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년 맥주 문화를 간직한 필스너 우르켈 고향, 필젠에 가다
미리 고백한다. 난 필스너 우르켈의 오랜 팬이다. 그렇지만 오해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필스너 우르켈에게 단 한 캔의 맥주도 협찬받은 적 없다. 솔직히 마트에서 꽤 좋은 가격, 심지어 체코 현지보다 더 싸게 마실 수 있어 굳이 협찬받을 필요도 없다.
필스너 우르켈이란 맥주에 호기심을 갖게 된 계기는 약 10여 년 전 축제였다. 2013년 청계천 한화빌딩 앞 작은 광장에서 필스너 페스트가 열렸다. 대한민국에 맥주 축제라는 플랫폼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주류 박람회에서조차 돈을 받고 맥주를 판매하는 행위 자체가 불법이었다. 그런데 맥주 축제라니, 궁금했다.
<필젠 마을의 동화>, 축제치고 이름도 예뻤다. 필스너 페스트는 상업적 이익을 목적으로 한 축제가 아니라, 체코 맥주 문화를 알리는 공간이었다. 주최 측은 작은 이벤트를 성공하면 맥주를 시음할 수 있는 코인을 나눠주었다. 양조장 심벌을 새긴 구릿빛 코인이었다.
체코를 대표하는 맥주와 음식, 공연은 맥주도 문화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했다. 대한민국에서 이보다 더 나은 축제를 여태껏 보지 못했다. 매년 즐겼던 필스너 페스트가 사라진 게 지금도 무척 안타깝다. 아마 주인이 사브밀러에서 아사히로 바뀐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
맥주 세계에서 필스너 우르켈은 왕이다. 필스너(Pilsner)는 고향, 필젠(Pilsen)의 맥주를, 우르켈(Urquell)은 오리지널, 즉 원조를 의미한다. 황금색을 띠는 모든 라거의 원조, 필스너라는 맥주 스타일의 효시 그리고 현대 라거 왕국의 모태를 누가 건드릴 수 있단 말인가.
오랫동안 필스너 우르켈 팬을 자처하고 여러 강연과 글에서 소개했지만 정작 필젠을 가볼 기회가 없었다. 프라하와 밤베르크를 몇 차례 방문할 때조차 지근에 있는 이 작은 도시는 이상하리만치 연이 닿질 않았다. 나에게는 손에 닿을락 말락 한 신기루 같은 존재였다.
2024년, 유럽 맥주 여행을 기획하며 필젠을 무조건 1순위로 넣었다. 이번에야 말로 오래된 버킷 리스트, ‘현지에서 언필터드 필스너 우르켈 마시기‘를 꼭 하고 싶었다. 프라하에서 필젠으로 떠나며 미리 예약한 양조장 투어를 다시 체크했다. 오전 10시 독일어 투어였다. 독일어를 몰랐지만 다행히도 동행한 30년 지기 지인이 독일어 전문 통역사였다. 오늘은 누님께 신세 지는 걸로.
버스로 한 시간 반, 필스너 우르켈 양조장에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사진으로만 보던 쥬빌리 게이트(Jubilee Gate)에 도달하자 두근거림은 흥분으로 바뀌었다. 드디어 오는구나.
게이트 안쪽은 넓은 광장이었다. 정면 건물 너머로 거대한 하얀색 타워와 거대한 황토색 굴뚝이 나란히 보였다. 비지터 센터 입구 앞 작은 비어 가든에서는 동네 주민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이미 맥주를 즐기고 있었다.
그냥 넘어갈 수 없지. 맥주 구매 출처를 파악한 뒤, 우리는 길 건너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필스너 우르켈은 왼쪽 작은 탭에서 주문할 수 있었다. 아침이지만 4.4% 알코올을 가진 맥주 한 잔 정도는 괜찮지 않은가.
필스너 우르켈의 탭은 아이코닉하다. 황금색 타워에 수도꼭지 모양의 포셋이 달려 있다. 이 수도꼭지를 오른쪽으로 열면 맥주가 나오는데, 열리는 정도에 따라 거품 양이 조절된다. 필스너 우르켈을 마시는 방법은 거품과 맥주 비율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한다.
먼저 하디닌카(Hladinka), 맥주잔 전체의 4분의 1을 거품으로 채우는 방식으로, 오리지널 필스너 우르켈을 맛볼 수 있다. 잔의 반을 거품으로 채우는 슈니트(Šnyt)부터는 우리에게 생소하다. 반이 거품이라니, 한국에서는 당장 컴플레인 걸릴 일이겠지만 오해하지 말 것. 슈니트는 식전에 짧게 맥주를 즐기는 방법이다. 거품으로 홉 향을 즐긴 후, 남아있는 맥주가 입맛을 돋아준다.
