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케르크로 보는 맥주 인문학
몇 해 전 남해 울돌목을 찾았을 때, 소리를 들었다. 아니 울음소리였을까. 거대한 소용돌이를 그리며 거세게 움직이는 물살은 온 몸의 감각을 압도하고 있었다. 주위는 고요했고 같이 간 아내는 아무것도 못 들었다고 했으니, 진짜 소리는 아닐 테다. 아마 영화 명량에서 봤던 울돌목, 이순신 장군이 홀로 수천 명의 왜군을 섬멸했던 그 울돌목 장면이 나의 공감각을 울렸던 게 아닐까.
가끔 역사의 격랑이 지나간 자리에 서면 시간이 남긴 비명과 침묵에 말을 잃곤 한다. 그 안에 남아있는 역사의 잔상은 과거와 현재를 흐릿하게 비추는 간유리가 된다. 재작년 덩케르크를 방문했을 때, 나는 85년 전 역사를 간유리로 보고 있었다.
황금빛 석양이 물드는 덩케르크 해안, 그 아름다움 뒤로 절망에 빠진 병사들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멀리 잔교에 정박한 구축함을 향해 독일 전투기가 낮게 비행을 시작했고, 그 순간 내 귀엔 낮지만 빠른 비트가 웅웅 거렸다. 그것은 영화 덩케르크를 관통하던 불길한 음악이었다.
영화는 공감각을 건드린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덩케르크 영화 내내 음울한 음악을 심어 놓았다. 덩케르크 해안 위에서 공포에 떠는 군인들의 잔상은 쉽게 떨칠 수 있었지만, 음악은 쉬이 떠나질 않았다.
2017년 개봉한 덩케르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덩케르크 해변에서 전개되었던 연합군의 철수 작전을 그린 영화다. 1940년 5월, 독일은 프랑스 국경을 향한 공습을 시작했다.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은 1차 세계대전의 경험을 토대로 벨기에 북쪽 평야 지대에 기갑 부대를 배치하고 독일과 국경을 맞댄 동부 알자스, 로렌 지역에는 거대한 요새, 마지노선을 구축했다.
마지노선은 1920년 말 프랑스 전쟁장관 앙드레 마지노의 주도로 건설된 거대한 방어 요새를 말한다. 프랑스 동부 국경 400~500km에 지하 벙커, 대공포, 대규모 보급 라인 등 초대형 군사시설을 배치시켜 독일의 재침공을 대비했다.
두 지역 사이에는 아덴 숲이 있었다. 연합군 지휘부는 길이 좁고 울창한 삼림으로 둘러싸인 아덴 숲이 자연 방어막이 되어 주리라 믿었다. 독일 전차 부대가 위험을 감수하고 이 지역을 통과하지 않을 거라고 판단해 최소한의 방어막을 구축했다. 설사 들어온다 해도 포위작전을 통해 무난히 격파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독일 전차 부대는 예상을 깨고 아덴 숲을 돌파했다. 에리히 폰 만슈타인 장군은 연합군 부대가 주둔하고 있던 북쪽으로 유인 부대를 보낸 후, 룩셈부르크와 벨기에 남부를 뚫고 프랑스로 진격하는 ‘만슈타인 작전’을 실행했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연합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5월 12일 스당에서 프랑스 군을 격파한 독일은 서쪽으로 진격했고 연합군을 덩케르크 해안으로 포위했다. 공습을 시작한 지 불과 열흘 만인 5월 20일, 히틀러는 전쟁의 승기를 잡았다.
연합군이 할 수 있는 일은 덩케르크에 갇힌 병사들의 구출하는 것뿐. 무려 40만 명의 군인들이 제대로 된 방어선도 마련하지 못한 채, 해안에 갇혀 있었다. 식수와 음식도 부족했고 탄약도 떨어져 갔다. 더 두려웠던 건, 언제 독일 전차 부대가 들어와 목숨을 앗아갈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언제 연합군이 괴멸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던 순간, 아돌프 히틀러가 48시간 동안 공격을 멈췄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지금도 여러 논란이 존재한다. 연합군의 배후 공격을 우려했다는 설도 있고 전투로 지친 전차와 병사의 휴식을 위해 중단했다는 설도 있다. 해안에 고립된 연합군을 폭격기로 손쉽게 섬멸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독일 군이 진격을 멈춘 48시간은 연합군에겐 놓칠 수 없는 골든타임이었다. 문제는 덩케르크였다. 너무 낮은 해안으로 인해 구조선을 가까이 대는 것이 불가능했다. 유일한 탈출 공간은 공습에 취약한 잔교뿐이었다.
영화는 해안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수십 만 명의 병사들을 건조하게 보여준다. 잔교에는 군함이 보이지만 언제 탈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다. 고립된 군인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건 소리다. 해안으로 다가오는 독일 전폭기 소리는 공포를 절망으로 바꾼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탄에 바로 옆 동료가 사라져도 슬픔은 보이지 않는다. 절망에 짓눌린 누군가가 바다속으로 뛰어들어 죽음을 선택해도 무심할 뿐이다. 덩케르크 해안에서 죽음은 일상이고 생존은 본능이었다.
