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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스켓 Jan 16. 2017

'다른 행성설'의 시작 블루라군

아이슬란드 블루라군




우리는 알람 소리에 정신없이 잠을 깨고 새벽 거리로 나왔어.

전날 밤 퍼붓던 빗줄기는 거짓말처럼 사그라들고 시원한 공기만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었지.


거리는 아직 잠들어 있었어. 간간히 차들이 쌍라이트를 켜고 쌩하며 지나갔고

우리는 버스정류장까지 십 분 정도 걸었던 거 같아.





블루라군 입장 티켓과 픽업 버스는 한국에서 미리 예약을 하고 갔어.


픽업 버스는 레이캬비크의 곳곳에 승차를 하는데, 우리는 숙소와 가장 가까운 호텔 앞에서 픽업을 원한다고 예약할 때 미리 기입을 해뒀었지. 그 시간이 오전 7시였어.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질 않는 거야. 그렇게 오분이 흐르고.. 십 분이 흐르고.. 우리의 불안함은 커져만 갔어.


불안함에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근처를 계속 서성이고 있는데, 그때 저 멀리서 버스가 보이더라. 우리가 픽업 버스를 탄 시간은 우리가 타겠다고 했던 시간보다 30분이나 더 지난 시각이었어. 우리 입장에서는 황당했지.


그런데 알고 보니까, 픽업 버스를 타려면 우리가 약속한 시간보다 30분 일찍 나와 있어야 했던 거래. 7시에 예약을 했으면 적어도 6시 30분에는 픽업 장소에 나와 있어야 했다고.. 나중에 안내서를 보고야 알게 된 내용이었지.





호텔 앞까지 왔던 픽업 버스는 레이캬비크 중앙 터미널에 우리를 내려주었어.

여기서 다시 블루라군 입구까지 가는 버스를 타는 거더라구.





터미널은 조용했어.

이 곳 터미널로 모이는 여행자들은 크게 두 분류로 나뉘어. 블루라군으로 가거나, 공항으로 가거나.


지금은 우리가 블루라군으로 가는 버스를 타지만 열흘 뒤엔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이 곳에 다시 오겠지. 그 생각을 하니까 벌써부터 아쉬워지는 마음이 들더라. 여행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말이야.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터미널에 딸린 슈퍼마켓에서 간단하게 요기할 거릴 샀어.





베이컨이 들어간 샌드위치랑 환타 맛이 나는 오렌지색 음료.

이게 아마 우리나라 돈으로 만원 정도 했을걸. 

이때부터였던 거 같아. 아이슬란드 물가를 실감하기 시작했던 게.





아이슬란드에서는 렌트카 여행을 했거든. 

그래서 버스를 타는 일은 공항을 오고 가는 날과 블루라군을 가는 날이 유일했어.


버스를 타면 좋은 점은 그와 함께 풍경을 감상하고,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잠을 잘 수 있다는 점.





버스는 빠르게 레이캬비크를 벗어났어.





블루라군은 유명 관광지답게 시스템이 잘 되어 있었어.


워낙에 찾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시간별 입장할 수 있는 인원을 제한하는 듯했고, 그래서 미리 예약을 하고 가는 게 좋다고 하더라. 우리는 숙소도 예약을 안 했으면서 블루라군은 예약을 하고 갔어. 


우리는 오전 8시 입장이었어.





이른 오전의 블루라군. 

전날 비를 뿌리던 먹구름이 아직 다 걷히지 않고 남아 있어서 햇빛이 희미하게 내려앉았어.





블루라군의 물 색은 분명 푸른빛을 띄었는데 왜 '우유빛'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까.

우유빛 온천물 위로 연기가 피어 올라서 물속에서 바라보는 온천이 더 몽환적이게 보였던 거 같아.





블루라군 바닥은 샐러드볼처럼 중간으로 갈수록 깊어지는 느낌이었어.

돌이 있는 가장자리로 나가면 물이 얕아져서 누워서 신선놀음 하기에 좋았지.


얼굴을 여미는 바람은 날카롭게 차가운데 몸은 따뜻하니 정신이 몽롱해졌어.

잠도 오고, 한국에서 이만큼이나 멀리 날아와서, 이 낯선 공간에 우리 둘이 함께 있다는 게, 새삼 신기하더라구.





블루라군에서 둥둥 떠다니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았어. 

각기 다른 나라에서 여행 온 사람들, 또는 아이슬란드 사람들도 그 순간의 행복을 알기에 이 곳으로 모여드는 거겠지?





한 곳에서는 머드팩을 할 수도 있고,





다른 한 곳에서는 음료를 파는 드링크 바가 있어.





따뜻한 물속에서 마시는 와인.





시간이 정오쯤 되자 구름이 점점 걷히고 시야도 맑아지기 시작했어.

블루라군은 입장하는 데는 인원수를 제한해두지만, 나가는 건 자유야. 언제 나가도 상관이 없어.


그래서 오후로 가면 갈수록 사람이 늘어나는 거 같았어. 

오전에 온 사람들과 오후에 들어온 사람들이 다 함께 있으니까.





블루라군은 사진에서 보던 데로 맑고 밝은 파랑색을 가진 유황 물이었다.

온천을 둘러싸고 있는 현무암, 이끼가 발린 돌, 알 수 없는 괴상한 돌들과 물에서 피어나는 뿌연 연기가 어우러져 신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물속에 들어가 있으면 물 안의 몸은 따뜻하고 물 밖의 얼굴은 시원해서 굉장히 나른하면서도 신선했다. 블루라군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좋았다.


물속에 누워 물과 하늘의 경계에 있는 괴상한 돌들을 보고 있으면 여기가 또 다른 행성인 것 같은 생각까지 들어서 난 그에게 "여기 꼭 다른 행성 같다 우리 이름 지어줄까?"라고 말했고, 녹차 군은 단번에 이렇게 답했다.


"이곳의 이름은, 어장관리."



_10월 6일 블루라군에서의 일기





샤워를 하고 나가는 길에 찍어본 블루라군.

물은 안쪽 온천에서 바깥까지 이어져 이런 호수의 모양을 하고 있었어.

사람들은 들어오거나 나가면서 이 곳에서 인증샷을 많이 찍더라고.





구멍이 뽕뽕 뚫린 돌을 보고 있으니 제주도가 잠깐 생각났어.





셔틀버스는 15분에 한대씩.





온천물에서 신나게 놀고 나왔더니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어.

물속에서 활동하는 게 다른 활동에 비해 에너지 소비량이 높다고 하던데, 3시간을 넘게 놀고 온 우리는 그대로 골아떨어질만했지.


1시간 좀 안되게 버스를 탔던 거 같아. 레이캬비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쯤.

그때까지도 하늘은 맑은 모습이었어. 다행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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