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세계의 새로운 꽃을 피운 홉과 그루트 대전
홉은 따뜻하고 건조하며 적절한 수분을 가지고 있지만 우울함을 높이고 영혼을 슬프게 만든다. 또한 장기를 약하게 하여 사람에게 유용한 식물은 아니다. 그러나 홉의 쓴맛은 음료의 부패를 막아 오래 보존하게 한다. <피지크>, 힐데가르트 폰 빙엔
1150년 독일 루페르츠베르그, 20여 명의 수녀들이 흙을 나르며 낡은 건물의 벽과 바닥을 다듬고 있다. 손은 부르트고 다리는 상처로 쓰라렸지만 얼굴은 평온했고 입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고된 노동과 기도의 나날이 지속됐지만 자신들만의 수녀원을 일군다는 생각에 육체적 고통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여성 인권이 보잘것없던 중세 시대 성녀 힐데가르트 폰 빙엔은 최초의 독립 수녀원을 세웠다. 자리를 지키며 안온을 영위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수녀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주교에게 독립을 청원했다. 종교를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세운 힐데가르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098년에 태어나 8살에 수녀원에 봉헌된 힐데가르트. 그녀가 일생동안 남긴 업적은 경이롭다. 가장 오래된 도덕극 ‘덕의 유희’와 69곡의 음악을 비롯해 3권의 신학서를 남겼고 어려운 라틴어를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대체 문자도 발명했다. 또한 질병의 원인과 치료에 대한 의학서와 약초의 종류와 사용을 밝힌 ‘피직스’를 저술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바르보사를 비롯해 당대 최고 권력자들은 최초의 여성 수도원장이자 작곡가, 극작가, 시인, 철학가, 예언가, 의사, 약초학자였던 힐데가르트에게 존경을 보냈다. 루페르츠베르그 수녀원과 아이빙엔 수녀원은 이런 배경 속에서 이뤄졌다.
힐데가르트는 맥주 세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그녀는 저서 피직스에서 홉의 특성과 사용법을 처음 기록했다. 736년 독일 바이에른 할러타우에서 재배됐다는 기록은 있었지만 그 역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힐데가르트는 이 책에서 홉을 음식이나 약초가 아닌 방부제로 사용하기를 권했고 이 작은 통찰은 맥주 역사에 놀라운 파장을 일으켰다.
홉은 삼과 덩굴 식물로 은행나무 같이 암그루와 수그루로 구분된다. 맥주에 사용되는 부분은 수정되지 않은 암그루의 꽃송이다. 영국, 독일, 체코 같은 유럽을 비롯해 북미와 중국, 한국, 일본과 같은 북반구 지역이면 어디서든 생육이 가능하며 여러 해살이 식물로 재배하기 용이하다.
맥주에서 홉은 마법 지팡이와 같다. 맥주 향미의 핵심인 쓴맛과 아로마가 홉에서 나온다. 그 비밀은 루플린이라고 불리는 노랗고 찐득이는 물질에 있다. 루풀린에는 4~10% 홉 수지와 1% 미만의 홉 오일이 존재하는데, 이 녀석들이 쓴맛과 아로마라는 마법의 열쇠다.
다른 술과 달리 맥주는 일부러 쓴맛을 만든다. 쓴맛의 주인공은 홉 수지 속에 있는 알파산이라는 물질이다. 놀랍게도 알파산은 펄펄 끓는 물과 만나면 높은 쓴맛으로 변한다. 양조사는 맥즙을 끓이는 과정에 홉을 넣어 쓴맛을 생성한다. 쓴맛을 만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맥아에서 나오는 단맛을 상쇄시켜 맛의 균형감을 맞추기 위해서다.
루플린의 또 다른 마법 열쇠, 홉 오일은 맥주에 매혹적이며 아름다운 향을 남긴다. 감귤, 열대과일, 꽃, 솔, 베리, 풀, 허브와 흙 향까지, 1%도 안 되는 미미한 홉 오일은 세상 온갖 향을 품고 있다. 양조사는 자신이 디자인한 향을 구현해 내기 위해 다양한 홉 조합을 구성한다. 향을 내는 홉은 주로 발효 전후에 투입된다. 이외에도 홉은 단백질의 안정화, 청징과 항균 작용을 통해 맥주 품질에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 맥주에서 홉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수천 년의 맥주 역사 중 홉이 주재료로 등장한 건, 겨우 500여 년에 불과하다. 힐데가르트가 홉을 보존재로 권장한 이후, 종종 항균용으로 사용되긴 했지만 주인공은 아니었다. 놀랍게도 16세기 이전 맥주의 쓴맛과 향은 그루트(gruit)라는 녀석의 몫이었다.
