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먹어온 홍합은 진짜가 아니다

포장마차의 흔한 홍합탕 뒤에 숨겨진 담치들의 은밀한 세대교체

by 김동건

찬 바람이 불면 생각나는 뜨끈한 홍합탕. 포장마차나 식당에서 서비스로 내어주는 그 흔한 홍합을 보며 우리는 의심 없이 홍합이라 부른다. 하지만 미식의 관점에서 엄밀히 따지자면, 우리가 평생 먹어온 홍합의 90% 이상은 진짜 홍합이 아닐 확률이 높다. 우리가 흔히 홍합이라 부르는 그 작은 조개의 정체는 사실 20세기 초 선박을 통해 유럽에서 건너온 외래종인 지중해담치다.


지중해담치는 번식력이 워낙 강해 전 세계 바다를 점령하다시피 했고, 양식이 쉬워 대중적인 식재료가 되었다. 반면, 우리 바다의 본래 주인인 진짜 홍합은 따로 있다. 이를 구별하기 위해 현장 어민들과 상인들은 진짜 홍합을 참담치 혹은 크기가 크고 야생성이 강하다고 해서 섭이라 부른다. 흔했던 홍합이 이름마저 외래종에게 내어주고, 이제는 특별한 수식어를 붙여야만 제 대접을 받는 귀한 몸이 된 셈이다.


참담치(섭)와 지중해담치는 체급부터가 다르다. 수조 속에서 마주하는 두 존재는 확연한 대비를 이룬다. 지중해담치가 매끈하고 작은 타원형에 검은 빛을 띤다면, 참담치는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에 껍질이 두껍고 표면에는 따개비나 해조류가 훈장처럼 잔뜩 붙어 있는 투박한 모습을 하고 있다. "지중해담치는 그냥 훑으면 되지만, 섭은 바위에 박혀 있는 걸 정으로 쪼아내야 한다"는 어민들의 말처럼, 참담치를 수확하는 과정은 그 자체가 사투다. 특히 강원도 동해안 깊은 바다 속 암초에 붙어 자라는 자연산 섭을 따기 위해 해녀들은 수심 10미터 아래로 자충을 한다. 기계로 긁어모으는 양식 담치와는 비교할 수 없는 노동의 가치가 그 껍질 속에 담겨

있다.


하지만 이토록 귀한 홍합이라 할지라도 미식가들이 반드시 피해야 할 시기가 있다. 바로 홍합이 번식을 위해 난을 치는 시기다. 대개 수온이 오르기 시작하는 2월부터 5월 사이, 홍합은 종족 보존을 위해 모든 영양분을 생식소로 집중시킨다. 이 시기의 홍합은 암컷의 속살이 유독 붉게 달아오르는데, 겉보기엔 화려해 보일지 몰라도 정작 알을 뱉어내고 난 뒤의 속살은 말 그대로 텅 빈 껍데기처럼 맛과 향이 급격히 떨어진다.


더욱 경계해야 할 것은 이 시기에 맞춰 발생하는 패류독소다. 수온 상승과 함께 번식하는 특정 플랑크톤을 홍합이 섭취하면서 독소가 몸속에 축적되는데, 이는 열을 가해도 파괴되지 않는 치명적인 성분이다. 현장 어민들 사이에서도 "꽃 피는 봄에는 홍합 국물도 조심하라"는 말이 전해 내려오는 이유다. 난을 치며 생명의 순환을 이어가는 홍합에게는 휴식의 시간이, 인간에게는 미식의 절제가 필요한 시기인 셈이다.


맛의 깊이 또한 산란 전후로 극명하게 갈린다. 현장 상인들은 "지중해담치가 가볍고 시원한 맛으로 국물 베이스가 된다면, 참담치는 그 자체로 보약"이라고 입을 모은다. 참담치를 삶아내면 국물이 마치 사골을 고운 듯 뽀얗고 묵직하게 우러나는데, 그 감칠맛의 밀도는 지중해담치가 따라올 수 없는 영역이다. 상인들 사이에서는 "암컷이 살이 달고 풍미가 진해 단골들에게는 슬쩍 암컷을 더 섞어준다"는 기분 좋은 농담이 오가기도 하지만, 이 역시 난을 치기 전 최상의 컨디션일 때나 가능한 이야기다.


홍합은 단순히 서비스 국물의 조연이 아니다. 척박한 바위틈에 족사라 불리는 질긴 줄기를 단단히 고정하고 거친 파도를 견뎌낸 생명력의 응축체다. 손질할 때 이 족사를 제거해 보면 그 끈질긴 힘을 실감할 수 있다. 지중해담치든 참담치든,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물 속에서 붉은 속살을 내비치는 홍합 한 점을 입에 넣는 순간 우리는 바다가 건네는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깊은 위로를 맛보게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름의 진위나 산지가 아니라,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는 안목이다. 난을 치는 시기를 피해 홍합이 다시 살을 찌우길 기다리는 인내야말로 진정한 미식가의 자세다. 흔하게만 여겼던 홍합 한 그릇이 귀해진 계절 음식으로 다가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족사를 제거하고 깨끗이 씻어낸 홍합 한 바구니를 냄비에 올리는 수고로움 속에, 우리는 비로소 우리 바다의 주인이 선사하는 진한 감칠맛의 정수에 도달하게 된다. 어시장에서 섭을 손질하며 "이거 하나면 열 보약 안 부럽다"고 웃음 짓는 상인의 투박한 진심이 바로 홍합 미식의 본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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