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성 있는 사람들에 사람들은 더 끌린다.
어떤게 야수성인가
무언가를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집념
마치 하이에나의 그 것이라도 되는 듯한 굶주림과 본질적 갈망을 표현하는
그 성난 이빨.
나는 야수성하면 저런 것이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데 야수성은 정말 매력적인 요소로 다가온다.
사회와 규범에선 전혀 멀리 살았지만
스스로에게 떳떠하고 진실하며 솔직하게 살아가는 조르바의 삶.
그런 풋내나는 정제되지 않음을 야수성이라 부르고 싶다.
그리고 그런 야수성이 발휘될때, 사람들은 강한 카리스마를 느끼고, 묘한 도전의식과 호감의 감정을 느끼지는 않을까?
사랑은 야수같이 하는 것
물론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
우리가 만나야 하는 이유가 수만가지이고, 나는 이렇고, 너는 이렇고
우리가 사귀면 이성적으로 서로에게 얼마나 괜찮을 수 있는지 따지고, 어느정도의 이익이 있을것이기 때문에
그래 우리는 만나는게 80%정도는 좋겠어 하고 이성적으로 사람들을 만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본질의 궁극적인 면은 사람이 갖고 있는 이 야성을 따라 온다고 생각한다.
거부할 수 없는 끌림, 말로 설명하기 힘든 이 끌림에 압도되는 힘엔
그 사랑의 야성미가 가장 큰 역할을 하지 않을까?
동물의 왕국이라 불리는 건대입구나 주말의 홍대 같은 헌팅술집들도
이러한 야성이 무분별하게 돌아다니는 사회일 수 있다.
서로 앞뒤를 생각하지 않고, 몸만을 탐닉할 상대를 찾아내는 그 공간.
어쩌면 그 공간이 정말 더 솔직할지도 모른다.
생 날 것의 그거를 그대로 물어뜯으면서 당신을 바라보는 하이에나
굶주린 사람들에게만 이런야성이 발휘되는건 아니겠지만
이는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떠한 일에 한번 꽂히고 미치면 그걸 물고 절대 다시 놓지 않는!
그리고 그래서 그런 주변의 야수성 넘치는 친구들과 사람들이 멋지다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한테 끌리더라.
그래서 나는 이 야성을 조금 키우고 싶다.
조르바처럼 살고 싶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게 의사 표현을 하고.
무엇에 얽매이거나 나를 구속하는 것 없이 내 신의에 따라 이야기하며 '개겨봐라'하는!
숨죽이고 살았던 몇 년간 속에서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방향이 틀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우선했다.
이야기를 듣지 않고 나의 말만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봐오면서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고민했다.
그래서 많이 들으려 노력했고, 실제로 부분부분들은 맞는 말이 참 맞다.
황희정승이고 싶었다. 누구의 말이든 어느 정도는 다 이해 될만한 논리가 있기에
그러다 보니 참 너무 숨죽이고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생각도 많이 컸다. 내 뜻대로, 내가 만들고 바라는 대로.
더 야성미 넘치게 살아가련다!
그 시작을 이 곳에서 한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판단하는 건 쉽지만 결국 사람을 끌 수 있고, 이끌어갈 사람이라면 자기의 이상을 뚝심있게 밀어붙이는 힘도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벌려놓은게 많다. 그리고 이 벌려놓은 것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2012년 내가 생각했던 것이 다 틀렸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나를 너무 겸손하게 만들었던 2012 대선의 박근혜가
이제 우리나라에 남은 몇 안된 사람들과 함께 탄핵되었다.
이 세상은 충분히 토론 할 만하고, 충분히 더불어 이야기 할 공간이 된 것 같다.
나 또한 20대의 신해철처럼, 고민과 사색들로. 관용과 이해심과 아량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무엇을 위해 살지는 모르겠지만 무대뽀로 살아갈테다
야성미 넘치는 카리스마 있는 인간이고 싶다.
절대 길들여지지 않으리라. 나를 둘러싼 것들에
사람들은 날 것에 그러한 매력을 느끼는게 사실이다.
원초적인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리라