그루트는 맥주에 쓴맛과 향을 부여했던 허브 혼합물을 말한다. 이 혼합물 구성은 우리에게 다소 생소하다. 습지 머틀, 야생 로즈마리, 톱풀을 비롯해 주니퍼 베리, 생강, 육두구, 계피, 민트, 헤더 등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식물과 향신료가 주재료였다. 그루트는 향미와 보존성에서 홉과 유사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홉에는 없는 무서운 것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권력’이었다.
11세기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는 그루트를 넣지 않는 맥주의 양조를 금지했다. 그리고 ‘그루트 생산과 판매에 대한 독점권’(Gruitgerechtigkeit)을 지역 영주와 수도원에 부여했다. 양조사들은 맥주를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권력층에게 그루트를 구매해야 했다. 주세로서 복무한 그루트는 수백 년 동안 영주와 수도원에게 막대한 부를 보장하며 살아남았다.
일찍이 사람들은 홉이 그루트보다 맥주에 적합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대놓고 사용할 수 없었다. 변화의 바람은 1517년 종교 개혁 이후 네덜란드에서 불어왔다. 개신교를 따르는 네덜란드 양조사들은 가톨릭 살림에 보탬이 되는 그루트를 거부하고 홉을 넣기 시작했다. 홉이 들어간 맥주는 그루트 맥주보다 상쾌한 쓴맛과 우아한 향이 났다. 보존성도 더 우수했다. 사람 입맛은 간사하다고 했던가. 수천 년 간 그루트에 적응됐던 사람들의 입맛이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루트 권력을 뒤집는 홉 혁명의 서막이 시작된 것이다.
그루트에 있는 향정신성 물질도 사회적 이슈였다. 허브와 향신료 중에는 다량으로 섭취하면 정신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것들이 있었다. 중독이나 환각 같은 의도치 않은 사고도 있었지만 최음이나 독살 같은 사건도 종종 발생했다. 1516년 독일 바이에른에서는 맥주 재료로 인한 문제를 없애고자 맥주 재료로 보리와 물 그리고 홉만을 허용하는 ‘맥주순수령’이 제정되기도 했다.
유럽 대륙에서 일어난 홉 혁명은 16세기말 쾰른 대주교가 홉을 허락하며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 그루트의 마지막 저항지는 영국이었다. 15세기 플랜더스 상인들에 의해 전파된 홉은 영국 전통 에일에는 사용할 수 없었다. 영국은 홉이 들어가지 않은 맥주를 에일(ale), 홉이 첨가된 맥주를 비어(beer)로 철저히 구분하며 비어에만 영업세를 부과하기도 했다. 심지어 홉이 독초라는 소문도 돌았다.
그럼에도 최후의 승자는 홉이었다. 소비자들은 홉이 주는 향미에 매료되었고 양조사들은 높은 보존성에 환호했다. 1648년 한 에일 양조업자가 에일에도 홉을 넣게 해달라고 탄원서를 보냈고 곧 수락됐다. 사실 이미 암암리에 에일에 사용되고 있던 홉을 영국 정부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17세기가 지나기 전, 홉은 맥주 세계 중심에 승리의 깃발을 꽂았다.
그루트가 사라진 뒤, 독일과 영국산 홉이 홉 세계를 양분했다. 뒤늦게 홉을 받아들인 영국은 산업 혁명을 타고 전성기를 구가하던 자국 맥주에 켄트 지역 홉을 넣었다. 19세기말 독일과 체코를 중심으로 발전한 라거에는 할러타우, 스팔츠 같은 독일 홉과 사츠 같은 체코 홉이 주로 사용됐다. 깔끔한 쓴맛과 은은하고 섬세한 향을 만드는 이 홉에 사람들은 노블홉(noble hop)이라는 우아한 별명을 붙여줬다.
노블홉은 깊은 인상을 주거나 돋보이는 재료는 아니었다. 홉이 새로운 스타로 떠오른 건, 유럽이 아닌 미국이었다. 17세기 미국 이민자들은 유럽에서 가져온 홉 묘목으로 농장을 시작했다. 1800년대에는 뉴욕을 비롯한 동부 지역에 대규모 홉 농장이 있었지만 높은 습도와 추운 봄 날씨로 양질의 홉을 생산하기 힘들었다. 그 대안은 서부였다.