마지막은 필스너 우르켈 진짜 팬인지 여부를 알 수 있는 궁극의 비기, 밀코(Mlíko)다. 놀라지 마시라. 밀코를 주문하면 잔 전체를 하얀색 거품으로 가득 채워준다. 거품을 먹으라고? 어디선가 벌써 돈 아깝다는 소리가 들리지만, 밀코의 매력을 몰라서 하는 말씀.
밀코는 거품에 베여있는 사츠 홉 향과 부드러움을 즐기는 문화다. 거품은 서서히 맥주로 변해 잔 밑에 쌓이는데, 이게 별미다. 탄산이 빠지고 자극적인 홉 향이 사라진 필스너 우르켈은 부드러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이지만 문화적으로 독특하고 재미있다.
필젠에서 첫 잔은 하디닌카로 결정했다. 일단 가장 평범한 모습의 우르켈을 즐기고 싶었다. 햇살이 쏟아지는 9월, 살짝 쌀쌀한 비어가든에서 마시는 차가운 필스너 우르켈 생맥주는 어떤 아침 식사보다 맛있었다.
정확히 10시, 혹시 투어에 우리만 있는 게 않을까라는 착각은 금세 사라졌다. 생각보다 많은 독일인들이 모여 있었다. 맥주 자부심에 두 번째라면 서러워할 독일인들조차 필스너 우르켈은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투어는 1838년 품질과 맛이 엉망진창인 맥주에 화난 필젠 시민들이 시청 광장에 맥주 36배럴을 버린 탄생 비화로 시작됐다. 당시 필젠에는 250개의 양조장이 있었는데, 이 사태 이후 필젠 시장은 양조장을 하나로 통합하고 도시를 대표하는 맥주 양조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그렇게 고용된 전문가가 독일 바이에른 출신 초대 브루 마스터, 요셉 그롤이다.
요셉 그롤이 필젠에 오게 된 건 운명이었다. 새로운 양조장 건축 책임자 마틴 슈텔저가 바이에른을 방문했을 때 맺은 인연이 29살의 젊은 청년을 필젠으로 이끌었다.
19세기 중반 독일은 안정적인 라거 양조를 위해 분투하던 시기였다. 요셉 그롤은 라거의 아버지라 불리던 제들마이어 2세, 안톤 드레허, 야콥 야콥슨에게 라거에 대한 영감을 얻은 뒤 필젠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체코 모라비아 지역의 맥아, 사츠 지방의 홉, 필젠의 물, 독일에서 가져온 효모로 라거를 양조했는데, 결과가 대박이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아니 누구나 꿈꿨던 황금색 라거가 세상에 탄생한 것이다.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옅게 말린 맥아와 미네랄 없는 연수였다. 필스너 우르켈은 최초의 황금색 라거에 대해 이러저러한 자랑을 늘어놓지만 개인적으로 우연의 발현이라고 생각한다.
1842년 당시 양조사들이 물의 화학적 조성을 알리도 없었고 체코의 양조기술이 뛰어났던 것도 아니었다.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물속 미네랄 구성과 양이 맥주 색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에야 본격적으로 밝은 색 맥주들이 속속들이 나타났다. 게다가 물의 영향력이 완벽하게 파악된 시기는 20세기 중반에 들어서였다.
양조장 설립 역사와 기록을 둘러본 후, 본격적인 투어가 시작됐다. 이제부터 버스를 타고 공장 내부로 이동해야 한다. 응당 그래야 할 규모였다. 첫 코스는 병입 공장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옆으로 아까 봤던 거대한 타워가 눈에 들어왔다. 등대처럼 보이는 이 아이코닉한 건물은 물을 보관하던 워터 타워였다. 1907년 이래 1892년 창립 50주년을 맞아 건립한 쥬빌리 게이트와 더불어 필스너 우르켈의 심벌을 맡고 있다. 필젠을 내려다보고 있는 웅장한 자태가 양조장의 진정성을 상징하고 있었다.
이제 본격적인 양조장 탐방 시간. 브루 하우스로 들어가기 전, 우르켈 역사를 요약한 짤막한 동영상과 맥주에 사용되는 재료를 체험할 수 있었다. 홉과 물에 대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필스너 우르켈은 일반 맥주에 비해 두 배 많은 홉을 투입한다. 필스너 치고 높은 쓴맛과 젖은 흙 향이 입 안에 가득한 이유였다. 물은 5개 수원, 지하 100미터에서 가져오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물에 송어를 풀어 수질을 모니터링하는 방법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것이 흥미로웠다.