덩케르크는 재난영화에 가깝다. 나는 재난영화를 볼 때면 그 속의 인물이 되어본다. 극복할 수 없는 재난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죽음의 불안 앞에서 과연 인간성을 지킬 수 있을까? 극단적 공포와 절망이라는 단어 앞에 나는 어떤 사람으로 변할까? 이런 질문 앞에 서면 덩케르크에 고립된 병사들의 선택과 행동은 비판의 영역을 벗어난다.
이런 관점에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짜놓은 미학은 놀랍다. 영화 속에서 구조가 필요한 인물들은 이름이 없다. 이름뿐만 아니라 개별적 서사도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속 주인공은 생존하고 싶은 수십 만 명의 군인 중 하나일 뿐이다.
등장인물 중 이름을 가진 사람은 총 다섯 명, 자신의 배를 몰고 덩케르크로 떠나는 도슨 선장, 아들 토미, 토미의 친구 조지 그리고 독일 전폭기에 맞서 출격한 영국 공군 콜린스와 패리어다. 이들 중 서사를 가진 사람은 도슨 선장 한 명이다.
도슨 선장은 영국 공군으로 전사한 아들을 가진 남자다. 덩케르크에 도움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망설임 없이 배를 띄운다. 윈스턴 처칠은 덩케르크 구출 작전에 해안에 닿을 수 있는 소형 선박을 징집했다. 총 600여 대가 넘는 민간 선박이 동참했고, 200여 대의 군함과 함께 33만 명을 구해냈다.
흥미로운 사실은 도슨의 캐릭터가 타이타닉의 생존자, 찰스 라이트롤러에서 왔다는 것이다. 타이타닉의 2등 항해사였던 그는 아이와 여자를 구명정에 먼저 태우고 배와 함께 침몰했다. 다행히 기적적으로 구명보트에 올라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영화 타이타닉에서도 그의 영웅적 모습을 볼 수 있다.
라이트롤러는 ‘익명의 희생자들이 남긴 자리’를 품고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실제로 덩케르크 철수 작전에서 그는 자신의 배, 선다우너호를 이끌고 130명의 군인을 구출했다. 영화 속에서 도슨의 전사한 아들은 타이타닉에서 사라진 수많은 익명의 생명을 상징하고 있었다. 그래서 감독은 도슨을 영웅으로 그리지 않는다. 목숨을 구하러 망설임 없이 바다로 나선 또 다른 수백 명의 익명을 대표하는 인물로 그려낼 뿐이다.
영화 내내 답답했던 가슴은 페리어의 스핏파이어 전투기가 잔교 위로 폭탄을 투하하려는 독일 전폭기를 격추하는 순간 비로소 뚫린다. 그 후 수많은 민간 선박이 해안에 도착하고 실의 차있던 젊은 군인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피어난다. 신기하게도 그제야 영화 내내 들리던 음울한 음악소리가 사라졌다. 이미 역사적으로 결말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런 감정이 들다니, ‘감독님, 제가 졌습니다’라는 고백이 절로 나왔다.
영화 속 병사들은 그토록 그리던 고향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패잔병이라는 죄책감에 고개를 들지 못한다. 그때 누군가가 창문 사이로 맥주 두 병을 건넨다. 이 투박한 맥주는 단순한 술이 아니었다. 생사를 넘나든 이들에게 ‘살아 돌아와서 고맙다'고 건네는 무언의 위로이자, 다시 삶을 이어가게 하는 환대의 상징이었다. 마침내 짠 바닷물과 공포를 삼켰던 그들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맥주는 '생명의 물'이 된다.
덩케르크에서 구출된 33만 명의 군인들은 4년 뒤 노르망디 작전에 투입되어 독일의 패전을 이끌어낸다. 만약 이들이 모두 사망했다면, 우리가 아는 역사는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며칠 전 다시 영화를 보는데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역사의 간유리를 대어보니, 영화 내내 왜 그토록 불쾌감과 안도감이 들었는지 깨달았다.
위기 앞에서도 책임을 회피하는 권력, 시스템의 부재 속에서 각자도생해야 했던 불안한 현실. 내란의 위협과 민주주의의 위기 속에서 우리는 모두 덩케르크 해변에 고립된 이름 없는 병사들이었다.
하지만 절망의 순간, 바다를 건너온 수많은 민간 선박들처럼 광장으로,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익명의 시민들이 있었다. 그들이 든 촛불과 응원봉은 도슨 선장의 배와 다르지 않았다. 기차 안에서 맥주를 마시며 안도하던 병사의 모습 위로 위태로운 일상을 지켜내고 비로소 맥주 한 잔을 기울이는 우리의 모습이 겹쳐졌다.
덩케르크에서 건네진 맥주 한 병이 격려와 환대였다면, 지금 우리 손에 들린 맥주 한 잔은 연대와 승리의 증표다.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 어둠을 뚫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오늘을 기억하며 맥주를 마실 수 있다면, 이 또한 역사가 기억할 '조용한 승리'가 아닐까.
이름 없는 영웅, 당신과 나를 위해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