동부와 달리 서부의 날씨와 풍토는 좋은 홉을 키우기에 적합했고 자연스럽게 캘리포니아와 오레곤 그리고 워싱턴 주는 홉 재배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특히 야키마 밸리와 윌라멧 벨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지역 중 하나가 됐다.
신세계 홉으로 불리는 미국 홉은 구세계 유럽 홉과 뚜렷한 차이점을 보인다. 이는 유럽 홉과 자생 홉이 인위적, 자연적으로 교배되며 진화한 결과다. 유럽 홉이 풀과 흙 같은 향을 머금고 있다면 미국 홉은 감귤, 열대과일, 솔, 베리 같은 향을 내뿜는다. 그러나 이런 향은 전통적인 유럽 스타일 맥주나 라거 맥주에 어울리지 않았다. 아니 규칙을 위반하는 것 같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다. 이런 편견을 깬 것이 바로 크래프트 맥주였다.
1970년 중반 샌프란시스코 앵커 브루어리는 미국 캐스케이드 홉을 넣은 리버티 에일을 출시한다. 쌉쌀한 쓴맛에 섬세한 자몽 향이 돋보이는 이 맥주는 크래프트 맥주 운동을 촉발한 1980년 시에라 네바다 페일에일에 큰 영감을 주었다. 미국 홉은 잉글리시 페일 에일을 바탕으로 캐스케이드 자생 홉을 단독으로 넣은 시에라 네바다 페일 에일을 통해 주인공으로 발돋움했다.
1981년에는 강렬한 쓴맛과 폭발적인 홉 향을 가진 시에라 네바다 셀레브레이션 IPA가 탄생했다. 아메리칸 페일 에일보다 더 많은 홉을 넣어 미국 홉의 잠재력을 극대화시킨 맥주였다. 아메리칸 IPA라고 명명된 이 스타일은 18세기 영국에서 인도로 보내기 위해 높은 알코올과 다량의 홉을 넣은 잉글리시 IPA에서 영감을 받았다. 6% 이상의 알코올과 입안을 울릴 정도의 높은 쓴맛을 배경으로 비강 구석구석을 찌르는 강력한 감귤류, 열대과일, 솔 향이 매력인 맥주다.
17세기 홉이 그루트에 길들여진 입맛을 바꿨듯이 미국 홉은 유럽 구세계 홉에 익숙했던 사람들의 취향을 뒤흔들었다. 크래프트 맥주 양조사들은 거리낌 없이 홉 폭탄을 만들었고 다양한 스타일에 투하했다. 1990년대 들어 아메리칸 IPA는 미국 전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맥주 스타일 중 하나가 되었고 2000년대에는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를 강타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아메리칸 IPA가 없는 맥줏집은 앙꼬 없는 붕어빵과 같이 느껴질 정도다.
1996년 잭 화이트가 설립한 밸라스트 포인트는 금주령 이후 샌디에이고에 생긴 첫 소규모 양조장이다. 배의 균형을 잡기 위해 하부에 놓는 중량물을 의미하는 밸라스트(ballast)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양조장의 맥주는 바다와 낚시에 관련된 이름을 갖고 있다. 밸라스트 포인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스컬핀 IPA는 2010년 대 대한민국에 아메리칸 IPA 열풍을 몰고 온 장본인이다.
우리말로 독중개를 뜻하는 스컬핀은 IPA의 아이돌이다. 감귤을 연상하게 하는 황금색 외모와 7% 알코올은 이미 우리의 마음을 홀리고 있다. 비강 구석구석을 물들이는 자몽과 텐저린 향은 남아있던 무장마저 해제시킨다. 하지만 아뿔싸, 곧 혀를 아프게 할 만큼 강력한 쓴맛이 입 안을 때리며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화려한 외모 속에 감춘 독기가 매력적이다. 누가 마셔도 사랑할 수밖에 없다.
강한 쓴맛과 뚜렷한 향을 가진 홉은 식용으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다른 술에도 쉽게 어울리지 않는다. 홉의 튀는 개성을 어루만질 수 있는 존재는 맥주가 유일하다. 수백 종류의 홉은 맥주 속에서 수만 가지의 조화를 이루며 공존한다. 그리고 그 공존은 다시 맥주에 다채로운 숨결을 불어넣는다.
다양한 식물군이 모였지만 조화를 이루지 못한 그루트는 인간의 권력이 생존의 무기였다. 이에 반해 균형과 일체감 속에 수백 개의 향을 품고 있는 홉의 생명력은 조화 그 자체다. 다양성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계, 이것이 홉이 건네는 맥주의 아름다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