았다. 단순히 맥주를 마시고자 했다면 수도원을 가는 대신 마을 레스토랑으로 가야 했다. 하지만 로슈포르 맥주의 오랜 팬으로 수도원을 방문하는 것은 일종의 로망이었다. 가장 외진 곳에 있는 소박한 트라피스트 수도원 로슈포르는 이번 기회 아니면 다시는 오기 힘들 것 같았다.
사실 로슈포르 수도원에 가면 꼭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물이었다. 로슈포르는 웹사이트에서 수도원 안에 있는 샘물이 맥주의 비법이라고 자랑하고 있었다. 바로 그 샘물을 직접 보고 싶었다. 물론 수도원 내부는 특별한 허락 없이 절대 들어갈 수 없다. 양조장 또한 마찬가지다. 솔직히 이번 여행에 내부 방문 계획은 없었기에 샘물을 볼 거란 기대는 애초부터 없었다. 수도원의 사진만 찍어도 다행이라는 생각뿐이었다.
고개를 넘으니 저 멀리 수도원 첨탑이 보였다. 앞에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건물들은 양조장이 분명했다. 작은 수도원에 비해 양조장은 꽤 컸다. 버스는 어느덧 입구에 도달했다. 솔직히 이곳에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로망이 이뤄진 것과 다름없었다. 양조장을 배경으로 단순히 사진만 남길 요량으로 버스에서 내렸다.
그런데 양조장 입구가 활짝 열려있는 게 아닌가. 살짝 들어가도 모를 것 같았다. 들어가 볼까? 하지만 갑작스러운 방문이 무례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악마의 속삭임을 참고 양조장 너머로 수도원을 바라봤다. 로슈포르 수도원은 소박하고 고풍스러웠다. 아쉬운 마음 속에 사진을 찍고 버스로 돌아서는데 일행 중 몇 명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화장실이 급했던 것이다.
종종 생리적 욕구는 이성이라는 끈을 하찮게 만든다. 주위에는 나무가 무성했지만 신성한 수도원 앞에서 불경을 저지를 수는 없었다. 짧게 논의를 한 뒤, 급한 마음에 과감히 입구로 들어갔다. 화장실만 이용하고 나올 생각이었다.
안쪽 터는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새소리만 들릴 정도로 고요했지만 양조장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창고 안팎으로 지게차는 바쁘게 맥주를 나르고 있었고 양조장 창 너머로 맥주병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바로 그때, 오래전부터 내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유니콘을 만날 수 있었다. 수백 년 동안 로슈포르 맥주를 만든 마법의 원천, 샘물이었다. 작고 예쁜 물줄기가 양조장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샘물은 ‘Rochefort’ 로고와 만나고 있었다. 로슈포르 양조장에서 서 있다는 비현실감이 온몸으로 엄습했다.
더 구경하고 싶었지만 훨씬 더 급한 게 있었다. 화장실, 빨리 가야 했다. 마침 양조장에서 나오는 남자가 보였다. 작은 키에 금발을 한 남자는 우리를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현지인의 인적도 드문 곳에 동양인들이 왔으니 응당 그럴 만했다. 곧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대한민국에서 트라피스트 맥주를 탐험하러 온 사람들이 화장실이 급하다고 하는데 수도원 맥주를 만드는 어느 누구라도 외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남자는 우리를 양조장에서 수도원으로 가는 작은 쪽문으로 안내했다. 철창으로 된 정말 작은 문이었다. 우리는 닫히면 열 수 없으니 조심하라는 중요한 정보를 서로에게 전달했다. 그 와중에도 예상치 않은 상황에 살짝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양조장을 방문할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양조장은 물론 수도원까지 들어오게 될 줄이야, 복권을 맞아도 크게 맞은 것 같았다.
로슈포르 수도원은 작고 아담했다. 정돈되지 않은, 날 것이 그대로 묻어있는 느낌이었다. 무슨 공사를 하는지 주위에는 포클레인들이 서있었다. 나중에 귀국 후에 알았지만 2010년에 큰 화재가 있어 목재 건축물이 모두 소실됐다고 한다. BBC에 나올 정도로 심각했던 재난이었다. 다행히 수도사와 양조장은 모두 무사했지만 폐허 복구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이날 느낀 날 것은 아마 화마가 새긴 흔적 아니었을까.
