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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이 Jun 28. 2018

"그래, 청춘 뭐 별거 있니"

<변산>이 청춘을 논하는 방법

오래간만에 <라디오 스타> 같은 느낌을 기대했다. <사도>와 <동주>, <박열>을 거치기까지, 꼭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에 헌신하던 이준익 감독이 맘껏 촌스럽게 웃겨보겠다 다짐한 듯 보였다. 박정민과 김고은을 모아놓고 청춘을 이야기했고, 굳이 소재는 '랩'을 골랐다.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를 통해 본인의 필모 중 가장 힙합정신이 살아있는 영화가 <왕의 남자>(2005)라고 했다. 극 중에서 장생(감우성 분)이 하는 사설이 곧 힙합이며, 어느 시대든 사회에 저항하려는 비주류들이 있었고, 그들이 정신을 담은 문화가 광대놀음, 록, 재즈, 힙합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또한,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 <님은 먼 곳에>가 모두 록을 베이스로 한 영화인데, 이번에는 그것이 힙합이라는 장르로 바뀐 거고 영화가 담고 있는 정신은 결국 비슷하다.




하나, 참 촌스럽고 뻔뻔하게 웃기는 영화

학수(박정민 분)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쇼미더머니 6년 개근의 열정을 불태우는 무명 래퍼다. 이번엔 좀 다를까 싶었던 여섯 번째 도전도 어김없이 탈락. 인생이 개같음을 몸소 느끼고 있는 순간, 발렛 파킹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우연히 고향 친구들을 만나고, 달갑지 않은 전화까지 온다.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것.

학수가 고향인 전라북도 부안으로 떠나면서, 영화는 촌스러워지는 일에 박차를 가한다. 살짝 어색한 사투리를 선보이는 김고은, 박정민 배우의 모습부터 뻔뻔스럽게 우스운 몇 개의 설정까지. 촌스러움의 미학을 제대로 보여준다. 감독은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인터뷰에서, "촌구석 인물들이 나오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그게 촌스럽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거 아니냐"라고 했다. 맞다. 안 촌스러운 게 억지스러운 거지. 

피식거리며 웃게 만들다가, 한 번씩 마음이 찡한 장면도 등장한다. 적당히 웃고, 적당히 감동받을 수 있는. 유행의 최전방에 있는 힙합과 랩을 담으면서도, 거기에 촌스러움의 정서를 잘 버무린 작품이다.



둘, 열심히 안 하는 게 없는 배우

재능은 둘째치고 일단 너무 열심히 한다. <파수꾼> 시절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글을 쓰는 게 취미였다던 박정민. 그 다이어리가 당시 영화 마케팅팀의 눈에 들어와 <파수꾼> 홍보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이후, 인터뷰 전문 월간지 '탑클래스'에 에디터로 스카웃되어 4년간 매달 원고를 꼬박꼬박 마감하는 배우 겸 작가였다고 한다. 당시 '언희(言喜)'라는 필명을 썼는데, '말로 기쁘게 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언희라는 필명으로 연재한 칼럼은 <쓸 만한 인간>이라는 산문집으로도 발간되었다. 

그의 노력은 최근작 <그것만이 내 세상>을 준비하면서도 이어졌다.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피아노 천재 '진태'역을 맡으며 대역 없이 직접 연주를 하고자 6개월간 5시간씩 꼬박꼬박 연습했고, 도레미파솔라시도밖에 못 치던 그는 무려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을 완벽히 연주하게 됐다.

<그것만이 내 세상> 스틸컷


뭐든 진짜 열심히 하는 듯한 이 배우. 이번에도 래퍼 캐릭터를 위해 1년 가까이 랩 연습을 했다고 한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엔 래퍼 흉내에 그치진 않을까 조금 걱정했으나, 박정민은 래퍼로 훌륭하게 분했다. 러닝타임 내내 꼬박꼬박 깔리던 그의 랩에 우려만큼의 어색함은 없었다.




영화는 재밌다. 심오한 척 청춘에 대해 논하지도 않고, 무게를 잡고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지도 않는다. 내가 읽은 건 '자기를 인정하고, 현실을 직시하자' 정도의 메시지뿐이다.

어차피 행복하게 끝날 것이 뻔한 영화였음에도, 엔딩 크레딧과 쿠키영상을 쳐다보고 있자니, "어 이렇게 끝난단 말이에요?"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생각해보니 쿠키영상 속 신나게 웃고 춤추는 그들의 모습이 결국 <변산>이 청춘을 바라보는 시선이자 논하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래 청춘 뭐 별거 있니, 신나면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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