브루 하우스는 유럽 맥주 양조장들의 전형적인 형태였다. 개인적인 가장 큰 관심은 역시 디콕션(decoction)이었다. 맥즙에 있던 몰트를 당화 보일러로 보내 끓인 후, 다시 회수해 온도를 올리는 승온 방식, 디콕션을 여기서는 세 번하고 있었다.
트리플 디콕션은 필스너 우르켈 향미의 비법이다. 황금빛 그러데이션 외관과 달고나 같은 캐러멜라이즈드와 흰 빵 향 그리고 뭉근하고 부드러운 단맛이 여기서 기인한다. 세계적으로 트리플 디콕션을 고수하는 양조장은 이곳, 필스너 우르켈 밖에 없다.
옛 양조장을 둘러본 후, 실제 맥주가 양조되고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끓고 있는 맥주 때문인지, 안이 후끈했다. 2004년 새로 건설한 깨끗하고 단아한 시설이 눈에 들어왔다. 당화조 하나에 두 개의 맥즙 보일러가 트리플 디콕션을 수행하고 있다고 했다. 필스너 우르켈이 최신 공정 속에서도 여전히 전통적인 방법을 따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시간 예정으로 구성된 투어가 이제 막바지에 다다를 시간. 오래전부터 보고 싶었던 공간으로 들어갈 차례다. 1839년, 냉장 시설이 발명되기 한참 전, 필스너 우르켈은 라거 양조를 위한 공간을 지하에 마련했다. 지하 셀러는 유럽의 오랜 양조장들이 해오던 방식이지만 이곳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지하로 내려가는 길은 흡사 탄광 갱도 같았다. 19세기부터 수십 년 간 인력으로 해낸 결과였다. 감탄을 내뱉으며 넋이 나간 상태로 끝이 보이지 않은 공간을 걸었다. 오로지 맥주를 위해 파놓은 땅굴은 경외감이 들 정도였다. 전쟁도 재난도 아닌, 맥주를 목적으로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메인 통로 사이로 가지치기 한 작은 굴도 여럿 보였다. 총길이 9km, 너비 32,000㎥, 깊이 20m에 달하는 맥주 땅굴이 마치 개미집처럼 도시 밑으로 펼쳐 있었다.
한참 걷다 가이드가 우리를 멈춰 세운 곳은 거대한 나무 배럴이 있는 발효실이었다. 이곳에서는 초대 브루마스터 요셉 그롤이 했던 방식으로 맥주를 발효하고 있었다. 이렇게 발효된 필스너 우르켈은 현재 맥주와 비교하는 벤치마크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비록 장비는 현대화되었지만 맛과 품질은 170년 전과 다르지 않음을 증명하려는 몸부림이었다.
진정성과 정체성. 필스너의 원조라는 이름에 먹칠을 하지 않기 위해 편집증 환자처럼 노력하는 모습에 혀를 내두룰 수밖에. 대중의 기호와 트렌드를 따라가느라 길을 잃고 비틀거리는 한국 맥주가 순간 오버랩됐다. 답이 바로 여기에 있는데.
1차 발효가 끝난 맥주는 블랜딩을 거쳐 숙성 배럴로 이송된다. 현재 필스너 우르켈에는 8명의 쿠퍼(cooper)가 6300개의 배럴을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나무 배럴 제작 또한 유네스코 무형 유산에 등재된 전통 방식을 따르고 있었다.
거대한 숙성 배럴 사이를 걷는 경험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선사했다. 빨리빨리, 더 새로운 것만 찾으며 달려온 우리에게 느림과 기다림, 옛 것을 향한 존경과 헌사의 중요성을 속삭이고 있었다. 솔직히 부러웠다. 이런 역사와 문화가.
부러움인지 추위인지 모르는 느낌에 살짝 몸을 떠는 사이, 손에는 빛이 투과되지 않는 언필터드 필스너 우르켈이 들려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이 응축된 황금색 액체가 어찌 맛이 없을 수가 있으랴. 맥주 뒤로 오랜 기간 지켜온 가치와 세계관이 우주처럼 펼쳐져 있었다.
한국에서 필스너 우르켈을 집을 때마다 이 아우라가 계속 보이겠지. 원조의 위엄은 진정성과 정체성을 지키는 행동에서 나온다. 500ml 초록색 캔이 알려주는 진리다. 나 즈드라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