화장실은 수도원 입구에 있었다. 그 옆에는 작은 기념품 샵이 보였다. 사실 기념품 샵이라고 하기에 민망한 수준이었다. 맥주, 쟁반, 글라스, 시계 같은 소박한 상품들이 작은 선반에 놓여 있는 정도였다. 계산대도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너 나 할 거 없이 이번 기회가 아니면 이 물건을 구입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진정성(authenticity)의 힘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내 선택은 로슈포르가 각인된 도자기 잔이었다. 화장실을 안내해 준 남자에게 구입 가능 여부를 물었다. 그는 입구에 있던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더니 예스라는 대답을 전했다. 다행히 카드 계산이 가능했다. 예상치도 않았던 많은 주문에 할아버지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 순간,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흰 옷을 걸친 트라피스트 수도사였다. 큰 키에 밝은 눈을 한 그는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외지인인 우리가 수도사에게 말을 건네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그 또한 우리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 양조장 직원과 간단한 대화를 한 뒤 수도원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은 초 현실 자체였다. 인터넷에서만 보던 흰 옷의 트라피스트를 실제로 보다니, 생리현상이 가져온 세렌디피티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로슈포르 수도원은 많은 우여곡절을 품고 있다. 1230년 경 시토 수녀원으로 출발해 조용한 삶을 이어오던 이곳은 16세기부터 크고 작은 부침을 겪기 시작한다. 네덜란드 독립 전쟁 중 큰 화를 입기도 했고 17세기 30년 전쟁동안 전염병과 기근으로 고통받기도 했다. 18세기 프랑스혁명 시기에는 수도원이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그 영향으로 1797년 결국 폐쇄되었다. 1805년 경 매각된 수도원은 농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로슈포르 수도원이 다시 부활한 것은 아헬 트라피스트 수도원(Trappist Abbey of Achel) 덕이다. 1887년 아헬의 수도사 안셀무스 주도로 수도원을 매입했고 1889년 트라피스트 수도원으로 복원되며 새 건물이 들어섰다. 맥주 양조장은 1595년부터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건, 1952년이었다. 전통적인 로슈포르 맥주는 세 종류로 6, 8, 10 숫자로 구분된다. 숫자는 알코올 도수가 아닌 비중에서 비롯됐다. 6은 비중 1.060, 8은 1.080, 10은 1.010에서 가져왔으며 높을수록 알코올 도수도 올라간다.
로슈포르 6는 알코올 도수 7.2%를 가진 블론드 에일이다. 가장 오래된 로슈포르 맥주이며 지금의 위상을 가능하게 한 주인공이다. 로슈포르 8은 9.4% 알코올을 자랑하는 벨지안 다크 스트롱 에일이다. 로슈포르 맥주 중 가장 인기가 많다. 11.3%의 강력한 알코올을 품은 콰드루펠, 로슈포르 10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맥주 중 하나다. 그리고 2020년에는 70년 만에 새로운 맥주가 추가됐다. 8% 알코올을 가진 막둥이, 트리플 엑스트라다. 밝은 색을 띠는 이 에일은 트리펠에 가깝다.
로슈포르 수도원은 직영 레스토랑을 운영하지 않기 때문에 맥주를 마시기 위해서는 시내로 들어가야 한다. 화장실 인심으로 깜짝 선물을 안겨준 양조장 직원에 감사의 인사를 건넨 후 마을로 향했다. 날씨는 살짝 흐렸지만 기분은 시나브로 들떠만 갔다. 왈로니아 건물에서는 플랑드르 스타일의 계단식 벽돌 지붕을 보기 힘들었다. 대신 프랑스와 독일 풍 지붕들이 흔했다. 로슈포르 건물들은 오래되어 보였지만 단정하고 깨끗했다.
맥주를 마시기 위해 찾은 곳은 ‘라 구르망디세’(La Gourmandise)였다. 레스토랑에 가기 위해 버스에 내려 두리번거리는데 바로 앞 붉은 벽돌 건물에서 누군가 밝은 미소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제복을 입은 흑인 여성이었다. 그녀가 있는 붉은 벽돌 건물은 경찰서였다. ‘Police’라는 간판이 없었다면 절대 알아챌 수 없을 듯했다. 낯선 동양인을 환대하는 그녀의 미소는 아직도 선명하다. 아마 로슈포르의 기억으로 평생 남지 않을까.
