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래, 청춘 뭐 별거 있니"

<변산>이 청춘을 논하는 방법

by 지은이

오래간만에 <라디오 스타> 같은 느낌을 기대했다. <사도>와 <동주>, <박열>을 거치기까지, 꼭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에 헌신하던 이준익 감독이 맘껏 촌스럽게 웃겨보겠다 다짐한 듯 보였다. 박정민과 김고은을 모아놓고 청춘을 이야기했고, 굳이 소재는 '랩'을 골랐다.


movie_image.jpg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를 통해 본인의 필모 중 가장 힙합정신이 살아있는 영화가 <왕의 남자>(2005)라고 했다. 극 중에서 장생(감우성 분)이 하는 사설이 곧 힙합이며, 어느 시대든 사회에 저항하려는 비주류들이 있었고, 그들이 정신을 담은 문화가 광대놀음, 록, 재즈, 힙합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또한,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 <님은 먼 곳에>가 모두 록을 베이스로 한 영화인데, 이번에는 그것이 힙합이라는 장르로 바뀐 거고 영화가 담고 있는 정신은 결국 비슷하다.




하나, 참 촌스럽고 뻔뻔하게 웃기는 영화

movie_image.jpg?type=m665_443_2

학수(박정민 분)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쇼미더머니 6년 개근의 열정을 불태우는 무명 래퍼다. 이번엔 좀 다를까 싶었던 여섯 번째 도전도 어김없이 탈락. 인생이 개같음을 몸소 느끼고 있는 순간, 발렛 파킹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우연히 고향 친구들을 만나고, 달갑지 않은 전화까지 온다.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것.

movie_image.jpg?type=m665_443_2

학수가 고향인 전라북도 부안으로 떠나면서, 영화는 촌스러워지는 일에 박차를 가한다. 살짝 어색한 사투리를 선보이는 김고은, 박정민 배우의 모습부터 뻔뻔스럽게 우스운 몇 개의 설정까지. 촌스러움의 미학을 제대로 보여준다. 감독은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인터뷰에서, "촌구석 인물들이 나오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그게 촌스럽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거 아니냐"라고 했다. 맞다. 안 촌스러운 게 억지스러운 거지.

피식거리며 웃게 만들다가, 한 번씩 마음이 찡한 장면도 등장한다. 적당히 웃고, 적당히 감동받을 수 있는. 유행의 최전방에 있는 힙합과 랩을 담으면서도, 거기에 촌스러움의 정서를 잘 버무린 작품이다.



둘, 열심히 안 하는 게 없는 배우

movie_image.jpg?type=m665_443_2

재능은 둘째치고 일단 너무 열심히 한다. <파수꾼> 시절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글을 쓰는 게 취미였다던 박정민. 그 다이어리가 당시 영화 마케팅팀의 눈에 들어와 <파수꾼> 홍보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이후, 인터뷰 전문 월간지 '탑클래스'에 에디터로 스카웃되어 4년간 매달 원고를 꼬박꼬박 마감하는 배우 겸 작가였다고 한다. 당시 '언희(言喜)'라는 필명을 썼는데, '말로 기쁘게 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언희라는 필명으로 연재한 칼럼은 <쓸 만한 인간>이라는 산문집으로도 발간되었다.

2132863858339700340C06

그의 노력은 최근작 <그것만이 내 세상>을 준비하면서도 이어졌다.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피아노 천재 '진태'역을 맡으며 대역 없이 직접 연주를 하고자 6개월간 5시간씩 꼬박꼬박 연습했고, 도레미파솔라시도밖에 못 치던 그는 무려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을 완벽히 연주하게 됐다.

movie_image.jpg?type=m665_443_2 <그것만이 내 세상> 스틸컷


뭐든 진짜 열심히 하는 듯한 이 배우. 이번에도 래퍼 캐릭터를 위해 1년 가까이 랩 연습을 했다고 한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엔 래퍼 흉내에 그치진 않을까 조금 걱정했으나, 박정민은 래퍼로 훌륭하게 분했다. 러닝타임 내내 꼬박꼬박 깔리던 그의 랩에 우려만큼의 어색함은 없었다.




영화는 재밌다. 심오한 척 청춘에 대해 논하지도 않고, 무게를 잡고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지도 않는다. 내가 읽은 건 '자기를 인정하고, 현실을 직시하자' 정도의 메시지뿐이다.

어차피 행복하게 끝날 것이 뻔한 영화였음에도, 엔딩 크레딧과 쿠키영상을 쳐다보고 있자니, "어 이렇게 끝난단 말이에요?"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생각해보니 쿠키영상 속 신나게 웃고 춤추는 그들의 모습이 결국 <변산>이 청춘을 바라보는 시선이자 논하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래 청춘 뭐 별거 있니, 신나면 됐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