라 구르망디세는 경찰서 바로 옆에 있었다. 야외 테라스에 앉자 곧 벨기에식 버거와 감자튀김 그리고 맥주가 나왔다. 로슈포르 맥주처럼 알코올 도수가 높은 에일 맥주는 상온에서 즐기는 것이 좋다. 알코올이 휘발되며 맥주 아로마를 한껏 끌어올려주기 때문이다. 트라피스트 맥주잔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넓은 입구는 향을 코로 흩뿌려 맥주 고유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게 도와준다. 로슈포르 맥주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성배처럼 생긴 아름다운 로슈포르 전용 잔에 마셔야 한다.
로슈포르 6는 벨기에 맥주 효모에서 나오는 부드러운 수지와 향신료 향이 돋보였다. 7%가 넘는 알코올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깔끔하고 마시기 편했다. 붉은 기가 감도는 갈색을 품은 로슈포르 8은 우아했다. 섬세한 감초, 흑설탕 향과 더불어 옅은 수지 향이 입안을 물들였다. 맥주가 이렇게 기품이 있을 수 있을까, 절로 웃음이 나왔다.
로슈포르 10은 두 말할 나위 없이 감동 그 자체였다. 짙은 마호가니 색은 무대를 가리고 있는 어두운 장막 같았다. 직접 마시기 전까지는 자신의 매력을 안 보여 줄 거라고 시위하고 있었다. 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가니 이내 화려한 향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건 자두, 블랙베리, 가벼운 향신료 그리고 수지까지 복합적이고 미묘한 향들이 물씬 밀려들었다. 11%가 넘는 묵직한 알코올은 배경에 남아 이 모든 향을 팡팡 터트리고 있었다.
대미를 장식한 건, 막둥이 트리플 엑스트라였다. 향긋한 배향과 수지 향이 배어있는 이 황금색 에일은 버거와 찰떡궁합이었다. 두툼한 소고기 패티는 트리플 엑스트라의 풍성한 탄산을 만나 야들야들해졌다. 입속에서 기름기가 제거된 버거는 단 숨에 사라지고 없었다.
무엇보다 모든 맥주가 신선해서 좋았다. 갓 지은 밥에서 모락모락 나는 김처럼 갓 만든 맥주에서는 살아있는 향이 느껴진다. 맥주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은 나의 감각이 깨어있다는 의미다. 깨어있어야 반응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세상에 반응하는 힘이 우리네 삶을 이어가게 한다. 맥주가 건네는 작은 메시지다.
2021년, 로슈포르 수도원의 부활을 이끌었던 아헬 수도원이 문을 닫았다. 남아있던 두 명의 수도사가 베스트 말레 수도원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아헬 ‘트라피스트’ 맥주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5년 전 아헬 수도원이 맥주를 부활시키기로 결정했을 때, 전심으로 도왔던 이들이 로슈포르 수도사들이다. 로슈포르와 아헬 맥주는 형제와 다름없었다.
수도원이 폐쇄된 이유는 수도사들의 수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14개였던 트라피스트 맥주는 현재 10개에 불과하다. 자급자족이 원칙인 트라피스트에서 맥주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수도사들이 모든 공정에 참여하기에는 벅찰 수밖에 없다. 수도사들은 이제 직접 맥주를 양조하는 대신 정체성을 수호하고 품질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아헬 수도원은 매각된 이후 다행히 양조장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더 이상 트라피스트 라벨을 달수는 없는 아헬 맥주는 애비 맥주(Abbey beer)가 되어 세상에 나온다. 그러나 지나친 상업화를 우려해 생산량을 줄인 트라피스트와 달리 애비 맥주는 최대 생산을 추구하고 있다. 향미는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정체성은 달라진 것이다.
로슈포르를 떠나며 전통과 진정성이 맥주에 어떤 의미일까 생각했다. 언제 다시 이 작은 마을을 방문할지 기약할 수 없지만, 그때도 여전히 트라피스트 정신이 담긴 로슈포르 맥주가 남아있기를, 수도원 샘물이 마르지 않기를 기원한다. 오래된 것들이 오랫동안 이어져, 맥주 속에 문화가 지속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